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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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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는 라즈돌라야 강(수분하)에 위치한 단결 유적(중국국경)과 크로우노프카 유적(러시아)에서 나타난 물질문화의 양상이 같아서, 이를 통합하기 위해서 부르기 시작한 명칭입니다.

 

이 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토기인 나무그루터기형 손잡이가 달린 토기가 대표적인 토기이며, 이 외에도 시루, 고배 등이 출토되고 집안에는 쪽구들(초기 온돌)이 설치되었습니다. 기원전 5~기원후 1세기의 문화이고, 기록에 남은 옥저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쪽구들은 이 문화의 1기부터 3기까지 줄곳 사용되며,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는 평면형태는 ㄱ 자형입니다. 문화가 발생한 라즈돌라야 강을 벗어나서 주변으로 확산되는 시기는 II기인 기원전 3세기 이후입니다. 두만강 유역 뿐만 아니라 연해주 해안가 유적에서도 쪽구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림 1.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쪽구들 변화

 

기원전 3세기 이후에 두만강유역 뿐만 아니라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 유적에서도 쪽구들이 확인됩니다. 이때 이 지역은 세형동검을 사용하는 단계로 고조선 후기 사회 및 위만조선의 사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죽리 유적에서 나타나는 쪽구들은 ㄱ자형입니다.

 

그림 2. 세죽리 유적의 쪽구들

 

비슷한 시점에 우리나라 남해안의 방지리와 늑도 유적에서도 확인되는데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가 바닷길을 따라서 내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쪽구들은 기원후 2세기에 북한강 유역에서 등장해서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모두 같은 모습인데 ㄱ 자형이고, 석재로 아궁이와 고래를 덮었습니다. 다만 주거지 안에 위치가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입구와 마주보는 쪽에 설치된 쪽구들을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왜 청천강 유역이나 남해안과는 달리 이렇게 늦게 나타났을까요? 청동기시대에는 환동해문화권의 문화특징이 남부지역보다 먼저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데, 철기시대는 반대입니다.

 

그림 3. 북한강 유역의 율문리 1호

 

중부지역 쪽구들은 유적에서 소규모로 확인되는데 이점은 흉노나 늑도와는 다른 현상입니다. 그리고 쪽구들이 설치된 집과 그렇지 않은 집 간의 유물차이가 없습니다. 아마도 수용방법의 차이가 아닐까요? 선택적 수용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중부지역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서 만들었을 수 있는데, 앞으로 연구가 필요합니다.

 

자바이칼 유역의 쪽구들은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 이볼가, 버러, 듀로니 유적 3곳에서만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습니다. 생활토성유적으로 다른 생활유적등에도 있지만 이곳에서만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이볼가 유적에서는 80퍼센트 이상에서 쪽구들이 발견되고, 세 곳 모두 똑같은 쪽구들이 발견되어서 어느 한 집단이 이동해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개뼈를 남긴 원동(극동)의 주민들(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이 와서 남겼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양 지역간의 문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록에도 없습니다.

 

그림 4. 흉노의 쪽구들, 이볼가 유적

 

 

그래서 자바이칼 지역의 쪽구들은 청천강 유역의 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원전 3세기 말과 기원전 2세기는 이 지역은 고조선 후기 사회나 위만조선의 땅이었습니다. 양 지역간의 문화적 역사적 관계는 유물과 기록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Hg_qTuYyDKI2BFkyA5QVbWzrmWo7c54&usp=sharing 

 

쪽구들 - Google 내 지도

쪽구들

www.google.com

참고문헌

 

김재윤 2022,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쪽구들 유라시아 확산 현상에 대한 검토 : 우리나라 북한강 유역, 청천강 유역, 자바이칼 흉노」, 2022년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번주 금요일에는 중부고고학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저도 발표할 기회가 생겼는데, '환동해문화권 쪽구들 유라시아 확산현상에 대한 검토'라는 제목입니다.

