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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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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인 파지릭 유적은 192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발굴은 1947년부터 이다. 하지만 발굴은 1850년에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 ‘제국고고학위원회’를 만들어서 흑해북쪽의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1929년은 러시아혁명 후로 레닌이 죽고 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고, 스탈린이 집권했던 시점이다. 스탈린 집권기간 동안에 파지릭 유적은 발굴되었다. 스탈린은 사람을 아주 많이 죽인 지도자이다. 레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권력을 잡은 수단은 등 뒤에서 칼을 꼽는 것이다. 인간백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싸워서 이겼지만, 자국민이 너무 많이 죽어서 그게 이긴 것일까 하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러시아인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러시아인 3인중에 한명이다(2008년 필자가 유학당시, 러시아 국영tv 방송인 ‘러시아(РОССИЯ)’에서 했던 조사였는데, 아침마다 위대한 러시아의 위대함을 알리는 역사적 유적과 인물을 꼽아서 보여주었다. 아침마다 보면서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하고 되는 걸 경험했다. 아직도 스탈린이라니..이러면서. 복잡한 감정이었다.) 독일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기념일은 2차대전 종전일이 아니라 독일과 승전일인 5월 9일이다. 스탈린은 현대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이 부분이야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일 테니...(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소련 혹은 러시아에 대한 인물의 이미지는 전부 미국언론을 통해서 알려져서, 미국입장에서 알려진 이미지이다. 실제 그 나라 감정과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스탈린 집권기에 알타이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이상한 감정이 문득 든다.

 

2500년 전 유적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현대사로 넘어 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한 유적은 이미 도굴당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말 10마리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고 필자가 공개했다.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여러 마리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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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은 늘 앞에 붙는 수식어가 ‘황금’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여드린 유물은 거의 대부분 나무장식이었다. 그렇다면 황금은 어디에?

드문드문 말씀드렸지만 금박은 쉽게 찢어져서 벗겨진채로 많이 발견된다. 특히 1호분에는 금박이 많이 발견되었던지, 그 부분에 대해서 벗겨진 금박종이가 많다는 내용도 별도로 적어 놓았다.

여러분의 의심을 약간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서 4호분에서 가장 금박이 많이 남은 유물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유물은 말의 얼굴에 달렸던 굴레장식이다. 파지릭유적의 1호분에서 4번째 말의 굴레장식이라고 분류된 말이다. 비교적 많은 금박이 남아 있다(그림 1). (알타이에도 황금덩어리로 만든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있다. 앞으로 소개할 예정임...)

 

 

그림1. 파지릭 유적 1호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

 

굴레장식에 관통하는 가죽줄은 뺨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가죽띠 2줄이고, 코로 돌아가는 부분에도 굴레장식이 부착되었다. 굴레장식은 산양머리와 팔메트 문양이다. 산양머리에는 가죽뿔이 붙어 있다. (그런데 가죽뿔이 빠진 왼쪽(우리가 볼때)의 굴레장식은 필자가 보기에는 새모양으로도 보인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다.)

 뺨으로 돌아가는 굴레는 2줄로 재갈멈치로 연결된다. 재갈멈치는 끝 부분에만 동물문양이 붙어 있는 유물과는 달리 재갈멈치가 통째로 산양을 표현했다. 앞다리는 몸 아래로 당기고, 뒷다리는 뒤로 뻗어서 몸을 수평으로 표현해서 산양은 뛰는 모습인지, 나는 모습인지를 표현했다. 재갈멈치가 대체로 막대기모양인데, 이 부분에 동물을 통째로 표현한다고 산양의 무릎을 꿇은 모양으로 표현하면, 다시 말해서 산양 몸을 수평으로 만들지 않으면 기능적인 부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세의 굽동물의 표현은 사슴돌에 이미 있다. 있지만 그것을 재갈멈치에 사용하는 것은 다른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유물의 이마장식은 물방울 모양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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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1929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1호 무덤 주인공은 발굴 이전에 이미 도굴로 인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없다. 도굴은 교묘하게 이루어져서 나무로 된 무덤방의 안쪽과 무덤방의 천장에 구멍을 남겨놓아서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주인공도 통째로 무덤에서 꺼내갔다.

