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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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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투엑타 1호분은 40대 남성이 혼자 묻힌 무덤이다. 직경 68m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덤이지만, 이 남성은 미라 처리되지 않았다.

 

무덤에 들어간 유물은 대부분 이 남성이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것이지만 이제까지 보여드렸던 유물과 다른 유물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알타이의 높은 산지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는 무덤방은 넓지만 유물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이점은 도굴당하지 않은 아크 알라하-3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도 무덤방 안에는 통나무관과 몇몇 식생활 용기 외에는 빈공간이다. 말의 마구 장식이 무덤방 바닥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후대에 무덤을 훼손하면서 생긴 것으로 원래 말이 착장하고 있거나 말 옆이 원래의 위치이다.

식생활용기는 나무, 흙, 뿔로 만들어진 세 가지 종류가 이제까지 발견되었다.

특히 나무로 만든 것은 쟁반(그림2)으로 다리가 붙어 있는 형태로 거의 모든 파지릭 문화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나무쟁반은 통나무 옆의 바닥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는 나무 테이블 위에 목제쟁반이 올려진 채 확인되었다(그림1).

평면형태가 긴 네모꼴이고 다리가 달린 모습이다. 길이는 220cm, 너비는 60cm, 다리높이는 90cm이다. 테이블의 뒷판에는 낙엽송 두 나무판을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제 테이블의 다리(단면 원형)는 다리 끝에 턱이 있는 형태로 나무판의 가장자리에 삽입해서 착장했고, 네 면 모두 상판에서 못 박은 흔적이 남아 있다.가장자리에는 나무판에 테두리를 덧붙였다. 이 유물 위에 다리가 붙은 목제 쟁반(그림 2-2)이 놓여 있었고, 또 한점의 목제 쟁반은 나무방 바닥에 깨진 채(그림 2-1)로 있었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나무 테이블, 보고서의 설명에는 없었으나 사진에서 보면 다리를 붙인 앞에 나무판이 덧댄 것이 보인다.

 

 

라돌로프가 설명한 카탄스키 무덤의 예를 들어서, 투엑타 1호분에서 발견된 목제 테이블은 식탁의 용도로써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죽은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준비기간 동안 아직 죽은 이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시간이 필요 했고, 이 때 사용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특히 이 유적에서 발견된 목제 쟁반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주 큰 유물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나무 쟁반(1-61×80cm, 다리높이: 10cm, 2-64×82cm, 다리높이: 20cm), 잣나무로 만들어짐

 

 

 

 

이 무덤이 도굴로 인해서 유물이 훼손되었다고 해도, 이 유물의 위치는 발견되었을 당시 그대로 였을 것이다. 목제 테이블은 서쪽 벽에 붙어서 발견되었다. 용도는 목제 쟁반이 그 위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서 식탁일 가능성이 가장 많다. 그 상황이야 라돌로프, 루덴코가 말한 것과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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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발견된 그리핀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알타이 지역의 특성화된 유물이다. 독수리 머리에 귀, 갈기, 벼슬을 붙였다. 여기에 맹수몸을 착장하고 날개를 붙이면 전신형이 된다. 이와 같은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 무덤에서 전부 출토되지만, 투엑타 유적에서 가장 먼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2020/07/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투엑타 유적] - 2600년 전 하이브리드 동물문양

 

2600년 전 하이브리드 동물문양

2600년 전 시베리아의 가장 큰 무덤인 투엑타 유적 2호분에서는 여러 가지 말을 꾸미는 장식판이 있다. 말의 굴레에 다는 것이다(굴레에 대한 이해는 앞 선 포스팅). 2020/07/10 - [교과서 밖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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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투엑타 유적 1호분에는 독수리머리 그리핀과는 약간 다른 그리핀도 있다. 얼핏 보면 독수리머리 그리핀 같지만, 갈기가 없고, 머리의 벼슬과 귀, 부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강조된 것으로 전체 평면형태는 ‘S’자이다(그림 1).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똑같은 그리핀 4개가 십자방향 혹은 꽃잎모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유물은 가죽으로 만든 아플리케 장식으로 안장 장식으로 알려졌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에서 출토된 그리핀 장식, 안장장식, 가죽, 9.2×9cm

 

 

그리핀은 독수리머리를 형상화 한 것은 맞지만 갈기를 표현하지 않았다. 물론 별 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유물을 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알타이 외에도 다른 지역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유물은 아니지만 같은 구도라는 점과 그리핀 자체에 주목한다.

