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에 해당되는 글 21

  1. 2020.11.27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2. 2020.11.26 우랄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숨겨진 여성무덤
  3. 2020.11.25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여성과 곰 장식
  4. 2020.11.24 우랄 남부 스키타이의 동물장식...곰?
  5. 2020.11.23 스키타이 문화 대형 청동솥의 용도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키타이 남성의 목걸이를 착장했다. 그리고 모자를 쓰지 않았다. 하나의 예를 전체로 확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말 탄 전사를 더 관찰할 수 있다.

 

1호 무덤의 감실 1호에서 출토된 목제 그릇의 장식판 가운데는 말 탄 전사가 묘사되었다. 말은 재갈과 재갈멈치, 굴레를 차고 있었고 남성은 활의 시위를 당기려는 모습이다. 왼쪽 겨드랑이에는 고리트의 끝이 보인다. 남성은 목이 없고 턱수염을 기른 상태이다. 스키타이 남성이 턱수염을 기른 사실은 이제까지 묘사된 남성들 대부분이 비슷하다. 파지릭 유적 2호에서는 수염이 따로 출토되기도 했다. 흑해의 남성 전사들도 대부분 수염을 기른 상태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분 감실1호에서 출토된 목제 그릇 장식판

 

4호 무덤의 2호묘에서는 길이 39.2cm가량의 철제검이 출토되었다. 검은 손잡이와 검날멈추개 및 검날이 화려하게 금과 은으로 장식된 것이다. 대부분 동물문양장식이지만 그 가운데 말탄 전사와 말에서 내린 전사가 묘사되었다.

철검 속의 말 탄 전사는 좌측에 고리트를 차고 긴 삼지창으로 멧돼지를 공격하는 장면(그림 2-5)이다. 반대면에는 말은 전사의 뒤에 있고 검으로 사슴의 뒤를 공격하는 장면(그림 2-6)이다. 철검 속의 전사가 들고 있는 검은 실제 검과 거의 같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4호분 무덤 2호에서 출토된 철제 검

 

골제로 제작된 말탄 전사, 목제 그릇의 장식판 속의 말 탄 전사, 철 검 속의 사냥하는 검사 모두 고리트을 보여준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물론 말의 내부를 타래문양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네 명 다 모자를 쓰지 않았다.

실제 이 유적에서는 알타이의 울란드리크 유적 등에서 보이는 인골 머리 위 모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2013 : Золото сарматских вождей. Элитный некрополь Филипповка 1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2004-2009 гг.). Каталог коллекции. Книга 1. М.: 2013. 232 с.(야블론스키 2013, 사르마트 문화 신의 황금,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1 유적, 2004~2009년 발굴품)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무덤은 1호이다. 이곳은 1989년에 발굴되었으나 무덤의 가장 동쪽은 미처발굴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대체로 무덤 1기를 여러해 동안 구역을 나누어서 발굴한다. 1호는 프세니축이 미처 발굴하지 못한 동쪽 구역을 야블론스키가 2013년에 발굴을 했다.

 

무덤봉분의 동쪽 끝에서 깊이 2m에 달하는 5단의 계단이 확인되었고, 이 곳은 지하로 들어가는 25m가 넘는 입구였다(그림1). 이 지하 입구는 1989년에 발굴한 무덤방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이 무덤의 입구는 3곳이다. 이곳에는 지하통로에서 지름 102cm, 0.5톤 가량의 거대한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시베리아-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으로 그리핀 2마리가 부착된 것이었다(그림 2).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013년 발굴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013년 발굴에 발견된 지하 입구의 청동솥

 

그런데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아래에는 지하 구덩이 시설이 따로 있었고 그 끝에 무덤방이 1기 더 발굴되었다(그림 1). 사실 원래 중앙에 위치한 무덤방 안에는 인골이 확인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누구의 무덤인지가 불분명했다. 어제 설명한 대로 이곳에는 여성이 매장되었다. 화려한 금장식을 옷에 달고 있었다. 이 여성은 미라처리되지는 않았지만 문신과 관련된 바늘(그림 3) 및 화장품이 들어간 작은 유리병(그림 4)도 소유했었다. 곰모양 손잡이가 달린 목제그릇장식(그림 5, 그림 6)은 여성의 좌측에서 출토되었는데, 그 아래에 은제 거울이 놓여 있었다. 목제그릇장식은 두 판으로 손잡이 반대쪽에도 장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성의 우측에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는데(그림 7) 다리가 3개, 방향이 다른 손잡이 4개가 붙은 형태이다.

그 외에도 여성의 옷에는 화려한 금장식이 붙어 있었고 목걸이, 귀걸이로 치장했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문신바늘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작은 유리병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그릇의 곰 손잡이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 그림 5와 동일

 

 

그림 7.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청동솥

 

1호 무덤에서는 메인 무덤방에는 인골 3구가 확인되기는 했으나, 스키타이 문화 혹은 사브로마트 문화와 같이 무덤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을 법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황금사슴이나 이란제 각배 등 눈길을 끄는 유물은 감실과 남쪽으로 난 무덤방 입구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1호 무덤의 주인공은 메인무덤방이 아닌 동쪽 끝에 매장된 여성으로 생각된다. 화려한 의상이나 장신구도 중요하지만 청동솥, 목제 그릇, 거울 등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유물이 이를 대변해 준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Новые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находки из кургана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3 № 2 2015(야블론스키 2015, 필리포프카-1 유적의 1호 무덤에서 찾은 특별한 새로운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의 우랄 남부 지역문화인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호랑이 장식이 목제 그릇의 장식판, 목걸이 등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목제 그릇의 장식판은 유적에서 가장 큰 무덤인 1호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다.

