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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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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동해문화권: 러시아연해주, 북한, 중국/연해주와 경남 진주'에 해당되는 글 6

  1. 2018.11.07 연해주와 한반도의 역사적 관련성에 대한 논문
  2. 2018.03.26 시니가이 문화가 내려온 경로
  3. 2018.03.25 연해주 문화가 남강 유역으로
  4. 2018.03.22 연해주 문화가 평거동으로 3
  5. 2018.03.21 연해주 문화가 평거동으로 2

지난 봄에, 경남 진주시 대평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을 소개한 바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29


이 유물은 출토될 당시에 발굴정황상 많은 사람들이 청동기시대의 것을 의심스러워 했으나, 최근에 여러 정황상 이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것이 맞으며, 한국에서 비파형동검 보다 빠른 시기에도 청동기유물이 있음을 입증하는 유물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연해주의 청동기 문화인 시니가이 문화와 관련이 있고, 시니가이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은 시베리아의 카라숙문화에서 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된 링크는 참고하시면 좋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30?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1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3?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6?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7?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8?category=737917

http://eastsearoad.tistory.com/149?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0?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1?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2?category=744369

http://eastsearoad.tistory.com/153?category=744369


논문은 올해 5월에 영남고고학보에 실렸다.




혹시 필요하신 분이나 의심스러워 하시는 분을 위해서 첨부해 두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티스토리는 10메가 밖에 안올라가서 두 덩어리로 잘라서 첨부합니다. )


2.김재윤-1-0.pdf

2.김재윤-1-1.pdf

2.김재윤-1-2.pdf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평거동 유적에서 확인된 연해주 청동기시대 문화는 어떤 경로로 내려왔을까?
 전고(김재윤 2004)에서는 남부지역(대평, 본촌리유적)을 제외하고는 중부지역에서는 미사리 유적 이외에는 확인된 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 보다 북쪽인 강원도 유적에서는 연해주 청동기시대 문화의 요소가 확인되고 있다.


그림1. 유적분포도(19: 미사리, 20: 가평 연하리, 21: 철정리, 22: 평창종부리, 천동리, 23: 아우라지, 24: 평거동)

 정선 아우라지에서는 평거동과는 달리 동체부가 긴 외반구연 발형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흥성유적과 비교된 바 있다. 지적된 아우라지 출토품은 구연부에 돌대를 부착한 토기로 분명히 구연부를 접은 평거동 출토품과는 차이가 있어 흥성 유적의 토기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우라지에서는 석기 중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것과 유사한 것이 확인되는데, 뒤에서 설명하겠다.
 철정리 C지구 1호에서는 돌대문토기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외반구연된 옹형토기와 구연단을 접은 이중구연토기, 돌류상 돌대 등은 평거동 7호 주거지의 토기 조합이 유사하다(그림2).  

그림2. 철정리 C지구 1호 유물


 이 토기 조합은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특징에 해당된다. 노보셀리쉐-4 유적의 청동기시대 층에서는 발형토기에 부착된 것으로 추정되는 타원형 돌대()가 확인되었다.  하린 유적에서는 호형토기의 동최대경 높이에 돌류상 돌대()가 부착되어 있다(평거동 돌류상 돌대가 발형토기에 두 개만 붙지 않았을 가능성은 12호 출토품(그림)가운데서 확인가능하다).
 평거동 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구연단을 접지 않고 점토띠를 부착한 토기는 평창 천동리 유적 2호 주거지에서도 돌대문토기, 부리형석기 등과 함께 출토된 바 있다. 


 토기 뿐 만 아니라 경로를 추측할 수 있는 석기가 한강, 북한강과 남한강 유적에서 출토되는데, 석촉형 석기와 곡옥형 석기이다. 이 석기가 석촉이 아닌 점은 함께 출토되는 단면이 육각형이며, 슴베가 들어간 것과는 확연 한 차가 있다 청동기시대 조기의 석기양상을 분석하면서 시니가이식 석총형 석기와 무경식만입석촉이 같이 분류(김민지 2012), 되었지만 두 석기는 단면과 평면형태, 인부 등에서 차이가 크다.


