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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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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말이 매장되어서 말과 인간은 혹은 동물과 인간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드린 벽걸이의 오른쪽 모퉁이 하단에 그려진 남성 때문이다. 남성이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쓴 사슴뿔 모양이 달린 모자는 말 머리에 올라가는 것과 흡사했다.

 

말은 스키타이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재물이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키타이 말은 치장되었다. 주로 동물문양장식으로 치장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물도 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는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드렸는데, 그 중에서 동물문양이 아닌 원형 모티브의 장식이 붙은 굴레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와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유물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이 문화에서 말이 풀 착장된 것은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물론 필자가 지금껏 계속 소개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이....

필자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가운데서 큰 나무 아래에 3인이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유물을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 유물에는 말 2마리가 거의 반을 차지 할 정도로 크게 표현되어 있다. 말은 쌍둥이처럼 똑깥이 표현되었는데, 재갈이 물려져 있고, 굴레를 착용하고 있으며, 안장과 안장덮개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말은 측면으로 표현되었는데, 말의 굴레는 얼굴 길이방향 대로 향하는 끈과 얼굴을 가로지르는 방향의 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방향의 굴레는 귀 아래의 이마와 코 사이를 지나가면서 중간에 장식이 붙어서 이마와 콧잔등을 장식한다(그림 1).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황금유물은 크기가 가로 16.1cm, 길이가 12.3cm밖에 지나지 않지만 매우 대단히 정교하게 말이 표현되어 있고, 말의 굴레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파지릭 고분에서 출토되는 말의 굴레와 거의 유사하다. 굴레에 붙은 장식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사실은 용도가 있다. 이 부분은 가로와 세로 끈이 교차되어서 묶음이 생기는 부위이다. 황금유물의 굴레 마디에는 구멍이 3개(한마리 기준) 있는데, 다른 보석류 들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파지릭에서 출토된 유물은 굴레장식은 대부분 목제로 제작되었고 그 위를 금박해서 입힌 기법이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 말의 가슴장식과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유물에 표현된 말과 파지릭 5호분의 벽걸이 일부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그림 1의 유물을 착장한 말을 앞에서 보면 이마, 콧잔등에 장식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파지릭 문화에서는 가슴에도 장식이 붙어 있었다. 왜?

그렇다. 굴레장식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장식+기능이 있다.

말의 안장을 고정하기 위해서 말의 가슴과 안장을 연결하는데, 그 부위에 장식물을 부착했다(그림 2). 5호분에서는 열매처럼 생긴 장식물과 반원형의 목제장식이 확인되지만, 많은 말에서 동물송곳니 모양의 장식물을 부착한다. 그리고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해발 1500m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2500년 전 알타이에는 무덤 안에 말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파지릭 5호분에는 말 9마리를 먼저 밀어넣고, 마차를 분해해서 함께 묻었다.

말은 말의 역할에 따라서 재갈, 굴레장식, 안장, 머리장식까지 착장했다. 말과 관련된 장신구의 컨텐츠는 모두 동물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이미 소개해드린 바 있는 안장과 말머리 장식에도 어김없이 동물문양장식이 곳곳에 표현되었다. 안장에는 호랑이와 사슴이 조각되어 있었고, 머리장식은 사슴의 뿔이 장식되어 있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스키타이 문화에서 동물문양은 크게 굽동물, 맹수, 맹금류가 경우에 따라서 조합된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는 말이 9마리 출토되었고 그 가운데 4마리에는 굴레, 안장이 착장되었고, 1마리는 이와 함께 말 머리장식까지 확인되었다.

말 굴레 장식 중 2개체는 동물문양장식이 아닌 원형 모티브 이다. 1개체분은 매듭부분만 남아 있고(그림 1, 2). 다른 1개체분은 전체가 남아 있다(그림 3). 그림 3은 잘 남아 있는 말의 굴레인데, 동심원 3개를 표현했다. 재갈멈치의 끝장식도 원형 모티브이다. 이 말 굴레는 펠트로 제작된 안장덮개(그림 4)가 함께 세트를 이룬다.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1개체 분 중 하나는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인 Y자형에는 늑대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재갈머리는 호랑이의 두상이다. 호랑이와 늑대는 단순하지 않고, 귀 모양이 실제와 다르다(그림 5). 이 굴레는 그림 6의 안장덮개와 세트이다(그림 6).

  산양(Saiga)머리로 장식된 굴레(그림 7)도 확인된다. 굴레에는 산양머리 7개체분, 재갈멈치의 끝에 각각 한 개씩 장식되었다. 동물문양장식은 굴레에 전신이 달리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머리만표현되었다. 이마를 장식하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고, 콧잔등은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산양머리로 장식되었다. 이 굴레장식은 안장(그림 8)과 안장덮개(그림 9)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안장은 안장의 전단부와 후단부가 대칭을 이루고 반원형의 장식에는 말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말 안장의 기본제작 방법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유물과 같으나,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다.

