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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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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0. 09:22 책소개

필자의 책이 출간되었다. 좀 늦게 블로그에 공개하게 되었다.

 

필자가 박사졸업 후 10년간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와 관련해서 쓴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연해주 선사고고학 개론서로,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각 시대별로 고고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환동해문화권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지만 본고에서는 구석기시대도 포함된다. 연해주의 구석기시대는 후기구석기시대 자료로 세석인 석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있는데, 시베리아와 같은 성격이다. 환동해문화권으로 따로 분리할 만큼 근거가 없으며 연구도 매우 부실한 편인데, 시베리아와는 대조적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환동해문화권은 남한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물질자료의 단순한 기원지가 아니라 같은 문화권역이다. 다만 전 기간이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각 시대별로 시간적인 추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백두대간 북쪽으로 연결되는 시호테 알린 산맥과 동해를 공유하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생업형태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강원도 영동지역에 많이 위치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환동해문화권은 남한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물질자료의 단순한 기원지가 아니라 같은 문화권역이다. 다만 전 기간이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각 시대별로 시간적인 추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백두대간 북쪽으로 연결되는 시호테 알린 산맥과 동해를 공유하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생업형태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강원도 영동지역에 많이 위치한다.

  반면에 청동기시대는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가 남한에서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일대에서 발견되고 특히 남강 유역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연해주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생업형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연해주의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고, 그 시작은 신석기시대 후기인 자이사노프카 문화부터이다. 각종 석기 및 곡물자료를 근거로 한다.

   

 그래서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인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물질 자료는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심지어 남강의 충적대지에서도 발견된다. 남강 대평유적의 곡옥형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이전의 자료로 최초로 발견된 청동유물이지만 출토당시에는 의심스러운 자료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청동기시대 조기인 정선의 아우라지 유적에서 청동유물이 발견되면서, 비파형동검 보다 이른 단계에 청동유물이 존재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실이다. 남강 대평의 곡옥형 청동기와 유사한 유물이 환동해문화권 북부의 시니가이 문화에서 유사한 유물이 발견된다.

  따라서 필자는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남강 유역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와 토기 중에 일부는 시니가이 문화 및 흥성문화의 물질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의 청동기시대 형성과정 중에는 많은 요소가 있었을 것이며,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사람들 때문에 한강 이남지역에서 농경문화가 주요하게 자리잡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환동해문화권의 철기시대는 얀콥스키 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폴체문화가 알려졌는데 폴체문화는 본고에서는 제외하였다. 이미 단결 크로우노프카 문화의 III기(기원전 1~기원후 1세기)에 ‘옥저’라는 정치체가 있었다면, 이를 뒤이은 폴체문화는 이미 역사시대로 진입해서 철기시대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동해문화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별로 권역의 차이가 있다. 주로 연해주 및 인접한 두만강과 목단강 유역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이고, 우리나라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비롯한 중부지역은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이다. 시간에 따라서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에는 아무르강 하류도 포함된다.

 

환동해문화권의 북부지역인 연해주에서는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시베리아 카라숙문화의 청동유물과 같은 성분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또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에서는 카라숙 문화 및 타가르 문화의 동검을 모방한 석검 등이 발견되면서 시베리아 문화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에서도 간접적인 시베리아 문화의 요소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매우 일부이며, 연해주만이 주요한 길목이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구에 많은 한계가 있다.

 

‘기원 찾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범위에 대한 별 다른 고민 없이 현대의 『국경』을 전제로 해서, 국경에 속하지 않으면 전부 외부로만 인식해서 생겨났다. 문화의 원류, 기원, 계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최소한 문화의 지역적 위치가 지정학적인 위치가 아닌 『선사인의 생활권역』부터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필자가 연구했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물질문화의 요소를 확인했던 과정은 기원찾기가 아니라 문화권역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가 남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기후와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동해안의 기온이 상승하던 기간에 일어난 현상으로 신석기시대인 6500~6000B.P.과 청동기시대인 3400~2900 B.P.에 일어났다. 각각 루드나야 문화와 시니가이 문화 및 흥성문화로 기온 상승기에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기온하강기에 등장한 여러 문화는 그 지역에 머물렀다는데, 기온 하강기에 등장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문화는 철기시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인데, 쪽구들(온돌)을 만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책의 표지: 사카치 알리안과 키야 유적의 암각화 편집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선사고고학 개론, 진인진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22. 09:22 책소개

 

인쇄 중인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에서 아직 블로그에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 한 부분은 환동해문화권 고고자료와 고아시아족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오클라드니코프가 자신이 발굴한 고고자료를 민족과 접목하면서 생긴 것이다. 그가 민족지자료로 고고자료를 해석하려 한 점은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제 인간형상물의 용도가 민족지 자료로 보아서 집과 관련된 제의적인 유물일 수 있다는데 동의한 부분이다. 또한 무덤에서 나온 자료를 민족지자료와 비교해서 얻은 성과도 상당하고 필자도 한국고고학에서 이러한 부분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1.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와 민족지자료의 비교, 1~23: 우스티 우다 4호 출토품, 24: 나나이족 샤먼의 모습

 

하지만 정정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여러 논고를 통해서 고아시아족을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사람들로 생각했다가 고고학 자료가 증가하면서 기원전 일천년기의 철기시대 폴체문화와 관련시켰고, 다시 만주-퉁구스족으로 정정했다.