 

바르코바(1987)는 갈기가 없고 뿔과 귀만 강조된 그리핀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많이 등장한다고 보았다(그림 2~4).

 

 

 

그림 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2

 

그림 3. 표트르 1세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3

 

그림 4. 표트르 1세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4

 

 

그러나 이 개별 유물의 그리핀은 전체평면형태가 ‘S’형이고, 갈기가 없다는 점은 그림 1의 그리핀과 비슷하지만 표트르 1세의 유물에는 뿔이 없다. 그래서 바르코바의 의견을 그대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리핀이 다른 동물 주제와 결합되는 점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더라도.

 

그림 1의 구도와 같은 유물은 시베리아 투바에 있는 주제르긴그-호부주-1(Дужерлиг-Ховузу-I, Duzherlig-Khovuzu-I)(기원전 6~3세기) 유적 1호분(그림5)에서 출토된 황금 원판에 찍힌 표현물,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발견된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존재하는 문화)의 기원전 6세기 유물(그림 6-35,36)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물들은 구도는 비슷하지만 형상화 된 동물은 다르다.

 

그림 5. 시베리아 투바에 위치한 주레르긴그-호부즈-1 유적 출토 황금제, 원판형 유물(가장 왼쪽)

 

그림 6. 시베리아 미누신스크 분지. 타가르 문화의 유물

 

시베리아와 떨어져 있지만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에 있는 무르가브 강의 하류에 위치한 콘쿠르(Гонкур,Gonkur) 유적에서는 돌을 새긴 도장(일종의 부적)이 발견되었다(그림 7). 한쪽에는 날개를 편 그리핀, 반대편에는 그리핀 4마리가 십자형 구도(그림 8)로 새겨진 것이다.

사리아디니(1976)는 이 유적이 기원전 10세기 이상 올라가기 때문에 십자형 구도의 그리핀은 중앙아시아에서 알타이로 전혀 졌을 것으로 보았다.

 

그림 7. 곤쿠르 유적의 도장 앞면, 석제

 

그림 8. 곤쿠르 유적의 도장 뒷면, 석제, 그림 8의 다른 면

 

하지만 이 유적이 워낙 오래전에 발굴된 유적이고 잘 보고되지 않아서 의심할 여지가 많다. 뿐만 아니라 실제 그리핀의 표현법도 많이 달라서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십자형 구도의 유물이 알타이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어떤 경로 혹은 방법으로든 100%로 같지는 않지만 표트르 1세의 유물에 표현된 그리핀은 알타이 투엑타 1유적의 그리핀과 닮았다.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바르코바, 1987, 고대 알타아의 독수리머리 그리핀의  형태분석)

Членова Н.Л. Происхождение и ранняя история племён тагарской культуры. М.;Л., 1967.(츨레노바 1967, 타가르 문화의 기원)

Cарианиди В.И. Печати-амулеты мургабского стиля. — СА, 1976, №1.(사리아디니 1976, 무르가브 스타일의 도장부적)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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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갈기표현이다. 물론 말의 갈기일 가능성이야 크다. 그리핀으로 장식하는 대상은 말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만 하다. 그러나 보이는 유물이 있으면 좀 더 설명하기가 쉽다.

 

그런데 투엑타 유적에서는 갈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그림 1에서 1,2와 4,5는 얼릉 보기에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관찰해 온 스키타이 유물은 특히 동물표현은 약간의 차이도 이유가 있다. [동물과 매우 밀접하게 생활한 몽골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한국어 아는) 그들은 동물의 약간씩 다른 차이로도 동물을 매우 세밀하게 구분한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재갈멈치(2) 및 굴레장식(1,3~5), 1,2-그리핀, 4,5-말, 목제

 

그림 1에서 위의 그림(1,2)과 아래 그림(4,5)는 귀가 다르다. 때문에 다른 대상물을 표현한 것이다.

이 점은 루덴코도 4,5는 말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날개달린 호랑이에(그림 2) 말의 갈기를 붙인 것이다. 이 유물(그림 1-2)의 용도는 말의 재갈멈치이고, 나머지는 말의 굴레장식일 가능성이 많다.

 

 

그림2.  투엑타 유적 1호분 출토 날개 달린 호랑이 장식

 

나무로 깎은 말은 독수리 머리 그리핀의 갈기표현에도 응용되었을 수 있다(그림 3).

