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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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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인디아나존스를 위해서..'에 해당되는 글 26

  1. 2019.09.04 oo하층문화와 oo상층문화
  2. 2019.08.14 고고학이란?
  3. 2019.07.31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의 무덤 2
  4. 2019.07.28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의 무덤
  5. 2019.06.04 신석기혁명과 과제

필자의 글에서 위와 같은 명칭을 자주 발견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뜻?

별로 어렵지 않다.

 

유적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살던 곳이다.

인간이 살다가 남긴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인간이 살던 곳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을까?

인간은 한 지역에 오래 머물고 싶다. 단, 안정적이라면, 살만하다면, 살기좋다면.

(물론 살기 좋더라도 어떤 이유에서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유적 즉 인간이 살던 곳은 어떤 한 시간에만 인간이 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크게 어렵지 않다. 조선시대 이후로 서울은 항상 서울이었다.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서울과 현대의 서울은 다르다.

무엇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

 

하지만 조선시대 서울이 우리나라 서울이 아닌가?

구지 답은 않더라도....알 것이다.

 

서울은 크게는 조선시대 서울, 근대의 서울, 현대의 서울로도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 서울도 그 구분은 아주 세세할 수 있다.

 

즉 00하층문화와 00상층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적으로 다른 문화를 이야기 한다.

그럼 왜 명칭을 달리해도 되는데, 헷갈리게 부르냐?

 

아래 그림은 어떤 유적의 토층그림이다.

 

압록강 유역의 신암리 유적 3지점 토층도

 

쉽게 말해서 00 유적의 아래층(하층)(a층)과 00 유적의 윗층(상층)문화(b층)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달리해서 부른 것이다.

 

무엇이?

a층에서 확인된 문화내용 즉 토기, 석기, 이를 이용한 시간대

b층에서 확인된 문화내용 토기, 석기, 이를 이용한 시간대

(좀 더 세밀하게 이야기 하면, a와 b는 지역적 범위도 달라질 수 있는데, 헷갈릴 수 있음으로 좀 더 심도 깊은 내용은 다음으로 한다.)

 

대개의 경우 그 지역에서 그 시간대에 알려진 문화가 없는데, 어떤 특정한 유적이 발굴되었고, 그 유적의 층위 문화내용이 다른 경우에 그 특정한 유적의 명칭에 따라서 00하층문화와 00상층문화로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00유적의 하층=00하층문화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포스팅 내용 가운데, ‘후와하층문화에 해당하는 유적은 후와유적의 하층과 북우둔 유적의 하층이 해당된다’라는 내용이 될 수 있다.

2019/09/04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요서지역 홍산문화토기 와 한반도비교] - 우하량 1지점과 여성형상물 2

 

우하량 1지점과 여성형상물 2

앞서서 우하량 1지점이 여신묘일 억측을 반박하기 위해서 그 근거가 된 우하량에서 출토된 얼굴형마스크 및 5지점에서 출토된 여성형상물을 홍산문화와 인접한 지역의 문화와 검토하고 있다. 요서지역에서는 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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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00문화는 대개의 경우 특정 성격의 유적 집합소를 이야기 한다.

집합체는 여러 유적의 합을 이야기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즉 하나의 유적이 특정 문화로 될 수도 있다.

 위에서 필자의 글을 잘 읽어보면, ‘그 시간대에 알려진 문화가 없는데’라는 말이 있다.

 

즉 그 시간대에 그 지역에서 알려진 문화가 없으면, 어떤 특정한 유적을 중심으로 '00유적에서 알려진 문화'라는 의미의 '00문화'를 쓰기도 한다.

별로 어렵지 않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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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고고학은 역사학의 한 분야인데, 그 대상물이 사람이 적어 놓은 사료가 아닌

사람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이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글을 쓸 때 이성과 감정이 같이 있는 존재여서

절대로 남겨놓은 글에 감정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가치관, 관점, 등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의 어떤 정책을 당시에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어떠한 이유(당리, 당략, 개인의 이익 등등)로 반대하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남겨 좋은 보고서 등에는 안좋은 이야기만 잔뜩 적어 놓겠지..

반면에 그 정책을 준비하는 집단은 그걸 함으로써 큰 역사의 부흥에 도움이 되는가 되지않는가, 시민들에게 필요한가를 판단해서 만들 것이다. 그 또한 기록될 것이다.

