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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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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에 해당되는 글 16

  1. 2020.10.10 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의 스키타이 무덤
  2. 2020.10.09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한 무덤 3인
  3. 2020.10.08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가장 오래된 유물
  4. 2020.10.07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 어린아이의 나무모자2
  5. 2020.10.06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에서 확인된 무덤은 7개 유적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가장 동쪽의 졸린 I(8기), 졸린 II(8기), 유스티드 I유적(10기), 유스티드 XXII (2기)이다(유적은 그림 1에서 표시된 7개 보다 훨신 많음.) 그 뒤에 유스티드 XII유적, XIII(9기)유적이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계곡에서 발견된 무덤은 5천기가 넘고 대략 2개의 큰 시기(기원전 4세기 가량의 스키타이 시대)와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로 나눌 수 있다. 쿠바레프는 이를 들어서 ‘죽음의 골짜기’라고도 표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무덤 수가 확인된 곳은 유스티드 XII 유적으로 29기(그 중에 26기가 스키타이 문화, 2기는 투르크 시대(기원후 5세기)이고, 가장 작은 유적은 XXII유적으로 2기만 존재했다.  이 유적은 다른 무덤에 비해서 월등하게 무덤 수가 많다. 한 계곡에 일렬로 묻힌 사람들은 서로 무관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유스티드 XII유적에만 왜 이렇게 무덤이 많을까?

 

그림 1. 유스티드  I 유적

(  상단의 윗 네모 박스: 유스티드 계곡의 케렉수르(사슴돌이 있던 곳의) 및  유적의 대략적인 위치, 즉 사슴돌 제사복합유적의 위치를 가르켜 주고 있음, 하단의 네모 안의 표식 차례대로:  유적(а), 케렉수르(б), 발굴된 무덤(в), 고리형 돌 유구(г), 입석(д)

 

이 유적에서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그리핀으로 16호에서 청동거울에 새겨져서 확인되었다. 2인이 매장된 무덤으로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불분명하다(참고문헌의 책에서 캡션이 다른 점을 발견). 아직 그리핀을 다 모으지 못해서 정확하지 않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을 예로 들면 19호에서 맹수자세를 하고 있는 그리핀은 매우 돌출된 형태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에서 확인되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모두 26마리의 그리핀이 말의 굴레장식으로 사용된 점도 매우 다르다. 유스티드 XII유적을 볼 때 그리핀이 모든 무덤에서 출토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어떤 점에서 대단한 일을 했던 사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성급하다. 동시대라는 조건이 성립될 때 두 유적에서 나오는 그리핀의 모습이 다른 이유가 더 논리적일 수 밖에 없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22호를 제외하고 모두 철제 재갈이 출토되었다. 22호에서는 청동재갈이 출토되지만 실제로 22호와 21호 사이의 탄소연대 측정결과로는 큰 차이가 없고, 대부분의 무덤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어서 대체로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어깨 문신 남성미라)보다는 약 100년~200년 정도 늦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유적의 무덤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구조가 다른 무덤에 주목한다. 이 유적의 시작은 우코크 고원의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 보다 더 빨리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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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한 공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묻힌 곳은 성인 3인과 말 3마리가 있는 곳으로 21호와 22호가 연결된 23호이다.

 

남녀가 함께 매장된 20호(134×165cm)와 비교해 볼 때 그렇게 크지 않은 무덤방(131×193cm) 속에는 남성 2인과 여성 1명으로 꽉 차 있다.

다른 무덤과 비교해 보면, 죽은 사람이지만 공간이 부족해서, 이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면 아마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해서, 널찍하게 안묻어 주는가...이러면서..

 

무덤 속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보이는 나무껍질이 바닥과 무덤의 서쪽벽 위에 놓여 있다. 무덤방을 자작너무 껍질로 덮었고, 그 흔적이 서쪽벽 위에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 나무껍질이 놓인 경우는 대부분 말의 다리 부근이었는데, 이 무덤에서만 유일하게 무덤방 바닥에도 깔고, 무덤방을 덮었다.

물론 무덤덮개는 다른 무덤에는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이 안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무덤바닥의 자작나무껍질은 다른 무덤방에는 깔지 않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지릭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는 자작나무 껍질은 가을에는 두터워지고 넓어지면서 벗겨지지 않고, 봄 여름에 벗길 수 있으며, 무덤(파지릭 2호)은 늦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했다(루덴코 1953).

이 유적의 무덤방의 바닥은 21호를 제외하고 모두 북쪽에는 나무를 깔지 않고 이 공간에는 토기를 둔다. 그런데 이 무덤에도 나무를 깔지 않은 곳에 남성 1인을 더 묻었다. 혹시 이 남성은 원래 이 무덤에 계획된 사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죽어서 그냥 함께 묻었을까?

