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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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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 중 곶 성은 부채꼴 모양의 궁형성, ㄷ자형, 부정형으로 구분된다. 



(3) 폐쇄형 성곽

성벽이 사방으로 다 돌아가는 형태인데 고르노레첸스코예-3, 우스티-일모, 소욘스코예 성지등이 해당된다. 이 성지의 평면형태는 2개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방형과 다각형 평면형태이다.

 

A. 방형 성곽

사각형 평면형태는 우스티-일모, 소욘스코예, 성곽이 해당되는데, 평면크기는 소형으로 단구대나 혹은 언덕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대체적으로 성벽의 모서리가 4개인 사각형 평면형태다

(우스티 일모 성곽의 평면도 모습은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http://케마 강 유역의 성곽 1)

평면형태는 단순하고, 내성, 보루와 장대 등이 없다. 성벽에는 치가 없으며 우스티 일모 성지에서는 좀 더 방어가 필요한 곳에는 부가성과 해자를 설치하였는데, 문지에는 특히 적대를 설치하였다. 토석 혼축성벽으로 부분적으로에는 돌을 비스듬하게 쌓았다.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축조되었다. 지표조사된 유물로 판단컨대 폐쇄형 방형 성곽은 발해의 늦은 시기로 9세기를 올라가지 못하며, 발해이후의 가능성도 있다.

기원. 평지의 방형성을 새로운 입지조건 위에서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B. 다각형 성곽.

고르노레첸스코예-3 성지로 문지가 없다.(http://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성곽: 고르노레첸스크-3 유적)

평면형태는 단순한데, 육안으로는 어떤 시설물도 확인되지 않는다. 평면형태는 오각형이다.

성벽의 축조방법. 치가 없는 석성으로 높이는 0.5m정도이다. 용도는 제르칼나야 강 유역을 통제하는 보호 감시용이다. 문화의 특징과 연대는 유물이 부재하기 때문에 평면형태로 밖에 판단할 수 없는데 발해의 평지성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곶 성은 모두 세 개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궁형 성, ‘자형 성곽, 폐쇄형 성곽 등이다. 연해주 북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은 궁형성이다. 이곳에는 처음으로 기원전 10세기 쯤에 청동기시대의 리도프카 문화인이 살았는데, 그들을 원주민으로 부를 수 있다. 거의 변화하지 않은 형태로 중세시대 초기의 퉁구-만주족(말갈)도 유사한 성곽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곶 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발달시킨 것은 동하국의 여진족인데, 험준한 곳을 그대로 이용하는 입지선정에 중국 건축 기술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곶 성 성곽의 형식에서 새로운 것으로 따로 분리했, 평지성이나 산지성과는 다른 입지에 세워진 성으로 볼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 중 곶 성은 부채꼴 모양의 궁형성, ㄷ자형, 부정형으로 구분된다.



(2) ‘자형 성곽


자형 성곽은 방어시스템으로 축조되었는데, 현재는 모노마호프스코예 성지 하나만이 해당된다. 이 유적의 평면적은 7000이다.(http://루드나야 강 유역: 모노마호보스코예 성곽)

. 평면형태. 단순한데, 내성과 보루, 장대시설 등이 없다. 성안에서는 온돌이 설치된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 성벽의 축조방법. 치가 없는 성벽으로 지형적인 영향으로 성벽의 평면형태는 매우 복잡하다. 한쪽은 편평하고 다른 쪽은 지형에 따라서 울룩불룩하다. 절벽과 맞닿은 부분에는 성벽이 없다. 성벽에서 위험한 부분에는 부가성벽과 해자를 설치하였다. 성의 높이는 부분마다 다른데 최대 높이는 1.5m이다.

성지의 문은 적대시설이 있고 길로 바로 통하게 되어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혼합해서 축조했는데, 어떤 부분에는 돌을 경사지게 쌓은 부분도 있는데, 특히 모서리가 그렇다.

