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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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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고대 인도언어로 씌여진 리그베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하지만 안드로노보 문화를 연구한 쿠즈미나,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을 발굴한 게닝은 리그베다에 언급된 의례행위와 신타시타 유적에서 남겨진 의례모습을 비교한다. 그래서 소개만 한다.
(리그베다 가운데 가장 오래전에 씌여진 부분은 ‘가타’라고 하는 부분으로 기원전 1200~1000년경에 작성되었고, 원전은 기원전 1500년경 보다 이전에 씌여졌다고 한다. :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의 SB쿠르간은 불룩한 봉분 아래에 나무구조물로 된 매장 주체부 위를 돔형 지붕이 덮고 있고 사방에는 나무구조물이 이를 받치고 있는 구조였다(어제 포스팅 참고).

그림 1. 신타시타 유적 SB 쿠르간 복원도


그런데 리그베다에는 “그들에게 망자를 이 언덕 아래로 묻도록 하라”라는 구절은 쿠르간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지붕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도 있다고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뿐만 아니라 신타시타 남쪽의 SB 무덤군에서 발견된 동물희생구덩이를 리그베다의 구절에서 찾기도 한다. 희생구덩이를 상기하면 말, 소, 양의 머리가 2열로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토기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서 두었다. 그리고 동물의 두개골 사이에는 말의 발 부분의 뼈가 놓여 있었다(그림 2).

그림 2. 신타시타 유적 SM 무덤군의 희생구덩이 1호


리그베다에는 희생물을 자르는데 다리를 손상시키지 말고 가지런히 놓을 것을 주문하는 장면도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마를 요리하고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는데, 장례식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장면을 서술한 것이다. 또한 희생구덩이에서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은 세상의 왕이 대지를 적시기 위해서 바루나가 통을 뒤집는다는 구절과도 연결시키기도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1960)가 자신이 경험한 중앙아시아민족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했는데, 매우 거대했고, 손님 접대를 어떻게 했는지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발굴한 기원전 5세기경의 유적들도 비슷한 장면으로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신타시타 유적에서도 거대한 장례식 뒤풀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래 포스팅에서 루덴코가 경험한 장례식에 대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2020.07.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는 높은 곳에 깊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고 말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이 행해졌다. 2600년 전 이전에도 장례식 이후에 축조된 결과물은 다르지

eastsearoad.tistory.com


신타시타 유적이 위치한 토볼 강변은 매우 평지인데, 높이 4.5M의 쿠르간이 만들어졌다면 꽤 인상이 깊었을 것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안드로노보 문화의 세력범위는 꽤 넓었다. 안드로노보 문화의 아류작이 아프카니스탄 북부(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까지 발견된다고 보고되었다., 당시에 전차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면, 리그베다를 지은이가 자신의 책에서 서술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시인 톨스토이(안나 카레리나를 쓴 소설가 아님)가 1840년에 쓴 ‘쿠르간’이라는 시도 발견했다. 쿠르간은 인상깊은 고대의 유산이었기에 아주 오랫동안 문학의 소재로 이용된 듯 하다. 인도 유럽 공통조어를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리아인이라고 불렀다던지 이런 것은 전혀 잘 모르겠다.
신타시타 유적에서 발견된 이상한 쿠르간과 의례행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참고문헌
Генинг В.Ф., Зданович Г.Б., Генинг В.В. Синташт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памятники арийских племен Уральско-Казахстанских степей. Часть 1. Челябинск. Южно-Ураль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1992. - 448 с. (게닝, 즈다노비치, 게닝. 1992. 신타시타 유적: 우랄-카자흐스탄 스텦지역 아리아 인의 고고학 유적)
데이비드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에코리브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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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은 어떤 유적이 있을까?


유적은 대부분 연해주의 해안가에 위치하는데(그림 1), 리도프카 및 시니가이 문화 유적보다 서포항 유적은 해안가 남부에 위치한다. 리도프카-1 유적(상층), 블라고다트노예-3, 모나스트르카-2유적 등이 있다(1). 


그림1. 연해주의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김재윤2018)


리도프카-1 유적은 블라고다트노예-3 유적과 모나스트르카-2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기존의 알려진 리도프카 문화(리도프카-1 유적 상층) 이외에도 수보로보-6 유적(하층)과 같은 시니가이 문화층에 해당하는 층(리도프카-1 유적 하층)이 있는 것으로 정리되었디(김재윤 2018). 리도프카-1 유적을 하나의 문화층으로 규정(댜코프 1989)했기 때문에 리도프카 문화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지(쿠루뱐코·얀쉬나 2002,클류예프· 얀쉬나 2005)도 생겨났다.