마치 그림 1에서 보이는 호랑이형 그리핀에 말의 갈기를 붙인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림3. 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 출토되는 그리핀의 조합

 

 

 

그리핀은 사방에 보이는 동물을 조합으로 만든 동물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떤 규칙도 숨어 있다. 동물의 종에 따라서 의미적인 속성(특징)들이 보존된다. 때로는 무의미적 특징도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표현되는 동물의 개별 세부요소들 중 중요한 요소는 보존되고 계속된다.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는 표현은 동물의 주둥이와 정해진 자세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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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투엑타 강에 인접한 해발 1000m가량 높이에서 확인된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은 무덤의 수도 많았고, 직경이 68m나 되는 초대형 무덤이 있는 유적이었다. 직경 68m의 무덤은 1호 무덤은 처음 시굴(발굴 전에 땅 밑에 문화층이 있는지 조사)조사한 것은 1949년 이었고, 발굴은 1954년에 무덤을 덮은 돌을 제거하고 1955년에 바닥조사까지 완료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이어서 돌을 모두 들어내지 못하고 매장주체부(무덤방)과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을 만큼(약 30m) 만 조사했다(그림 1). 무덤을 덮은 돌의 무게는 개당 150kg이상이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는 남북방향이다. C-북. 단면도에서 먼저 것은 무덤방 바닥까지 그린 단면도, 단면도의 아래 것은 봉분의 자른 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내부,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이다.

 

무덤구조는 앞서 설명한 파지릭 유적과 흡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설치한다는 점은 같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는 너비가 7.53×7.88m, 깊이는 4.5m이다. 무덤방을 설치하고 상부는 돌로 채웠다(그림 4). 무덤방은 2중 무덤방이다.(바깥 1차-4.98×5.91m, 높이 2.12m, 안쪽 2차-4.15×4.90m, 높이 1.75~1.85m). 무덤방 안에는 통나무관 1기가 놓여 있다(그림 4).

 

무덤방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자작나무를 이용했고 길이가 4.9~6.9m에 달한다.

2중 무덤방은 각각의 덮개가 있고, 3번 통나무를 덮었다.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통나무 12개(길이 2.83m, 직경 42cm)를 세우고 그 위를 남북방향으로 덮었다(그림 3). 그 위는 작은 통나무로 동서방향으로 채운 후 가장 상부에는 다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로 덮었다(그림 4, 이 지점은 무덤상부에서부터 2m 되는 지점). 루덴코는 무덤방을 5번 덮은 것으로 표현했다.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의 외곽 무덤방 덮개, 도굴구멍의 크기는 1.58×1.87m.

 

그림 4.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오른쪽 북쪽.

 

그림 5.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통나무관, 가장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다.

 

말은 무덤구덩이 북쪽에서 8마리가 확인되었다. 머리에 체칸(전투용도끼)으로 내려 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수직으로 세운 통나무 사이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돌이 20cm정도 깔려 있었고, 머리는 동쪽으로 다리는 굽힌채로 옆으로 뉘웠다. 그 위를 자작나무 16개로 덮었다(그림 4).

 

 

 

투엑타 2호분은 1호분의 북쪽에 위치한다. 1호분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직경 32m이고, 높이는 2.6m이다(그림 6).

 

 

 

그림 6. 투엑타 유적 2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 위의 것은 남북방향, 아래 것은 동서방향이다. 각각 단면도의 왼쪽이 북쪽(C)과 서쪽(З)이다.

 

무덤구덩이(4.5×5.8m, 깊이 4.5m) 안에 무덤방(3,3×3.7m)을 만들고 그 안에 통나무관을 놓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 내부에서 북쪽은 말을 위한 공간이고 남쪽에 무덤방이 설치되었다(그림 8). 무덤방 외곽에는 남쪽과 북쪽에 수직으로 기둥(길이 1.48m, 직경 50cm)을 세워서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쉽게 했다. 이 위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를 덮고 다시 동서방향으로 통나무 13개를 나란히 눕혀서 덮었다. 가장 상부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덮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 8마리 분이 있었다.