 

러시아 연해주의 철기시대 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는 최초로 쪽구들(온돌의 초기모습)이 집안에서 발견됩니다. 이 문화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인접한 중국에서도 발견되는데,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라고 하고, 옥저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필자가 유학할 때 이 문화에 대해서 2편 가량의 논문을 적은적이 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발표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이 문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해서 기원전 3세기경에는 북한의 청천강 유역과 우리나라 남해안의 방지리와 늑도 유적 기원전 2세기경에는 자바이칼(바이칼 호수의 우측 및 아래쪽) 흉노 유적에서 확인됩니다. 기원후 2세기에는 북한강 유역에서도 집안에서 발견됩니다. 연해주에서 발생한 초기 온돌(쪽구들)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쪽구들은 3000년 전 알래스카의 에머크낵 유적에서도 발굴되었고, 서주만기 화북성의 동흑산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산발적인 자료입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지역에서 쪽구들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보다 먼저 생겨난 지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발생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야만 문화적 특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쪽구들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 나타나서 고구려, 발해를 거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남북한에서도 북방의 쪽구들을 수용하면서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현대까지 온돌로 발달되었습니다. 북방에서도 발해 이후에 금, 원 시대 그 이후 북방민족들 및 현존하는 나나이족 등 여러 민족도 사용하고 있어서 발생된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어서 문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환동해문화권은 러시아 연해주(인접한 북한, 중국)와 한반도 중부지역(때에 따라서 남부지역 포함)이 신석기시대 이후로 남북국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역사적 관련성을 가지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강인욱 2006)용어입니다.

 

 

초청장 상단: 북한강 유역에 위치한 율문리 유적의 쪽구들 집자리

 

참고문헌

김재윤 ,2022,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쪽구들 유라시아 확산 현상에 대한 검토 : 우리나라 북한강 유역, 청천강 유역, 자바이칼 흉노」, 2022년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고대 인도언어로 씌여진 리그베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하지만 안드로노보 문화를 연구한 쿠즈미나,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을 발굴한 게닝은 리그베다에 언급된 의례행위와 신타시타 유적에서 남겨진 의례모습을 비교한다. 그래서 소개만 한다.
(리그베다 가운데 가장 오래전에 씌여진 부분은 ‘가타’라고 하는 부분으로 기원전 1200~1000년경에 작성되었고, 원전은 기원전 1500년경 보다 이전에 씌여졌다고 한다. :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의 SB쿠르간은 불룩한 봉분 아래에 나무구조물로 된 매장 주체부 위를 돔형 지붕이 덮고 있고 사방에는 나무구조물이 이를 받치고 있는 구조였다(어제 포스팅 참고).

그림 1. 신타시타 유적 SB 쿠르간 복원도


그런데 리그베다에는 “그들에게 망자를 이 언덕 아래로 묻도록 하라”라는 구절은 쿠르간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지붕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도 있다고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뿐만 아니라 신타시타 남쪽의 SB 무덤군에서 발견된 동물희생구덩이를 리그베다의 구절에서 찾기도 한다. 희생구덩이를 상기하면 말, 소, 양의 머리가 2열로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토기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서 두었다. 그리고 동물의 두개골 사이에는 말의 발 부분의 뼈가 놓여 있었다(그림 2).

그림 2. 신타시타 유적 SM 무덤군의 희생구덩이 1호


리그베다에는 희생물을 자르는데 다리를 손상시키지 말고 가지런히 놓을 것을 주문하는 장면도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마를 요리하고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는데, 장례식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장면을 서술한 것이다. 또한 희생구덩이에서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은 세상의 왕이 대지를 적시기 위해서 바루나가 통을 뒤집는다는 구절과도 연결시키기도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1960)가 자신이 경험한 중앙아시아민족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했는데, 매우 거대했고, 손님 접대를 어떻게 했는지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발굴한 기원전 5세기경의 유적들도 비슷한 장면으로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신타시타 유적에서도 거대한 장례식 뒤풀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래 포스팅에서 루덴코가 경험한 장례식에 대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2020.07.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는 높은 곳에 깊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고 말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이 행해졌다. 2600년 전 이전에도 장례식 이후에 축조된 결과물은 다르지