 

대신에 무덤방 밖의 말 10마리는 그대로 남겨 놓았다. 파지릭 1호의 말은 10마리 모두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말을 부리는데 필수요소인 재갈과 고삐 외에도 각 종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굴레장식과 안장 뿐만 아니라 말의 가면까지 확인된다. 또한 나무목제장식을 덮었던 수많은 금박들이 출토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대형고분이 5기인데, 그 중에서 말 가면이 확인된 무덤은 2호, 5호 외에 1호가 있다. 2호와 5호에서는 1마리분만 확인되었으나, 1호에서는 2마리 분의 말 가면이 확인되었다(이미 포스팅 되었음). 두 무덤 모두 남녀가 한 통나무관에 들어가 있었고, 미라처리된 것이다. 말 마스크가 있다고 해서 1호무덤에도 미라가 들어있었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형고분이고 말의 마스크가 모든 무덤에서 확인되지 않다는 점에서 1호 무덤의 주인공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정정도는 할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지릭 1호에서는 같은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말의 굴레장식이 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사람얼굴모양의 장식이 달린 것이다. 장식은 5개 달렸지만, 4인의 얼굴이다. 눈, 입, 코, 광대뼈모양이 다른 4명이 나무에 조각되었다. 아마도 1호무덤 주인공과 관련이 있을 듯 싶다(파지릭 1호에 제일 첫 번째 포스팅에서 찾아보시면 된다).

 

뿐만 아니라 가죽조각으로 사람얼굴이 표현된 유물도 출토되었다(그림 1-7). 이 사람의 머리 정수리에는 커다른 뿔 모양 혹은 나무모습의 장식이 연결되어 있다. 그 옆에는 동물의 귀인지, 나뭇잎인지 모를 장식도 붙어 있다. 이 유물의 용도 등은 확정할 수 없으나, 어딘가에 붙였을 것이다.

 

 

그림 1. 파지릭 1호출토 가죽아플리케, 사람얼굴모습(7)

 

파지릭 1호의 사람얼굴장식을 달고 있는 말을 상상해보면, 말 얼굴에 사람얼굴이 붙어 있는 모습인데, 반 대의 정황이 확인된 적이 있다.

 

파지릭 5호에서 얼굴은 사람인데, 머리에 사슴뿔이 달려 있고, 몸은 사슴인 표현이다(이미 포스팅했음). 이는 5호의 펠트로 제작된 벽걸이에서 확인되었다. 묘사된 동물이 말은 아니지만 사람과 동물이 같은 장면으로 묘사하고자 했다는 점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말(그림 2) 가운데 마스크가 있는 5번째 말을 탄 사람을 상상해 보자. 내가 말을 타지 않고, 그냥 아래에서 서 있고, 이 말을 탄 사람을 쳐다본다면, 나는 사람보다는 말에 더 눈길이 갔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말이 너무 화려해서 그 화려함을 찬찬히 쳐다봤을 것이다. 말은 이미 그리핀처럼 보였을 것(이 부분에 대한 포스팅은 이미 있음)이고 이게 말인가 상상의 그리핀이 실제로 살아왔나 하며 몇 번이나 쳐다보았을 것이기때문이다.

 

말을 화려하게 꾸민 이유는 이런 효과를 말 탄 이가 누리도록 한 게 아닐까?

되게 먼가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명품으로 몸을 휘감는 이유랑 비슷한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동물처럼 보이는 것도 동물이 사람처럼 보이는 그런 효과도 더해졌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보여주는 유물이 얼굴장식이 달린 말의 굴레와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되는 사람을 얼굴 빼고 동물로 표현한 펠트조각에서 엿볼 수 있다. ....... 신화?

 

 

그림 2.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말의 복원도, 1991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스키타이 황금 전 도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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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께 매장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말은 동물문양의 장식판들을 얼굴에 붙이고 매장되었다. 장식판은 말의 굴레에 달려 있던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동물문양장식은 크게 세 종의 동물이 있고, 그 외에 깍두기 같은 존재가 있는데, 상상의 동물과 실제 동물이 있다. 굽동물과 맹수, 맹금류가 주요하고, 그리핀은 조작된 동물이다. 굽동물이지만 초식이 아니라 잡식인 멧돼지도 초기 스키타이 문화부터 보인다.

 

그 외에 보이는 유물이 사자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사자가 살지 않는다. 그러나 사자가 종종 등장한다. 파지릭 1호분에도 무덤방의 벽 위에서 출토되었다. 펠트로 된 조각인데, 흰색 바탕의 펠트 위에 푸른색과 붉은색 사자머리 5개가 교차되었다. 펠트 가장자리에는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삼각형 장식이 상하에 부착되었다. 이 장식의 펠트, 도안, 스타일등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다. 그러나 문양 모티브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에서 자주 확인되는 요소이다. 같은 유적인 파지릭 2호분과 울란드릭-IV유적의 3호분에서도 확인된다(그림1).

