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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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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4. 09:10 스키타이 동물장식

 

아르잔-2호의 남녀주인공 모자 장식은 사슴(그림 1, 2)과 말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남녀 모두 정수리 부분에 사슴을 장식하고 있다. 그 사슴의 자세는 서 있는자세이다.

 

 

그림 1. 아르잔-2호 남성 주인공 모자장식

 

그림 2. 아르잔-2호 여성 주인공 모자장식

 

두 남녀 주인공의 모자 장식에 있는 사슴의 의미가 무엇일까?

아직 확실치 않은(심증은 있지만 작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분은 말하지 않는다.

서 있는 자세의 사슴은 아르잔-2호에서 나온 석판에서도 암각화로 만날 수 있다.

 

고고학적인 자료로 말 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서 있는 사슴장식은 기원전 7세기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영역인 흑해부근의 자료들과 비교할 수 있다. 동유럽의 자료인 켈레르메스 유적의 사슴장식은 다리를 배 쪽으로 접어 넣은 앉아 있는 모습이다. 뿔은 한 방향으로 구름처럼 표현된 것은 같아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양 지역에도 차이가 있다.

 

페레보드치코바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중앙아시아, 남부시베리아~몽골)과 서(볼가 강~드네프르강 등 동유럽)에서 동물장식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특징을 아르잔-2호가 발굴되기 전에 이미 알아챘다. 아마도 1970년대 발굴된 아르잔-1호에서 서 있는 사슴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잔-1호의 사슴장식은 모자장식이나 단독의 유물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사슴돌에 새겨져서 확인되었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사슴장식

 

그림 4.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의 사슴돌

 

아르잔-1호의 사슴돌은 청동기시대의 것을 재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서 있는 사슴 자세가 스키타이 문양일 것이라는 논의는 부족했다.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사슴문양으로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모자장식과 암각화는 서 있는 사슴문양이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1호의 사슴돌도 스키타이 사슴돌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르잔-2호가 발굴되지 않았다면, 서 있는 사슴자세의 사슴문양은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사슴문양으로만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사슴돌 전통이 후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김재윤 2023). 물론 이 사실은 아르잔-2호 발굴되기 전에도 이미 페레보드치코바를 비롯한 동물문양 연구자들이 모두 지적하고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2. 10. 09:30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몽골 및 중국동북지역까지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이는 그간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시베리아가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로 주목된 것은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원형의 맹수장식 때문이다. 이 문양은 기원전 9세기 이후부터 스키타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과연 시베리아가 스키타이의 땅이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에 대해서 처음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이런 문구를 기록했다.

'그 나라(스키타이) 의 북쪽에는 계속해서 눈이 내린다... 이 대륙의 북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흑해북안의 올리비아에 살던 헤로도투스가 어떻게 이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흑해북안과는 다른 지역이다. 물론 그가 살던 기원전 4세기 전후의 기후상황도 살펴야 할 것이다.

 

시베리아는 드넓고 위도에 따라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기후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산림스텦지역과 초원스텦지역에 유적이 남아 있다. 시베리아에서 유적들이 발견되는 강은 오브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이 가장 큰 강이며, 이 세 개의 강이 체계의 근원이다. 이 강에서 뻗어져나간 지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리스 역사가는 ‘이 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많은 강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17세기에 러시아의 벌목꾼, 광부,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에 살던 사람은 목축, 수렵채집, 어로생활을 유지했다. 그만큼 자연환경이 풍족했기 떄문이다.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3600만명의 사람들이 지역의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수용소에 투옥되거나 내부 추방 또는 재정착을 위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즉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개척했다.

1989년 조사 당시에 26개의 민족집단이 거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곧 멸종된 운명이라고 여겨졌다. 이들의 수가 많이 준 이유는 질병 때문이다.

 

 

 

그림 1.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러시아 민족학박물관, 17세기~20세기 초반에 로마노프 왕조에서 보낸 사람들이 모은 각 민족의 자료는 이곳(러시아민족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림 2. 야생 순록 사냥을 하는 민족

 

 

 

헤로도투스(4-47)는 ‘그들(스키타이)의 나라는 편평하고 풀이 무성하며 물이 잘 흐르고 강이 흐른다’고 묘사했다.

 

산림스텦지역 이남은 초원스텦지역으로 사냥이나 목축에 완벽하게 적합하다.

스키타이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목축유목주의에 기초한 독특한 경제와 생활 방식을 발전시킨 것은 광대한 내륙아시아의 개방된 공간에서이다. 중앙아시아 서쪽에는 건조한 스텝지역, 신장 남부는 모래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고, 서쪽은 코카서스 산맥 및 흑해와 숲을 경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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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경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알타이의 높은 곳에서는 말을 변형시킨 동물문양이 발견된다(그림 1). 미라의 문신에게서 발견되는데, 살아 생전에도 문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말을 변형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흑해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이 시대에 변형동물은 대개 그리스 신화속의 장면이 표현된 유물에서 보인다. 그리스 사람들이 흑해지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 1.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전사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유물 가운데서 말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러나 스키타이 동물장식처럼 ‘양식화(스타일)화 되지 않았다(그림 2).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말 탄 전사가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말을 동물장식을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 1. 쿨-오바 유적의 말 탄 전사

 

말이 양식화 되어서 나타나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고, 알타이에서 가장 극대화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알타이 주변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기원전 5~4세기 유적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크게 변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말을 무덤에 부장하는 전통,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전통, 말을 변형시키 동물문양의 전통은 확실히 시베리아의 지역적 특징이다.