eastsearoad.tistory.com


신타시타 유적이 위치한 토볼 강변은 매우 평지인데, 높이 4.5M의 쿠르간이 만들어졌다면 꽤 인상이 깊었을 것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안드로노보 문화의 세력범위는 꽤 넓었다. 안드로노보 문화의 아류작이 아프카니스탄 북부(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까지 발견된다고 보고되었다., 당시에 전차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면, 리그베다를 지은이가 자신의 책에서 서술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시인 톨스토이(안나 카레리나를 쓴 소설가 아님)가 1840년에 쓴 ‘쿠르간’이라는 시도 발견했다. 쿠르간은 인상깊은 고대의 유산이었기에 아주 오랫동안 문학의 소재로 이용된 듯 하다. 인도 유럽 공통조어를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리아인이라고 불렀다던지 이런 것은 전혀 잘 모르겠다.
신타시타 유적에서 발견된 이상한 쿠르간과 의례행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참고문헌
Генинг В.Ф., Зданович Г.Б., Генинг В.В. Синташт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памятники арийских племен Уральско-Казахстанских степей. Часть 1. Челябинск. Южно-Ураль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1992. - 448 с. (게닝, 즈다노비치, 게닝. 1992. 신타시타 유적: 우랄-카자흐스탄 스텦지역 아리아 인의 고고학 유적)
데이비드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에코리브르. 201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서』는 필자가 박사졸업후 10년간 연구한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 이다. 개론서 이기 때문에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각 시대별로 고고문화를 소개한다.

 

  연해주는 우리나라의 중부지역 혹은 남부지역 일부와 함께 환동해문화권역으로 역사적 공간으로써 자리매김했다.  이 문화권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지만, 구석기시대도 설명한다. 사실 후기구석기시대는 시베리아와 문화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환동해문화권으로 분리하기는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나 연해주의 역사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본고에서 설명하고자 하지만 연구자가 부족해서 유적조사가 많지 않은 점은 시베리아와 큰 차이점이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철기시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및 동강문화까지 포함된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를 뒷이은 폴체문화도 철기시대에 포함시키지만, 이미 역사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포함되지 않는다.

   

필자가 생각하는 환동해문화권은 남한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물질자료의 단순한 기원지가 아니라 같은 문화권역이다. 다만 전 기간이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각 시대별로 시간적인 추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백두대간 북쪽으로 연결되는 시호테 알린 산맥과 동해를 공유하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생업형태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강원도 영동지역에 많이 위치한다.

 

 반면에 청동기시대는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가 남한에서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일대에서 발견되고 특히 남강 유역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연해주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생업형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연해주의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고, 그 시작은 신석기시대 후기인 자이사노프카 문화부터이다. 각종 석기 및 곡물자료를 근거로 한다.

   그래서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인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물질 자료는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심지어 남강의 충적대지에서도 발견된다. 남강 대평유적의 곡옥형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이전의 자료로 최초로 발견된 청동유물이지만 출토당시에는 의심스러운 자료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청동기시대 조기인 정선의 아우라지 유적에서 청동유물이 발견되면서, 비파형동검 보다 이른 단계에 동검이 아닌 청동유물이 존재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실이다. 남강 대평의 곡옥형 청동기는 환동해문화권 북부의 시니가이 문화와 관련된 유물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따라서 필자는 강원도 영서 및 한강 유역, 남강 유역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와 토기 중에 일부는 시니가이 문화 및 흥성문화의 물질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의 청동기시대 형성과정 중에는 많은 요소가 있었을 것이며,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사람들 때문에 한강 이남지역에서 농경문화가 주요하게 자리잡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환동해문화권의 철기시대는 얀콥스키 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폴체문화가 알려졌는데 본고에서는 제외하였다. 이미 단결 크로우노프카 문화의 III기(기원전 1~기원후 1세기)에 ‘옥저’라는 정치체가 있었다면, 이를 뒤이은 폴체문화는 철기시대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동해문화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별로 권역의 차이가 있다(표 2). 주로 연해주 및 인접한 두만강과 목단강 유역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이고, 우리나라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비롯한 중부지역은 환동해문화권 남부지역이다. 시간에 따라서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에는 아무르강 하류도 포함된다.