이 유적들은 모두 주거 유적이지만 주거지 발굴 상태가 좋지 않아서 호수별로 유물을 구분하기는 한계가 있다. 보고된 유물 가운데서 다른 유형이 보이지는 않는다.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 가운데는 마을 유적 외에 토성이 확인된다. 두브로빈스코예유적은 3중 토성벽이 확인되었다(그림 5). 주로 동해안가에서 확인되는데, 리도프카 문화에서 방어벽이 있는 유적은 현재까지 11기가 확인되었다(댜코바 2009). 




그림 5. 두브로빈스코예 토성벽(김재윤 2018)



 절대연대는 시니가이 문화가 끝나는 2500년 전부터 2300년 전이다(1). 리도프카 문화 내에서 지역성이나 시간성은 크게 연구된 바 없다. 시도렌코는 리도프카 문화를 철기시대(기원전 15~기원후 1세기)까지 포함해서 4유형으로 나누었으나(시도렌코 2007) 무의미하다(김재윤 2018). 오히려 댜코프가 처음 설정했던 리도프카 문화(댜코프 1989)가 더 확연하게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유적

입지

조사연도

조사성격

시대

유적성격

참고문헌

리도프카-1

동해안

해안대지

1974

1975

1979

발굴

청동기시대

시니가이문화동부2유형과 리도프카 문화

취락

댜코프 1989

블라고다트노예-3

동해안

하안대지

1975

1980

발굴

청동기시대

리도프카문화

마을

모나스트르카-2

동해안

하안대지(루드나야강

1980년대

발굴

리도프카문화

마을

두브로빈스코예

동해안

해안절벽(리도프카 강)

2001

시굴

리도프카 문화

마을과방어벽

댜코바 2009

 

리도프카-1상층

동해안

해안대지

상동

2610±45(СОАН-1390)

취락

댜코프 1989

댜코프 1989

2535±40(СОАН-1424)

2570±60(СОАН-1388)

2450±50(СОАН-1389)

수보로소-6상층

동해안

해안대지

1993

발굴

2320±55(СОАН-3022)

취락

쿠루피얀코· 얀쉬나 1993

2540±40(АА-36623)

미스 스트라시느이

동해안

해안절벽

2000

발굴

2575±45(СОАН-4414)

마을과방어벽

댜코바 2009

쿠즈민 외 2003

수보로보- 8

동해안

해안대지

1997

발굴

2560±90(СОАН-4305)

문화층

쿠루피얀코·타바레프 2004

2465±60(СОАН-4309)

2400±55(СОАН-4310)

2350±35(СОАН-4308)

2336±60(СОАН-4307)


1. 리도프카 문화의 유적과 절대연대(김재윤 201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극동전신상토우는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및 연해주 청동기시대 출토되는데, 동북아시아전체에서 이 지역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적인 유물이다

아무르강 신석기시대의 토우가 신체 상단까지만 확인되고 몸통을 가로지르는 구멍이 있고,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토우는 청동기시대이며 눈코입이 생략되고, 신체부가 하단까지 전면에 표현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무성이며, 머리가 뒤로 젖혀지게 표현하는 토우는 아무르강 하류부터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에서만 확인된다(김재윤 2008).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리도프카 문화(그림 4-9~17)에서 극동전신상토우가 출토되기 때문에 서포항 6기 퇴적층 유물(그림 7-13)도 비슷한 시점의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합당하다.




사진1.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보즈네세노프카문화) 극동전신상토우


사진 2. 연해주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토우(좌측상단)(아무르강 신석기시대의 것과 유사한점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고, 무성이라는 점이다. 다른점은 눈코입이 생략되었으며, 하단을 마무리해서 전신상으로 표현. 아무르강하류의 것은 몸통에 구멍이 있어 끼울 수 있도록 처리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진 3. 연해주 리도프카 문화의 토우


그림 4.  리도프카 문화의 석제품과 토제품(1~3: 카멘카, 4~15: 리도프카 1 유적 상층, 17: 블라고다트노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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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리도프카 문화의 석기

  

석검은 비대칭 날이며, 중앙에 능이 없는 석검(그림 3-28,29)과 중앙이 능이 있는 것(그림 3-30,31,32)이 있다. 전자는 병부 없이 경부가 짧게 형성된 것이고, 후자는 경부가 전체 길이의 1/3가량을 차지하며 끝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서 병부로 볼 수 있다. 등날이 없는 석검은 리도프카 문화에서 최초로 출토되었고, 등날이 있는 석검도 시니가이 문화의 석검에 비해서 크기가 크며, 병부가 확연하게 처리된 점, 비대칭날 등이 차이가 있다.