 

그림 7. 투엑타 유적 2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그림 8. 투엑타 유적 2호분 무덤방 평면도

 

투엑타 유적의 무덤구조가 앞서 살펴본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파지릭 유적과 다른 점은 무덤 상부를 덮은 재료이다. 물론 여러 번 무덤방을 덮은 점은 같지만,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무덤구덩이의 상단부분을 통나무로 채웠으나 투엑타 유적은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 나무를 덮고 그 내부는 돌(1호)과 흙(2호)으로 채웠다.

 

2020/07/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알타이 유적의 없어진 미라

 

2600년 전 알타이 유적의 없어진 미라

바샤다르 유적은 앞서 살펴본 파지릭 유적 보다 대략 100년 정도 이른 유적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를 일종의 지역문화로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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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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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 유적에는 사람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사람도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서 미라로 만들어졌고, 말도 화려하게 꾸민 상태로 함께 묻혔다. 특히 파지릭 유적에는 말의 머리에 마스크를 씌웠다. 마스크에는 특히 화려한 뿔 장식이 달린 것이었다.

 

 

2020/03/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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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엑타 유적 1호분에서도 말의 마스크 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뿔 장식인데 말의 마스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슴 보다는 뿔이 뒤로 굽은 동물은 산염소 혹은 산양이다.

 

쌍으로 확인된 것은 3쌍(그림 1~3)이고, 목제 뿔의 부속품(그림 4)도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쌍이지만 이 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이 유물과 같은 형태의 부속품 등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이 무덤도 역시 도굴당했다. 바샤다르 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그림 1.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1

 

 

그림 2.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2

 

그림 3.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3

 

그림 4.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4의 부속품, 뿔 모양은 가죽, 반원판은 목제

 

 

어떻게 곧은 나무를 휘어지도록 표현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나무조각을 이어서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밀리니코프(2018)가 투엑타 1호에서 발견된 목제 뿔의 제작과정에 대해서 적은 글을 며칠 전 발견했다.

 

목제 뿔은 나무 3 가지를 이어서 붙인 것이다. 곧은 나무를 부채꼴처럼 붙일 수 있었던 핵심 기술은 나무 조각을 길게 비스듬하게 잘라서 붙인 것(그림 5-1, 2)이다.

 

 

그림 5.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나무를 길게 비스듬하게 잘라서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2번 그림 중 가장 아래면은 뿔의 아래면인데, 비스듬하게 자른 면이 아래로 향하도록 붙였다.(밀리니코프 2018 인용)

 

 

목제 뿔의 상단에는 반타원형의 장식판이 붙어 있는데, 목제 뿔에 삽입하도록 제작된 것이다(그림 6). 나무를 파낸 흔적(그림 6-3)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비스듬하게 자른 면을 잇는 방법도 뿔의 지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그림 6-2, 4). 뿔이 마스크와 붙이는 부위(그림 6-4), 뿔의 상단 부위(그림 6-2)이다. 같은 쌍의 또 다른 유물에는 가죽(그림 6-1)으로 연결한 흔적도 남아 있다.

 

그림 6.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 반원형의 장식판을 빼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고 찍은 사진.(밀리니코프 2018 인용)

 

 

삽입된 반원형 나무장식판은 두 판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7). 옆 면에는 뿔에 삽입해서 고정할 때 필요한 구멍이 있다. 나무 못으로 고정시켰다. 상단에도 또 다른 장식을 삽입하게 위해서 사각형(그림 7-2 왼쪽) 으로 잘라내거나 구멍을 뚫는 경우(그림 8-1)도 있다.

 

그림 7.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의 장식판.(밀리니코프 2018 인용)

 

 

반원형 상단에는 그림8과 같이 뿔 모양으로 자른 가죽을 끼워 넣어서 장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8.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의 장식판 2(밀리니코프 2018 인용)

 

 

 

목제뿔에 삽입되는 장식판은 반원형 이외에도 반원형의 하단이 확장되어 홈이 있는 형태(그림 9-2)도 있다. 호랑이(3.5~6cm)는 따로 조각되어서 구멍에 삽입된 것이다.

 

그림 9. 투엑타 1호분 출토 목제 뿔(그림 3과 동일유물). 1-제작자의 표시 ‘X’,

반원형 장식판 8~12cm. 전체 길이 62.5cm, 굽은상태높이 33.5cm(밀리니코프 2018 인용)

 

 

 

참고문헌

Мыльников В.П. Технология изготовления деревянных рогов для парадных погребальных масок коней на Алтае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8, 49-58C. (밀리니코프 2018,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목제 뿔의 제작방법)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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