 석촉형석기는 미사리 A-1호, 아우라지, 철정리, 외삼포리, 연하리 유적 에서 출토된다. 모두 슴베가 편평하거나 약간 둥글게 처리된 것으로 단면도 편평하며, 인면을 제작한 흔적이 없다. 미사리 A-1호, 철정리 등지에서는 무경식 석촉으로 단면이 육각형인 것이 함께 출토되는데, 두 유물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우라지(그림 3-22)와 미사리 A-1호에서 출토되는 곡옥형 석기(그림3-21)도 시니가이 문화의 곡옥형 청동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모방 토제품은 곡옥형 청동기 뿐 만 아니라 청동단추(그림 3-25)도 있다. 아우라지와 미사리 유물은 연해주의 곡옥형 청동기를 모방했을 개연성도 있고, 연해주에 청동기를 모방한 토제품 뿐만 아니라 곡옥형 석제품(그림 3-43,43)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설명한 연해주 부리형 토제품과 석기는 평거동 유적 뿐 만 아니라 아우라지(그림 3-27~29), 천동리(그림 3-30) 등에서 석제품으로 출토된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석제품이 북한강과 남한강, 남강 등 광주산맥 이남에 존재한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된 무공석도도 외삼포리(20), 아우라지(15~17,19), 종부리 등에서 확인된다.


 평거동에서 출토된 장타원형 갈돌도 아우라지(그림 3-26,31) 유적에서 출토된다. 장방형 갈돌은 긴 단면이 안쪽으로 휘어지며, 짧은 단면도 장방형이다. 이는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는데, 평면형태, 장축과 단축의 단면 등은 모두 유사하다.
 따라서 강원도 철정리, 아우라지, 천동리,종부리, 연하리 등지에서 확인된 연해주의 토기와 석기는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이 모두 확인된다.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아우라지 유적에서는 흥성식 토기도 출토된 바 있다. 


 강원도에서 확인된 철정리 C지구 11호 토기는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과 유사 한 점을 미루어 판단하면, 평거동에서 확인된 시니가이 문화 동부 1유형의 토기 뿐 만 아니라 서부 2유형의 토기도 남강 유역에서도 확인될 수도 있다.
 연해주 내 혹은 북한동북부 지역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유형과 동부유형이 결합된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1유형과 2유형 사이에 돌대가 구연단에 연접한 옹형토기가 주를 이루며 서부 2유형의 석기상을 포함한 유적군이 앞으로 확인되기를 기대해 본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되는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강원도를 통해서 인간이 이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주는 단발적이지 않고 연해주의 동부 1유형부터 청동 유물이 동반된 시니가이 문화의 2유형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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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한국에서 청동기시대는 비파형동검 등장 이후에 청동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과 1~2년까지 전만해도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이다. 기원전 15세기가 한국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보는데, 기원전 8세기가 되어야 청동유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바뀔 계가 있었는데, 1996~1999년에 남강의 대규모 댐공사로 인해서 대대적인 발굴이 있었다. 그 때 대평리 옥방 5지구에서 곡옥형 청동기가 출토된 적이 있다http://eastsearoad.tistory.com/129?category=737917. 이것은 한국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유물일 가능성이 있었으나 유물의 반출관계나 출토맥락이 분명치 않아 학계에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유적 중에 하나인 강원도 아우라지 유적의 주거지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이 출토됨으로 인해서 비파형동검 이전에 이미 한국에 청동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학계는 이 자료는 신뢰하는 분위기이다. 이는 시베리아 카라숙문화로부터 전해졌을 가능성이 논의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의 청동유물 또한 비파형동검 이전의 유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옥방 5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에서도 두 시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시기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이다. 그간 연구된 바로는 비파형동검 시기에 곡옥형청동유물이 확인된 예는 없다. 그렇다면 남강 대평 유물은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의 유물로 볼 수 있다.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가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에서 전해졌을 것이라고 이미 간략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의 반출관계가 명확하지 못해서 어떤 맥락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청동기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평거동 유적에서 직접 청동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토기와 석기가 남강 평거동에서 확인되며, 특히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면 그 영향력은 대평 유적까지도 가능성이 있다.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 유적인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아누치노-14 유적과 동부2유형 수보로보 6 유적은 청동유물이 반출된다. 그 종류는 곡옥형 청동기, 청동단추, 연주형 청동유물 등 주로 소형이다. 뿐만 아니라 곡옥형 청동기와 청동단추는 토제모방품도 유적에서 출토된다.http://eastsearoad.tistory.com/144?category=737917 청동유물의 성분분석을 바탕으로 이 지역 출토의 청동유물은 바이칼 지역의 서쪽에 있는 카라숙 계통과 같다는 의견이 있다(콘코바)으며, 이는 카라숙 문화가 동진하면서 생긴 결과로 보고 있고, 기원전 13~9세기 가량의 사건이다.