. 연대. 모노마소프스코예 성지를 연속발굴 결과 이 유적이 발해문화의 마지막 시기로 9~10세기에 해당하거나 혹은 더 발해 이후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 기원. 성곽은 성은 곶 위에 위치하고 부가성과 그 곳에 문이 설치된 자형 평면형태 방어시스템으로 보아서 그 기원은 혼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평지의 방형성은 말갈인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자연적인 방어기능을 갖는 곶에 성을 축조한 입지로 선정 한 것은 원주민의 전통이다. 그러나 성벽의 모서리를 직각으로 설정하는 것,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 돌을 경사지게 쌓는 것, 문지에 적대(적대)를 설치하는 것은 발해 전통으로 이 지역에 새롭게 들어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성지가 들어설 때는 국가가 평온하지 못하고 전운이 감 돌때였을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3) 곶 성



설상으로 뻗은 곶 위에 위치하는데, 청동기시대(리도프카 문화와 다른 문화) 20곳과 말갈과 발해문화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평면형태에 따라서 궁형성, ‘자형 성, 부정형 폐쇄형 성곽으로 구분된다.

  

그림. 우스티-벨렘베 3중 토석성(곶 성중 궁형성에 해당된다)



(1) 궁형 성

이 형식의 성지는 자연의 입지에 따라서 성벽의 평면형태가 궁형모양이다.

이 형식은 곶 성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모두 16개의 성지가 해당된다. 고르노레첸스코예-1, 고르노레첸스코예-2,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미스 알렉산드라, 우툐스노예,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미스 테플리이, 쿠즈네프스코예, 오아시스, 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페야, 에딘킨스코예, 우스티-벨렘베 성곽 등이다.

. 평면형태. 성은 장대, 보루와 내성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이다. 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제르칼노예와 같이 자연적 단구대 위에 취락을 경계 짓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성의 평면형태는 개방형으로 궁형인데 모두 가 다르다. 성지 가운데 가장 큰 곳은 미스 스트라시느이(28,000)이고 가장 작은 곳은 우스티 제르칼노예(15,000) 유적이다.

. 성벽의 축조방법. 이 형식의 성은 매우 단순한데 성벽은 다음과 같이 축조된다.


토성벽(쿠즈네쵸프스코예 성벽)

토석혼축벽(미스 스트라시느이, 미스 테플리이, 쿠댜, 우툐스노예, 케므코예-스칼리스토예,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돌로 비스듬히 쌓고 흙으로 채우는 성벽(고르노레첸스코예-1)

토석 혼축벽이 기본이고, 돌을 깔아 놓은 곳이 있는 성(우스티-벨림베)

석성(데두스킨 클류치)

성벽의 높이는 0.3~1.5~2m가량이다.

성벽에는 해자가 있는데, 성벽을 쌓을 때 이 해자로부터 흙을 퍼 올렸다. 해자의 깊이는 1m를 넘지 않는다.

 

곶 성의 문지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순 절개면(미스 스트라시노예)

부가성에 설치된 문지(미스 테플리이, 쿠즈네쵸프스코예)

문지가 없는 것

 

. 용도. 모든 성은 취락용이고 취락을 경계하며 방어하는 역할이다.

. 특징과 연대. 평면형태 궁형의 곶 성은 최소한 세 개의 고고문화와 관련이 있고 청동기시대 및 중세시대와 관련이 있다.

A. 청동기시대의 성. 모두 9개가 해당된다(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켐스코예-스칼리스토예, 미스 알렉산드라, 우툐스노예,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스트라시노예, 우스티-벨렘베 등이다).

강의 하류와 해안가에 위치한다. 시굴이나 지표조사에서 출토된 고고유물은 대부분 리도프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며, 탄소연대에 따라서 기원전 10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미스 스트라시느이, 우스티-제르칼노예, 두브로빈스코예, 쿠댜, 우스티-벨림베 유적).

