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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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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알타이에는 독특한 파지리크 문화가 존재했다. 이 문화는 필자의 생각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문화 중에 한 곳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주로 사용되었던 동물문양은 파지리크 문화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알타이의 파자리크 유적에는 지역문화만 발견되지 않고 꽤 멀리 있는 지역의 유물도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페르시아 지역에서 보이는 것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 하나가 카페트나 패브릭 종류인데 알타이에서 페르시아 문양을 차용해서 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페르시아로부터 가져왔을 것이라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는 유물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연구자인데, 5호에서 출토된 패브릭의 문양(그림 1) 중에서 앗시리아의 향로를 발견했다.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궁전(현대의 이라크 Kuyunjik)과 사르곤 II세(현대 Khorsabad)의 궁전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패브릭

 

그림 2. 아슈르바니팔(a)과 사르곤 II세(b)의 궁전

 

아슈나팔 궁전에 그려진 부조에는 제단에 불꽃이 타오르고 옆에 향로 속에 신성한 횃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옆에는 두 명의 사제 혹은 숭배자가 손을 들고 있어서 신을 향해서 기도하는 장면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르곤 II세의 궁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돋을 새김으로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향로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해 보인다.

 

가장 비슷한 향로는 클레르크가 수집한 실린더 모양의 도장에 새겨진 것이다. 아나히트를 묘사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의 유물로 알려졌다(그림 3).

 

그림 3. 클레르크 수집품. 실린더 모양의 도장중에 일부.

 

 

필자는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발견된 양모천은 앗시리아의 궁전벽화보다는 흑해지역의 켈르레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과 더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내에서 흑해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철제 검의 검집을 주목하고 있다. 이 유물은 우라르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라루투 신(칼디 신)이 그려진 채 발견되었다. 중앙에 생명의 수를 향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 집 중에 일부

 

2021.1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에 발견된 칼디 신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양모 천에 그려진 여성들도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어떤 물체를 들고 있으며 아래를 향한다. 이 모습은 칼디 신이 그려진 우라르투의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서 발견된 것과 더 흡사하다(포스팅 참고).

중앙에 숭배의 대상을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도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우라르투 제작의 검에서 보는 것이 더 흡사하다. 하지만 향로나 여성의 복장은 아나히트와 비교된다. 그런데 이 여신은 아케메니드 왕조 뿐만 아니라 우라르투가 있던 아르메니아에서도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양모천의 그림은 어느 것과도 완전히 일치 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원전 7세기경에 우라르투로 부터 전해진 문양과 아나히트 문양을 적절하게 다시 재해석 했을 수도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현재까지 알타이의 큰 고분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미라가 남아 있는 곳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일명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남녀, 파지릭 5호분의 남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 이다. 현재 소개하고 있는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도 남녀의 미라가 있었을 것이지만 여성은 훼손이 심해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고, 남성은 통째로 없어졌다.

 

그 중에서 문신이 남아 있는 미라는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60세 남성,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기마전사였다. 즉 미라로 발견되었지만 파지릭 2호분의 여성과 같은 유적 5호분의 남녀에게서는 발굴당시에는 전혀 문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문신도 발굴당시에는 아주 밝은색 피부색 위에서 선명하게 들어났지만 공기중에 드러나면서 피부색이 검게 변하면서 문신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보존처리를 통해서만 드러났다(코젤초프, 로마코프 2000).

 

미라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보관하면서 일 년에 2번씩 사진을 찍고 여러 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별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으나 2004년 10월에 파지릭 2호분(여성)과 파지릭 5호분(남성과 여성)의 미라 3구를 적외선 촬영하던 가운데서 문신이 발견되었다. 이 세 구의 미라는 피부가 매우 검게 변해서 육안으로는 문신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간 필자가 앞서 문신이 발견된 미라에 대한 정보는 모두 이 논문( 바르코바, 판코바 2005)이 발표되기 이전의 자료였다. 아크 알라하 3유적(폴로스막 2001), 파지릭 2호분의 남성(루덴코 195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몰로딘 외 2000)은 오늘 소개하는 자료보다 이전 자료를 보고 소개한 것이다.  결국 이 세 구의 미라 외에도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모든 미라에 문신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죄송^^)]