 시니가이 문화에서 출토되는 청동 유물은 단추, 연주장식품, 곡옥형이다. 단추와 연주장식품은 기타 지역에서도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곡옥형은 연해주와 대평에서만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유사한 형태는 시니가이 A유적 중층 출토품이다.

 그렇다면 대평 유적에서 출토된 곡옥형 청동기는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과 관련성이 깊으며, 평거동 뿐만 아니라 남강 대평 유적으로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며 그 시기는 3300년 전 부터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은 그렇다고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의 주류가 연해주로 부터 온 문화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비파형동검은 압록강 유역과 인접한 그 지역으로 부터 들어왔으며 이로 인해서 한국은 비파형동검을 특징으로 한 청동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렇다면 연해주에서 남강 유역까지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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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평거동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 1유형과 유사하며 석기는 주로 서부 2유형과 닮아 있다. 그런데 평거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연해주 청동기 문화의 토기와 석기가 유형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이점은 필자가 평거동 유적에서 구연부 제작방법과 기형이 유사한 토기의 증거로  동부 1유형을 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이 남강 유역에서 확인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서부 2유형에서도 기형은 확인이 불가하지만 구연단에 연접해서 돌대를 부친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7호에서 이중구연옹형토기와 함께 홑구연토기가 출토되는데, 이는 서부2유형 유적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평거동 유적의 홑구연토기는 너무 작은 편이며, 소량이라는 점은 평거동 유적에서 주류를 이루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의 토기 양상이 강원도에서 확인되는 점을 볼 때 남강 유역에서도 서부 2유형과 유사한 유물이 출토될 개연성은 있다. 서부 2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철정리 유적인데, 이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앞서 지적한 대로 서부 1유형과 서부 2유형로 변화하는 가운데, 이중구연 옹형토기와 돌대문 옹형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호형토기 등장 이전의 단계 유적이 발견된다면, 평거동 유적의 물질문화 양상은 오히려 서부지역과 더 가까울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연해주의 발굴자료를 기대코자 한다.
 돌대문토기 단계의 주거지도 서북계통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는 주거지에 주초석과 석상위석식노지, 동부 2유형인 루드나야 프린스턴 3층에서 장방형의 주초석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토기의 구연부 제작방법과 주거양상만으로 반드시 서북지방 계통임을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


 평거동 유적의 연대는 표1에 제시되어 있다. 평거동 유적은 시니가이 문화http://eastsearoad.tistory.com/148 보다는 약간 늦은 시점에 시작된다. 

표1. 남강 유역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 유적의 절대연대(고민정 2011 표4 재인용)
 

따라서 앞서 살펴본 평거동의 물질문화는 대략 3300 B.P.부터 서부경남까지 시니가이 문화가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단발적이지 않았고 청동유물을 공반한 2유형까지 지속적이었을 것이다.


청동기?

물론 이 유적에서는 출토되지 않지만 같은 남강 유역의 대평유적http://eastsearoad.tistory.com/129에서 출토된바 있다.


필자는 이 유물도 시니가이 문화가 남강 유역의 평거동 유적 뿐만 아니라 대평유적에서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이미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그간 청동유물만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그 실체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았다.
평거동 유적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면 대평유적에서 곡옥형 청동기가 확인되는 것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평거동 유적에서 시니가이 문화의 흔적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쓴 글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데, 구연단을 접어서 만든 이중구연토기는 발형 뿐만 아니라 옹형도 있다고 했지만 그림(1)이 빠졌다.