  머리장식이 있는 말은 굴레(그림 10)장식의 그림 5(1,2,5,)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이 굴레장식은 재갈멈치의 끝에 달린 맹수머리의 입이 차이가 있다. 그림 8의 재갈멈치 끝에 부착된 맹수머리의 입은 독수리 부리가 달려 있어서 그리핀에 가깝다. 그림 8의 굴레는 사슴, 맹수, 그리핀과 늑대가 조각된 것이다. 사슴 사이의 맹수머리는 그림 5-3, 4가 이 굴레장식의 것이다. 그림 8의 굴레장식을 착용한 말은 다른 말과는 달리 머리 장식(그림 12)을 착용하고 있었고 실크로 된 안장덮개가 있었다(그림 11). 안장덮개는 얇은 실크로 새와 꽃이 수 놓아진 것이었다. 이 말의 안장은 그림 13이다. 이 말이 무덤에서 가장 아래에 있었고 I번 말로 지칭되었으며 마차를 선두에서 리드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1)

 

그림 2.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그림1과 동일

 

그림 3.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그림 4.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덮개, 그림3과 세트

 

 

 

그림 5.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 그림 6과 세트인 굴레장식은 1,2,5.

 

그림 6.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덮개, 그림6과 세트

 

 

그림 7. 파지릭 5호분출토 말의 굴레장식, 산양머리가 장식됨

 

그림 8. 파지릭 5호분 출토 그림 7과 세트. 말의 안장

 

그림 9. 파지릭 5호분 출토 그림 7,8과 세트, 말의 안장덮개

 

그림 10.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굴레, 그림 11~13과 세트

 

그림 11.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안장덮개, 그림 10, 12,13과 세트

 

그림 12.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머리장식(3,4), 그림 10, 11, 13과 세트

 

그림 13.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안장, 그림 11~12와 세트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나라의 TV는 점점 커지고 벽에 딱 붙일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냥 TV라기 보다는 벽을 장식한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주변의 환경도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바란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 였던 것 같다. 2500년 전에도 확인된다.

 

우리는 앞에서 파지릭 5호분에 한 통나무관 속에 남녀가 함께 묻혔고, 미라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표현된 캐노피가 확인되었다. 펠트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4.5×6.5m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은 이 무덤만으로 단독으로 특별전을 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데, 마차와 함께 이 벽걸이 덕분이다.

 

그림 1.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사진. 벽걸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트제품.

 

그런데 캐노피는 무덤방의 바깥에 마차 위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무덤방이 2개인데, 외부의 무덤방 크기가 3.4×6.42m, 내부는 2.3×5.2m였다. 이 캐노피는 무덤방 크기보다 좀 더 크다. 아마도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랴즈노프는 실제로 무덤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았다(그림 2).

 

그림 2. 그랴즈노프(1958)가 복원한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내부, 그런데 이 복원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붙어 있는 백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벽걸이에는 말을 탄 남성과 의자에 앉은 여성이 한 쌍으로 두 단으로 나누어져서 반복해서 표현되었다(그림 1, 3).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1958)

 

 

 

말탄 남성과 여성은 머리가 불규칙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남성의 코가 크며, 검은 곱슬머리이다. 여성의 얼굴은 상당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여성스럽지 않지만, 코에 수염을 표현하지 않고, 머리를 민 것으로 보아서 여성이다. 복장도 그렇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표현된 점은 또 다른 곳은 귀이다. 남자의 머리 아래에 귀가 가려져 있고, 여자는 귀의 바퀴가 반대로 표현되었는데, 루덴코는 우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림4). 앞에서 설명드린 파지릭 5호분에서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 측량치가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렸다.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상세(그림1,3의 상세).

 

말탄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망토와 좁은 바지, 꽉 맞는 목이 높은 칼러 자켓이다. 그러나 말은 알타이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꼬리 장식, 안장, 굴레장식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왼쪽 다리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대표적인 무기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다. 고리투스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을 일컫는다.

여성은 발목까지 오는 긴 일종의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삭발한 채로 머리장식을 착용한 상태이다. 이 여성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는 무덤에서 확인되는 목제 상의 다리와 같은 모습이다(그림 4). 흥미로운 점은 여성의 오른손과 왼손은 모습이 다른데, 한 손은 꽃 다발을 쥐고 있고, 다른 손은 입을 가리기 직전 혹은 가리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4).

