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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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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 해당되는 글 4

  1. 2021.05.24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변화는?
  2. 2021.05.23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사슴장식1
  3. 2021.05.22 흑해의 초기철기시대 동물장식
  4. 2021.05.21 흑해 스키타이 전사의 각배2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이 위치한 곳은 코카서스 산맥의 북부, 쿠반강 하류에 위치한다. 위치적으로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인접한 곳이다. 이 유적에서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기원전 5세기 경부터 기원전 4세기 쿠반 지역은 그리스의 지배도시가 있었던 곳은 아니다. (케르치 해협에 있는 님프 도시가 대표적인 그리스의 도시로 알려졌다.)

 

기원전 5~4세기경의 흑해지역에서 대량 확인되는 그리스 유물에 대해서 페레보드치코바도 매우 고민이 많았다. 그녀는 스키타이 지역에서 그리스 유물이 많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유물에 혼용되는 표현을 ‘변질’되었다고 했다. (소비에트와 그리스는 정치적 관계로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 유럽지역에 거주하던 소비에트 사람들은 그리스와 터키로 휴가를 떠났고, 그리스가 배경이 된 영화도 있을 만큼 좋은 관계였다. 그래서 그녀가 ‘변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치적 고려라기 보다는 스키타이 학자입장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원전 5세기와 기원전 4세기를 구분하고 기원전 4세기에 나타나는 현상을 기원전 5세기 유물에서 찾고자 했다. 이때 근거로 든 유물은 역시 사슴과 맹수장식으로 아크 메체티 유적과 주로프카 유적 출토 유물을 근거로 들었다. 기원전 7세기 유물에서부터 있었던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몸통이 면각으로 처리되는 점, 둥글게 처리된 눈 등은 주로프카 유물(그림 1, 그림2)에서도 있다.

 

그림 1. 주로프카 유적, 청동

 

그림 2. 주로프카 유적, 청동

 

그림 2의 유물은 세미브라트니예 유적(그림 3)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식민도시라고 불리는 님프(그림 4)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림 3. 세미브르타니예 유적, 청동

 

그림 4. 님프 유적, 청동

 

새로운 기법은 사슴 표현과 맹수표현에서도 확인된다. 사슴은 아크 메체티 유적에서는 전통적으로 능형(그림 5)으로 묘사되었지만 주로프카의 사슴(그림 1)은 좀 더 사실적이면서 털을 표현했다. 털을 표현하는 방법은 스키타이 지역에서는 없었던 방법으로 맹수상에서도 보인다. 맹수가 다리를 구부리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방법으로 주로프카 유적(그림 6)에서 발견된다.

 

그림 5. 아크 메체티 유적의 사슴

 

그림 6. 주로프카 유적의 호랑이, 청동

 

그림 7.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의 사슴, 청동

 

기원전 5세기 유물은 스키타이 양식의 동물표현이 좀 더 사실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 감지되는데 이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쉬크루코 1975, 얀첸코 1971)이라는 의견이다. 반복해서 포스팅 한 바 있는데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특징은 종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인위성이 가미된 것이 특징인데, 기원전 5세기부터 추상성 보다는 사실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요소를 외부적인 영향으로만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그림 7).

 

참고문헌

Шкурко А.И.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в искусстве и культур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Дис. канд. ист. наук. М., 1975.(쉬쿠르코 1975, 산림스텦 지역의 스키타이 인의 동물장식)

Яценко И.В. Искусство скифских племён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История искусства народов СССР Т. I, М., 1971.(얀첸코 1971, 흑해 북부의 스키타이 사람들의 예술)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연구한 노브고르도바는 몽골 민족들에게 가장 오래된 믿음 중에 하나는 사슴에 대한 숭배라고 했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입석(立石)에 그려진 사슴은 이를 보여준다. 사슴돌은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 축조에도 사용되는데 봉분의 가장 위에 사슴돌을 세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1 유적과 아르잔-2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몽골이나 바이칼 지역(자바이칼)에서 발견되는 ‘사슴돌’은 사슴이 아닌 무기류 혹은 장신구만 그려진 입석도 있는데 대부분 사슴돌로 통칭한다.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물 세우는 전통은 흑해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봉분의 꼭대기에 세워두는데, 입석을 대신해서 석인상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에서 사슴의 존재는 봉분위에 얹었던 사슴돌로 알 수 있다. 아르잔-2(기원전 7세기 중반)호에서는 주인공의 무덤인 5호묘에서 남성과 여성의 모자장식으로 사슴장식이 발견되었다. 흑해지역에서도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등에서 사슴장식이 발견되는데 주로 무기를 장식하는 용도이다.

