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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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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권은 기원전 9세기부터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 초원의 각 지역에 여러 유적이 발견되는 되면서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는 기원전 7~4세기이다. 동쪽과 인접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기간이고, 서쪽과 인접한 지역인 이란지역에서는 앗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던 기간이며, 이들과 공존하던 사람들의 문화를 스키타이 문화(권)라고 한다. 각 지역에는 지역색이 분명한 문화가 있었지만 어떤 공통된 특징 때문에 이들을 통틀어 ‘문화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각 지역의 문화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보이는 것을 마구, 무기, 동물장식라고 생각하며 이를 스키타이 3요소라고 러시아 학계에서는 생각한다. 마구와 무기는 실용적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무덤에 부장되어 현재 전해지는 것은 많은 것은 의례적인 유물이다. 대형고분 위주로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무덤에서도 무기류는 의례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마구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장식은 좀 더 심하게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보여주기 위한 혹은 그 어떤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 마구에 다는 동물장식은 실제로 썼으니 실용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필자가 생각하는 실용적인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말한다. 재갈과 재갈멈치를 통해서 고삐를 달아서 말을 부리면 된다. 동물장식을 달던 안달던 고삐가 채워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마구 없이는 말을 부릴 수 없고 이동을 할 수 없다. 이들의 생업방식과 직결되는 것이다.

 

필자도 스키타이 3요소가 스키타이 문화권을 묶어주는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의례적인 요소가 강한 것다. 반면에 일상생활과 관련된 좀 더 실용적인 유물도 각 지역이 어떤 공통적인 문화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던 근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무쟁반 혹은 나무 잔과 같은 것이다. 아르잔-1호에서는 아쉽게도 발견되지 않았지만(도굴되었을 가능성이 많음), 아르잔-2호에서 이미 발견되었고, 그 전통은 알타이의 유적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볼가 강 유역의 사우로마트 및 사르마트 문화의 이른시기, 흑해의 유적에서는 금판을 두른 목제 잔 등이 발견된다.

 

중앙아시아의 타스몰라 문화의 여러 유물은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다고 지적되었는데, 주로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및 허리장식과 버클 장식이다. 그 외 무덤구조는 아르잔-2호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아르잔-2호의 주요전통이 타스몰라 문화로 연결된다고는 보기에는 어렵다.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나무쟁반 대신해서 고기를 담는 그릇을 돌로 만들어서 무덤 속에 넣어 두었다. 돌 그릇의 형태는 평면형태 원형, 타원형 등 납작하고 가장자리에 테가 돌아가는 형태이다(그림 1). 아르잔-2호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돌로 만들었다.

시간에 따라서 형태에 변화가 있지만 기원전 5세기 이후에 타원형(그림 1-15)에 가까운 유물이 나타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슷하다. 문화의 전반기(기원전 7~6세기)에는 다리가 짧게 붙은 유물도 있었다.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석제 쟁반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무덤안에 목제 구조물을 넣는 경우가 없다. 단지 봉분을 높게 쌓고 무덤의 동쪽으로 긴 수염처럼 돌을 줄을 세워서(석열) 무덤인 것을 표시했다. 아마도 이들 북쪽에 있던 투바와 알타이와는 달리 목제 수급이 용이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석제 쟁반도 목제를 대신해서 만들었지만 그릇의 모양은 닮았다. 물론 아르잔-2호에도 석제 쟁반은 있지만 아주 소형이고, 형태가 원형이 아니어서 타스몰라 문화의 석제 쟁반은 목제 쟁반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목제 쟁반

 

나무가 부족하니 돌로 쟁반을 만들었지만 이를 따라 할 만큼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널리 사용되던 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문화인 타스몰라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존재한 문화이다. 전반기는 기원전 7~6세기, 후반기는 기원전 5~3세기까지 존재했다. 기원전 4세기가 되면 스키타이 문화권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흉노문화, 볼가지역 및 흑해지역은 사르마트 문화 혹은 훈족 문화라고 하는 지역으로 변환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중부지역 및 동부지역 특히 평지에는 기원전 3세기까지 타스몰라 문화가 지속된다. 카자흐스탄의 동부 산악(천산산맥) 부근에는 사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지만,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고고문화의 구분은 선명치 않다.

 

카자흐스탄 타스몰라 문화는 사카 문화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베리아 아르잔-2호의 발굴로 다시 소환되었으나,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관심사와 약간은 빗겨나갔기 때문인데,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황금유물이 몇 몇 동물장식 빼고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덤구조도 ‘수염 달린 쿠르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산악지역(카자흐스탄 동부, 파지리크 문화) 및 아르잔-2호와도 전혀 다르다.

 

타스몰라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늦은 기간에는 황금유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동물장식 가운데 맹수모양의 황금장식(그림 1)은 이른 시간에 몇 점이 발견되고 그 이후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늦은 시기의 타스몰라 문화 유적에서는 유물 자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부분 무기(화살촉, 철칼)과 석제 쟁반, 마연석 등이 발견될 뿐이다.

