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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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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있는 알타이의 서부에서 발견된 베렐 유적(해발 1000~1100m)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해발 1500m)과 많이 닮아 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적들을 사카문화라고 하는데, 이 베렐 유적은 사카문화의 특징과도 다르다.

 

파지리크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깊게 파고 나무무덤방(세부차이는 있음)과 통나무관을 썼다. 남겨진 유물도 대부분 마구의 굴레장식과 누군가에게는 별로 쓸모없이 보이는 골제와 청동제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 등이다. 굴레에 달았던 장식은 대부분 나무가 주요소재이고 그 위를 금박종이로 덮은 것이다.

 

베렐 유적의 11호분에는 파지리크 유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인간이 둔갑?을 하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인간얼굴에 머리에는 뿔이 있고 몸통은 맹수를 하고 있는 유물이다(그림 1). 유적을 발굴한 사마세프 박사는 그림 1의 유물이 11호분 남성의 모자장식이라고 생각하고, 스핑크스라고 이름 지었다. 사실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캐노피에 묘사된 동물흉내를 내고 있는 남성(그림 2-4)을 스핑크스라고 했던 루덴코(1953)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베렐 유적의 유물은 얼굴만 동물이고, 스핑크스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의 인간+맹수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의 사슴으로 둔갑한 남성

 

뿐만 아니라 말의 마스크 부속품인 목제 뿔이 발견되었다. 산 염소 뿔을 흉내낸 것인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앞서서 베렐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보여 드린 바 있는데, 같은 카자흐스탄의 유적인 실릭티 유적과도 차이가 있었다. 베렐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무덤(구조), 동물장식(소재와 형태), 무기(형태) 등 차이점이 많다. 베렐 유적은 스키타이 동부 지역(투바와 알타이), 실릭티 유적은 스키타이 서부(흑해지역)과 좀 더 닮아 있다. 그러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모두 화살을 주인공과 함께 부장했다는 공통점은 있다.

무기에 대해서 좀 더 적고 싶으나 카자흐스탄 유적의 정보들은 대부분 황금유물에만 집중되어 보고되어 있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이자, 알타이 산의 서면에 자리 잡은 베렐 유적의 가장 큰 무덤인 11호 무덤에는 말이 13마리 부장되었다. 주인공이 묻힌 매장주체부는 도굴로 인해서 이미 많은 부분이 없어졌지만 말을 장식하던 유물은 약간? 남아 있었다.(전체를 알 수 없으니...)

말의 고삐와 연결해서 끈으로 연결되는 고삐에는 나무를 깍아서 만든 조각들이 붙어 있었는데, 동물문양으로 표현된 것이다. 얇은 금박으로 싸서 마무리 되었다. 나무+금박의 조합은 알타이의 높은 지역(파지리크 계곡, 우코크 고원, 추야 계곡) 등에서 발견되는 제작방법이었다.

(필자가 이 부분을 여러 번 언급하는 이유는 알타이남쪽의 평지에 위치한 실릭티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베렐 유적에서도 사슴류를 장식한 굴레장식이 발견되었다. 엘크라고 불리는 사슴이었는데, 뿔이 나뭇가지처럼 뻗어져 있지 않고 뿔 사이가 연결되어 넓적한 나뭇잎처럼 보인다. 이 엘크는 파지리크 유적에서 자주 보이는 동물투쟁문양에도 표현되어 있다. 허리띠 장식의 일부로 생각되는 나무판(그림1)에 호랑이 혹은 맹수로 보이는 동물에 가격당하는 장면이다.

 

그림1. 베렐 유적 11호분 출토

 

알타이 높은 지역인 투엑타 유적의 1호분에서 나온 초본류와 닮아 있는 굴레장식도 출토되었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초본이 모두 같은 종류였으나(아래포스팅참고) 이 유적에서는 그림과 같이 중앙의 문양은 다르다.

 

그림 2. 베렐 유적 11호분 출토

 

2020.07.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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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투쟁문양’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맹수와 포식자가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과 사슴 혹은 포식자가 맹수에게 뒤에서 가격하는 당하는 장면이다.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은 알타이 카탄타 유적에서 나무판에 조각된 것이 발견되었고,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에서도 발견된다. 후자가 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의 안장덮개에도 있다. 지금 생각은 흑해에서 먼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이 유적에서도 사슴이 뒤에서 공격받는 장면과 초본류 굴레장식이 확인되었다는 장면이다. 그런데 알타이 높은 곳에서 보이는 나뭇가지모양의 뿔이 달린 사슴이 아니라 엘크류이고, 나뭇잎도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어떤 유물을 보고 베렐 유적의 동물문양을 담당했던 장인이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에게 친숙한 사슴으로..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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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서쪽 사면 해발 1000~1100m에 위치한 카자흐탄의 베렐 유적은 앞서 살펴본 실릭티 유적과 무덤 구조 뿐만 아니라 유물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실릭티 유적의 동물장식은 금판을 뒤에서 눌러서 앞쪽에 튀어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베렐 유적은 나무를 깍고 그 위를 금박으로 싸서 만든 것이다. 물론 금박이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몇 몇 유물에서 남겨진채 발견되었다.

