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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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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3세기 몽골의 울란곰 유적에 묻힌 사람들은 아니 그 이전, 청동기시대부터 몽골 사람들은 사슴 숭배가 가장 먼저 생겨났고 그 뒤로 말 등 동물을 숭배했고, 자신의 조상도 경배했다. 사람 뿐만 아니라 하늘, 태양, 산도 숭배해서 자연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조상에 대한 숭배 사상은 고대 투르크 시대까지 남아 있었고 몽고인들의 “성스러운 이야기: 聖火”가 만들어지는데도 어떤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노보고르도바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심지어는 특정 인물의 이름까지도 주민에서 주민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몽골에 수천년간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조상 숭배의 흔적은 오랫동안 전해지는데, 비석의 비문과 몽고인의 서사시, 몽골을 처음 방문한 여행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청천(靑天)’과 땅의 여신인 ‘에뚜겐’ 등이 그러하다. ‘에뚜겐’은 여조상의 모습인데, 인간에게 몸을 주는 모든 선과 악의 시작의 화신이다. ‘청천’은 영혼을 주는 존재이다.

 

인간 숭배의 극대화는 인간 신체 부위에도 의미를 두는 행위이다. 궁수의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장사(壯士)를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지손가락을 잘라야만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활 쏟을 때 가장 중요 부위가 엄지손가락이기 때문이다. 몽골의 서사시에도 장사의 영혼이 엄지손가락에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노보고르도바는 몽골의 고대 무덤이 높은 산에 위치한 이유를 돌과 암석에게 조상의 영혼이 보존되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몽골의 서사시를 연구하는 하이씨그 교수의 연구를 참고한 것인데, 석기시대부터 발생한 돌, 암석, 산에 대한 신화적 숭배가 수 세기에 걸쳐 몽골인에게 돌과 암석에 조상의 영혼이 살아 있다는 믿음이 보존되었고, 이것이 남아 있는 것이 영웅서사시라고 생각했다.

 

 

유라시아 초원문화의 물질 문화가 오랫동안 보존되는 특징은 정신적인 영역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물이 잘 생기기도 하지만 반면에 오래전에 유물도 잘 없어지지 않는 현상. 매우 진보적이면서, 반면에 매우 보수적이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주로 사용되고 신석기시대에는 지역에 따라 다르만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세석인 같은 유물이 이 지역에서는 금속기시대에도 발견된다. 골제도 마찬가지로 금속제와 거의 대등하게 사용된다. 또 인간형상물 중에 하나인 여성상도 모습을 달리하지만 오랫동안 유적에서 발견된다(김재윤 2021).

 

그림 1. 몽골 암각화가 그려진 산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토기, 목기, 청동제 솥 등이 무덤속에 부장되었다. 동 시대의 인접한 알타이에 비해서 토기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목이 긴 항아리모양(그림 1)의 토기는 주로 유제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울란곰 유적에서는 내부에서 고기가 발견되었다. 액체류를 보관하기도 했지만 고기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항아리 모양 외에도 목이 짧거나 없는 토기도 나오기 때문에(그림 2) 토기를 다양하게 사용했을 수 있다. 고기 덩어리가 발견된 33호의 청동솥은 그 용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그림 3).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토기, 유제품 보관 항아리(쿱신)

 

그림 2. 울람곰 유적의 토기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여러 유적에서는 목기로 가운데 손잡이가 한쪽으로 만 붙은 목제 그릇이 나오는데 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태가 온전치 않은 목제 그릇이 있기는 하지만 손잡이가 한 쪽으로 붙은 목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에 목제 쟁반은 낮은 굽이 있는 유물이 있고, 붉은 색 락커(옷칠)를 칠한 목기가 나온다고 보고되었다. 울란곰 북쪽의 투바 지역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목기의 사진이나 그림이 정확하지 않다.

 

그림 3. 울란곰 유적의 청동솥

 

스키타이시대 청동솥은 기원전 7세기 흑해 지역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에서도 나오지만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되는 물건이다. 크기와 형태가 달라서 그에 따라서 용도가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지리크 2호에서 나온 청동솥은 높이가 13.8cm정도로 매우 소형이고, 그 내부에 불에 달군 흔적이 있는 돌과 향료의 씨앗등이 나와서 일종의 향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르잔-2호의 청동솥 2점은 무덤방 바깥 무덤 구덩이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무덤방 축조시 제사를 지냈던 흔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도 벽을 파서 토기를 묻어두는 행위가 있는데 의례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울란곰 유적에서는 고기를 직접 요리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볼가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청동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분 청동솥