 

누가 옳은가는 분명 당대의 시민들도 판단하겠지만, 나중에 역사가들은 전체 역사의 흐름에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판단하며, 그 정책을 실행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며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 때 나중에 역사가들이 판단할 때는 정책만든자와 정책반대자의 글을 모두 참고로 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그들이 적어 놓은 보고서.....이다.

 

이 상황을 조선시대, 고려시대, 남북국시대, 삼국시대로 되돌려 놓아서 생각해 보면

역사의 흐름에 방해가 된 요소와 역사의 흐름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요소를 찾아 내는 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다. 역사가는 이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으로 당연히 남겨진 보고서...사료를 참고로 할 것이다.

당연히 남겨진 사료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오래된 사료는 삼국사기이다. 고려시대에 쓰여진.......아이러니하게도......당연히 한쪽으로 치우친 자료이고, 초기기사는 부정하는 사람이 만만치 않다.

 

 

반면에 고고학은 옛날 사람이 살고 남겨놓은 흔적이다.

필자가 대학 다닐 90년대 중반만 해도 고고학의 연구범위는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였다. 왜냐하면 그 때만 해도 한국에는 지금만큼 발굴이 빈번하지 않아서, 삼국시대 이후 발굴되는 경우가 많치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오면서 발굴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발굴을 하는 회사들이 생기게 되었다.(이말은 이때 건설경기가 굉장히 좋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거의 용역발굴이어서, 건축물이나 국가기관 산업물이 생기기 전에 땅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문화재가 발견되면 조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 분위기가 계속 되니, 발굴자료가 삼국시대 이후 자료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고학의 연구범위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이다.

필자는 물론 선사시대 특히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전공이지만,,

고고학에서 또 다른 블루오션은 고려시대 자료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시대도 유물이 많지만,,아직 남들이 많이 하지 않지만...유물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이고,

연구가 많이 필요한 시대. 후배들한테도 많이 권해주는데....아직은 그쪽 분야는 무주공산이다.  

 

고고학이 역사학 만큼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교과서 때문이다.

첫페이지를 열면, 유적만 쫙 열거되어 있다.

그리고 간단한 설명.

사실 필자는 영화보다가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교과서 보면 진짜 재미없어 보이는 부분이 삼국시대 이전 내용이다.

 

왜 재미가 없을까?

그건 인간이 없어서다.

인간은 없고, 유물과 유적만 나열해서이다.

 

이거에 대한 나의 해법은?

 

민족의 형성에 관한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부분은 국경중심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사시대에는 국경이 없었다. 자연환경에 따라서 인간의 생활권이 있었다.

이 부분이 반드시 교과서에 들어가야 되고,,,,, storytelling으로 이어져야 한다.

 

고고학과 역사학을 비교하다가 딴 소리를 적었다.

그러나 고고학은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좀 더 객관적이다.

그리고 남겨놓은 사람의 감정은 들어가지 않는다.

 

나중에 만약에, 지구에서 핵을 누가 터트려서 사람들이 한동안 우주로 피신해서..지구에서 안살다가,,,,

우주에서 와서 다시 여기에 누가 뭐하고 살았는지 들여다본다는 가정을 해 본다면.

그 도자기 쪼가리를 보고 할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만약에 그 때 종이에 적힌 글을 보고 그들은 무엇을 알아낼까?

위의 예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현재상황에서 역사의 가장 극단적 단절을 예를 든거다.전혀 과거에 대한 information이 부재한 경우를.

(매우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옛날에 금관가야사람들이 잘먹고 잘 살았지만, 김부식이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으로  지 마음대로 그 때 상황을 적어서 후대들이 그렇게 믿고 지낼 지는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모르는 것 처럼. 그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을까?ㅋ 물론 아주 멀 수도 있고,,,후쿠시마를 보면 그렇지 않을 듯도 하고....알 수 없다.)

 

이때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정이 뒤섞여 있는 사료보다는 남겨진 토기 쪼가리를 모아서 그 때 상황을 유추해 보는게 훨씬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러니 하지만 그 상황이 적힌 글이 있다면 그 논리는 더 먹힐 것이다.

그래서 고고학은 남겨진 것 발굴만 해서도 될일은 아니다. 그걸로 복원을 해야 한다. 과거를.

(중국이 떵떵거리며 소리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역사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왜곡하고 또 왜곡하지만. 유목민이 그 화려한 문화를 두고도 찌그러진 이유는. 글자로 남겨진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또 현대'국가'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빨리 북한이랑 통교되었으면 좋겠다 진심.