 

1호 무덤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발굴하고 황금 사슴으로 유명해 졌다. 그런데 이 무덤은 그 기간에 다 발굴되지 못했고 유적의 동쪽은 2013년에 야블론스키에 의해서 다시 조사되었다.

한국에서는 1기의 무덤은 대부분 발굴 기간동안 조사가 완료되지만 러시아에서는 1기의 무덤 안에서도 섹터를 구역하고 지정된 기간동안 발굴하지 않으면 후대에 조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평면도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앞서 살펴본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 평면도에서 동쪽 둑의 부분은 조사를 미쳐 하지 못한 구간으로 이곳에서 3.57×2.6m의 무덤방1곳이 더 드러났다. 사실 1호에는 1980년대 조사 당시에 무덤 내부에서 무덤방이 확인되지 못했는데, 가장 동쪽에 발굴하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간 보여 드린 유물은 서쪽 끝에 무덤방 바깥에 있던 감실 2곳과 바닥, 무덤 입구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필리포프카 1호무덤의 1호 무덤방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바닥에는 나무뿌리, 짚 등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바른자세로 누웠는데 두향은 남향이다.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의 피장자는 대부분 두향은 동쪽이고 무릎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자세였다. 피장자를 묻는 장법에도 차이가 있다.)

 

이 여성은 금판(그림 4-1~4)을 부착한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측면에서는 뼈와 청동으로 된 바늘로 문신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죽 주머니 안에는 안료가 가득 들어 있었고, 석제 그릇안에는 파란색 광물체가 들어 있는 상태였다. 밤과 호두 껍질로 만든 용기, 돌 외에도 목제그릇을 장식한 동물문양 금판도 출토되었는데 얀블론스키는 이 동물을 곰(그림 3-1)으로 보았다. 그 외에도 화려한 장식판(그림 4-2)과 은제 거울(그림 4-3)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출토품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무덤방 1호 출토품

 

목제그릇 장식판은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호랑이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꼬리가 길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1호의 감실 1호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지만 먼저 발굴한 프세니축은 곰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이 여성은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동물투쟁문(그림 4-1)을 묘사한 금제 장식판을 옷에 달고 있었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가장 큰 무덤인 1호무덤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야블론스키(2013)는 이 유적의 여성이 매우 높은 지위였다고 평가했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2013 : Золото сарматских вождей. Элитный некрополь Филипповка 1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2004-2009 гг.). Каталог коллекции. Книга 1. М.: 2013. 232 с.(야블론스키 2013, 사르마트 문화 신의 황금,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1 유적, 2004~2009년 발굴품)

Яблонский Л.Т. 2014: Новые находки в "царском" кургане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야블론스키 2014, 필리포프카-1유적의 1호  차르무덤에서 나온 최신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유적인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굴레에 달았던 장식으로 청동으로 제작된 동물문양장식 가운데는 호랑이와 그리핀 머리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 중에는 납작한 청동판에 음각을 동물을 표현한 것과 청동을 주조해서 제작한 것으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필리포프카 유적은 2000년대 들어와서 야블론스키가 2004~2009년 동안 다시 발굴을 하게 된다. 앞서서 프세니축이 발굴하지 않은 2호,4호,11호,13호,15호,16호,21호,25호 뿐만 아니라 26~29호를 더 발견하고 마저 발굴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아주 화려하고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무덤은 4호 무덤의 4번 무덤방이다. 4호 무덤에는 프세니축이 유적의 레벨을 측정하기 위해서 측량도구를 설치해 놓아서 미쳐 설치하지 못한 곳이었다.

 

4호의 봉분높이는 4m, 직경은 80m이고, 내부에는 목제 시설이 있었다. 야블론스키(2013)가 발간한 책에는 무덤의 평면도는 13호만 소개되었고 대부분 이 무덤과 같은 구조라는 설명만 붙어 있었다. 무덤의 중앙에는 말 3마리가 매장된 의례행위가 있었던 공간이 있고, 시신을 안치한 무덤방은 3개가 발견되었다. 말 3마리가 매장된 의례공간은 무덤의 남서쪽에 있었고 인간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방 4개는 무덤의 동쪽에 위치한다.