 

그림 1과 그림 3에서 가장 오른쪽의 모퉁이 하단은 그림이 다르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시는지?

 

위의 주제는 불사조인 피닉스(그림 5의 왼쪽)이고, 아래 주제(그림 5의 오른쪽)는 남성이 사슴뿔이 달린 머리장식을 달고, 사슴 옷을 입은 모습이다. 스핑크스라고 괴물이라는 주장(루덴코 1953)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남성은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머리장식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확인된 모자 장식에서 확인가능하다.

아무튼 이 주제는 스키타이문화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학자들의 주장대로 피닉스의 발 아래에 표현된 꽃이 페르시아지역에서 유래된 문양이라고 해도 컨텐츠만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루덴코도 이 캐노피의 해석은 알타이적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요소와 내면적인 요소가 잔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5.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 부위의 피닉스?(왼쪽)와 반인반수(오른쪽)

 

 

참고문헌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 96 с.(그랴즈노프 1958, 알타이의 고대 예술)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В Эрмитаже открылась экспозиция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Дни Эрмитажа начались в Северной столице. Одно из главных событий в череде мероприятий - открытие в музее новой постоянной экспозиц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памятников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Она рассказывает об истории и культуре племен скифс

rg.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 (2010년 신문)

 

그림 2.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2(2010년 신문)

 

그림 3. 2500년 전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아즈벨레프 2019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해발 1500m 파지릭 5호에서 무덤구조를 보았다. 저의 포스팅을 계속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필자가 이미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이 무덤에는 마차가 출토된다. 마차를 통으로 넣기는 했는데, 완벽한 모습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분해해서 넣었다. 무덤에서 무덤방과 남쪽 벽 사이에서 마차의 난간이 확인되는데, 이는 처음부터 분해된채 들어갔을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무덤속에 분해한채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야기 드린다. 마차가 통으로 들어간 무덤이 나오는 지역은 시베리아 보다 서쪽에 위치한 곳이고,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료를 공개하도록 하겠다.

 

2500년 전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사륜마차 혹은 전차는 관심의 대상이다. 나무줄기에서 잘라낸 원시적인 고체바퀴가 아니라, 바퀴는 회전축과 다용도 바퀴살(34점), 바퀴둘레가 있는 마차이다. 바퀴의 둘레는 한판이 아니라 여러 개를 이어붙였다(그림 4-1).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는데,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차축으로 구성되었다. 여섯 개의 수평판자, 몸체, 캐노피, 멍에와 고삐를 달리 위한 고리로 연결되었다.

 

마차의 하부구조는 직경이 1.5m인 바퀴 4개가 고정축에 장착되었으며, 6개의 스프링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고정축의 끝에는 일종의 차축이 별도로 제작되어 부착되었고, 앞 바퀴와 뒷바퀴 사이에는 막대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그림1, 3). 차축은 원통형모양이다.

마차의 하부 구조위에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앞에는 운전자를 위한 좌석이 얇은 나무판자로 제작되었고, 등받이 부분에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조각된 플랫폼이 배치되었다. 등받이 부분의 플랫폼은 현대의 난간 모양인데, 마차 운전석 뒷면 사방에 둘러져 있다(그림1, 3). 운전석 뒷부분 난간 뒤에는 높은 기둥을 올리고 마차의 뚜껑을 덮는 구조로 구성되었다. 뚜껑은 얇은 판자를 묶어서 덮었으며, 운전사 뒷자석과 가까운 낮은 곳에도 유연하게 묶은 나무막대기를 묶어서 돌렸다. 마차의 부속품들은 아주 단단하게 묶은 것은 아니지만,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차는 앞에 포크처럼 달린 길이 3.2m의 두 개의 막대기로 말 두 마리가 끌 수 있다. 두 개의 막대기는 길이 1.6m의 막대기로 고정되어 있다(그림 2의 오른쪽).

 

 

그림4. 1952년 파지릭 5호분의 복원하는 모습 바퀴(1)와 마차의 상부지지프레임(2) (국, 니콜라예프, 2012)

 

 

마차 바퀴는 분해된 채 발견되었다(그림 4-1). 마차가 분해된 채 무덤속에 넣어진 것은 무덤에서 확인되는 배치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었는데 말이나 황소가 산길을 따라서 끌었을 것이다. 마차는 부피가 컸기 때문에 산이라도 길이 있는 비교적 편평한 곳에서 운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차의 전체 길이는 3.05m, 바퀴는 1.95m, 높이는 2.65m이다(그랴즈노프 1955).

 

그런데 마차의 바퀴 끝에 끼운 원통형 모양의 축은 길이가 대략 35~40cm인데, 마차가 확인된 5호 무덤 외에도 1~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실제 마차는 5호에서만 확인되었다.