 

베렐 유적은 이미 도굴당한채 발견되어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대부분 말의 장식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 말의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 가운데는 사슴 장식이 남아 있다(그림 1). 그런데 이 사슴장식은 약간 어색하다.? 어색하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파지리크 유적과 비교하면 이제까지 없었던 사슴이다. 사슴이 입을 벌리고 표현된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 파지리크 유적에는 없었고, 대부분 호랑이나 표범 등 범 장식이 입을 벌리고 있다(그림 1). 두 동물이 대칭으로 표현되어도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등을 뒤로 돌리는 표현도 없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에서 출토된 사슴장식이 붙은 굴레

 

물론 두 동물이 대칭되도록 구성된 장식 중에는 엘크(그림 2)가 있다. 투엑타 유적 1호에서 굴레장식에 달린 사슴의 얼굴이 베렐 유적 11호분과 유사하기도 했다. 물론 뿔의 표현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투엑타 유적 1호분 사슴의 뿔은 초본류를 모방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슴의 원래 뿔일 가능성이 없다.(이것은 실제 엘크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위키백과 참고).

ko.wikipedia.org/wiki/%EB%A7%90%EC%BD%94%EC%86%90%EB%B0%94%EB%8B%A5%EC%82%AC%EC%8A%B4

 

말코손바닥사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무스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무스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말코손바닥사슴(학명: Alces alces)은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속에 속하는

ko.wikipedia.org

2020.07.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2600년 전 하이브리드 동물문양

 

사슴 장식에서 서로 가슴만 붙인 것도 해발 1500m이상의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사슴의 자세이다.

 

그림 2. 베렐 유적 11호분 엘크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베렐 유적의 유물은 나무를 깎고 금박으로 싸서 만드는 방법은 알타이에서 이미 소개한 유물제작법과 관련이 있지만 동물표현에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알타이 그리핀의 상징인 독수리머리 그리핀, 말의 마스크로 추정되는 부속품도 발견되어 파지리크 유적을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동물장식은 비율이 맞지 않고, 특정 부분만 강조되어 만들어져서 감쪽같지는 않다.

 

그림 3. 베렐 유적 11호분 독수리머리 그리핀

 

그림 4. 베렐 유적 11호분, 인간+동물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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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자주 애용된 새 문양 장식은 두 날개를 핀 형태부터 다양하게 있었다. 흑해 유적에서는 얼굴을 측면으로 돌린 형태이다. 다른 문양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독수리 혹은 맹금류일 가능성이 크다.

 

실릭티 유적과 비교적 가깝지만 높은 산지에 위치한 투엑타 유적에서도 날개를 편 새 장식이 나오지만 이는 다른 동물과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동물장식으로 그리핀이다.

 

실릭티 유적에서는 새 장식이지만 머리를 몸통으로 돌리고 있다. 특히 평면 전체를 금속판 혹은 목판으로 표현하지 않고 새 몸통의 아웃라인만 둘렀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실릭티 유적의 5호분에서 출토된 새 장식은 무덤방 바닥의 인골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실릭티 유적에서 남겨진 동물문양장식 뿐만 아니라 무덤의 구조도 차이가 있다.

 

1965년 발굴된 실릭티 유적의 5호분은 무덤구덩이로 연결되는 복도시설(연도)가 깔려 있는 구조이다. 알타이에서는 볼 수 없고, 흑해지역에서 연도가 있는 유적(톨스타야 마길라 등)이 있지만 구조는 차이가 크다. 실릭티 유적은 매우 얕게 무덤을 파서 대부분의 무덤구조물은 지상으로 올라오도록 지어졌다(그림 1). 통나무를 가로 새로 방향으로 쌓고 그 사이를 돌로 채웠으며 그 위를 다시 돌로 덮고 마지막에 봉분을 씌운 것이다.

 

물론 나무구조물 위를 돌로 덮은 후 봉분은 점토(그림 1-4)-->자갈돌(그림 1-2)-->자갈돌+흙(그림 1-3)의 순서로 만들었다.

