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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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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에 해당되는 글 18

  1. 2023.05.16 스키타이 전사14
  2. 2023.04.28 나무끝에 달린 청동으로 된 남성10
  3. 2023.04.25 진짜 '파파이'일까?4
  4. 2021.09.24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5. 2021.08.15 은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전사들1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남성의 형상은 간두령 뿐만 아니라 금제 그릇과 장식판에서도 볼 수 있다. 금(쿨-오바 유적)과 은(차스티예 유적) 항아리의 남성들은 기록(헤로도투스) 속의 타르기타우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일상생활과 관련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타르기타우스는 스키타이 땅에 처음 나타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셋째 아들이 스키테스인데, 세 아들 가운데 땅을 물려 주기 위해서 경합을 벌리는 장면으로 많이 회자된다.

 

항아리의 생김새도 유사하고, 남성들이 등장하며 특히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는 남성 때문에 스키테스를 떠올리는 것 같다. 그는 타르기타우스의 막내아들로 고리투스를 다룰 수 있었기에 스키타이 땅을 물려 받았던 인물이다.

 

장식판 가운데 두 남성이 각배를 들고 맹세를 하는 장면은 확실히 기록에 있는 “맹약의식”으로 보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남성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맹약의식이라는 행위이다.

 

간두령에 달린 남성, 항아리 속의 남성, 각종 장식판에 나오는 남성들이 과연 신화 혹은 기록 속의 인물일까?

 

이들은 스키타이의 전통적인 남성이거나 특정 영웅일 수도 있지만 의인화 된 신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성과 비교해 볼 때 기원전 7세기부터 지속되거나(아르김파사), 기원전 5세기 이후에 나오는 여성(타피티)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성형상물이 후기구석기시대 이래로 지속적으로 제작되지만 남성형상물은 스키타이 문화가 되어서야 만들어진다. 인간형상물 가운데 남성에 대한 관념이 변했을 수는 있고, 스키타이 전통 남성일 수 있지만 기록 속의 인물들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림 1. 기원전 5세기 이후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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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발견된 간두령 끝에 달려 있는 남성은 파파이(그림 1-1)로 여겨진다. 간두령은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져 있고, 그 끝에는 새가 달려 있다.

 

이 유물은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채집된 것이기 때문에 연대를 알기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드네프르강 유역의 수많은 유적 중에서 알렉산드로프키폴 유적의 유물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납작한 원판을 흔들리도록 단 방법, 청동방울과 새를 간두령에 장식하는 방법? 혹은 행위 등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그림 1-3,4,5,6)과 유사하다.

즉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유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청동으로 된 남성이 파파이로써 만들어 진 것인지는 모른다.

 

 

그림 1. 스키타이 남성들

 

 

그런데 스키타이 연구자들은 세계수, 간두령을 생긴 모습으로 그 뒤의 정신적인 부분을 해석하고자 했다. 지팡이 혹은 막대기 끝에 끼워서 사용되는 청동으로 된 장식(간두)은 유목민의 세계관이 녹아 있는 유물이라고 라에프스키, 페레보드치코바 등이 이미 연구 한 바 있다.

나무가 뿌리내리고, 자라고, 뻗어있는 장소가 지하, 지상, 하늘이고, 나무의 구조대로 우주의 3세계가 구성된다고 하는 유목민의 관념 축소한 것이 간두령 혹은 간두장식이다. 그리고 이 유물은 전통적인 스키타이 유물이다.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이 청동 남성이 정말로 파파이 인지는 모르지만, 간두령 장식으로 사용된 점은 그냥 지나가는 남성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별한 사람 혹은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키타이 여성형상물처럼 오랫동안 사용었거나, 특정인물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파파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스키타이 남성들은 간두령에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 파파이는 스키타이 신으로 남성신 중에 한명이다. 헤로도투스는 그를 제우스와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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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전 지역으로 보았을 때 여성형상물은 시베리아, 동유럽 모두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출토된다. 그럼 남성형상물은 어떨까?

 

남성형상물은 시베리아 말타 유적에서는 여성형상물보다 숫자는 적지만 남성상징 모양으로 매우 간단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와 순동시대에는 여성과 남성 등 성을 구분하지 않은 여성형상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에서는 여성형상물과 남성형상물이 모두 확인된다.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동유럽에서는 흑해북안의 스키타이 문화가 되면 남성형상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벨스크 성곽 유적의 주거지 내에서 출토된 토제로 된 것이다(그림 1). 이는 ‘파파이’라고 발굴자는 보고했다. ‘파파이’는 기록속에 나오는 스키타이 신 중에 한명이다. 헤로도투스는 ‘파파이’가 제우스라고 했다(IV.59).

