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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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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투엑타 강에 인접한 해발 1000m가량 높이에서 확인된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은 무덤의 수도 많았고, 직경이 68m나 되는 초대형 무덤이 있는 유적이었다. 직경 68m의 무덤은 1호 무덤은 처음 시굴(발굴 전에 땅 밑에 문화층이 있는지 조사)조사한 것은 1949년 이었고, 발굴은 1954년에 무덤을 덮은 돌을 제거하고 1955년에 바닥조사까지 완료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이어서 돌을 모두 들어내지 못하고 매장주체부(무덤방)과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을 만큼(약 30m) 만 조사했다(그림 1). 무덤을 덮은 돌의 무게는 개당 150kg이상이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는 남북방향이다. C-북. 단면도에서 먼저 것은 무덤방 바닥까지 그린 단면도, 단면도의 아래 것은 봉분의 자른 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내부,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이다.

 

무덤구조는 앞서 설명한 파지릭 유적과 흡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설치한다는 점은 같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는 너비가 7.53×7.88m, 깊이는 4.5m이다. 무덤방을 설치하고 상부는 돌로 채웠다(그림 4). 무덤방은 2중 무덤방이다.(바깥 1차-4.98×5.91m, 높이 2.12m, 안쪽 2차-4.15×4.90m, 높이 1.75~1.85m). 무덤방 안에는 통나무관 1기가 놓여 있다(그림 4).

 

무덤방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자작나무를 이용했고 길이가 4.9~6.9m에 달한다.

2중 무덤방은 각각의 덮개가 있고, 3번 통나무를 덮었다.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통나무 12개(길이 2.83m, 직경 42cm)를 세우고 그 위를 남북방향으로 덮었다(그림 3). 그 위는 작은 통나무로 동서방향으로 채운 후 가장 상부에는 다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로 덮었다(그림 4, 이 지점은 무덤상부에서부터 2m 되는 지점). 루덴코는 무덤방을 5번 덮은 것으로 표현했다.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의 외곽 무덤방 덮개, 도굴구멍의 크기는 1.58×1.87m.

 

그림 4. 투엑타 유적 1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오른쪽 북쪽.

 

그림 5. 투엑타 유적 1호분의 통나무관, 가장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다.

 

말은 무덤구덩이 북쪽에서 8마리가 확인되었다. 머리에 체칸(전투용도끼)으로 내려 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수직으로 세운 통나무 사이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돌이 20cm정도 깔려 있었고, 머리는 동쪽으로 다리는 굽힌채로 옆으로 뉘웠다. 그 위를 자작나무 16개로 덮었다(그림 4).

 

 

 

투엑타 2호분은 1호분의 북쪽에 위치한다. 1호분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직경 32m이고, 높이는 2.6m이다(그림 6).

 

 

 

그림 6. 투엑타 유적 2호분의 평면도와 단면도, 단면도 위의 것은 남북방향, 아래 것은 동서방향이다. 각각 단면도의 왼쪽이 북쪽(C)과 서쪽(З)이다.

 

무덤구덩이(4.5×5.8m, 깊이 4.5m) 안에 무덤방(3,3×3.7m)을 만들고 그 안에 통나무관을 놓은 구조이다. 무덤구덩이 내부에서 북쪽은 말을 위한 공간이고 남쪽에 무덤방이 설치되었다(그림 8). 무덤방 외곽에는 남쪽과 북쪽에 수직으로 기둥(길이 1.48m, 직경 50cm)을 세워서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쉽게 했다. 이 위로 남북방향으로 통나무를 덮고 다시 동서방향으로 통나무 13개를 나란히 눕혀서 덮었다. 가장 상부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덮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 8마리 분이 있었다.

 

그림 7. 투엑타 유적 2호분의 무덤방 단면도

 

그림 8. 투엑타 유적 2호분 무덤방 평면도

 

투엑타 유적의 무덤구조가 앞서 살펴본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파지릭 유적과 다른 점은 무덤 상부를 덮은 재료이다. 물론 여러 번 무덤방을 덮은 점은 같지만,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무덤구덩이의 상단부분을 통나무로 채웠으나 투엑타 유적은 상부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 나무를 덮고 그 내부는 돌(1호)과 흙(2호)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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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