 

그림1.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와 출토유물 1-철제 재갈, 2-목제 굴레장식, 3-뿔제 버클 장식, 4-6: 원판형 안장 장식, 7-9: 토제 그릇, 10-사슴모양 장식, 11-산양화된 사슴장식, 12-14: 말 장식, 15-사슴이 서로 맞댄 모양의 황금 이마장식, 16-18, 20-24: 각종 모자장식 19-목제 말 장식에 붙어 있던 산양 뿔 장식, 25,26-청동거울, 27-거울 주머니를 장식한 가죽 아플리케, 28-고리모양의 은제 귀걸이, 29:잣 껍질로 만든 구슬, 30-유르제 구슬, 31:말사슴의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 조각, 뿌리부분, 32:유리제 비드(구슬보다 작은 장식), 33,35:청동검, 34, 37:목제 검집, 36:검집 반대편에 붙인 가죽, 38:멧돼지 송곳니 이미테이션, 목제품, 39, 40-목제 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41-납작한 판의 막대기, 42.43-뿔제 화살대, 44-50:목제 장식판, 51-원판형 단추장식, 고리트 장식, 52, 53-목제 장식판, 54-양의 이빨 펜던트 55-58: 복합궁의 부속품, 59-활의 끝 부분, 60-목제 낚시 바늘, 61-철제 칼, 62-컵모양 토기

 

그림2.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 출토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그림3.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 출토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부장품은 세 명 모두 다르다. 중앙에 있는 여성은 성별 차이라고 해도 양쪽 가장자리의 남성은 각자의 소유물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오른쪽 남자는 전투용 도끼가 2자루이며, 화살통까지 들고 있지만 가장 왼쪽의 남성은 청동검(그림 1-35~37, 그림 2-33~37)만 가지고 있다. 다른 한 자루의 청동검은 여성의 검(그림 2-33, 34)이다.

 

21호, 22호, 23호는 무덤의 상부가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21호와 23호 구덩이를 먼저 파고 갑자기 22호 아이가 죽어서 21호 옆 혹은 22호 옆에 구덩이를 팠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22호 무덤을 먼저 만들고 그 옆에 21호와 23호가 들어섰을 수도 있다. 이미 포스팅한 이 무덤의 단면도를 자세히 보면 21호를 덮은 상부 흙과 돌, 22호와 23호를 덮은 상부 흙과 돌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필자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것이라면 21~23호는 한 가족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한 가족 구성원은 25~27호이다. 25호 남자 성인, 26호는 아이, 27호는 여자성인이다. 25호는 24호와 다른 무덤 보다 거리를 두어 축조해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성과 아이가 함께 묻힌 4호와 8호도 마찬가지이다.

 

26기의 무덤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뚜렷한 유물도 추출하기 쉽지 않고, 아이라는 변수 뿐만 아니라 무기와 거울도 제각각이다. 고구마 100개 먹은 느낌이다. 유스티드 계곡에 무덤이 5000기가 넘개 있었다는데, 속이 시원해지도록 발굴하면 좋겠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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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계곡 중에 한 곳인 ‘유스티드’는 러시아어가 아니다. 뜻은 백개의 낙엽송이고, 발음은 ‘우스 티트’라고 한다고 백년전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는 ‘우스’는 고대몽골어로 물이라는 뜻이고, ‘티트’는 알타이어로 ‘낙엽송’이라는 뜻이다(쿠바레프 1991).

1930년대 처음에 러시아인 탐험가이자 지질학자가 방문했을 때 말 그대로 추야 강과 그 지류인 유스티드 강의 계곡에는 낙엽송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 때 타샨타 마을이 처음 만들어졌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아주 특이하게 21~23호의 상부를 덮은 돌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어제 포스팅 참고). 21호는 무덤방 안에 따로 무덤방을 썼다. 22호도 비슷한 무덤구조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이를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22호 무덤, 그림의 번호는 그림 2에서 확인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22호 무덤 출토유물, 1- 청동재갈, 2-목제 재갈멈치(그리핀 얼굴이 달림),3-동물문양장식 펠트조각으로 모자장식의 일부, 4-목제 동물문양장식, 5-8: 목제 말과 사슴모양의 동물문양장식, 9-머리띠 장식, 붉은색 물감, 10-목제 화살촉, 11-목제 화살대, 12-목제 고리트 고정판, 13-청동투부, 14-청동 단검, 15-칼, 16-검은색 염색한 가죽 주머니, 17-청동단추, 18,19-허리띠 버클, 20~22: 허리띠 장식판, 23-옷의 상부장식, 24-토제 항아리, 25, 26-원판형 장식, 27-목제쟁반, 28-철제 칼, 29-무덤 시상대

 

이 무덤은 앞에서 본 무덤의 출토품과 다르다. 그냥 단순히 21번 무덤과 비교해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갈과 재갈멈치이다. 이 유적의 재갈멈치는 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대부분 21번 무덤과 같이 재갈멈치의 끝이 구형 장식이다. 그러나 22호에는 그리핀 장식이다. 무엇보다도 이 무덤의 말은 청동재갈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청동으로 만든 단검, 단추는 다른 무덤에 없었다. 