 

그가 과연 파파이 일까?

파파이라고 추정한 이유는 기존에 알려진 유물 가운데 청동의 간두장식 위에 장식된 남성을 일컬어 ‘파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 벨스크 유적의 성곽 규모나 그 내부에서 나온 의례 흔적 들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 간단한 이유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아니라고 하기도 딱히 마땅치 않다. 아마도 시람코는 자기가 발굴한 유적이 대단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필자라도 그랬을꺼 같다.

 

그림1. 기원전 7세기 벨스크 유적의 토제 남성형상물

 

 

 

그런데 간두장식 위에 달려 있는 남성(그림 2)은 왜 파파이가 되었을까?

사실 간두령이나 간두장식은 스키타이 유목민의 정신세계와 관련된 유물이다. 필자가 이야기 한 것은 아니고, 이미 많은 연구를 한 페레보드치코바나 라에프스키 등이 이에 대해서 적은 바 있다. 이 블로그에도 이미 소개되었다.

 

그림2. 기원전 5세기 드네프르강 하류에서 수집된 간두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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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는 아시다시피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는 스키타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그리스 신과 비교되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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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유물에는 의인화된 사람들이 많이 표현되는데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들과 비교되었다. 그 중에서 여신인 아르김파사와 티파티는 각각 기원전 7세기 유물과 기원전 5세기~4세기 유물에서 드러났다.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성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부터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갑옷 장식판, 귀걸이, 마면장식, 간두령 등 다양한 유물에 표현되었다.

티파티는 거울과 각배가 나오는 의식에서 등장한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여성 베일에 달려서 장식되었던 것이고, 이 유적의 주인공 역시 여성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티파티는 측면이 표현된 것이지만,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전면이 표현된 머리장식이 사하노프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되었다. 역시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이 유물은 10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여성을 기준으로 양 쪽에는 남성 9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성의 좌측에는 뿔잔으로 술을 마시며 의형제를 맺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허리에 고리트를 차고 한손에는 지팡이와 각배를 들고 있는 남성이 있고, 그 옆에 하프켜는 사람, 가장 끝에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나누어 담는 장면이다.

 

그림 1.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출토 머리장식, 길이 36.5cm, 너비 9.8cm, 무게 64.58g

 

그림 2. 그림1과 동일

 

이 장면을 분석한 여러 연구자들은 크게 의례장면, 결혼장면, 장례식과 관련된 모습으로 해석했다. 오래된 연구일수록 의례장면(로스토프체프 1913),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마시는 의례장면(아르타모노프 1961)으로 간략하게 분석했다. 왕과 여신 티파티의 신성한 결혼식 장면(라에프스키 2006) 혹은 결혼식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은 아르김파사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베스소노바 1983). 장례식 장면이라고 추정한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문화에 국한 하기 보다는 인도-이란 계통의 눈을 넓혔다. 먼저 쿠로치킨은 이란 청동기시대에 비슷한 도상학적인 표현이 있었음을 말했다. 베르티엔코는 인도-이란 장례식에서는 의식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러지는 것을 고려해서 이 유물은 주인공의 좌측인 의형제를 맺는 장면부터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2009).

 

베스소노바가 아르김파사라고 추정한 이유는 체르토믈리크 고분의 티파티가 측면을 향하는데 사하노프스키 머리장식의 여성은 정면을 향해서 오히려 아르김파사와 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각배를 들고 의식을 치르는 장면(아래 포스팅)은 솔로하 유적에서도 장식판에서 표현된 남성 2인과 매우 유사해서 사흐노프스키 머리장식판의 표현과 같은 의례장면 혹은 일부 일 수 있다.