우툐스노예 성터에서는

지두문이 찍힌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아무르 강 하류의 초기 철기시대 문화인 우릴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서 청동기시대 말기에는 아주 복잡한 상황이었다. 리도프카 인은 내륙이 주요 거주지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강 하류와 바다의 항구 등에 성곽을 지은 것은 적으로부터 막기 위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해안가에 살던 사람은 얀콥스키 인인데, 많은 리도프카 문화에서 그들의 흔적이 확인된다(블라가다트노예-3, 쿠날레이스코예 성지의 5~7번 유형 등)

또한 아무르강 하류의 우릴문화가 확인되는 것은 이 지역까지 아무르 내륙인이 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이주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그들의 고향인들은 짓지 않았던 성지를 축조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아무르강에서 우릴문화의 성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B. 중세시대의 성지.

연해주 동북지역에서 곶 성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말갈과 발해문화의 것이 있다.

말갈문화의 성곽 평면형태 궁형으로 강과 바다의 곶에 설치되는 된다(미스 테플리이, 쿠즈네쵸프스코예, 오아시스, 에딘킨스코예 성지).

유적의 입지는 강의 중류(쿠즈네쵸프스코예), 해안가 단구대(미스 테플리이, 오아시스, 예딘킨스코예 성지)인데, 이 곳은 방어나 보호가 필요한 교통로의 문지역할을 하던 곳이다.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말갈성곽으로 확인되었고, 성벽은 다른 어떤 돌을 섞지 않은 순수한 토성(쿠즈네쵸프스코예 성곽)과 이러한 성벽에 문지를 설치하는 성(미스 테프리이 미스, 쿠즈네쵸프스코예 성곽)이 있다.

성 내부에서 시굴조사 되거나 지표조사 된 말갈유물은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 중국 동북지방에서 확인되는 말갈문화의 것과 같다. 그 중에는 북한의 동북지역에서 확인되는 것도 있고 사할린과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출토되는 유물도 있다. 발해는 말갈족을 밑바탕으로 세운 국가로 9세기 까지 오랭캐를 현과 주로 편입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당연히 이러한 발해의 정치는 말갈족과 고아시아족 등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미스 테플르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블라고스로베노예-2(Благословенное-2, Blagoslovennoye-2), 쿠르쿠니하(Куркуниха, Kurkuniha), 툰젠(Тунжэнь,Tunjeni) 등에서 출토된 토기와 비슷하다. 이들 유적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 4~5세기에 해당된다. 이는 말갈문화의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황은 말갈인과 고아시아인 모두 이 유적을 이용했던 미스 테플리이 유적만이 유일하다.

제르칼나야 강 유역의 고르노레첸스코예-1과 고르노레첸스코예-2 유적은 발해시기의 곶 성에 해당된다. 고르노첸스코예-2 유적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분소에서 연속발굴을 하고 있고, 발해의 것으로 규명하였다. 이 두 성지는 소형(25004000)이고 장대, 보루와 내성 등이 없는 성지로 취락용으로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곶 성은 원주민(말갈인)의 축조기법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 말갈 성지의 존재는 그들이 9세기 어느 때 쯤 발해국가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판명할 수 있다.

중국 사서에 따르면 이러한 성곽은 축조시 지역 기술자나 혹은 군인 들이 지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중에서 가장 큰 주민 집단 마을이나 성을 주 혹은 현으로 불렀을 것이다(보로비요프 1975).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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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중에서 평지성은 방형, 다각형, 개방형으로 평면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3) 개방형 성곽



이 형식에 해당하는 유적은 소볼레프카 강 하류의 해안 단구대 위에 위치한 우스티-소볼레프스코예 유적(http://소볼레프카 강 유역의 성곽)만이 해당된다.

이러한 형식의 성은 주변이 절벽이어서 성벽을 모든 면에 돌릴 필요가 없어 직립평행하는 성벽이 몇 개 있는 모양이다.


. 평면형태. 내성과 보루, 장대 등이 없는 단순하다.

. 성벽의 축조방법-치와 문지가 없는 석성이다.

. 용도-취락의 방어용.