 

적외선 촬영을 통해서 미라의 문신을 발견한 것은 문신에 사용된 염료가 그을음이었기 때문이다. 적외선 촬영에서 그을음을 사용해서 그린 문신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피부는 반사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적외선 촬영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문신은 팔과 다리에 그려져 있다. 신체의 볼록한 표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연속촬영을 해야만 하는데, 제한이 있다. 삼각대 위에 고정된 카메라는 수직과 수평 이동만 가능한데, 미라를 여러 위치에서 찍으려면 각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미라가 나무와 같은 막대기처럼 굳어 있는 상태에서 손과 발 안쪽 표면에 있는 이미지는 비스듬히 찍어야 하지만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신의 세부모양이나 이미지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 시점(2004년)에 복원된 문신의 이미지는 덜 정확할 수도 있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는 이미 문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발견당시에 사자의 몸은 조각난 상태였다는 점을 여러분은 이미 기억하실 것이다. 그는 양 어깨 및 팔, 가슴, 등, 오른쪽 무릎아래에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포스팅참고). 적외선 촬영한 결과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도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그림 1).

 

2020/03/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스키타이 문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처리하는 장례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필자가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에 다녀간 적인 있는 시베리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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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오른손 손가락에 그려진 문신, 수탉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는 함께 매장된 남성과는 달리 문신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왼쪽 어깨, 오른손 손목, 왼손 손목에 문신이 그려진 상태였다. 특히 왼쪽 어깨(그림 2-1), 오른손 어깨아래(그림 2-2)에 그려진 것은 각각 그리핀과 우제류이다. 그리핀은 얼음공주 어깨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비슷하고, 머리없는 우제류는 같은 무덤의 남성 어깨에 그려진 그림과도 매우 유사하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의 문신. 1-왼쪽 어깨문신, 2-오른쪽 어깨 아래(상완), 3- 오른손 손목, 4-적외선촬영

 

파지릭 5호분의 남녀미라는 다행히 훼손당하지 않았으나, 문신을 발견한 것은 2004년이다. 발굴한지 50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이 미라에도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는 마차와 대형 캐노피로 유명한 무덤이었다.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파지릭 5호분만 특별전을 한 적이 있는데, 미라도 그때 전시되었다.

 

2020/04/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남성과 여성미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남성과 여성미라

*사진은 좀 그렇습니다..내용상..... 2500년 전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나의 통나무관에 매장되었다. 2호분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되었다. 2호분은 40대 가량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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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쪽 어깨문신. 어깨에 걸쳐서 등 뒤에까지 호랑이가 이어져서 그려졌다.

 

 

그림 4.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어깨 아래(상완)문신. 굽이 있는 동물이다.

 

그림 5.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하완에 그려진 문신, 그림4와 이어지는 문양이다. 말과 함께 꼬리가 긴 다른 동물(호랑이 추정)이 그려져 있다.

 

 

파지릭 5호분 남성미라의 뒷면과 엉덩이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부분은 미라에 생긴 주름으로 인해서 사진촬영이 잘 되지 않은 부분이다. 위의 문신은 다리 4개이고 그 아래에는 동물의 다리와 머리가 표현되어 있는데, 그리핀의 머리처럼 보인다.

 

그림 6.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허리아래부터 엉덩이에 그려진 문신

 

 

파지릭 5호분의 남성미라는 왼손과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 7)에 닭 그림을 그려넣었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오른손 엄지(그림1)에도 수탉이 그려져 있었다. 여성에게서는 없는 그림이다.

이 남성은 왼쪽 허벅지(그림 8)과 오른쪽 발목(그림 9)에도 문신이 그려졌는데, 상반신에 그려진 것과는 다른 문양이다. 굽이 있는 동물이지만 상반신의 동물들은 역동적인 자세였다면 하반신에 그려진 동물은 열을 짓고 서 있는 자세이다.