 

유물로 보아서 21호와 22호는 동 시대의 사람이라고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무덤을 덮은 것은 같은 시간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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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의 유스티드 XII유적 8호 소년의 머리에는 나무로 된 투구모양의 모자(길이 8~9cm, 두께 0.5~0.6cm)가 발견되었다. 귀부분은 따로 끼울 수 있게 제작되어서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되었고, 머리꼭대기에는 말 장식이 부착되었다.

 

이러한 유물은 이 유적의 7호분과 인접한 울란드릭크 II유적 8호와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에서만 출토된다.

7호 역시 무덤방 크기(100×79cm)가 매우 작은 무덤방으로 보아서 아이의 무덤이고 비슷한 모자를 쓰고 묻혔던 8호 남자아이와 무덤 부장품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남성아이는 전투용 칼, 목제 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었으나, 7호에는 없다. 여성아이이다.

 

2020/10/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고분 XII] -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어느 계곡의 여성과 아이무덤, 왜?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여성 1인 무덤(19호, 10호),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매장된 무덤(20호), 여자아이 2명(11호), 여자아이 1명(6호)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매장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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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 무덤방 평면도, 1-목제 쟁반 편, 2-목제 잔의 고리모양 손잡이, 3-목제 잔의 동체부 편으로 청동클립이 끼워져 있음. 4-자작나무 껍질, 5-말 모양의 조각이 붙은 목제 모자, 6, 7-산양화된 사슴조각, 8-항아리편, 9-철제 칼 칼, 10-나무상자형의 목제관, 11-목침, 12~14: 금박 편, 목제(1,2,5,6,7,10,11), 목제+청동(3), 자작나무껍질(4), 토제(8), 철제(9)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의 유물, 그림1과 번호일치

 

유스티드 계곡과는 멀지는 않지만 다른 강인 울란드리크 계곡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10~12cm(두께 0.6~0.9cm)이다. 1점은 머리상부에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다른 한 점은 없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모두 남성(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과 소년의 무덤(울란드리크 II유적 8호)에서 출토된 것으로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을 먼저 발굴했기 때문에 아마 유스티드 XII유적을 발굴하기 전에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울란드리크 III유적과 울란드리크 II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처음에 ‘빗모양 모자장식’이라고 불렸다(그림3). 사실 이 유물은 모자와 같이 입체적이지 않고 납작하다(유스티드 XII포함). 그래서 가죽이나 펠트 같은 곳에 덧대어 모자를 장식했던 유물로 생각되었다. 더욱이 두 유적에서는 머리의 위치에서 발견되지 않고, 동물모양이 붙은 것(그림 3-왼쪽)은 피장자의 가슴부위, 붙지 않은 것은 피장자와 떨어져서 목제쟁반에 놓인 곳 위에 출토되었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어린아이의 머리위에서 확인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3. 울란드리크 III유적(좌)과 울란드리크 II유적(우) 출토 모자장식

 

유스티드 XII유적의 7호분(그림 2-7)유물은 확실히 ‘빗(comb)’보다는 투구모양에 가깝다.

쿠바레프는 머리의 모자장식에 목제 동물문양을 부착하는 것은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 모자장식을 떠올렸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모자 중에서 모자부분은 펠트로 만들어지고, 상부는 화려한 상상의 동물인 그리핀이 사슴을 물고 있는 모자장식의 평면모습이 유스티드 XII유적 및 울란드리크 III과 울란드리크 I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비교할 수 없이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은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비슷한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파지릭 2호분이 이들 유적보다 이르다고 생각해서이다.

 

2020/03/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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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들 유물의 공통점은 10cm내외의 소형이며, 납작하다.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울란디크리 III유적 1호분만 성인남성이다. 출토위치도 피장자의 주변이 아니고 그릇 두는 공간에서 출토되었다. 또 모자장식에 동물문양장식도 없다. 혹히 이 남성이 아이일 때 쓰던 물건인데 그냥 나중에 발견해서 넣은 것일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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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유스티드 XII 유적에서 26기의 무덤 가운데 아이의 무덤이 10기이다. 어른과 함께 매장된 경우(4호, 8호)를 제외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이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21호를 소개하고자 한다.