 

먼 소리를 썼나 싶은데..z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이 검색해서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들을 위해서 포스팅 한 장 적다가 갑자기 교과서로....

나도 언젠가는 교과서 한페이지 내 마음대로 적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갈망하며

또 한편 적어야 겠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홍산문화의 무덤을 필자는 6가지로 구분한다.(앞선 표에서는 숫자로 했으나, 여러생각 끝에 형식명칭을 바꾸었다. 1->가, 2->나, 3->다, 3`->다`, 4->라, 5->마, 6->바).

 

그림.우하량 유적의 무덤형식(김재윤 2019)

 

매장주체부

석관묘의 벽석

석관없음

묘역

형식

그림번호

지상

지하 토광(깊이)

여러 매

한매

토광묘

있음

없음

여러 단

한 단

가로

비스듬

수직

비스듬

 

 

 

 

 

 

 

 

 

1

 

 

 

 

 

 

 

 

 

2,3,4

 

 

 

 

 

 

 

 

 

5,6

 

 

 

 

 

 

 

 

 

7

 

 

 

 

 

 

 

 

 

8

 

 

 

 

 

 

 

9

 

 

 

 

 

 

 

10

표의 그림번호는 그림번호와 일치한다.

 

그 기준은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이 지상인가, 지하인가부터 시작한다

지상(그림1), 지하(그림2~10)를 살피는 경우는 선사시대에는 거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다 지하에 있으니깐.

그러나 우하량 유적에서는 딱 1곳(그림1)이 있다. 그래서 구분한다.

생각해보면, 매장주체부를 지하에 둘 것인거, 지상에 둘 것인가는 엄청난 차이이다.

 

엄청난 차이?

 

1. 축조방법의 차이

무덤의 구조와 관련되어 있고, 드는 비용도 어마하게 차이가 났을 것이다.

필자는 왜 이런무덤이 한 곳만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어쨌든 매장주체부를 지상에 두는 것과 지하에 두는 것은 차이가 크다. 그래서 당연히 둘은 구분되어야 하고, 무덤의 구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번 기준이다.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곽대순은 이를 무시하고 ‘중심대묘’라는 거창한 이름하에 그림 1,2,3,5를 모두 같은 형식(카테고리)안에 묶었다. 이런건 바로 까야 한다.

 

2. 묘광의 단수

매장주체부가 지하로 들어가 있는 건 공통이지만, 한단파는것과 여러 단 파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크다. 역시 노동력과 드는 비용이다.(나는 그런식으로 생각하며, 이런 구분 기준을 마련한다.)

주로 나형식으로 구분된 무덤이 여러 단 판 것이다. 곽대순은 중심대묘라 부르는 것은 그림 3과 같이 양단을 판 것과, 그림 4번과 같이 한쪽 만 판 것을 계단식묘라 하여 구분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카테고리로 보았다. 그림 2는 한쪽만 깊이 팠지만, 곽대순은 중심대묘라고 부르는걸 보아서 본인도 구분 기준이 모호하다.

필자가 그림 3과 그림 2,4를 같이 묶는 이유는 드는비용과 노동력이 한 단파는 것 보단 많이 들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까지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즉 구분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잘라서 설명하면 모든 유물과 유구는 그냥 다 다르다고 결론이 난다. 그러면 모든 유물과 유물은 그냥 인간생긴대로 다 다르다는 결론은 좋은 유추법이 아니다.

 

3. 석관의 벽석

무덤을 만들 때 토광을 파고 그 다음은 석관을 넣는다.

석관도 납작한 돌을 쓰는 경우와 덩어리돌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우하량 유적에서는 보이는 대로 구분은 되지만, 그 구분의 의미가 모호했다. 가령 그림1은 덩어리 돌을 사용했지만, 그림 2, 3과 4는 납작한 돌과 덩어리돌을 섞어서 썼다. 만약에 납작한 돌을 가령 좀 더 노동력이 더 투여된 무덤에서 주로 쓴다면 그림1~4번에 집중해서 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별꺼 없어보이는 그림 8과 같은 무덤에도 납작한 돌은 쓰인다. 또 이차장(뼈만 추려서 넣은 경우)무덤인 그림 7에도 납작한 돌은 사용된다. 그럼 덩어리 돌이 납작한 돌 보다 노동력이 더 투입되는 무덤에서 주로 쓰이는가?도 살펴보았으나, 답은 없었다.