 

 

림 7.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손(1)과 오른손(2)

 

그림 8.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쪽 허벅지

 

그림 9.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발목

 

 

파지릭 유적 5호분의 남성과 함께 같은 무덤방, 같은 통나무관에 매장된 여성도 문신(그림 10~13)이 새겨졌다. 양 손목 위(그림 10, 11, 12)과 양 손의 네 번째 손가락(그림 13), 왼쪽 엄지손가락(그림 11, 13-2의 가장 상단)이다. 특히 오른쪽 손목 위에 새겨진 문신은 손목의 전면과 뒷면 전체에 그려졌다. 상단에는 호랑이가 사슴을 물어뜯는 장면, 하단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사슴을 공격하는 투쟁문양이 그려졌다.

두 마리 맹수가 사슴이나 양을 공격하는 장면은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컬렉션 유물에서 잘 알려진 그림이다.

 

그림 10.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손목 위

 

 

그림 11.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 위뿐만 아니라 왼쪽 엄지손가락에도 문신이 남아 있다. 새 그림인데, 그림 13의 2에 위에 그려진 새 그림이다.

 

 

 

그림 12.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쪽 손목 위

 

 

 

그림 13.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양 손.  1-오른손, 2번의 왼손가락의 네 번째 문신,  새 그림은 엄지손가락에 그려진 것이다.

 

일명 얼음공주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와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는 문신의 그림이나 위치가 매우 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 5호분의 여성미라에는 앞의 두 여성에게는 없던 동물투쟁문양이 그려져 있다. 특히 호랑이는 파지릭 5호분의 남성(왼쪽어깨)와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왼쪽 등에 그려졌던 문신이다.

 

 

 

 

 

참고문헌

Козельцов В.Л., Ромаков Ю.А. Новый способ сохранения человеческих муми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2000. №4. С. 103-106.(코젤초프, 로마코프 2000, 미라보존의 새로운 방법//유라시아의 고고학 민족학 인류학)

Баркова Л.Л., Панкова С.В. 2005 : Татуировки на мумиях из Больших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новые материалы). // АЭАЕ. 2005. №2 (22). С. 48-59.(바르코바, 판코바 2005, 파지릭 대형 고분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최신자료)//유라시아의 고고학 민족학 인류학)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파지릭 5호분 특별전 신문기사

 

В Эрмитаже открылась экспозиция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

Дни Эрмитажа начались в Северной столице. Одно из главных событий в череде мероприятий - открытие в музее новой постоянной экспозиции архео

rg.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남부의 파지릭 5호분에서는 펠트로 제작된 대형 캐노피가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양모를 짠 카펫도 출토되었다. 200×185cm 이다(그림 1).

 

 가장 내부에는 긴네모꼴 안에 십자형 도형 24개(가로 4, 세로 6개)가 표현되었다(그림 2). 십자형 도형으로 보이지만, 연꽃봉우리가 4잎으로 도식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연꽃 봉우리 모양은 동물문양장식을 표현한 뒤에 다시 보인다.

 이 연꽃봉우리 밖에는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는 뒤로 젖히고, 날개 및 꼬리가 위로 올라가게 한 것이다. 그리핀 다음에는 큰 뿔이 달린 사슴(혹은 순록) 이 표현되었다. 그 다음에는 말탄 전사가 표현되었는데, 각 면에 7개씩 49개가 표현되었다. 말은 목을 구부리게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깃털을 장식하고, 코리는 활로 묶여 있다. 무늬가 있는 안장 덮개가 표현되었다. 가장 마지막에는 다시 그리핀 모양을 반복해서 그리고 있다. 이 카펫에는 3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림 1. 파지릭 5호 출토, 카펫

 

그림 2. 파지릭 5호 출토 카펫의 세부(그림 1과 동일)

 

고대 이란의 표현된다고 한다.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그리핀은 독수리의 머리와 목에 갈기를 표현하는 것이 인기가 있었는데, 그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카펫에 표현된 그리핀은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에서 일반적인 것이었다(제이말, 1979).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이란에서는 안장이 없어서 유라시아 유목민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말 장식, 전사의 모습과 의복, 목을 구부린 말의 표현등은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 봉헌 판에 있는 유목민의 인물 이미지와 유사하다(제이말 1979).