 

시베리아 중부의 산악지역인 알타이와 천산산맥에서 황금관련 유물이 발견되는 시점이 기원전 6~5세기이지만 카자흐스탄 평지에는 소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 1. 타스몰라 문화 전반기(기원전 7~6세기) 동물장식, 황금제품

 

 

그림 2. 타스몰라 문화의 후반기(기원전 5~3세기)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그림 3. 타스몰라 문화의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중에 1,2-5a, 3,4-5b

 

아르잔-2호의 마구와 허리띠 장식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점은 틀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황금유물을 기준으로 할 때 두 문화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오히려 아르잔-2호의 황금제작 기술이 카자흐스탄 각 지역의 황금제작 기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견(Barbara Armbruster 2009)이 더 합리적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정해진 무기, 마구, 동물장식은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씩 비교해 보면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들이 더 많다. 황금유물은 이들 각각의 제품 가운데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의 재질이다. 그런데 필자는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세계를 묶는 유물은 일상용기로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제 쟁반은 아르잔-2호와 파지리크 문화의 이미테이션이다.

 

참고문헌

 

Barbara Armbruster 2009 Gold technology of the ancient Scythians –gold from the kurgan Arzhan 2, Tuva, Archeo Sciences, 33, 2009, p. 187-193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의 초기철기시대 고고문화인 타스몰라 문화는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와 자주비교되었는데, 염소와 사슴상 때문이다. 2000년대 투바의 아르잔-2호 발굴뒤에는 이 유적에서 나온 마구와 허리띠 장식 등이 타스몰라문화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무덤구조의 차이가 크고 아르잔-2호의 연대가 오히려 더 빠르기 때문에 타스몰라 문화가 북쪽에서 발견되는 유물의 특징에 대한 주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공통되는 유물은 그라즈노프가 아르잔-1호를 발굴하고 나서 세운 개념인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지역성은 분명하다. 그 중에 하나가 사슴과 염소상이다.

다리를 굽혀서 배쪽으로 접어 넣은 사슴은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줄임발)의 동과 서에서 모두 발견되지만, 표현된 사슴의 자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다(그림 1, 그림 2).

 

그림 1. 스키타이 문화권의 서쪽-흑해 연안의 코스트롬스카야 출토 사슴패식

 

그림 2.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쪽-카자흐스탄 실릭티 유적의 사슴장식

 

유물을 보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을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는데, 그래도 해 보면 앞으로 난 뿔의 가지수, 뿔의 모양, 사슴몸통의 볼륨감 등이 가장 큰 차이로 여겨진다.

특히 시베리아 연구자들은 동쪽의 사슴 표현이 서쪽 보다 볼륨감이 없는 이유를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인 카라숙 문화에서 발견되는 사슴돌에서 찾는다. 원래 시베리아에서는 사슴을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 전통이 초기철기시대가 되면서 금판으로 제작되기는 하지만 서쪽만큼 몸통의 근육표현을 뚜렷하게 하지 않고 지역성을 따른다는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 새로운 발굴자료 때문에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약간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동과 서로 크게 구분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스몰라 문화에서 발견되는 염소상(그림 3)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염소상은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타스몰라 문화의 염소상은 약간 다르다. 동물상이 부착된 유물의 용도(아르잔-1호: 간두령장식, 타스몰라 문화: 굴레장식)뿐만 아니라 특히 자세가 다른데, 타스몰라 문화의 염소는 ‘발 끝으로 선 자세’(기원전 6세기)이다.

 

그림 3. 타스몰라 문화의 굴레장식, 염소, 타스몰라 V유적

 

두 유적의 유물은 연대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세에 초점을 맞춘다면 발 끝으로 선 자세의 굽동물은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카라숙 문화의 사슴돌(아래 포스팅)에서 먼저 발견되고, 아르잔-2호의 5호묘 남성 모자장식(그림 4)으로도 사용되었다. 아르자-1호에서는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장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유적의 주인공 무덤이 도굴당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르잔-1호의 봉분 위에 세워진 사슴돌에도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이 그려진 것이다(아래 포스팅).

 

2020.05.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그림 4. 투바의 아르잔-2호의 5호묘 출토

 

그래서 발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이 청동기시대부터 전혀져온 문양으로 초기철기시대까지 이어지며, 이 자세를 한 다른 굽동물인 염소로 대체되면서 타스몰라 문화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다리를 접은 사슴은 스키타이 시대를 대표하며 동과 서에서 발견되는 문양이다. 이 자세 역시 사슴돌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과 염소는 동(중앙아시아~시베리아)에서만 발견되는 지역적인 문양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М.И. Артамонов Скифо-сибирское искусств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основные этапы и направления)// Проблемы скифской археологии. / МИА №177. М.: 1971. С. 24-35(아르타모노프 1971, 스키토-시베리아 동물장식)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인 타스몰라 I유적은 여성의 무덤으로 타스몰라 문화의 이른시기를 대표한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카자흐스탄 중부지역 문화를 타스몰라 문화이고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한다.