환동해문화권의 북부지역인 연해주에서는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시베리아 카라숙문화의 청동유물과 같은 성분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또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에서는 카라숙 문화 및 타가르 문화의 동검을 모방한 석검 등이 발견되면서 시베리아 문화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에서도 간접적인 시베리아 문화의 요소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매우 일부이며, 연해주만이 주요한 길목이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구에 한계가 많다.

 

필자가 전고에서 밝혔듯이 ‘기원 찾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인식을 지닌 지역범위에 대한 별 다른 고민 없이 현대의 『국경』을 전제로 해서, 국경에 속하지 않으면 전부 외부로만 인식하고 있다. 문화의 원류, 기원, 계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최소한 문화의 범위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아닌 『선사인의 생활권역』부터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필자가 연구했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물질문화의 요소 찾기는 기원찾기가 아니라 문화권역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림 1. 사카치 알리안의 91번 돌에 그려진 배 그림(오클라드니코프 1971), 현재 이 돌은 없어짐. 아무르 강 하류의 현무암 바위에 그려진 암각화는 아무르강의 범람으로 오클라드니코프가 조사할 당시와 매우 위치가 달라져서 유적 파괴가 심각함. 유실된 돌도 많은편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서』,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서포항 청동기시대로 보고된 것은 6기와 7기이지만 5기는 유물의 특성상 청동기시대로 보고 있다. 5~6기를 인접한 연해주 청동기문화와 비교한 결과 크게 4단계로 나눠진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1유형의 성격으로 보이는 서포항 5기는 서포항 청동기1단계,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 1유형과 서부2유형이 공존하는 서포항 청동기 2단계, 동부2유형과 서부 2유형이 공존하는 서포항 청동기 3단계, 리도프카 문화단계의 성격인 서포항 청동기 4단계가 확인되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서포항 청동기시대 연대는 3300년 전부터 리도프카 문화가 존재한 시기 2300년 전까지이다(3).


http://eastsearoad.tistory.com/268


 그렇다면 서포항 유적은 신석기시대는 5000년 전부터 3800년 전(김재윤 2009b), 청동기시대는 3300년 전~2300년 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해주에서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인데, 이와 관련성이 보이는 동북한 유적은 범의구석1호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적색마연대부토기와 보이스만-2유적의 최상층에서 출토되는 적색마연토기이다. 이 기형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토기로 이어지며 이 문화 보다 이른 3800~3600년에 해당된다.

서포항 유적에서 빠지는 기간은 있지만 동북한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범의구석 1호주거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두만강 유역 및 연해주 해안가에서는 단절 기간 없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또한 서포항 청동기 3단계에 해당하는 6-27-1가 존재한 시간은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과 동부 2유형이 공존하는 특징이다. 그 존속시간은 시니가이 문화 동부1유형과 서부2유형이 공존하는 시간보다 늦고 리도프카 문화가 시작되기 전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나, 하한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순히 리도프카문화 보다 이른 시기에 끝났음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시니가이 문화의 연대가 세밀하지 못한데, 발굴된 유적이 적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본고에서 거론되지 못한 범의구석, 오동, 송평등 자료로 좀 더 세분해 하면 서포항 3단계 뿐 만 아니라 이 보다 앞 선 좀 더 확실하게 설명될 수 있다. 두만강 내륙에 위치한 흥성유적과의 관련성도 있음으로 종합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연해주의 시니가이문화의 연대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해주 및 북한의 새로운 자료가 앞으로 증가한다면 이 부분은 충분히 보완될 수 있다고 본다.


*본고는 올해청동기학보에 출간되었습니다.


[청동기학보23호] 01 김재윤.pdf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