 

이 유물은 양모의 털로 씨실과 날씰을 교차해서 짠 것이다. 그런데 실을 만드는 털 가운데는 아주 소량으로 죽은 양의 털을 이용한 흔적을 코노노프(루덴코 1968)가 확인했고 후에 미콜라이축(1999)도 다시 확인했다.

 

이 유물에 대해서 그랴즈노프와 루덴코는 알타이에서 제작되었다고 생각했다(루덴코 1961). 온갖 종류를 다 응용하는 고대 이 지역의 전통은 유목민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알타이 유목민의 기술로 제작될 수 없었고, 이란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아르타모프(1973)도 있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는 아마도 그 당시 세상 문화의 중심이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참고문헌

아르타모프 1973Артамонов М.И.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Искусство, 1973. 279 с.(아르타모프 1973, 사카족의 부(富)

제이말 1979 Зеймаль Е.В.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Л.: Искусство, 1979. С. 39, 44, 51-52, 64.(제이말 1973, 아무다르 유적: 전시회도록)

미콜라이축 1999 Миколайчук Е.А. Исследование физико-химического состояния ворсового шерстяного ковр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Реставрационный сб. СПб.: АО «Славия», 1999. Вып. 2. С. 13-17. (미콜라이축 1999, 파지릭 유적의 5호에서 출토된 카펫의 화학적 분석

루덴코 1961, Руденко С.И.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 до н.э.). М.: Издат. фирма РАН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61. 66 с.(루덴코 1961,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루덴코 1968 Руденко С.И. Древнейшие в мире художественные ковры и ткани. М.: Искусство, 1968. 121 с.(루덴코 1968, 고대 예술적인 양탄자와 직조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 해발 1500m가량 되는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에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있다. 크고 작은 무덤이 있는데, 지상에 무덤을 덮은 돌이 남겨져서 쉽게 눈에 띈다.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을 봉분이라고 하는데, 봉분이 있는 무덤을 러시아에서는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파지릭계곡에는 5개의 대형 쿠르간이 있고, 소형 쿠르간도 존재한다. 1호 무덤은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2~5호는 루덴코가 1947~1949년까지 발굴했다.

 

특히 파지릭 5호분은 남녀미라와 함께 4륜의 바퀴가 있는 마차가 확인되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무덤구덩이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무덤방이 2중으로 설치되었고 통나무관이 1개 존재했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묻었다. 파지릭 2호는 도굴이 심해서 남녀 미라가 관 밖에서 확인되었지만, 관은 1개만 확인되어서 같은 방법으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 묻힌 남녀는 55~60세 가량의 남성과 40대의 여성으로 몽골로이드이다. 남녀모두 미라처리된 것이다. 미라 처리는 뼈와 피부만 남기고 인간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치고 피부에 일종의 송진과 기름을 발라서 보존처리했다. 5호의 미라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지 않다. 2호에서는 남성에게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남성은 키가 175~176cm가량이었다.

파지릭 5호분의 미라처리에 사용된 송진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채취된 것이었다. 미라는 온몸에 절개면이 아주 많았는데,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미라처리에서 가장 관건은 근육과 지방은 제거하면서 관절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절이 유지되어야 골격이 흐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는 말도 9마리나 확인된다. 무덤방의 바깥공간에 차례대로 부장되었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을 제외하고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외에도 굴레, 안장 등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가장 옵션이 좋은 말이었는데, 머리장식까지 있었다. 마차의 선두를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나중에 들어간 말은 아무것도 착장되지 않았다.

 

말의 머리장식은 같은 시점에 만들어진 알타이에서도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말의 옵션이다.