 

 

 

그림 1.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 1호에서 출토되는 펠트제 벽걸이 장식. 무덤방 벽에 걸린채로 출토되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에서 확인되는 사자 문양은 그리핀 모티브를 기반으로 하는데, 실제사자에는 없는 부자연스럽게 긴 귀와 갈기 끝이 말린 표현은 기원전 6~4세기의 아케메니드 유물과 유사하다(그림 2). 수사에 있는 아파다나의 동쪽 벽에 부착된 벽돌에 그려진 그림이다(그림). 비슷한 유물이 금속제로도 있었던 것이 확인되는데(그림 3), 이런 유물을 보고 시베리아에서 모티브를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이란의 남서지역인 Susa에 위치한 페르시아 아파나스 궁전의 동쪽 벽에 그려진 사자머리.

 

그림 3.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아케메네스 왕조의 사자머리, 길이 5.1cm, 너비 6cm

 

파지릭 1호분의 사자는 입술주변과 이빨은 늑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시베리아에 맞게 바꾸어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시아의 모티브가 시베리아까지 넘어오게 된 것은 사자 달린 금속펜던트를 시베리아 스키타이 사람들이 보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예를 들면 페르시아인이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인지, 스키타이 사람이 그쪽에 가서 보고 여기와서 만든 것인지 등)은 알 수 없지만, 그 지역과의 관련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은 시베리아에서 확인되는 사자머리는 호랑이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던 동물이고,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문양요소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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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서는 그리핀 외에도 수탉문양장식이 여러 곳에 부착된다. 파지릭 유적의 1호분에서는 통나무의 관 외부에 장식되지만, 파지릭 2호분에서는 무덤 방 내에 놓아두었던 토기의 외벽에 수탉이 가죽조각으로 부착되어 있다(그림 1). 두 마리 인데, 전체적으로 모양은 같지만, 벼슬의 높이는 차이가 있다.

 

앞 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토기(그림 2)에도 수탉 그림이 부착되었다.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투르군타스 고분(그림 3)과 타산타-2 유적 2호분에서도 수탉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되었다.

 

동아시아의 유적에서는 토기는 매우 흔한 유물이지만, 이 지역 시베리아에서는 토기가 발생되었다고 하는 신석기시대에도 토기는 흔한 유물이 아니다(김재윤 2019). 그 이유는 유목생활을 하면서 만들기도 편하지 않은 토기를 고분에 묻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토기가 가장 기본적인 고고학문화를 이해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토기는 있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무덤 내부에 부장된 토기의 기형과 문양이 무덤의 상부인 봉분(무덤을 덮은 흙)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차이가 크다(루덴코 1960).

 

토기는 장례용으로 만들고, 가죽장식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는 대체로 1점만 부장되지만 예외적으로 2점이 부장된 유적이 있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얼음공주의 무덤이다. 또 바샤다르 1유적에서도 2점이 출토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토기는 그릇 생김새가 대체로 비슷하다(그림4, 그림 5). 목이 길고 토기의 입술부가 밖으로 벌어진다.

 

 

그림 1.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가죽 아플리케 장식, 토기에 부착되었음.

 

 

그림 2. 아크 알라하 3 유적(얼음공주)에서 출토된 토기와 부착되었던 아플리케 장식

 

 

그림 3. 쿠투르군타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아플리케 장식. 쿠투르군타스 유적은 아크 알라하 1, 아크 알라하 3유적 등과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아크 알라하 강의 하류에서 확인되었고 5기의 무덤이 있다. 해발고도 2090m에 있는 유적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원형 고리는 가죽으로 만든 토기 받침대이다. 베르흐 칼쥔 2유적 출토품.

 

 

그림 4.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필자촬영)

 

그림 5.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 2(필자촬영)

 

 

동아시아에서 토기는 일상용기였으나, 이 지역에서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유물이다.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던 것이다. 나무그릇이나 뿔그릇이 더 흔했다. 나무그릇, 뿔 그릇은 매우 알뜰하게 사용되었는데, 수선한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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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인간이 주인공인지, 말이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말은 화려하게 치장된 채로 묻혔다. 동시의 같은 문화인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는데, 파지릭 유적에서 말은 좀 더 화려하다. 말을 부리는데 필수인 재갈과, 재갈멈치, 고삐 등은 기본옵션이지만, 안장과 안장덮개는 모든 말에 착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지릭 유적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말의 얼굴을 가리는 화려한 마스크가 발견된다. 파지릭 2호분과 5호분에는 1마리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1호분에는 2마리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20/03/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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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분에서 5번말과 10번 말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말과 쓰지 않은 말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여러 마리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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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5번 말은 그리핀의 날개를 귀 사이에 붙이고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의 목에는 가죽과 펠트로 만들어진 갈기가 표현되어 있다. 이 갈기에는 가죽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는데, 그리핀 4마리이다(그림 1).

