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는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문화를 멸망하고 사르마트 문화가 새로이 들어온 것으로 기록했지만 물질문화 상으로는 여러모로 두 문화는 연속적이다. 물론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와 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가 완전히 같지않다.
연속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유물의 구성이나 장식적인 요소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물문양장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에 비해서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장식은 형이상학?적이다.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장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주제 들이 많다.
예를 들면 머리는 말인데 몸통이 길어진 것과 같은 동물인데, ‘용(龍)’이라고 여겨진다. 러시아 및 유럽의 연구자들도 이렇게 이상한 동물을 그리핀 혹은 용이라고 부른다. 더 동쪽에서 발견되면 용이라고 하고, 그리스적인 주제와 혹은 서쪽에서 발견되면 그리핀이라고 하는 것 같다. 아니면 혼용해서 쓴다.
청동솥도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물건이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되는 이 유물은 기원전 4세기 이후 서쪽의 사르마트 문화나 동쪽의 흉노문화에서도 여전히 사용된다. 물론 사용방법과 그 모습은 변화되었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장식, 1세기 사도브이 유적, 돈강 하류의 노보체르카르크 시
사르마트 문화에서 나오는 황금 관(황금장식이 붙은 모자 포함)도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있어왔던 의복장식 중에 하나이다.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황금으로 된 유물에 유색의 돌을 감입하는 제작방법이 새롭게 나오는데, 호흘라치 유적의 관은 이를 대표한다. 호흘라치 유적과 같은 주제의 장식이 코비야코프스키 유적과 우스티-라빈스카야 유적에서도 나왔으나, 유기물질로 된 모자에 붙이는 용도이기 때문에 이 유적의 유물에는 유색의 돌을 붙이지는 않았다.
자세츠카야(2011)는 호흘라치 관에 감입된 유색의 돌은 유목민족의 특징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붉은 빛이라도 하나의 돌을 사용하지 않고 톤이 다른 붉은 색 돌을 사용했고, 녹색도 마찬가지이다. 이 관을 만든 장인은 그리스 문화 뿐만 아니라 사르마트 문화도 매우 잘 이해하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 관을 쓴 사람이 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를 대표하며, 관의 주인공의 취향과 화려함이 그대로 녹아서 누구라도 그녀를 알아 볼 수 있도록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림 2.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유적 주인공 복원, 1세기, 돈강 하류의 노보체르카르크 시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아무나 이 관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의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과 각배를 연구한 막시모바(1979)도 이 관을 만든이는 그리스 문화(헬레니즘)과 유목문화를 모두 잘 이해한 사람만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자세츠카야와 막시모바는 이 관을 만든 사람을 단순히 어떤 문화의 장인이라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공방부터, 시리아 혹은 파르티아에서도 이러한 작품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관에 들어 있는 여러 관념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4세기 훈족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주제로 보아서 유목민의 특징을 잇고 있다고 결론내렸다(자세츠카야 2011).
참고문헌
Максимова М. И. Артюховский курган. Л. 1979(막시모바 1979, 아르튜호프 쿠르간)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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