 

기원전 5세기 축조된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서 발견된 각배 장식판은 2종류가 있는데, 삼각형 장식판에 동물문양의 방향에 따라 구분된다. 각배장식판을 유기질제 각배에 부쳤을 때를 기준으로 동물이 똑바로 서도록 디자인된 것(그림 1, 그림 2-1)과 동물문양이 누운 것(그림 2-2,3)으로 디자인 된 것이다.

동물문양은 맹수(호랑이, 그리핀, 독수리 등)가 사슴(그림 2-1,3)과 양(그림 1)을 공격하는 장면인데, 사슴은 표현방법이 다르다. 그림 2-3의 사슴은 동물의 근육을 두드러지도록 표현하는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혹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사슴표현으로 흑해지역에서 오랫동안 제작되던 방법이다. 그러나 그림 2-1은 그리핀이나 사슴이 흑해지역과는 다른 페르시아에서 유행하던 동물표현법이다.

 

그림1.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각배 장식판

 

그림2.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각배 장식판

 

그리고 용?으로 보이는 하이브리드 동물(그림 2-2)은 흑해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에 종종발견되는 문양이다. 하지만 이 용은 근육질의 다리표현이 있어서 다리 없는 용의 초기 모습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턱 아래의 수염, 꼬리부근의 동물표현 등은 ‘하이브리드’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나라의 것도 아닌 듯 해 보인다.

 

청동기시대 시베리아의 사슴돌의 사슴문양은 하늘을 나는 듯이 보이도록 표현되었고, 스키타이시대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의 모자장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문양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 흑해에서는 기원전 5~4세기) 맹수의 포식자로 남아 있다. 이는 맹수가 동물문양장식으로 주요한 문양으로 등장하면서일 것이다.

 

다시 각배로 돌아가서 왜 각배에 장식판을 붙은 것일까? 이것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에 붙인 금판의 의미와도 같을 수 있다. 막시모바는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이 중앙에 꼭지를 다는 스키타이 형식의 거울인데, 장식판만 인접한 국가에 주문제작했다고 연구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은 스키타이 재지생산품(주로 마구)뿐만 아니라 우라르트, 그리스, 앗시리아 등 당시 인접한 국가에서 온 것이다.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진 세미브라티니예 무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기질제 그릇에 금제 장식판을 붙이는 것은 각배 뿐만 아니라 납작한 목제그릇에서도 발견된다. 재지의 물건은 역시 마구와 관련된 유물이다. 뒷시기로 갈수록 누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현상이 매우 심하게 보인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М.И. Максимова 1956; Ритон из Келермеса//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XXV. М.: 1956(막시모바 1956, 켈레르메스에서 출토된 각배)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7개의 무덤이 일렬로 있는데, 유적발견당시 지역 주민들은 이를 가르켜 ‘칠형제’의 무덤이라고 부르면서 그대로 유적명이 되었다. 2001~2004년에는 성벽이 조사되었고 서쪽에는 회자가 남아 있다. 성벽의 평면도는 사다리꼴에 가깝다.

 

무덤은 약간 나지막한 흙 위에 벽돌로 된 석실을 만들고 통나무 뚜껑을 덮었고 그 위에 봉분을 쌓은 것이다. 7개의 무덤 중 2호와 4~7호는 일렬로 서에서 동으로 나란히 배치되었고, 3호만 약간 열을 벗어났는데, 쿠반 강의 지형조건 때문으로 생각된다. 무덤은 쿠반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거의 일렬로 서 있는데, 무덤이 있는 제방의 길이 때문이다.

7개의 무덤은 동시에 축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비교적 최근 연구에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가장 늦은 무덤이 1호와 2호 만들어졌다.

 

지도( 지점을 정확하게 찾음)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서 나온 유물 중에는 유기질제 각배에 부착해서 장식했던 삼각형 금판 위에 그려진 동물문양 때문에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호랑이가 사슴을 등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펠트장식의 문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에서 각배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이 많이 나온다. 2000년대 발견된 성곽에서는 성곽의 통치자 이름이 적힌 일종의 비문이 나와서 성곽은 기원전 3세기 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덤은 기원전 5세기부터 축조되었다.

 

그림 1.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각배장식판, 황금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파지리크 유적 뿐만 아니라 페르세폴리스(그림 2-a), 쿨-오바(그림 2-c),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2-d)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지만 기원전 7세기인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2-b)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림 2).