그래서 이 유적에서는 납작한돌과 덩어리돌은 그렇게 좋은 구분의 기준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벽석의 구분에는 여러 매를 쓰는 경우와 한 매를 쓰는 경우로 나누었다.

 

4. 석관묘없음

당연히 석관묘 없는 것은 따로 구분되어야 한다. 노동력과 석관제작에 드는 비용이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유적에서 무덤의 형식이 계급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이 토광묘 때문이다. 토광묘에서도 옥기가 출토되며, 사구통형기라고 했던 그 유물도 출토되기 때문이다. 만약 곽대순이 주장한바 대로 우하량유적에 묻힌 사람들이 홍산문화의 제사장무덤으로서 계급대로 묻혔다면, 토광묘에는 옥기가 없어야 한다. 반대로 석관묘에는 대부분 옥기가 있어야 하지만, 다 형식의 경우는 옥기가 없는 무덤이 허다하다. 가장 큰 그림 1에는 옥기가 하나도 없다.

 

5. 묘역

무덤의 가장자리를 묘역이라고 한다. 이것도 노동력과 축조비용이 듬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묘역도 단순한 석관묘와 토광묘에서 확인된다.

 

6. 일차장과 이차장

만약에 모든 무덤이 신체크기와 비슷한 크기였다면, 이 부분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적에는 이차장 무덤이 몇 기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 부분도 고려되어야 함으로, 일차장과 이차장도 나눌 수 있다. 크기는 작지만 대부분 석관묘이다. 구체적으로 다형식으로 보이는 석관묘이다. 그래서 다`라고 명명했다. 일차장과 이차장이 아니라면 거의 무덤구조는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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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1. 무덤의 가짓수

 

환단고기 역주본에서는 ‘사구통형기’라 불리는 옥기를 신과 소통을 위한 도구로 설명된다고 앞서서 포스팅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은 곽대순이라는 중국학자가 먼저 이야기했다.

먼저 포스팅에서는 유적에서 18개나 출토되는데, 신과 소통을 위한 도구가 그렇게 많은지 의심한 내용이다.

 

2018/02/04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요서지역 흥륭와 문화의 옥기 및 토기와 한반도비교] - 환단고기비판: 관(crown)인가?

 

환단고기비판: 관(crown)인가?

그림 1. 홍산문화의 사구통형(斜口筒形)옥기: 입구가 비스듬한 옥기 2012년 환단고기에서는 홍산문화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옥기에 주목하고 있다. 옥기에 관한 해석은 중국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시각에 의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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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순은 사구통형기 혹은 고(箍)라고 불리는 옥기는 구운형옥패, 동물형옥기와 함께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옥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모두 중심대묘(곽대순의 주장에서 가장 급이 높은 무덤)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를 살피기 위해서 우하량유적의 옥기를 각 무덤 별로 조사했다.

가령 1호라는 무덤이 있으면, 무덤의 생긴형태+옥기의 종류+양을 살피는 것이다.

즉 A라고 생긴 무덤의 기준을 정하고, 이렇게 생긴 무덤에서 출토되는 옥기가 어떤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래의 표1이다.

이 표를 바탕으로 필자가 파악한 우하량유적의 무덤을 설명할 예정이다.

 

표1. 우하량 유적의 무덤형식과 옥기의 상관관계(김재윤 2019)

사실 이 작업은 우하량유적을 해석할 때 최초로 했어야 할 작업이다. 곽대순은 우하량유적의 ‘계급’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우하량유적은 홍산문화 제사장의 무덤이며, 4등급으로 나누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9/03/06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단고기와 고고학] - 우하량 유적의 1지점을 왜 여신묘라고 주장했을까?

 

물론 곽대순은 우하량 유적의 유물을 4등급으로 나누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덤 그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석관의 제작방법에 따라서 6가지 형식으로 구분했고, 표의 가장 마지막 칸을 설명할 수 있다. 석관을 파기 위한 토광의 단수, 석재의 가로쌓기와 세로쌓기, 묘역, 일차장과 이차장 여부 등이 그 기준이 된다.

먼저, 6개의 형식은 곽대순이 의미한 등급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 짓는데 품이 많이 들게 생긴 무덤 안에는 옥기가 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아이러니 같은 무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형식’은 설명을 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표2이다.

표1을 만들기 전에 표 2부터 했고, 표2를 바탕으로 표1을 만들었다.