 

말을 부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재갈과 재갈멈치는 고삐로 연결된다. 그러나 기능적인 것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지만 말의 얼굴에는 굴레가 씌워지는데, 대부분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말의 이마와 콧잔등 뿐만 아니라 귀 아래와 귀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사슴, 맹수 등이 전신, 두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맹수는 독수리와 합체 되어서 이 세상에는 없는 동물이다. 그리핀이라고 부른다.

파지릭 5호분에는 굴레장식 뿐만 아니라 안장 및 안장덮개가 출토된다. 특히 가장 나중에 들어간 머리장식이 있던 1호 말은 안장덮개로 중국산 실크가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펠트로 제작된 대형 벽걸이 캐노피가 확인되는데, 남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남녀의 얼굴형태가 다르고, 남성은 알타이에서 확인되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말과 관련된 도구와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담는 통)는 알타이 식이다.

마차는 4개의 바퀴가 있는데, 살이 있는 바퀴이다. 마차에는 차양덮개가 있었으며 꼭대기에는 새모양의 펠트로 만든 인형 4마리가 붙어있었다. 백조의 모습이지만, 날개는 독수리이다.

특히 화려한 1호말, 마차, 대형 벽걸이 캐노피에서 확인되는 외래적인 요소(페르시아적인 요소)들 덕분에 파지릭 고분은 특히 5호분은 러시아학계에서는 당대의 가장 높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생각한다.

 

페르시아적인 요소는 안장의 덮개 중 일부인 고들개에 표현된 그리핀이 사자머리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적 요소와 그리스적인 요소는 흑해북안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자주 확인되는 특징인데, 이곳 알타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인간과 말이 상주하는 무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이름해서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유래되었다. 파지릭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의 일원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북쪽부터 시베리아 남부지역까지 동물문양을 상징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좀 더 넓게는 중국의 황하상류 지역인 오르도스 및 만주의 일부인 요서지역까지 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유적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그쪽에서 수입한 것이든, 이미테이션 했던 어쨌든 접촉이 있었다.

 

이제까지 저의 블로그를 계속 읽으신 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직업에서 오는 노파심에서 정리해보았다(선생님들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 아직도 파지릭 유적에는 더 소개해야 할 무덤이 남아 있고(파지릭 1호분), 파지릭 유적 보다 백여년 빠른 바샤다르 유적과 약 삼백 년 정도 더 빠른 아르잔 1유적도 소개해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도 많이 빽빽거렸던 했던 흑해 북쪽의 유적도 소개하고 싶은데,,.

 

앞으로는 좀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다(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중 파지릭 유적과 흑해북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컬렉션 등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구경하실 수 있다. 꼭 가보시기 바란다. 워낙 크고 화려한 박물관이라서 그림만 보다 오실수 있으나 고고학방은 지하에 있다. 고고학 유물이 싫으면 다빈치 그림 부터 근현대 화가의 그림까지 그리스, 이집트 등등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비행기 값만 빼면 루블값이 거의 바닥을 기고 있어서 크게 비싸지 않다. 운하에서 배를 탈 수 있는 여름이 좋다..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음으로 유럽의 휴가철이 끝나는 8말이 더 좋을 듯도 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미라는 고르노-알타이 시 박물관에 있는데, 진열을 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워낙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서..)

 

 

김재윤의 고고학광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의 5호에서는 마차가 해체된 채 무덤에 부장되었다. 마차는 4바퀴가 달린 마차이다. 해체되었지만 마차는 대부분 복원되었다.

 

그런데 파지릭 5호분의 무덤 단면도를 다시 보시기 바란다. 무덤 단면도에 있는 유물은 대부분 필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유물 가운데서 펠트로 만든 백조모양의 새인형이 있다(그림1). 모두 4점 출토되었고, 분해된 마차 위의 대형 벽걸이 캐노피 위에 놓인 채 출토되었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백조모양인형. 펠트제. 