그가 최초로 언급한 고아시아족인 나나이족, 울치족은 현재는 만주퉁구스어군으로 분류되고, 고아시아족 혹은 고시베리아족 혹은 니흐브족이 해당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성과가 쌓이면서 생긴문제이기 때문에 오클라드니코프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는 당시에 충실하게 연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클라드니코프는 아무르강과 연해주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고아시아족의 원류임을 전하면서 한국을 언급했는데, 동삼동 유적의 토기 및 패총을 들어서 연해주와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밀접하게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5).

문제는 이 연구관점이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져서 한국민족의 원류가 퉁구스 및 예맥인이 아닌 고아시아족이라는 관점일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고아시아족으로 예를 든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는 신석기시대가 아니고 순동이 확인되는 시대이며, 한국동삼동 유적과 연해주의 신석기문화는 관련성이 크지 않다. 물론 연해주와 강원도는 환동해문화권이지만 동해안의 양양 오산리 이남의 자료인 죽변, 세죽과 같은 출토품은 오산리 유적과 관련성이 더 많다.

오클라드니코프의 논저 당시에는 알려진 동삼동 유적의 예는 미국인 샘플이 조사한 것을 주로 참고했을 것인데, 그 이후에 동삼동 유적은 다섯 번에 걸쳐서 재조사되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연해주 신석기인과 한반도 신석기인의 ‘관련성’을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를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원류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고아시아족으로 해석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한반도 소백산맥 이동의 남부지역에는 독자적인 신석기문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남부지역 신석기문화가 단계적으로 발전된 사실은 자명하다.

따라서 환동해문화권의 동심원문 암각화가 소백산맥 이동에서 확인된다고 해도 이는 환동해문화권 사람들과의 교류 흔적이며, 환동해문화권이 고립적인 지역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반도 남부지역 신석기문화 전체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없고, 더욱이 아무르강 민족문제와도 관련시키기도 힘들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21. 09:22 책소개

연해주 선사시대 문화의 이동이 있는 기간은 6500~6000B.P.과 3400~2900B.P.인데, 현재 보다 따뜻한 시점이며, 기온 상승기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카로트키의 그래프(표 1)에서 기온 상승기이면서 4500~3800B.P.(표 1의 E)에는 환동해문화권에서 문화이동의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시점에는 연해주에는 자이사노프카 문화가 번성하고 있었고, 동해안에는 환동해북부의 평저토기(바닥이 편평한 토기)가 아닌 중서부 지역의 첨저토기(바닥이 뾰족한 토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각 지역의 문화는 기온 하강기에 5000년 전 후(표 1의E)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만강 유역 및 연해주 일대의 자이사노프카 문화는 추워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등장해서 홀로세 기간동안 가장 추운 시점을 찍고 다시 기온이 상승하는 기간 존재했다. 이 문화가 영위되는 동안 매우 극심한 기후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온 상승기인 A와 G 기간에 새로운 문화가 각각 생기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그래서 4500~3800B.P.는 기온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남쪽으로는 이동하기 힘든 사회적 동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동해안의 신석기문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변화는 5100B.P. 평저토기 대신해서 중서부지역의 첨저토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5100년 전 이전부터 평저토기인 오산리식 토기와 융기문토기가 마지막 발견된 5800년 전 사이 동안(표 1의 B)은 환동해문화권 남부 지역에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오산리 유적 C지구의 2호와 문암리 10호 야외노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전 시기와 같이 취락 유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왜 동해안에서 유적이 없는 기간이 나타난 것일까?