 

이 여성의 무덤은 일명 ‘콧수염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무덤 속에 매장되었는데, 무덤구덩이 속에는 양머리 2개체와 말이 매장되었다. 무덤의 남동쪽 방향으로 돌이 1m가량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무덤이다. 그럼 무덤속으로...

 

 

그림 1. 타스몰라 I유적 19호

 

여성의 머리 아래에는 돌로 만든 장식을 깔고 눕힌 것인데, 모자장식이 아니라 돌베개의 이미테이션이다.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엉덩이뼈 부근(오른쪽)이다. 오른쪽 종아뼈 아래에는 말의 견갑골과 두개골이 있었다. 말의 두개골은 청동제 굴레장식(그림 2-1~8, 그림 3-5)과 재갈, 재갈멈치(그림 4-2), 동물장식(그림 4-1)가 있었다. 반대편에는 양 머리 2개체가 있었고 그 위에는 철제칼(그림 2-9)과 함께 칼을 가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무덤 19호 재갈멈치와 연결하기 위한 구멍의 모양이 사다리꼴 인점이 시베리아 아르잔-2호에서 발견되는 재갈과 유사하다.

 

 

그림 2. 타스몰라 I 유적 출토유물

 

그림 3. 타스몰라 유적 마연석, 1-타스몰라 I, 19호, 2-타스몰라 II 24호, 3-타스몰라 VI, 1호, 4-카라무룬 I유적 5a

 

그림 4. 타스몰라 유적 마구, 1,2,5-타스몰라 I유적 19호, 3-톨라가이 4-타스몰라 I유적 24호

 

무덤 19호에서 나온 재갈의 모양은 분명히 아르잔-2호과 유사하다. 청동거울도 뒷면에 꼭지가 하나만 달린 점, 거울 가장자리에 테를 두른 점도 아르잔-2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잔-2호 5호묘 주인공 여성과 비교해 볼 때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고, 청동거울의 위치도 머리위가 아닌 엉덩이 뼈 부근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의 장법과는 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무덤구덩이 속에 말 뼈를 부장하는 점도 다르다.

 

아르잔-2호를 발굴한 추구노프 박사는 ‘유물 중에서 이미 발견된 타스몰라 문화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의미는 아르잔-2호의 수많은 유물 중에서 몇 몇 유물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아르잔-2호와 타스몰라 문화는 몇 몇 유물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덤 구조가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유물은 동산적인 것이어서 옮겨다닐 수 있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지역 가운데 카자흐스탄 중부에는 타스몰라 문화라고 하는 지역문화가 있다. 마구와 일부 유물은 투바의 아르잔-2호와 유사하지만 무덤구조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은 ‘수염이 있는 쿠르간’이라고 불린다. 독특하게 생긴 외형 때문인데, 쿠르간의 동쪽으로 20~200m 길이로 긴 띠가 연결되는데 이 부분이 마치 수염과 같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긴 띠는 돌로 쌓은 것으로 부채꼴 모양인데 2개가 서로 마주보는 모양이다.

쿠르간은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와 말과 토기를 매장하는 방법에 따라서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쿠르간이 2개가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장주체부의 동쪽과 남쪽에 따로 말을 매장하는 곳을 따로 두는 것이다(그림 1-1, 2).

그렇지 않고 매장주체부의 상단에 말과 토기를 묻는 경우(그림 1-3)와 말을 시신과 같은 구덩이에 묻고 토기는 구덩이의 바깥에 묻는 경우가 있다(그림 1-4).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 형식

 

카자흐스탄 라브로다 지역의 아토가이 지구에 위치한 타스몰라 유적이 대표적인데, 지점에 따라서 타스몰라 I, 타스몰라 V, 타스몰라 IV 유적 등이 있다. 각 유적에는 여러 무덤이 있는데 크게 기원전 7~6세기 무덤과 기원전 5~3세기 무덤으로 구분된다. 이 시간단위 구분은 타스몰라 문화의 시간단위 구분(편년)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 유적명은 주로 행정구역명을 기반으로 하며, 찾아진 유적마다 번호를 붙인다. 타스몰라 I, 타스몰라 II 등등.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은 대부분 단독 무덤이 아니라 여러 무덤이 군을 이루기 때문에 번호가 다른 유적은 다른 무덤군 좀 더 확장하면 다른 유적이다. 각 유적에는 무덤 여러기가 있는데,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여러 시기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스몰라 I 유적에는 36기의 무덤이 있고 그중에 기원전 7~6세기 무덤은 19~24호 무덤이고, 나머지 무덤은 기원전 5~3세기 무덤이다.)

 

기원전 7~6세기 타스몰라 문화를 대표하는 무덤은 타스몰라 I유적의 19호이다.

 

그림 2. 타스몰라 I유적 19호, 1-19호 무덤 평면도, 2-단면도,3-무덤바닥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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