 

그림 1.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무덤 단면도

 

그림 2.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매장주체부 평면도와 단면도

 

그림 3. 실릭티 유적 3호분의 무덤구조물(1)과 그 상부를 덮은 돌(2)

 

실릭티 유적의 주변의 다른 무덤도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실릭티 82호분은 2003년 카자흐스탄에서 발굴했는데, 이미 알려진 실릭티 유적의 무덤구조와 거의 유사하다.

 

그림 4. 실릭티 유적 82호분 무덤의 단면도

 

실릭티 유적은 알타이 산과 천산산맥 사이에 있는 평지에 있는 유적이다. 같은 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위치한 유적이라도 베렐 유적의 무덤구조가 전혀 다르다. 알타이의 산 아래에 위치한 유적으로 어느 정도 알타이의 높은 곳에 있는 유적과 무덤구조 및 출토유물이 유사한 면이 있고, 실릭티 유적과는 많이 다르다.

 

알타이의 유물은 대부분 나무를 깍고 그 위를 금박으로 입히지만, 실릭티 유적에서 나온 동물문양장식은 금판으로 제작된 유물로 알타이 및 베렐 유적과도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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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비교하고 있다. 우선 살핀 것은 바로 인접했지는 않았지만, 오늘 살펴볼 카자흐스탄 동부지역과 바로 인접한 지역의 문화를 설명했다. 이 지역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강의 하류로 아랄해 부근에 위치한 문화였다. 중국 신강성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문화에서 조합식석인검과 조합식검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2019/07/07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 신석기문화비교2

앞서서 환단고기역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신강성의 신석기문화에 대해서 설명한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7/12/20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환국과 신강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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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 신강성과 천산산맥을 두고 바로 인접한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신석기문화는 우스티-나림 유적을 지표로 한 문화에서는 석기 및 골각기가 60,000여점이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기도 출토되지만 완형이 확인되지 않아서 토기 전모는 알 수 없다. 다만 토기는 기벽이 얇고, 문양은 남아 있는데, 망상문, 어골문, 격자문 등으로 시베리아 바이칼 유역 및 켈테미나르문화의 신석기토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스티-나림 유적에서는 규조암으로 제작된 원통형 석인석핵(그림6-4), 원추형 석인석핵(그림6-3), 베개형으로 양쪽에서 때어낸 석인석핵(그림6-6), 긁개형 석인석핵(그림6-1,5,9) 등 다양한 석핵석기와 석인박편으로 제작된 세석인석기(그림6-7,8)가 가장 많다. 그 중 세석인은 양 가장자리를 잔손질 한 것이 많은 양을 차지한다.

다양한 긁개류가 많이 확인되었는데, 양 가장자리가 타원형으로 들어가며 잔손질 된 것(그림6-14) 뿐만 아니라 끝부분만 부채꼴 모양으로 잔손질 된 것(그림6-10) 등도 확인되었다. 세석인석기를 이용한 유물 가운데, 끝을 뾰족하게 잔손질하고, 긴 장단의 한쪽면만 잔손질한 석촉과 긴 변의 한쪽만 잔손질 한 뚜르개(그림6-24,25)와 긁개(그림6-14)가 출토된다. 양면을 잔손질해서 떼어낸 타제 석도(그림6-15~17,21)도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그림6-21)과, ‘ㄱ자형으로 굽어지게 잔손질된 것(그림6-16,17), 타원형(그림6-15) 등이다. 그 외 타제석부(그림6-26,27) 등도 출토되었다. 마연된 석기로는 석제 어망추(그림6-13) 및 장타원형의 도구(그림6-12)가 있다. 어망추는 평면형태가 육면체에 가깝고 중앙에 홈을 낸 형태이다. 이 유적에서는 대량의 골각기가 출토되었고, 그 중 많은 양이 낚시바늘이 라고 보고되었다. 장타원형도구는 석기제작시에 사용된 누르는 도구로 알려졌다.

그림6.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 유적출토품(Коробкова Г.Ф. 1996b 재편집)(김재윤 2019)

 

 이 문화의 연대는 신석기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하한은 기원전 2000년 기 전반에 해당된다. 그런데 상한연대는 이 유적에서 켈테미나르문화의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서 켈테미나르문화의 늦은 시기인 기원전 3000년 기 후반에는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동부에서 이 보다 이른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카자흐스탄 아랄해 주변의 북부에 위치한 켈테미나르문화에서 확인되는 화살촉과 뚜르개(그림6-24,25)가 확인되는데, 우스티-나림 문화에서도 확인되어서 켈테미나르문화가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까지 그 영향이 확대되었다. 석인석핵 가운데서는 알타이에서 채취된 원료로 제작된 것도 있고, 양쪽면을 떼어낸 석핵석기, 가장자리가 타원형으로 들어간 긁개, 조합식검, 낚시바늘 및 각종 골각기 등도 시베리아의 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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