. 문화적 특징과 연대. 출토되는 유물은 말갈 트로이츠코예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7~8세기 보다 이르지 않다.


. 기원. 원래의 지역적인 특징과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성곽의 지형학적인 면은 중국과 발해의 전통으로 보인다. 성벽의 모양이 곶의 모양에 따라서 축조되었기 때문인데, 이와 같은 경우에 발해와 말갈 중에서 트로이키코예 유형과의 혼합된 양상으로 판단된다. 발해가 국가영역을 넓혀 갈 때 소볼레프카 강 유역의 일부지역에서 연해주 동북지역의 새로운 영역에서 지역민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평지성은 성곽의 자체적인 발달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사실을 함께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장 전통적인 형식은 방형성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발해의 것으로 8세기 초를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방형성에서 자체적으로 발달한 다각형 평지성은 방형성에서 두 모서리를 잘라낸 형태로 지형학적 입지와 방어기능 때문에 이런 모양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지형과 고고유물로 보아서 발해의 초기에는 아주 평화로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농경과 목축, 사냥, 어업 등을 행하였다. 연해주 북동지역의 방형 평지성의 존재는 이곳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발해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로 강의 중 하류역에 분포한다. 유물로 판단컨대, 연해주 북동지역에 존재하던 행정관청은 현정도 였을 것이다. 성의 크기나 내성의 존재 등으로 보아서 드지기토프스코예 성이 현의 행정관청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의 경계는 방형 평지성과 산성가운데서 고개에 위치한 성의 위치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제르칼나야, 루드나야, 드지기토프카, 브루실로프카, 말라야 케마 강 가에 위치하고 있다. 남서와 서쪽의 경계는 베누코보 고개로 들어가는 베뉴코프스코예 성지와 포드네베스노예 고개로 들어가는 포드네베스노예 성지가 있다.


동쪽의 경계는 동해로 바시코프스코예와 클류치 성지가 동해를 지키고 있다. 이 현의 남쪽 경계는 2개의 석성인 스미르코프 클류치와 자볼로트나야 성지가 있고, 평지성으로는 세레브랸카 강 유역 말라야 케마 성곽이 있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발해인과 트로이츠키 말갈인과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데, 곶 성이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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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동북지역에 위치한 성곽은 산지성, 평지성, 곶 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중에서 평지성은 방형, 다각형, 개방형으로 평면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2) 다각형 성곽



평지성 가운데 이 형식에 해당하는 유적은 켐스코예 성곽이 해당되는데, 동해로 들어가는 켐스코예 강 하류에 위치한다. 평면형태가 다각형인데, 좀 더 정확하게 하면, 방형 성지에서 두 모서리를 잘라낸 형태를 하고 있다.




 

. 내부형식- 단순한데 내성, 보루와 장대는 없다. 평면크기는 17,000이다.

. 축조방법- 치가 없는 단순한 구조인데, 성벽은 자갈돌로 높이 1~1.5m가량 세웠다. 문지는 2곳으로 성벽을 절개해서 만들었는데,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용도-다각형 성곽은 취락을 위해서 축조되었다.

 

. 기원과 연대- 유적에서 연대를 판단할 수 있는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대와 문화적 특징 혹은 소속 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단지 평면형태로 볼 때 발해의 평지성 일종으로 연해주 남부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아마도 다각형 평면형태는 중국 전통인 방형 평지성에서 기원했을 것인데, 이 성곽보다는 좀 더 늦은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9세기 보다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각형 평지성은 발해의 특징으로 생각되는데, 발해가 중국과는 다른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서 내부법을 만들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간에는 신생한 퉁구 만주국가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을 때인데, 말갈족의 후손들도 포함된다. 이 때는 평화로운 시기는 아니었고, 중국 사서에 남아 있듯이 발해가 중국에 사신을 몇 번에 걸쳐서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발해는 또한 거란족과 충돌이 있었을 때로 성지가 방형보다는 좀 더 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결과로 이런 평면형태 다각형의 성지가 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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