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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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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에 해당되는 글 1

  1. 2020.07.14 스키타이 문화 동물문양-싸우는 장면2

스키타이 문화에서 동물문양은 단독으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여러 동물이 함께 한 장면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맹수류가 우제류를 공격하는 장면과 동물이 열을 이루고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다.

먼저 설명한 문양을 ‘동물투쟁문양’이라고 하는데, 주로 호랑이, 독수리 혹은 그리핀이 사슴 혹은 염소 등을 공격하는 주제를 그린 것이다. 동물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 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파지릭 유적(그림 1)에서 다양한 동물투쟁문양이 발견되었다. 대체로 2~3마리의 동물이 한 주제로 그려진다.

 

 

그림1. 맹수와 우제류가 싸우는 장면, 동물투쟁문양(마지막 유물 제외하고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의 주제, k-카탄다 유적)

 

며 칠 전에 설명드린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여성의 오른쪽 손목 위에서도 동물투쟁문양이 발견되었다. 그 문양은 동물투쟁문양이 5마리가 등장하는데,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해서 보면 동물투쟁문양 2개가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정된 카메라로 인해서 사지가 굳은 미라의 손목 안쪽은 찍기가 힘들어서 손목 그림 중에서 특히 위쪽의 팔목 안쪽 그림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대략 사슴이 호랑이에게 물어 뜯기는 장면이 그려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림 1의 동물투쟁문양은 주로 우제류의 등을 물어 뜯는 장면이어서 판멸하기가 쉬운편이지만, 맹수의 입안에 동물머리가 들어있는 표현은 알기 힘들다.

 

여러 마리가 한 장면을 구성하는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동물투쟁문양 외에도 여러 동물이 나란히 줄을 서는 주제도 있다. 동물투쟁문양에 비해서 평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살펴보고 있는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 발견된 통나무관에는 호랑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평화롭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 사슴, 산양, 멧돼지 등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나란히 서 있는 동물구도와 투쟁문양이 함께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물투쟁문양과 열상동물문양(별로 예쁜 이름은 아니지만)이 함께 그려진 것이 바샤다르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두 동물문양장식은 100년 정도 늦은 파지릭 유적에서는 개별요소로 나타난다. 동물투쟁문양은 파지릭 유적에서 자주 확인되는 요소이다. 그런데 열상동물문양은 파지릭 유적에는 없는 요소처럼 보였으나, 5호분 남성 미라의 왼쪽 무릎 아래(그림 2)에 그려져서 확인된다. 즉 여성은 동물투쟁문양, 남성은 열상의 동물문양이 각각 팔과 다리에 그려져서 확인된 것이다.

 

*파지릭 유적 5호분 미라의 문신은 아래 포스팅참고

 

2020/07/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미라에 그려진 동물문양문신

 

2500년 전 미라에 그려진 동물문양문신

현재까지 알타이의 큰 고분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미라가 남아 있는 곳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일명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남녀, 파지릭 5호분의 남녀, 베르흐 칼쥔 II유적�

eastsearoad.tistory.com

*알려드립니다. 위 포스팅의 그림 10~13에 캡션이 잘못되어서 고쳤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그림 10~13을 파지릭 유적 2호분으로 적었는데, 5호분으로 정정했습니다. 지금의 것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마 흥분해서 눈에 헛것이 보였나 봅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동물투쟁문양이 생긴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지만, 사실 바샤다르 유적(기원전 6세기)의 예를 참고로 한다면 동물투쟁문양과 열상 동물문양은 이 유적에서부터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물투쟁문양은 파지릭 유적에서는 주로 펠트로 안장덮개의 장식으로 많이 확인되지만,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유물 중에는 금속제(그림 3)로도 많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끈에 끼워서 사용하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표트르 1세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동물투쟁문양은 알타이에서만 확인되는 것이다. 알타이 보다 아래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산에서도 ‘수수께끼 그림’으로 불리는 여러 마리 구도의 동물문양장식이 헴칙 봄, 타스몰라 유적 등에서 확인되지만 알타이의 것과는 다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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