 

위와 같은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아즈벨레프 2019)

 

 

백조모양 새 인형은 펠트를 꿰매어 만든 것으로 속은 사슴털로 채워졌다. 처음에 백조는 흰색 몸통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누렇게 변했다. 꼬리는 붉고, 날개의 끝은 검고 아래로 쳐지게 표현했다.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실크로 만든 안장 덮개와 함께 중국기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유물로 인해서 마차도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 것이다. 무덤 전체가 스키타이문화의 것이지만, 이렇게 백조 때문에 다른 것들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루덴코(1953)는 이 유물을 마차의 장식품으로 마차의 지붕위에 부착했던 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랴즈노프는(1958) 무덤의 가장 높은 곳을 장식하던 유물로 생각했다(그림 2).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은 현재까지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백조인형이 마차와 관련있다는 설득력이 더 큰 힘이 실리게 되었다(아즈벨레프 2019)

 

 

그림 2. 그랴즈노프가 생각한 파지릭 5호분의 내부, 필자의 전 포스팅에서 무덤방 크기와 벽걸이 캐노피의 크기가 맞지 않음을 언급했다.

 

그랴즈노프가 주장한 백조가 벽걸이 장식의 상단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벽걸이 캐노피를 지지 하는 막대기의 각 때문이다.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서 기둥을 세워서 착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림 2).

 

 

그림 3. 그래픽 복원에 의한 파지릭 5호분 벽걸이의 착장복원(국, 니콜라예프 2011)

 

그런데 파지릭 유적의 5호분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남아 있는 캐노피를 3D 그래픽 복원한 결과 캐노피가 직각으로 그림2와 같이 직각으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국, 니콜라예프 2011), 펠트(벽걸이 캐노프)를 지지하는 막대기는 피라미드 구조와(그림 3)과 비슷해서, 무덤 천장의 꼭대기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아즈벨레프 2011).

 

백조인형은 벽걸이 장식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벽걸이 캐노피가 아닌 펠트 조각 중에서 검은색 펠트가 있었는데, 이는 마차의 천장덮개 크기와 일치한다. 백조모양 새 다리에 긴 막대기(그림 1의 하단)가 연결된 것이 있는데 , 백조를 천장에 착장하기 위한 장치로 판명했다(니콜라예프 ,국 2017). 결국 백조모양 펠트인형은 마차의 상부덮개에 달렸던 유물이다(그림 4)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의 복원(아즈벨레프 2019)

 

 

그리고 ‘백조모양’은 말 그대로 백조모양이다. 앞에서 백조는 원래 흰색펠트로 제작되었다고 말씀드렸다. 흰색백조의 날개는 완전한 순백색이고 저렇게 길지 않다(그림 1). 그림 1의 새 날개는 백조날개가 아닌 독수리 날개이다 독수리의 날개는 아주 길고 갈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1이 백조이고,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드문유물로 생각했다면, 아니다. 이 새 조차도 독수리와 합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지릭 5호분 보다 더 이른 기원전 7세기 아르잔 2 유적에서는 마차가 그려진 암각화가 무덤 내에서 출토되었고, 기원전 13~8세기의 카라숙문화(시베리아 청동기시대)에서 마차의 부속품이 출토되어서, 이미 시베리아에는 마차가 존재했다.

 

참고문헌

아즈벨레프 2011, Азбелев П.П. 2011,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экспозиц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Методическое пособие.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1. 32 с.(아즈벨레프 2011, 에르미타주 박물관 파지릭 5호분 특별전)

아즈벨레프 2019, Азбелев П.П. 2019 :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 유적의 백조)

국, 니콜라예프 2011,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Замечания к реконструкции погребального шатр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Методика междисциплинарных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Омск: 2011. С. 49-61.(국, 니콜라예프 201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캐노피의 복원)

니콜라예프, 국 2017, Николаев Н.Н., Гук Д.Ю. 2017, Проверка гипотезы на 3D модели находок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V (XXI) Все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съезд [Электронный ресурс]. / отв. ред. А.П. Деревянко, А.А. Тишкин. Электрон. текст. дан. (36,739 Мб). Барнаул: ФГБОУ ВО «Алта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2017(니콜라예프, 국 2017, 파지릭 5호분 출토 유물을 3D그래픽 복원으로 검증)

그랴즈노프 1958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그랴즈노프 1968, 알타이의 고대 예술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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