 

연해주에서 강원도로 이동했던 루드나야 문화(세르게예프카 유형)가 사라지면서 이를 기억하던 루드나야 문화 사람들이 살던 사회적 배경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표 1). 이 문화는 5800년 전 무렵에 기후가 가장 따뜻했다가 이후로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이동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연해주 보이스만(Бойсман, Boisman) 문화의 3단계와 4단계가 펼쳐지고 있긴 하지만 이 문화의 토기가 강원도에서 출토되지는 않는다. 다만 보이스만 문화의 토기는 북한 라진 유적에서는 발견되기 때문에 두만강 유역 부근에서 그 문화가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루드나야 문화가 끝나면서 추워지기 시작한 5800B.P.이후부터 계속 기온이 떨어져서 5500B.P.무렵 추웠던 기간(표 1의 D)에는 남쪽으로 문화는 움직이지 않았고, 동해안에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5100B.P. 무렵에 강원도 문암리 유적에서 평저토기 보다 상층에서 첨저토기가 발견되면서, 중서부 지역의 첨저토기를 쓰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새로운 생계를 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연해주의 신석기 마지막 문화인 자이사노프카 문화는 기온 하강하는 시점인 5000년 전에 생겨나며, 기온하강기(D)와 기온상승기(E)를 모두 거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때 환동해문화권의 영역은 연해주~목단강 일대로 좁아졌다.

 

또 다른 기온하강기인 2900~1900년 전 동안은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등이 생겨났다. 리도프카 문화와 얀콥스키 문화는 기후 하강기에 등장한 자이사노프카 문화와 마찬가지로 그 이전에 한반도 남부로 이동한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연해주 및 목단강 유역, 두만강 유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는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반도 중서부지역과 중동부 지역에서 확인된다.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이동이 가능했던 것은 이 문화에서 고안되기 시작한 주거지의 구들 때문이었을 수 있다.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사람들이 발명품을 만들었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

 

 

그림 1. 카로트키 박사의 동해안 기온변화 그래프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고고학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20. 09:22 책소개

 

 

필자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각 고고문화와 동해의 기온변화를 비교했다. 동해의 기온변화는 카로트키 박사의 것을 참고로 했다.

러시아에서 기온변화의 연구는 카로트키 박사의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카로트키 박사가 그린 기온 그래프에서 기온 변화가 있는 구간을 A~H로 표시했다.

 

 

표1. 카로트키 박사가 작성한 동해안의 기온변화, 김재윤 편집

 

7000~5100B.P,까지는 현재보다 따뜻하지만 기온변화가 심한데, 세 구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7000B.P.부터 기온이 상승하는데 5800B.P.까지 지속된다( 표 1의 A). 이후 기온은 하강하는데 5500B.P.까지 흐름이 지속되다가(표 1의 B) 5100년 전(표 1의 C)까지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 그 이후로 4500B.P.까지 계속 하강해서 해수면 높이가 지금보다 가장 내려간 시점으로 4m나 내려가는 가장 추워진다(표 1의 D). 이 시점을 지나면서 현재의 해수면을 회복하며 3800B.P.까지 해수면이 급격하게 올라간다(표 1의 E). 하지만 3400년 전까지 현재의 해수면 보다 낮아졌다(표1의 F). 그 이후 2900 B.P.까지 기온은 꾸준히 상승하다가(표 1의 G) 1900년 전(표 1의 H)까지 기온은 다시 하강한다.

 

7000~6000B.P.는 홀로세 기간에서 가장 따뜻했던 기간(표 1의 A기간)이다. 현재 아무르 강을 떠올리면 매우 추운지역으로 생각할 수 도 있지만, 현재보다 해수면이 높아서 이 기간은 매우 따뜻했다(표 1의A). 이 시점에 아무르 강 하류에는 말리셰보 문화와 연해주에는 보이스만 문화가 새롭게 등장했고, 루드나야 문화는 지속되는 시점이다. 보이스만-2 유적이 위치하는 보이스만 만은 석호에 형성되었는데 현재와는 달리 6000년 전 당시에는 보이스만-2 유적은 해안가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온 상승기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 A(7000~6000년 전)기간과 청동기시대 G기간(3400~2900년 전)중에 시작 시점은 각 각 루드나야 문화와 시니가이 문화가 등장한다. 루드나야 문화는 환동해문화권 남부 지역인 강원도 동해안의 유적에 확인되고, 청동기시대 시니가이 문화는 강원도 내륙 영서지역 및 남강 유역까지 이 문화가 이동한 정황이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가장 이른 유적인 오산리 C 지구의 신석기시대 최하층이 형성된 시점은 7000B.P.이다. 뿐만 아니라 최하층 보다 윗 층에서 출토되는 오산리식 토기와 융기문토기는 오산리 C지구의 V~III층, 문암리, 망상동 유적 등에서 6100~5700년 전에 출토된다. 환동해문화권 남과 북에서 모두 기온 상승기에 유적이 형성되었다.

 

6500~6000B.P.동안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 동해안 유적이 연해주와 아무르 강 하류와 관련성이 깊은 기간이다(김재윤 2017). 이때는 기온상승기로 6000~5800B.P.전후가 가장 따뜻했다(표1의 A)인데, 한반도 동해안 유적에서 아무르 강 하류와 연해주의 문화양상이 확인된다(김재윤 2015).