그림 1.구연부를 접은 옹형토기

그림 1-1. 그림 1의 디테일
 

이 토기로 기형이 전혀 다르다. 어제 제시한 연해주의 에피스타피-1. 리도프카-1 유적의 하층 등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7호 출토 토기 가운데 높이 4cm의 저면이 장방형인 소형토기(그림 2)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에서 많이 확인되는 토기이다.


그림2. 소형토기

2. 석기  

토기 뿐 만 아니라 평거동 유적에서는 동북지방 요소로 꼽혔던 부리형 석기 이외에도 장방형 갈판, 무공석도, 곰배괭이 등도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문화요소이다. 특히 평거동 유적의 부리형 석기는 돌대문토기 단계의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비율 높다.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인 하린 유적에서는 부리형 토제품과 석제품(그림9)이 출토된다. 발굴자는 일종의 동물형 토우라고 보았다. 이 토제품과 석제품은 평면형태가 양단을 자른 반월형인데, 양단의 한쪽변이 약간 길다. 토제품과 석제품 모두 긴 쪽에는 홈을 내었고, 토제품에는 홈의 반대편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평거동에서 출토되는 부리형 석기(그림 3,4)는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평거동 유적에서 출토된 부리형 석기는 대부분 이중구연토기 및 돌대문토기와 함께 반출된다. 돌대문토기 단계의 다른 유적에서 확인되는 부리형석기와는 달리 가장 많은 출토양을 보이고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자갈돌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평면형태가 같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자갈돌을 깨어서 한쪽 면을 편평하게 하고,  한 쪽에 홈을 낸 것은 연해주의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림 3. 평거동 출토 부리형 석기

그림 4. 평거동 출토 부리형 석기

평거동 유적에서는 돌대문토기 단계에서 장방형 석도를 포함한 무공석도(그림5)가 출토된다. 3호 출토품 가운데 평면형태가 장방형 석도와도 다르게 평면형태가 주형(舟形)이며 직인에 가까운 유물이 출토된다. 3호 출토품(5-오른쪽) 중 인면의 끝이 부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견한 결과 원래 처음부터 부러진 것으로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다. 인면에서 약간 꺾여서 손잡이 부분으로 손질되었을 수도 있다(만약 발굴 과정 중에 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한쪽 끝은 뾰족하고 반대 면은 직선인 4호 출토품과 유사할 것이다). 4호 출토유물(5-왼쪽)은 장방형 석도와는 달리 한쪽 끝이 뾰족하고 다른 끝은 편평하고, 직인이다. 이와 유사한 유물은 부리형석기와 마찬가지로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인 시니가이 A유적 중층에서 출토되었다. 무공석도는 강원도 돌대문토기가 반출되는 유적인 아우라지, 외삼포리, 천전리 등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5. 무공석도

 이 외에도 평거동 5호에서는 장타원형 갈돌(그림6), 곰배괭이(그림7), 환상석기(그림8) 등이 출토되었다. 환상석기와 곰배괭이는 시니가이 A유적의 신석기시대 후기 층부터 청동기시대인 중층까지 계속해서 출토되는 유물이다. 곰배괭이(그림7)는 부리형 석기와 마찬가지로 회령 오동 유적을 중심으로 한반도 동북지방의 요소로 지목된바 있다.

그림 6. 장타원형 갈돌

그림 7. 곰배괭이

그림 8. 환상석기

장타원형 갈돌(그림6)은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에서 출토된다. 연해주에서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후기인 자이사노프카 문화에서부터 출토된다. 이 때 갈돌의 형태가 사진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안으로 안쪽으로 휘어들어 간 형태고, 작업면은 편평하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시니가이 문화 서부 2유형에서 장타원형의 갈돌이 출토된다.
 
 이외에 3호 주거지에서 관옥형 옥기와 5호, 7호 등에서 편평석부가 확인된다. 이 유물도 시니가이 문화의 2유형에서 확인되는 것이지만, 연해주 만의 것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편평석부는 압록강 유역의 심귀리 유적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림9. 시니가이 문화의 부리형 석제품(29,33~36)와 토제품(28)

그림 10. 시니가이 문화의 무공석도

그림 11. 시니가이 문화의 갈돌(45,47)과 곰배괭이(48,4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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