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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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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솔로하 유적은 전형적인 스키타이 무덤의 구조 속에서 스키타이 남성이 매장되었다. 같이 만들어진 여성 무덤방은 남성과는 무덤구조가 달랐는데, 이미 도굴된 채로 발견되었다.

남성무덤방은 복도가 있는 무덤방으로, 무덤방에는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그 중에 동쪽벽에 설치된 곳은 주인공이 매장되었다. 등을 바닥에 누운 자세로 목걸이, 팔찌 등 황금 장신구로 치장되었다. 왼쪽에는 철검 두 자루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손잡이가 금박으로 입혀진 것이고, 검집에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으로 장식되었다(그림 2).

 

그림 1. 솔로하 유적의 무덤바닥 상세

 

그림 2. 솔로하 유적 출토, 철제검과 검집

 

그의 오른쪽에는 갑옷, 투구, 허리띠, 청동제 화살촉 등이 놓여 있었고, 황금 빗은 그의 오른쪽 어깨 부위에서 발견되었다. 바로 인접한 작은 감실에서 피알리 라고 불리는 금제 접시 혹은 금제 잔이 발견되었다. 피알리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그릇은 일종의 성배라고 한다.

 

스키타이 남성무덤의 서쪽에는 길이 1.5m가량의 목판으로 덮인 말무덤이 나왔다. 이곳에는 5마리의 말이 차곡차곡 누워 있었고 마구와 말안장도 발견되었다. 동쪽벽의 좁은 부분에는 마부의 무덤이 있었는데, 11개의 화살과 함께 매장되었다.

 

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마구는 재갈, 재갈멈치, 말머리 장식, 안장등이다. 특히 말 머리 장식은 3부분으로 구성된 것인데, 콧잔등을 가리는 가장 넓은 장방형 판과 양쪽의 말 볼을 가리는 나뭇잎 혹은 물고기 모양의 장식판이다. 금으로 제작된 것이다(그림 3).

 

그림 3. 솔로하 유적의 황금 말 머리 장식

 

이 유물은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출토된 여성이 표현된 말 머리장식판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유물이 단순히 외래품이 아니라, 스키타이 유물을 응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피알리, 황금빗 등은 스키타이 귀족이 그리스 장인에게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황금빗이 워낙 유명해서 그리스 사람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유적에는 고리트의 장식판에 표현된 그림은 스키타이 남성이 주인공이었다. 또 말머리 장식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의 얼굴을 가리는 장식판의 전통은 스키타이 전통이다.

 

또 유적에서는 나무용기에 덧씌운 금, 은제 덧장식이 많이 발견되었다. 나무용기는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이지만 금판등은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스키타이 전통이다.

 

결국 이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귀족층에서는 재지적인 유물 뿐만 아니라 수입품도 많이 썼고, 그리스로 주문제작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다만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쿨-오바 유적과 달리 다른 무덤방에 매장되었다는 점은 개인적인 사정인지 혹은 두 집단간의 갈등관계를 표현한 것인지는 약간 모호하다.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Искусство, 1987. — 143 с(만세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드네프르 강 하류의 솔로하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다. 스키타이 무덤의 구조를 잘 알 수 있고, 기록에 남아 있는 왕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솔로하 유적의 남녀는 같은 봉분 아래에 각각의 다른 무덤방에 매장되었다. 남성무덤은 무덤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긴 복도가 있고, 무덤방에는 감실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동쪽의 감실에는 스키타이 왕으로 추정되는 이가 누워 있었다. 그 반대편의 서쪽 무덤방에는 감실이 있고 이곳에서 중요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청동으로 된 스키타이 화살촉 180개과 고리투스, 피알리 등이다. 고리투스는 스키타이 특유의 화살통인데, 활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고리투스는 은제품인데 도금된 것이다.

 

 

  고리투스는 세 조각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 몸통에는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오른쪽에는 스키타이 복장을 한 스키타이 전사가 전투를 벌이는 그림이 있다(그림 2). 왼쪽에는 벌거 벗은 몸통인 젊은 전사와 말을 탄 수염이 긴 전사가 싸우는 장면이다. 아마도 벌거 벗은 몸통은 그리스 전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1. 솔로하 유적의 고리투스 장식판, 은제품, 금도금

 

그림 2. 그림 1의 상세, 무덤 주인공의 무용담을 그대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고리투스 속의 스키타이 남성은 무덤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 쿨-오바 유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무덤에서 출토된 여러 장식판의 스키타이 남성은 얼굴이 비슷한데 쿨-오바 유적의 주인공을 사진처럼 묘사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솔로하 유적의 고리투스 속 스키타이 남성도 이 무덤의 주인공일 수 있다.

 

고리투스를 금속으로 장식하는 유물은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 무덤은 여성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리투스의 장식판은 아킬레스 신화 속의 한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Искусство, 1987. — 143 с(만세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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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드네프르 강의 하류에 자리 잡은 솔로하 유적은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무덤(하나의 봉분)안에 매장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 남녀가 합장된 무덤은 많지만 이 유적의 남녀는 각각 무덤방을 따로 만들었고 그 구조도 다르다. 여성무덤은 천정이 둥글고 방의 중앙에 낮은 벽이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남성의 무덤은 지표에서 수직으로 땅을 파고 다시 옆으로 땅을 파서 일종의 복도를 만들고 그곳에 무덤방을 설치했다. 같은 무덤구조는 가이모노바 유적 등 스키타이 남성 무덤에서 볼 수 있다. 무덤방에는 감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곳 가운데 동쪽의 가장 큰 감실에 있는 남성이 무덤의 주인공이라고 베셀로프스키는 생각했다. 그의 주변에는 고리, 빗, 목걸이, 투구, 팔찌, 장식용 철퇴, 철제 검(황금 검집과 황금으로 장식 됨) 등 지위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청동 그리스투구 옆에서 황금 빗이 발견되었다.