 

 

그림 1. 파지릭 1호분에서 출토된 5번 말의 마스크와 갈기, 굴레

 

 

말의 등에는 가죽 두 판을 붙여서 그 안을 사슴털로 채워 넣어 만들었다(그림 2). 안장은 배쪽으로 끈을 돌려 고정시키고, 앞 가슴으로도 연결시켜 고정된다. 연결 시킨 부위에는 가죽으로 된 염소머리(그림 1-3)가 붙어 있었고, 앞 가슴에도 그리핀이 날개를 편 채 붙어 있었다(그림 1-1,4). 안장에는 가죽으로 된 아플리케 장식이 있고, 큰뿔 사슴을 공격하는 호랑이가 묘사되어 있다. 덮개의 가장자리에는 물고기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는데, 적마의 꼬리털이다. 물고기에는 날개가 붙어 있어서 역시 추상화된 표현이다.

 

 

말꼬리는 가죽케이스(길이 65cm, 너비 3.8cm)로 싸져있었다. 가죽케이스 끝에는 푸른 털과 적마의 털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2-1). 두 개의 가죽조각을 중간을 연결해서 이어 붙인 것인데, 두 종류의 색깔을 사용했다. 가운데 소용돌이 모양의 가죽 아플리케도 두 종류의 색깔을 이용했다.

 

그림 2. 파지릭 1호분에서 출토된 5번 말의 안장과 꼬리

 

 

말의 마스크 안에는 굴레장식이 드러난다. 말 안장에 연결된 염소와 같은 모양의 장식이 연결부위마다 붙어 있는데, 6섯마리이다. 재갈멈치의 끝은 팔메트 문양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넝쿨 식물이 표현되어 있다(그림 1).

이 말의 굴레장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말의 굴레에 붙은 염소장식 사이에는 다른 요소는 확인되지 않는다.

 

반면에 마스크가 없는 8번 말의 굴레장식을 보자. 9개의 장식판이 달려 있었다(8개만 남아 있음). 그리핀은 5마리이다. 독수리 모양의 그리핀으로 코등에 장식하는 곳에 한 마리는 날개를 피고 갈리진 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럼 4마리는 어디에?

 

자세히 관찰하면 코등과 말 귀로 연결되는 ‘T’자 부위에는 구멍이 하나 있고, 그 아래에 붙은 장식판은 옆에 붙은 염소머리와 다르다. 실제로 코등에 붙은 날개표현과 같다. 즉 이곳에도 그리핀이 있었다(그림 4-1). 대칭되게 있었음으로 반대쪽에도 한 마리 더 있었을 것인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오른쪽 귀 아래에 남이 있는 장식판도 ‘T’자부위에 붙은 것과 같은 표현이다. 실제로 조각난 채로 확인되었다(그림 4-2). 그렇다면 반대편이도 한 점 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왼쪽편에도 염소머리 위쪽에 뭍은 장식은 염소머리와는 다르고 날개만 남아 있는 형태이다. 즉 이 말의 굴레 장식판은 귀 아래 두 단은 그리핀, 콧 등에도 그리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의 굴레 장식은 청동제 제갈과 고삐가 달린 채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기도 하다. 재갈멈치에도 양쪽에 그리핀이 표현되었다. 그런데 왼쪽의 그리핀은 재갈멈치에 달린 그리핀과 얼굴이 다르다. 부러져서 다른 것으로 수선했다. 그리핀에는 귀 자리에 구멍이 있는데, 가죽 귀가 원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8번 말의 굴레,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의 갈기에는 금박이 약간 남아 있다. 원래는 전체를 금박으로 입혔을 것이다. 실제로 금박이 많이 붙은채 있는 유물도 있다. 

 

그림 4.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8번 말의 장식 중 일부, 3,4는 그림 3의 재갈멈치

 

마스크를 쓴 말은 말의 굴레에 그리핀 장식이 없다. 말 자체가 그리핀으로 형상화 되었다. 그리핀의 날개가 달린 마스크, 말의 갈기 등이 그렇게 표현되었다. 알타이의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대부분 독수리 목에 반드시 말의 갈기를 표현한다. 파지릭 5호의 말은 거대한 그리핀으로 보이도록 만들어 진 것이다.

 

반면에 마스크가 없는 말은 5개의 그리핀을 얼굴에 붙이고, 재갈멈치에도 양쪽으로 그리핀을 표현했다.

 

두 마리 말을 비교해 보니 더 명확해 지는 것 같다. 말을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혹은 말이 그리핀 임을 표시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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