 

 

그림 5. 아르잔-2호의 청동솥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솥

 

 

스키타이시대 이후의 고고학 자료로 기원전 3세기 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흉노,  2세기선비 문화에서도 청동솥은 발견되고, 3세기 가야의 무덤인 대성동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청동솥(동복)이 출토된다(이미지 검색이 쉽다. 청동솥이라는 명칭 대신에 동복이라는 용어를 쓴다). 스키타이시대 이후의 청동솥은 매우 실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무덤부장용으로만 사용되었고 그 수도 빈번하지 않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의 기원전 5~3세기에 만들어진 울란곰 유적에서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유물이 있는데 흰색의 구슬로 반점이 있는 것이다(그림 1). 유적을 발굴한 노보고르도바는 이를 울란곰 북쪽에 위치한 투바지역에서 전해지는 여성관련 의식에서 사용된 여러 종류의 부적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이 유적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반점이 있는 구슬, 4호 출토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유적에서 발견되는 동물장식 자체가 일종의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해서 어른도 부적을 늘 지니고 다녔을 것이다. 물론 동물장식이 내포하는 의미를 특정 기호로서 본 연구자(페레보드치코바 )도 있지만 한 가지 용도로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의 염원을 담은 물건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다.

 

부엉이 머리가 패식에 중앙으로 향한채 표현되었는데, 큰 부리와 둥근 눈이 특징이다(그림 2). 조류 중에는 독수리로 목을 뒤로 돌린 자세도 발견되었다(그림3) 사슴은 청동장식(그림 4)과 골제 뿔장식(그림 5)에 표현되는데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 외에 이빨을 드러낸 낙타(그림 6)와 알 수 없는 동물장식(그림 7)이 있다. 그 외에도 굽동물로 추정되는 동물장식(그림 8)도 47호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림 2. 울란곰 37호 유적의 부엉이 머리 장식, 유물의 용도는 정확하게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 화살통의 장식으로 비슷한 형태의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아래 포스팅의  그림 1-6과 동일 기능의 유물로 추정. 평면형태와 단면형태, 크기를 참고할 수 있음.

 

 

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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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울란곰 유적의 독수리 장식

 

그림 4. 울란곰 유적의 사슴장식

 

그림 5. 울란곰 유적의 11호 골제 버클 장식, 사슴이 목을 돌린채 새겨져 있다.

 

그림 6. 울란곰 유적의 47호 낙타장식

 

그림 7. 울란곰 유적 출토품

 

울란곰 유적에서는 다양한 동물장식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잘 만들어졌지만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다른 도구의 부속품이다. 부속품이면서 남들에게 보여지도록 만든 것이다.

 

그림 7에 대한 설명은 노보고르도바는 러시아어판에서는 없었는데.... 1980년에 출간된 책도 썩 만족 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체적인 사진 덕분에 여러 생각이 든다. 특히 이빨을 드러낸 낙타(그림 6), 뿔이 화려한 사슴장식(그림4), 독수리장식(그림 3) 등은 울란곰 유적 보다 서쪽과 남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Nowgorodowa E. 1980 : Alte Kunst der Mongolei. Leipzig: E.A. Seemann Verlag. 1980. 280 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는 스키타이 문화권라는 거대한 연합 공동체가 존재했는데 그 중에서 몽골에서는 울란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란곰 유적의 이름을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마모노바는 동시대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울란곰 유적에서 어린아이의 수가 적은 편이라고 했다. 통나무관이나 돌널무덤에 혼자 묻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성인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흥미롭게도 16호에서는 남성 4인과 함께 어린아이가 매장된 경우도 발견되었다.

어린아이는 남쪽 모퉁이에서 확인되었다. II~V호 인골은 무릎을 굽힌 채 매장되었다. 그런데 II호 인골 머리 위에서는 말의 골반뼈가 발견되었다. 또 III호 인골의 다리 부근에 토기가 놓여 있었다. 이 무덤에서는 청동단검(그림 1-5), 투부(그림 1-4), 가죽주머니에 든 청동거울(그림 1-3), 청동단추(그림 1-1), 청동버클(그림 1-2) 등도 발견되었다.