의례공간에는 125×65cm의 구덩이를 아주 큰 가죽이 덮고 있었는데 곰의 가죽으로 생각된다. 그 내부에는 큰 새의 뼈?와 청동(그림 2)으로 만들어진 굴레장식이 담겨 있었다. 어떤 동물뼈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동물뼈로 제작된 굴레장식(그림 3)이 출토되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3호 무덤 구조, 4호도 같은 구조로 생각됨.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4호, 의례공간에서 출토된 청동유물, 3번 유물은 청동에 가죽이 남아 있다. 3번은 말의 머리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4호, 의례공간에서 출토된 골제품

 

4호 무덤에서 4호무덤방은 동측에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젊은 남성과 18~20세 가량의 여성이 함께 매장되었다. 특히 여성은 얼굴에 문신한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미라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우랄 남부에서 문신은 여성에서만 확인되고 여러 색깔을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4호 무덤의 무덤방 4호 여성은 옷에 동물문양장식을 달았다. 팔에는 호랑이 장식을 양쪽에 달았고(그림 4)고 가운과 같은 겉옷에는 이제까지 이 유적에서 보지 못했던 동물문양이 달려 있었다(그림 5, 그림 6). 2점은 앞다리와 머리만 앞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고(그림 5), 10점은 몸통전체의 측면을 표현하고 머리만 돌린 자세이다(그림 6).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4호, 무덤방 4번 출토,여성의 소매장식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4호, 무덤방 4번 출토, 여성의 가운에 붙은 장식판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 4호, 무덤방 4번 출토, 여성의 가운에 붙은 장식판

 

그림 7. 필리포프카 유적 4호, 무덤방 4번 출토, 여성의 목걸이

 

이 유물은 이제까지 본 호랑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코 때문인지 그림 4의 호랑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 여성은 금제 목걸이도 착용했는데, 호랑이 장식(그림 7)이다. 옷에 달았던 호랑이(그림 4,5)와는 전쳐 다른 동물이다. 그림 4와 5는 곰과 얼굴모양이 비슷하지만, 꼬리(그림 6)가 길어서 곰이라고 할 수 없다. 곰 머리에 호랑이과의 맹수몸통을 합성했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청동솥의 손잡이에 곰 모양이 붙어 있었고, 4호에서는 의례공간을 곰 가죽이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동물양식에 간접적으로 곰 표현이 확인되는 것일까?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2013 : Золото сарматских вождей. Элитный некрополь Филипповка 1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2004-2009 гг.). Каталог коллекции. Книга 1. М.: 2013. 232 с.(야블론스키 2013, 사르마트 문화 신의 황금,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1 유적, 2004~2009년 발굴품)

Яблонский Л.Т. 2014: Новые находки в "царском" кургане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야블론스키 2014, 필리포프카-1유적의 1호 무덤에서 나온 최신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은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도 우랄 남부의 지역성격이 강한 문화를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지역성격이 강한 점도 있지만 그러나 시베리아와 흑해지역과 공통적인 유물들도 있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문양장식, 마구, 무기를 제외하고도 확인되는 유물은 청동솥(銅鍑)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상당히 크다.

 

2020/11/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필리포프카 유적] -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이다. 1호에서는 페르시아 그릇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이

eastsearoad.tistory.com

 

작은 크기의 청동솥은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유물의 예로 보아서 일종의 향로 혹은 제기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55cm가량, 구경 70cm가량의 솥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유적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미누신스크 분지에 있는 타가르 문화의 유적이 보야르( 암각화에서 확인된다. 이 유적은 볼샤야 보야르(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유적과 말라야 보야르(Малая Боярская )야르 두 곳이 알려져 있다. 예니세이 강의 좌안에 위치하고 보그라드스키 지역의 트로이츠코예 마을에서 6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볼샤야 보야르 유적은 보야르 능선의 상단 도로에서 약 6km 가량 곳에 이어서 확인된다. 이곳에는 13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통나무 집이 있는 마을에서 염소, 사슴, 숫양, 소를 유목하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동의 개와 활을 쏘는 사람 등도 등장한다.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는 그림에는 집 사이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대형의 솥이다. 그 가운데 소와 청동솥에 함께 그려져서 청동솥은 유제품을 가공하는 도구로 생각된다(데블렛 ). 흐지이일 하야 유적에서도 막대기를 넣고 청동솥 안에서 젖는 장면이 나와서 유제품 가공과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암각화 유적은 타가르 문화(기원전 7~3세기)부터 타쉬트익 문화(기원전 2~기원전1세기)까지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유적이 타가르 문화부터 그려졌을 것이라고 하는 근거도 청동솥이다. 그림 가운데 손잡이에 꼭지 모양(그림 4, 그림 5)이 달려 있는데 타가르 문화에서 발견되는 청동솥의 모양이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은 5리터에서 수백리터까지 다양하게 발견된다. 크기차이 때문에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청동솥과는 용도가 다르다.

 

대형의 청동솥은 암각화에 그려진 유제품 가공 뿐만 아니라 고기국 등의 음식을 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림1.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그림 2.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2

 

그림 3.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3

 

그림 4.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4

 

그림 5. 타가르 문화의 그릇, 토기 1~14, 청동솥 15~18

 

그림 6.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

 

참고문헌

Дэвлет М.А. 1976 :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писаница. М.: 1976. 36 с.(데블렛 1996, 볼샤야 보야르 유적)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серия ]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소비에트 연방 아시아 지역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초원지역,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