 

 

21호는 19호, 25호처럼 무덤 구덩이(220×228cm)의 남쪽 빈공간에 돌을 채웠고 무덤방은 2중(바깥무덤방: 130×95, 안 무덤방: 95×58cm)으로 제작되었다. 말 1마리가 부장되었다.

 

그림 1.유스티디 XII계곡의 21호 무덤과 유물, 1-재갈, 2-재갈멈치, 3-원통형 굴레장식, 4-곡옥형 굴레장식, 5-산양화된 사슴장식, 6-말 형상 장식, 7-머리장식aigrette, 8-맹수모양의 목걸이 끝장식, 소형화된 것임. 9-여성의 장식판으로 사슴머리 동물문양장식, 10-여성 머리모양을 지지하기 위한 막대기 장식, 11, 12-장식판이 붙은 머리 장식의 부분 13, 14-맹수모양의 목걸이 끝장식, 15,16-거울, 17-칼, 18,19-장식판, 20-장식이 붙은 항아리,, 21-타원형 목제쟁반 2점, 22-목제 잔, 손잡이 모양이 고리모양, 23-검은색 물감의 범위, 24-황토, 철제(1,17), 목제+금박:2-14, 15,16-청동, 18,19-금판, 20-토제

 

그림 2.유스티디 XII계곡의 21호 유물, 번호는 그림1과 일치

 

그런데 이 무덤은 외부구조가 더 흥미롭다.

21호는 22, 23호와 함께 상부가 만들어진 것이다(그림 3). 3기의 무덤을 만들고, 내부의 흙을 채우고, 다시 그 상부에 돌을 둥글게 덮었는데, 21~23호는 연결되어 있다.

 

그림 3. 유스티디 XII계곡의 21~23 무덤의 평면도(위)와 단면도(아래)

а-무덤구덩이의 경계, б-사양토와 황토의 경계(무덤방을 덮은 흙, 하단 그림에서 확인), в-동물뼈, г-사슴뿔, д-무덤상부를 덮은 흙(돌 아래의 흙), е-돌 사이를 채운 흙, ж-무덤구덩이를 채운 흙, з-돌, и-숯(가장 오른쪽에 붙은 표식 설명 순서대로 보시면된다. 쿠베레프 도면의 알파벳 필기체)

 

 

21호는 무덤상부를 덮은 돌의 중앙에 무덤구덩이가 설치되지 않았다. 무덤구덩이를 먼저 만들었을테니 정확하게는 무덤구덩이를 약간 빗겨나서 돌을 덮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크 알라하 –3(얼음공주 무덤),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도 확인되었다. 필자는 이것도 계획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일까?

앞에서 이미 본적이 있는 여성의 모자장식(그림 2-7) 및 머리장식과 관련된 것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여성은 맞다(그림 9-9~12).

모자장식은 두 마리 산양이 마주보고 그 중앙에 사슴머리가 정면을 바라보도록 달려서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식의 아래부분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작은 펜던트를 달아을 것이다. 모자장식은 여성의 이마를 장식했던 것으로 뒤는 펠트, 혹은 가죽으로 모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비슷한 유물이 19호, 8호에서 출토되었는데 성인여성의 것이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거울도 2점, 목걸이도 2점(그림 2-8,13,14)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목걸이 중 한 점은 소형화 된 것이지만,,

 

가장 안쪽의 무덤방은 1m가 채 되지 않지만, 그림에서 피장자는 무릎이 상당히 굽은 채로 매장되었다. 그래서 무덤방 크기가 작다고 아이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

 

성인의 무덤인 19호와 25호처럼 무덤구덩이의 빈공간을 돌로 채웠고, 성인여성의 무덤인 8호와 19호에서 출토된 모자장식 등으로 보아서 키가 작은 성인 여성 일까? 예를 들면 키가 150cm가량인. 현대에도 키작녀는 많다. 혹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성.. 소형의 목걸이 끝장식은 자신이 어렸을 때 착용하던 것이지 않을까? 거울 2개는 이 유적에서 확인된 바가 없다.

여러모로(무덤의 외부, 무덤방의 구조, 부장품) 이 유적에서 튀는 무덤이다.

 

정확하게 피장자의 키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쿠바레프의 책에는 이 무덤의 주인공이 몇 세 정도인지는 적어 놓지 않아서 잠시고민해보았다. 새로운 유적에서는 DNA분석법이 필요하다. 최근에 시베리아 구석기시대 인류화석에 DNA분석법이 많이 활용된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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