 

2020.02.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기록과 솔로하 유적의 2.5cm 황금 장식판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4권 70장에는 스키타이 인들이 맹약을 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스키타이족은 누구와 맹약을 하든 다음과 같이 한다. 큼직한 토기 항아리에 술을 붙고 거기에 계약 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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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장면이든지 장례식장면이든지 의례 혹은 명절에 지내는 의식일 수 밖에 없다. 술마시고,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한쪽에는 악기를 켜는 장면이 함께 묘사된 머리장식판은 스키타이 의례와 관련된 것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세밀한) 유물은 아니어서 원래의 작품은 따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베스소노바 1983)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는 여신이 등장하는 체르토믈리크 유적, 노사키 유적의 장신판에는 가장자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그림 1의 유물은 하단에만 꽃 장식이 있고 상단과 그 옆에는 구멍만 남아 있어 마무리가 좋지 못해서 다른 방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또 이 유물은 편평하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머리앞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 둥글게 제작되어야 한다. 인물표현도 하고 둥글게 제작하려면 두꺼운 금판은 사용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게 가능한 유기물질로 원판을 제작한 후 이를 금박으로 마무리 했다면  얇은 금박(64.58g)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금박 아래에 원래 판이 따로 제작되고 거기의 조각이 금박에 남아서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금박 위의 표현은 그다지 세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비슷한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의 말 굴레장식이다. 목판이나 가죽, 뼈등 유기물질로 제작한 뒤에 금박을 싸서  만들었는데, 현재는 금박만 남아 있다. 금박에 남은 표현은 원판의 조각에서 찍힌 것이 남은 것이다. 

 

2021.09.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동유럽 가이모노바 쿠르간은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4개의 무덤방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인 말이 매장된 곳은 2번 무덤방으로 피장자가 안치된 곳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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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 И. . 1961,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1961. Вып. 2. (아르타모노프 1961,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의인화 된 신)

Вертиенко А.В. 2009, К интерпретации семантики золотой пластины из Сахновки // Боспорский феномен. Искусство на периферии античного мира. Мат-лы

МНК. – СПб., 2009. – С.515-522.(베르티에넨코 2009, 사흐노프키 금판의 해석)

Г. Н. Курочкин. Богиня с зеркалом и герой с секирой (к проблеме антропоморфизац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Материалы конференции памяти акад. М. И. Ростовцева. Новочеркасск, 1993.(쿠로치킨 1993, 거울든 여신과 도끼 든 영웅-스키타이 예술에서 인물상의 문제-)

С. С. Бессонова.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К., 1983. (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 종교의 표현

Д. С. Раевский. Мир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М. И. Ростовцев. Представление о монархической власти в Скифии и на Боспоре // ИАК. 1913. № 49. (로스토프체프 1913, 보스포로스 해협 스키타이 군주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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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스팅은 흑해 지역의 철기 제작소를 찾아서 헤매어 다닌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빠짐 없이 출토되는 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활과 관련된 스키타이 신화가 있다. 고리트(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특유의 화살통)를 늘 차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타르기타우스와 관련된 것이다. 타르기타우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신화 속의 인물로 스키타이 땅에 최초로 태어난 인물로 알려졌다. 그에게 3아들이 있었는데, 활을 당기고 허리띠를 맬 수 있는 아들을 드네프르강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이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 3째 아들(schytes)로 타르기타우스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신화와 관련된 유물이 차스티예 쿠르간(기원전 4세기)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 은 항아리인데, 타르기타우스는 고리트를 차고 있고(그림 2의 우측, 그림 3-2), 그가 활을 건너는 인물이 3째 아들이다(그림 3). 첫 번째 아들은 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으며(그림 2) 두 번째 아들은 창과 방패(그림 4)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가 적은 역사의 4권에 스키타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 중에 한 부분이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신화, 강역, 주변 민족, 기원과 생활풍습, 전쟁풍습, 종교, 왕이 장례치르던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기원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스키타이 사람들이 믿는 자신들의 신화와 그리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키타이 신화는 약간 다르다.

 

 

그림 1. 차스티예 쿠르간 출토 은 항아리

 

그림 2.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우측)와 큰 아들(좌측)

 

그림 3.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타르기타우스와 셋째 아들(1)

 

그림 4. 차스티예 쿠르간, 은 항아리, 둘 째 아들

 

한편,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가 쿨-오바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위에서 전한 신화 속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그림 5).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5. 쿨-오바 유적 출토 금 항아리

 

신화와 고고유물을 비교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유물에 대한 스토리를 넣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다는 기왕에 있는 신화로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분명한 사실은 활과 화살을 넣는 고리트는 스키타이 유물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동과 서쪽 지역의 대부분 연구자(알렉세예프, 쿠바레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들이  화살촉을 연대 판단의 근거로 삼는 다는 점이다.(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살촉은 연대판단의 근거로 삼는 예가 왕왕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타르기타우스가 고리트를 차고 다녔다는 문구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상징하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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