 

16호(2.5×2.5m)는 앞에서 본 무덤과는 토기의 부장위치, 피장자의 구성도 다르지만 무덤구조도 다르다. 무덤의 바닥에 납작한 돌(판석)을 깐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나무방 무덤과 돌널 무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방 무덤은 바닥에 나무를 깐 것도 있지만 이 무덤과 같이 판석을 깐 것도 있다.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인데, 좀 더 살펴보아야 할 듯 하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16호 무덤과 출토유물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16호 무덤,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청동거울과 청동버클 장식은 다른 무덤과는 좀 다르다. 청동거울의 손잡이가 고리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인데(그림3), 16호분의 거울(그림 1-3)은 손잡이가 없다. 청동버클은 대부분 앞 부분이 둥근데(그림 4-4,5,6), 이 무덤에서는 방형(그림 1-2, 그림 5)이다.  동물 장식이 없는 무덤이다.

 유물 모양의 차이는 제작방법과 관련되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큰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시간차이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무덤구조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판석을 깐 나무방 무덤이 모두 그런 것인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 3. 울란곰 유적의 청동거울

 

그림 4. 울란곰 유적의 청동장신구

 

그림 5. 방형모양의 청동버클장식(가장 하단)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Nowgorodowa E. 1980 : Alte Kunst der Mongolei. Leipzig: E.A. Seemann Verlag. 1980. 280 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의 기원전 5~3세기의 울란곰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한 노보고르도바는 이 유적이 거대 고분이 축조되는 파지리크 유적과 비교해서 평등사회를 이루었다고 보았다. 이 유적에서는 어떤 특정 무덤에서 부(富)가 집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울란곰 유적에서는 머리에 창상을 입은 남성들이 많이 확인되고, 동 시대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어린아이의 수가 적게 나오는 점으로 보아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매우 빠르게 유적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울란곰 유적의 평등사회는 전쟁이라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하지만 어제 포스팅에서 살펴보았듯이, 파지리크 유적과 같이 어떤 특정 무덤을 중심으로 부가 비정상적으로 집약되는 현상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평등하다고 해도 47호 무덤과 같이 울란곰 유적의 다른 무덤과는 다른 유물 출토양상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완전한 평등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철저하게 타자가 바라보는 시각일 수도 있다. 자신은 산양이 조각된 청동거울이 있던지 없던지 크게 상관하지 않지만, 후대의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특정한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표현된 유물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둘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던 울란곰 유적은 파지리크 유적에 비해서는 대부분의 무덤이 비슷한 상태이다. 단지 나무방 무덤과 돌널무덤으로 구분되고, 전자에는 많은 사람이 부장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만 묻힌 경우도 있다.

 

노보고르도바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다는 그리스(파르마콥스키, 아르타모노프) 혹은 이란(아르타모노프, 첼레노바) 제작설을 일축하했다. 노보고르도바는 ‘현재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의견’이라고 한다. 필자도 예전에 포스팅한 바 있는데, 20세기 초에 생긴 그 설이 영미권에서 계속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노보고르도바는 ‘스키타이 문화’의 3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동물 스타일은 사슴돌에서 출발되었다고 보았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가면은 사슴을 흉내낸 것으로 사슴숭상에서 발전한 것이다.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숭배 중에 하나는 사슴숭배이고, 그 뒤로 생긴 것이 말 숭배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몽골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동물 스타일(양식)은 재지에서 살 고 있는 동물로, 고대 장인들이 보지 못한 그 지역에 살지 않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사자와 같은 동물이다. 몽골(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양식은 흑해북안의 유물에 비해서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황금재질로 제작된 것은 없지만, 모든 무덤에서 동물 스타일이 발견된다. 특히 흑해 지역과 비교할 때 특정 유물이 아닌 일상생활품에서 표현된다고 보았고, 이 점이 흑해 보다 폭넓게 대중에게 자리잡은 근거라고 생각했다.

 

노보고르도바는 몽골에 대한 대단한 애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동물 스타일이 일상생활용품에만 표현되었다는 점에서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예를 들면 청동검 끝에 달린 그리핀, 청동거울 등은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2021.04.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곰 유적] -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의 의례품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1건을 제외하고 대부분 손잡이가 붙은 형식인데, 역시 기원전 4세기 가량에 나타나는 유물이다. 그 1건은 꼭지가 달린 거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꼭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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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에서도 의례용품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용품에도 동물장식이 발현되는데, 청동솥이다.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에는 동물장식이 주조된 것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

 

하지만 필자도 전체적으로는 노보고르도바의 의견에 찬성한다. ‘동물 스타일’의 시작은 몽골의 청동기시대 사슴돌 및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발견되는 동물 스타일에서 일 수 있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아르잔-1을 발굴했던 그랴즈노프 등 수많은 러시아학자들의 생각이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Фармаковский Б.В. 1914, Архаический период в России. — MAP, №34.(파르모코프스키 1914, 러시아에서 (그리스)고대기)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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