초원을 달리는 민족에게서 가장 중요한 동물은 말이었을 것이다.

왜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양식화 한 동물문양장식은 없을까?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와 이를 변형시킨 늑대는 많은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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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필자는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안장의 옆에 달린 장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려하게 꾸민다는 점에서는 일정정도 이해가 갔지만, 필요 없는 유물을 만들지 않는 알타이 사람들의 특징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 보다 이른 말 장식을 찾으면서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의 5호의 9번 말은 무덤의 가장 아래에 매장되었다. 이 말은 사슴뿔이 달린 가면(그림 1)까지 쓴 화려한 말이다. 필자는 이 말 장식은 살아 있는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꾸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말 가면

 

그림 2.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IX번 말 복원

 

그런데 그때는 머리만 집중했지만 전체적인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가면을 쓴 말의 안장에는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지게 장식을 붙였다. 펠트로 된 것인데, 주로 동물문양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장식은 변형된 말의 날개 표현일 수 있다. 말의 변형은 기원전 7세기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날개를 달면서 시작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말의 가면은 IX번 말에서만 발견되는데, 이 말의 안장장식이 길게 늘어진 것이다. 말의 안장 옆에 장식을 단 말들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늘어지지는 않는다. 비 실용적이기 때문이다(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길게 늘어진 의미심장한 말 안장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4)

 

그림 3.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의 말 안장

 

그림 4. 알타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말 안장장식

 

합성된 말은 알타이 미라의 문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몸통은 말이지만 얼굴은 독수리, 사슴뿔이 달려 있고, 그 끝에는 새머리가 달려 있는 동물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아래포스팅참고).

2022.03.05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고대 알타이에는 드넓은 스키타이 문화지역과는 좀 다른 점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물문양장식이다. 특히 문신을 한 미라는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드넓은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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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는 변형된 말 그림만 문신으로 남아 있어서 다른 미라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워진 머리 옆에 날개 표현도 남아 있는데 아마도 하나의 문양이었을 것이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의 남성전사

 

파지리크 5호의 남성과 여성미라는 변형된 말 문양이 문신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5호 남성미라의 오른쪽 손목 위에는 변형되지 않는 말과 호랑이가 문신으로 남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문신을 포함한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지역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기원전 4~3세기 흉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은 동물장식을 집안의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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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유라시아 초원의 철기시대인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매우 유행한다. 맹수, 맹금, 굽동물(사슴, 산양, 산염소) 등이 주요한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멧돼지 장식은 드물게 사용되었다.

 

초원을 누비고 다녔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말은 장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잘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시베리아에서는 말을 함께 부장하는 관습이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지속된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말을 함께 부장하는 관습이 있는 지역은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일부지역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함께 부장하는 유적이 몇몇 발견되지만, 특히 알타이 만큼 적극적으로 매장하지는 않았다.

알타이에서는 아주 큰 왕급무덤이라고 주장하는 바샤다르, 투엑타, 파지리크 유적에서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말이 부장되었다. 그리고 그 보다 높은 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유적보다는 말을 치장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에서 발견된 한 가족의 무덤이라고 여겨지는 일렬로 서 있는 무덤에서도 말은 함께 부장되었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아르잔-1호에서 석제로 만든 말 머리가 발견되었다. 이 말 장식은 거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것으로 스타일화 한 원형맹수장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말을 스키타이 동물장식들처럼 스타일화 한 것은 아르잔-2호(그림 2)에서 발견된다.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사용된 말 장식은 매우 소박한 날개가 달려 있고, 말의 갈귀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말의 갈귀는 아르잔-1호의 석제품(그림 1)에서는 없었다.

 

그림 1. 아르잔-1호의 말 머리

 

그림 2. 아르잔-2호의 말 장식

 

말의 갈귀 표현은 알타이에서 발견된 무덤인 쿠투르군타스 유적에서 목제(그림 3)로 된 것이 출토된 적이 있다. (유적은 아크 알라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그림 3. 쿠투르쿤타스 유적의 목제 말 장식

 

필자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발 2500M 유적(아크 알라하-1,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은 흔히들 독수리 머리 그리핀(그림 3)이라고 불리는 장식이 많이 달려 있다. 하지만 이 장식에는 단순히 독수리가 아니다.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목의 길이가 길다. 필자는 말의 목과 갈귀에 독수리 머리를 붙였다고 생각한다. 설령 목이 말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갈귀는 말의 것이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말 목제 굴레장식

 

굽동물(사슴, 산양, 산염소)은 대부분 뿔을 달고 있지만 대신에 말은 갈귀를 달고 있어서 아마도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소중한 자산이었다는 점에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가운데 변형 호랑이가 말을 물어 뜯고 있는 장면(아래 포스팅참고)은 아이러니하다. 호랑이의 뿔을 첨가시키는 것은 페르시아 계통의 영향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래포스팅참고). 이 장식에서 몸을 S자로 꼬고 있는 말장식은 틀림 없이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연결된다. 하지만 호랑이와 말이 대치되고 있는 이 상황은 시베리아적인 아이덴티티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의문스럽다.

 

2022.02.12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나르는 호랑이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나르는 호랑이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문화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대유행했다. 시베리아에서 기원전 9세기경부터 청동으로 만든 유물을 쓰기 시작한 이후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유라시아 지역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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