 

 

표2. 우하량유적의 무덤형식(가짓수)(김재윤 2019)

 

재미는 없으시겠지만,, 필자가 가장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표만들기이다. 유적별로 표만들고, 그런 표를 집합해서 필자는 지도를 위에 점을 그리고, 그걸 시대별로 정리해서...결국 또 표를 만든다. 오늘 포스팅은 그림없이, 표만 넣었는데, 쓰고 보니 역시 재미가 없다. 표는 그림과 세트가 되어야 하나보다.

그러나 오늘은 문장 한 구절을 쓰기 위해서 내가 하는 세밀한 작업을 보여드리고 싶은 날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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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어느 덧 2년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 많이 보지는 않지만

필자의 포스팅에 관심을 가지는 중학생도 있었고,

이미 성년이 된 사람도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 하면서,..여러 가지 필자에게 물어본다.

답이 10일정도 늦어서 많이 미안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안하게 되면서 네이버에 접속조차 잘 안하게 되니 그랬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그 분이 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한다.

 

지금도 생소한 이 학문을

필자는 예전 포스팅에 적었지만 영화를 보고 알게되었다.

그 떨리던, 함몰되던 기분, 그 짜릿한 기분.

보자마자 내꺼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어린애의 생각은 진짜 비현실적인데..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러시아유학결심할 때랑 꼭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 비현실적인 것이 내꺼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엄마 아빠도 공부잘하는 딸이기를 바랬지만, 내가 무엇할 것인가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고고학과..재밌어보인다. 그런데 가면 꼭 제일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셨다..

내 전공을 두고 크게 다툰적이 없다.나는 늘 커서도 그 점에 감사해한다.

아마 내가 성실하기도 했고, 믿음도 주었을 것이다..꼭 먼가 하겠다 하면 했으니깐.

 

물론 한때 원하던 곳을 못가게 되어서 못 마땅해도 했지만,,,

그때 마침 아빠와 관계도 많이 않좋아서....그게 더 좋게 작용한 것이지

그 때만 해도 지금만큼 취업 운운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교육부를 거친 학생들이다.

그때 특히 교육부는 취업안되는 과는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대학생이 되어도, 생각을 못하는 애들이 많다.

강의 중에 내어준 과제물 피드백을 했는데, 한 학생은 말도 안되게 나의 피드백에 반감을 비친다.. 자기가 최고인데, 니가 먼데 피드백을 하냐는 식의....

걔는 나보다 거의 20살이 어린 학생인데 생각하는 수준은.... 

그 애는 동화책 읽기부터 해야. 글짓기도 안된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고 우기고, 자기는 자기가 받은 피드백이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과제물은 한 장정도만 '자기생각'을 적어오라는 거였다.

난 과제물을 거창한 걸 내지 않고, 자신생각을 적는걸 좋아한다. 거창한 거 내봐야....그냥 결국 남의 연구 편집이 대부분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필자는 도면 한장 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걸 과제로 준다.

또 그런 과제 보고 탄복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면 한 장을 보고도 여러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정말 사람은 다 너무 나 다르구나.

학생에 대한 불평을 적기는 했지만,, 대부분 원만한 사람의 사람머리속은 비슷한데 다 다르다.

민주주의 그 자체다.

그래서 애들을 존중해주려고 하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맞다고 하고 또 첨삭해준다.

그러나 위에 적은 학생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너무 머릿속에 남는다.스트레스 잘받는 필자에게 학생의 이런 피드백은.....

 

그 과제에 제시된 그림은 아래의 것이다.

아래 그림은 각 지역에서 토기가 발생되는 지역을 최근 자료로 표시한 것이다.

이것과 고든 차일드가 설명한 ‘신석기혁명(1951년)’이라는 개념과 비교해서 자신의 생각을 한 장에 적어오라는 거였다. 물론 한장 보다 많아도 된다. 

신석기혁명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개념이다. 그걸 처음 입에서 말한 사람이 고든차일드라는 고고학자이다.

토기발생지역비교(P.Jordan, M. Zvelebil 2010)

참고문헌

P.Jordan, M. Zvelebil. “Ex Oriente Lux: The Prehistory of Hunter-Gather Ceramic Dispersals.” Ceramic before farming: the dispersal of pottery among prehistoric Eurasian hunter-gathers. P.Jordan, M. Zvelebil ed. London: Publication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University College London, 2010. pp.31-8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