 

3400~2900 B.P.는 동해안의 기온 상승으로 다시 현재의 해수면 보다 올라간 기간으로 시니가이 문화가 연해주 전역에 번성했다. 연해주 해안가에 위치한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유형은 강원도에서 토기가 발견되면서 이 문화가 이동한 흔적이 확연해진다. 물론 서부유형의 토기와 석기도 강원도 및 남강 유역의 평거동 유적의 3-1지구에서 출토되며 시니가이 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곡옥형 청동기가 남강유역에서 나왔다(김재윤 2018).

즉 연해주에서 선사시대 문화의 이동이 있는 기간은 6500~6000B.P.과 3400~2900B.P.인데, 현재 보다 따뜻한 시점이며, 기온 상승기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선사고고학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18. 09:22 책소개

 

오늘은 우라르트를 떠나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박사 졸업 후 10년동안 쓴 논문을 바탕으로 한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선사고고학개론』가 인쇄 중이다.

 

책의 맺음말에서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인 연해주는 늘 한국사의 영역이었다. 가장 가깝게는 독립운동의 기지 중에 한 곳이었다. 연해주는 북경조약(1860년)으로 러시아제국의 영토로 들어갔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주로 살던 사람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는 한국인마을 20개소 7000명, 중국인은 90,000명 정도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에 이는 러시아인 보다 더 많은 수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블라디보스톡의 거리 이름 인데, 지금은 개명되었지만 한국거리, 중국거리, 일본거리 등이 있었다. 또한 연해주의 중국식 혹은 한국식 지명들을 1970년대가 되어서야 모두 일괄해서 러시아식으로 바꾸었는데, 예를 들면 핫산지역의 강 이름 중에 신석기시대 대표유적인 자이사노프카 1이 위치한 글라드카야 강은 개명 이전에는 삼거리였다. 이외도 고개, 거리 등은 특히 한국식 이름이 많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세종 때 여진의 약탈을 막기 위해 녹둔도를 개척하였는데 그 위치가 현재 두만강의 북쪽, 러시아 핫산의 가장 남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 조약 이후, 고종 26년(1889년)에 이에 대한 반환요구가 있었지만 체결되지 못했다.

고려시대는 예종 3년에 윤관이 여진을 토벌하고 동북지역에 9성을 지었는데, 그 위치는 정확하게 규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국학을 연구하는 미하일 보로비요프는 역사기록에 근거하여 현재의 우스리스크시 근처의 유즈노-우스리스크 성과 크라스노야르스코예 성을 윤관 9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했던 공험진(公險鎭)으로 보았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고고학연구소에서 크라스노야르스코예 성곽은 매해 발굴조사 하고 있는데, 여진성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적 정황과 역사적 기록이 정확하게 일치하는지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최소한 연해주가 여진족의 주요 근거 지였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윤관의 9성 중 일부가 존재했을 것이다.

 

  남북국시대로 남쪽에 통일신라가 위치했을 때, 북쪽에 발해가 현재의 국경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에 걸쳐서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이 공동연구 할 수 있는 지역은 러시아로 크라스키노(鹽州城)성, 코크샤로프카 성터, 체르냐치노 무덤군 등은 한국과 공동조사가 이루어졌다. 발해에 대한 역사기록이 아주 미흡한 상황에서 고고학적 자료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점은 발해사의 역사 인식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도 자신의 역사로 인식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의 관점차이가 심하다.

  발해 이전에 알려진 정치체는 옥저와 읍루가 있다. 옥저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읍루는 폴체 문화일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자 들이 많다. 물론 필자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전체를 옥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이 문화의 가장 마지막 기간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II, III 장에서 다룬 것은 위에서 말한 역사의 그 이전 시대이고, 연해주는 한국사의 영역이었다.

머리말에서 다루었지만 필자가 연구한 환동해문화권의 북부지역은 기원지로서의 검토가 아니라 같은 문화권역을 찾고 구체화 한 것이다.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문화가 남쪽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기후변화와 관련있다. 기온 상승기의 문화 가운데 이 동한 것은 신석기문화인 아무르강 하류 말리세보문화와 연해주 루드나야문화(세르게예프카 유형)과 청동기시대 시니가이 문화이며,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에서 뚜렷하게 특징이 드러 난다. 기온 하강기에 발생한 문화이지만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으로 이동한 단결-크로우 노프카 문화는 그 이전 문화들과 달리 집에 쪽구들을 설치해서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책의 표지, 사카치 알리안 유적과 키야 유적의 암각화 편집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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