부엌칼형 석도(그림 3-5~14)는 신부와 경부의 길이 비 차이에 따라서 형식 설정을 할 수 있다. 신부와 경부의 길이차이 및 병부의 끝 장식을 확실하게 처리한 것(그림 3-6,9)과 병부가 간단한 것(그림 3-5~14)으로 구분된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자형 석도(김재윤 2018, 그림 6-14,15)는 인부가 직선이고, 인부의 반대면이 사선으로 올라가는 형태였다. 리도프카 문화의 부엌칼형 석도는 인부는 비스듬하고, 그 반대편이 편평하며, 신부가 길어지고, 병부가 확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것과는 다르다. 시니가이 문화의 리도프카 문화 마제석부는 단면이 장방형이며, 양인(그림 3-24,25)이다. 유사한 석부가 시니가이 문화에도 존재했으나, 리도프카 문화에서는 장단비가 작아진 특징이 있다. 반월형 석도(그림 3-15~18)와 장방형 석도(그림 3-19)도 확인되는데, 중앙에 구멍이 하나이다. 블라다트노예-3 유적은 곰배괭이(그림 3-33~35)가 대량으로 확인되었으며, 갈돌(그림 3-26, 27)도 확인된다.

리도프카 문화의 석촉은 경부가 없는 무경식 석촉있는데(그림 3-1~4), 경부가 들어간 것(그림 3-2)과 들어가지 않은 것(그림 3-1,3,4)으로 구분된다. 중앙에 홈이 있는 것(그림 3-3,4)은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2유형에서 무경식석촉으로 홈이 있는 것(그림 6-39) 보다 신부가 길어진 것이다. 흑요석제 석촉(그림 4-1), 단면이 장방형인 원판형석제품(그림 4-6), 단면이 장타원형인 토제 고리(그림 4-4,5),단면 삼각형의 방추차(그림 4-7,8), 이 외에도 대롱옥(그림 4-20,21)도 출토된다.


그림 3. 리도프카문화의 석기(1~4,8,11~14,20,21,24,25,28,29: 모나스트르카-2, 5~7,9,10, 17~19, 22,26,36: 리도프카-1 유적 상층, 16,27,33~35,37: 블라고다트노예-3 출토)


사진 1. 리도프카문화의 석검(상단)과 석도(하단)


사진 2. 리도프카문화의 석촉



  사진3. 리도프카문화의 석부(하단)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서포항 유적의 청동기시대 층을 이해하기 전에 연해주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부터 하고자 한다. 앞서 시니가이문화에 대해서 몇 번에 걸쳐서 포스팅한 바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41?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3?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6

http://eastsearoad.tistory.com/147?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8 

  



리도프카 문화는 연해주 동해안의 유적을 중심으로 설정되었고 시니가이 문화 이후 2500년 전부터 존재한 청동기시대 문화이다. 토기, 석기, 그 외의 유물이 많이 확인되었다.

그 중 토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연된 호형토기 및 옹형토기, 마제석검과 석도, 석촉과 인물형토우가 대표적인 리도프카 문화의 유물이다.

장경호는 마연된 것으로, 시니가이 문화 동부 2유형의 호형토기 보다 경부가 더 길어지고, 이중구연이었던 구연부는 홑구연화(그림 2-5) 된 것이 집중된다. 견부에 돌대(그림 2-7,9,12,15, 17) 혹은 침선(그림 2-2,4,5)이 여러 줄 돌아간다. 이 문화에서는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 2유형에서 관찰되었던 구연단에 각목, 공열문, 등을 새기지 않지만, 전면이 마연된 특징은 유지된다(그림 2-4,5). 뿐만 아니라 경부가 긴 적색마연토기(그림 2-1,3,6)도 있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동부 2유형의 이중구연과는 약간 달리 구연단 끝을 접어서 그 상단에 가로방향으로 2줄 침선해서 홈을 판 것(그림 6-10,11)도 출토되는데 리도프카 문화의 이중구연토기이다. 또한 발형토기로 구연부를 이중으로 처리한 것도 확인된다(그림 2-18). 구연단에서 문양은 시문되지 않았다.



 사진. 리도프카문화의 호형토기




그림 2. 리도프카문화의 토기(1~2: 모나스티르카-2, 3~11: 리도프카-1 유적 상층, 12~21: 블라고다트노예-3, 22: 사이온-2(2,3,5 필자 )(축척부동)



<간략한용어설명>  

*구연: 토기의 입술부위

*이중구연: 토기의 입술부위를 점토로 덧붙인 것

*홑구연: 한겹 토기 구연

*돌대: 점토띠를 붙인 것.

*견부: 토기의 어깨부로 호형토기의 목과 동체부 사이를 일컬틈.

*적색마연토기: 붉은색으로 색칠한 후 도구로 토기를 문질러 광을 낸 것.

*발형토기: 구연부가 넓고 저부가 작은 토기의 종류

*침선: 시문구로 그어서 문양을 그리는 방법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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