주인공 남성의 반대편에 있는 감실에서는 각종 그릇 류가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는 은제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제작은 그리스 장인이 했지만 그 문양은 스키타이 인을 재현한 것이다(그림 2). 은제 그릇 가운데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와 같이 목이 긴 생김새의 그릇도 발견되었다(그림 3).

감실에서 발견된 유물가운데 <피알라>라고 불리는 황금접시는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것이다. 그곳에는 아주 가는 조각칼로 그은 명문이 그릇의 가장자리에 남아 있다. “eleutheria Herman Antisthenes”와 더 가늘게 쓴 “Loko”라는 명문도 발견되었다. 아르타모노프는 그리스 명문이 남아있다고 해도, 그 명문의 연대와 그릇의 마지막 소유자가 같은지는 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무덤 주인공인 루꼬를 호위하는 무사도 무덤방의 남과 북벽에서 발견되었다.

 

그림1. 솔로하 유적의 남성무덤, 동쪽벽에 매장된 남성이 스키타이 차르.

 

그림2. 솔로하 유적의 피알리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Искусство, 1987. — 143 с(만세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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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솔로하 유적은 드네프르강 하류에 위치한다. 유적에서는 남녀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흥미롭게(?)도 같은 봉분 아래에 별도로 무덤방이 설치되었다.

대체로 이제까지 부부로 보이는 남녀는 대부분 같은 무덤방에 매장되었으나(예를 들면 쿨-오바 유적), 이 무덤은 그렇지 않다.

 

보다 북쪽에 위치한 여성무덤방은 매우 심하게 도굴된 채 베셀로프스키에게 발견되었고, 남성의 무덤방은 대체로 온전했다.

같은 봉분 아래에 무덤방이 설치되었지만 남성과 여성의 무덤은 매우 구조가 달랐다. 여성의 무덤방 천장은 둥글고, 중간에 격벽이 있는 구조이다(그림 1). 남성의 무덤방은 수직으로 파고 다시 옆으로 파들어가서 무덤방을 설치해서, 여성의 무덤에는 없는 구조가 생겼다. 남성의 무덤방은 가이모노바 유적과 비슷하고 전통적인 스키타이 남성의 무덤이다.

 

 

여성 무덤방의 북쪽부분이 도굴당했다. 중간 격벽 너머 남쪽에는 그나마 유물이 남아 있었다.

여성무덤방이 도굴당했다고 해도 약간의 유물은 남아 있다.여성무덤방의 서쪽에는 말이 매장된 공간은 따로 마련되었다.

 

【여성 주인공의 머리, 사이렌의 형상판, 새 장식판, 나무그릇을 장식했던 금판, 청동 국자, 그리스 토기(암포라) 등이 있었다. 또 큰 청동솥에 양뼈와 소뼈가 담긴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청동솥을 이용하는데 사용된 나무국자, 가마솥에서 고기를 꺼내기 위한 쇠막대 등이다.】

 

그림 1. 여성무덤방의 평면도(상)와 단면도(하), I: 도굴괭, II-?, 1-청동솥, 2-암포라(그리스식 항아리), 3-간이수레, 4-등받이 없는 의자, 5-접시, 6-암포라, 7-크리크(손잡이 달린 납작한 그리스식 접시)

 

그림 2. 기원 4세기 세미 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크리크

 

크리크 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접시에는 <ΛΥΚΟ>(루꼬)라는 그리스 문자가 남아 있는데, 헤로도투스가 기록했던 스키타이 왕의 이름 중에 한명이다.

 

이 유적에서는 그리스 그릇에 스키타이 왕의 이름이 남겨져 있고, 이것을 여성이 소유하고 있다. 쿨-오바 유적에서 스키타이 남성이 그려진 황금항아리를 여성이 들고 있었던 것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 무덤에서는 남녀가 따로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당시에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쿨-오바 유적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Искусство, 1987. — 143 с(만세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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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세기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쿨-오바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남성와 그리스 여성이 합장된 채 발견되었다. 복장과 달고 있는 장신구들로 보아서 그들은 스키타이 전통문화와 그리스문화를 공유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은 그리스 사람들과 스키타이 사람들이 적대적 관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쿨-오바 유적의 남성은 무덤의 양상으로 보아서 고깔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가 스키타이 인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보스퍼러스 왕국의 성격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인 황금빗에는 그리스 사람과 스키타이 사람이 전투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솔로하 유적은 케르치 해협이 아니라 드네프르 강의 좌안에 위치한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있지만, 발굴된 1912~1913년에 그곳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당시에 활동했던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했다. 처음발견되었을 때 당시에 고분의 마운드(봉분)의 경사면이 깍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만세비치 1987). 높이는 18m이다. 직경은 100m가량이라고 알려졌다.

 

그림 1.기원전 4세기, 솔로하 유적, 발굴 전

 

무덤 내부에는 무덤방이 2개 있었는데, 상부에 있던 여성 무덤은 이미 고대에 약탈된 채로 발견되었고, 하부에 있던 스키타이 권력자의 무덤은 남아 있었다. 여성의 무덤은 위에서부터 약 15m 아래로 파내려 갔을 때 확인되었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남성의 무덤이 매장되었다.

 

그림 2. 솔로하 유적의 단면도(좌)와 평면도(우), 북쪽의 무덤방이 도굴된 여성의 장소이다.

 

 

 

참고문헌

Манцевич А. П. Курган Солоха.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 Л.: Искусство, 1987. — 143 с(만세비치, 1987, 솔로하 쿠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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