 

그림 2. 세미브라타니예 유적의 동물문양과 같은 문양,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c-쿨 오바 d-표트르 1세의 콜렉션, e-세미브라트니예, f-파지리크 유적

 

이미 선학들이 연구했듯이 기원전 5세기 이후 스키타이 동물스타일에는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에도 스키타이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 기원전 7세기 코르트롬스카야 무덤에서 출토된 사슴방패장식을 모방해서 그리스 공방에서 만든 유물로 알려졌다.

 

그림 4.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장식판, 궁수

 

동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케르치 해협의 쿨-오바 유적과는 가장 다른 점은 무덤 구조이다. 쿨-오바 유적은 석벽으로 쌓은 천장이 높은 석실무덤이고,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석벽으로 쌓았지만 통나무로 무덤을 덮은 구조이다. 나무로 된 매장주체부는 기원전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 있었던 전통이다.

 

참고문헌

Горончаровский В.А. 2014 Семибратние курганы в контексте истории и древностей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XXX // Симферополь, Керчь (고론차로프스키 2014, 흑해 북쪽의 세미브라트니예 무덤에서 확인된 고대역사)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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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각배가 새겨진 석인상은 기원전 5세기 이후로 생각된다.

 

그림 1. 흑해 지역의 석인상 노보바실레프카 유적

 

그림 2. 흑해 지역의 석인상 브라토류보프카

 

각배가 자기나라의 고유한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국가가 있는데 그리스, 이란 뿐만 아니라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젠, 아르메니아 등에서도 다들 자신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유학하면서 유리로 만든 각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장식일 뿐이다. 각배는 손잡이가 굽은 컵이기 때문에 빈잔일 경우 입구를 아래로 세워둬야 한다(물론 화려하게 장식으로 만들어진 각배는 받침대가 따로 있기도 하다). 술을 받으면 한번에 다 마셔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아무튼 흑해 주변 지역에서는 다들 자기것으로 주장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컵이다.

 

그리스에서는 언제부터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이른 시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가 표현된 은제 각배가 나왔다. 은제 각배는 이 유적에서 나온 거울속의 여성과 동일인물로 생각한다. 은제 거울과 함께 우라르트에서 제작되었다는 설,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제작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우라르트는 기원전 8~7세기 경 현재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젠, 아르메니아 지역에 있었던 국가로 앗시리아 보다 강성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이 그릇이 주로 출토되는 시점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고, 그리스나 페르시아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곳에서 함께 나온다. 대표적인 유적 중에 하나가 세미브라트니예(Семибратние, Semibratnie, 7형제라는 의미) 무덤이다. 1875년에 남겨진 수채화에 7개의 봉분이 뚜렷한 유적 전경이 그려진 그림(그림 4)이 남아 있다.

 

지도( 세미브라트노예라고 표기된 것, 연구자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게 부름, 오른쪽 지도 카테고리 참고)

 

 

그림 3. 세미브라트니예 무덤 4호 출토 은제각배

 

그림 4. 1875년 그로사의 그림. 상-세미브라트니예 무덤의 발굴, 남에서 북으로 향함. 하-무덤발굴 야영장, 동에서 서쪽으로 그린 그림

 

 

7개의 무덤이 모두 발굴되었는데, 가장 구조를 잘 알 수 있는 무덤은 단면도가 소개된 7번(그림 5)이다. 사자를 매장하는 매장주체부는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쿨-오바와 같은 천정이 높은 석실이 아니다.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일종의 석관묘, 낮으막한 언덕 위에 지하를 파고 사자를 매장했으며, 높게 봉분을 쌓았다. 7개의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봉분의 높이는 18m에 달한다. 무덤방이 1개 있는 무덤과 2개 이상 무덤인 경우가 있는데 말 매장과 관련되었다.

 

매장주체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2호분인데, 사자와 함께 13마리의 말을 매장했다. 죽은이와 말은 한공간에 묻혔으나 격벽으로 분리했다(그림 5).

 

그림 5.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7호분 무덤 평면도와 단면도, 무덤의 봉분 전체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무덤 평면도(상단)에서 그려진 부분만 조사했다. 다른 무덤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6.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2호분의 무덤 평면도, 무덤 내부의 숫자는 조사연도. 숫자가 없는 사다리꼴 공간은 도굴흔적

 

그림 7.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2호분의 무덤 매장주체부. 그림 6의 매장주체부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서는 페르시아, 그리스 유물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유물도 많이 나온다. 매장주체부는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진 쿨-오바 유적과는 다르다.

 

참고문헌

Горончаровский В.А. 2014 Семибратние курганы в контексте истории и древностей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XXX // Симферополь, Керчь (고론차로프스키 2014, 흑해 북쪽의 세미브라트니예 무덤에서 확인된 고대역사)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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