 

2500년 전 마차도 대단해 보이지만,  시베리아에서 마차의 존재는 이보다 더 오래된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 문화 바위그림에서 확인되고, 카라숙문화에서는 마차의 부속품 등이 출토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Грязнов М.П. 1955,  Колесница ранних кочевников Алтая // СГЭ. 1955. Т. VII. С. 30-32.(그랴즈노프 1955, 알타이의 초기 유목민의 마차)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2012, Повозк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Книга 2. CПб: ИИМК РАН, «Периферия». 2012. С. 454-457(국, 니콜라예프, 2012, 파지릭 유적 5호분의 마차)

Азбелев П.П. 2019,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 С. 279-286. (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의 백조)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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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을 중심으로 기원전 5세기 가량에 확인되는 문화는 ‘파지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지릭 유적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다. 1920년대부터 발굴되었으며, 1947~1948년에 대부분의 대형고분이 발굴되었다. 파지릭 5호분은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며 대형고분이다. 남녀 미라 2구와 마차, 말 등이 확인되어서 특별한 무덤으로 생각된다.

 말은 9마리 부장되었고 그 가운데 굴레장식이 있는 말은 모두 4마리이다. 아직 말과 관련된 유물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 중에는 다른 유적에서 보이지 않는 유물이 있다. 아시다시피 말은 재갈을 채워야 부릴 수 있는데, 입에 물리고 고삐를 연결하기 위해서 재갈멈치가 필요하다(링크된 첫번째 포스팅 참고). 사실 재갈멈치와 굴레는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재갈멈치와 굴레는 장식이 없는 유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도 그리핀이 주요한 굴레장식의 컨텐츠였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은 위의 유적과는 달리 대형고분이 대부분 도굴된 채 발굴되었기 때문에 굴레장식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2호분도 그러했다. 파지릭 5호분에는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는 대부분 Y자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코크 고원에서는 대부분 선을 조각하는 정도 였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는 늑대가 조각된 ‘Y’형 고리(그림 1-5)가 확인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5호분의 굴레장식. 이 그림을 이해하시려면 이미 포스팅(아래참고1) 된 아크 아랄하 3유적의 말 굴레장식을 보시면 됩니다.호랑이(표범)과 늑대의 구분은 주둥이가 긴 것을 늑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림 1-5의 늑대는 귀에 뿔이 달려 있어서 흥미롭다. 동물문양장식에서 동물의 눈과 귀 표현은 규칙성이 있는데, 이 유물은 늑대의 귀가 아니다.

 

다시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필자가 스키타이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의 표를 제공해 드린바 있다. 아주 광대한 지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아래 포스팅-그리스장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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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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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문화권에 대한 포스팅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단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기와 마구의 어느 부위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의복류에 부착되는 종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어떤 동물이 대상이 되었을까?

크게 우제류 라고 불리는 굽이 붙은 동물, 맹수류, 맹금류로 구분된다. 굽동물은 사슴, 말, 산양, 염소가 자주 확인되고, 야크와 낙타도 드물지만 있다. 맹수류는 표범 혹은 호랑이, 늑대가 있다. 곰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필자는 보지 못했다. 맹금류는 독수리이다. 또 한 동물이 있는데, 깍두기 같은 멧돼지이다.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맹수류와 굽동물을 조합하고 독수리 날개를 붙이면 그리핀이 된다. 멧돼지는 그리핀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마리가 전신, 반신, 두상으로 표현되지만 두 마리가 한 번에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스타일로 구분되는데, 두 마리가 물고 뜯고 싸우는 주제와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서로 물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한 마리가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도 있다. 전자는 주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후자는 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금속으로 제작되고 벨트의 장식이 된다. 후자는 사람이나 말의 모자장식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은 평면형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직사각형 모양(그림 2-1)이거나 한쪽은 직사각형이고 다른 쪽은 원형(그림 2-3~8)에 가깝게 표현된다.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규칙이 있다. 필자는 그런 규칙성은 대상 동물의 선정, 용도에 따른 표현방법, 용도에 따른 평면형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2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가 그림 2-7,8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콜렉션. 길이 12.3cm, 너비 151.2g. 그림 2-8과 같은 유물.

 

그림 3에서 보시다시피 이 유물은 대칭으로 구성된 또 다른 장식판과 쌍(그림 2-7)을 이룬다. 뒷면에는 4개의 고리가 땜질로 부착되어 있었다. 동물의 몸체에 있는 삼각형과 원형에는 색깔이 있는 보석류를 끼워넣었다. 이 유물은 벨트 장식으로 보기도 하고, 마구장식, 칼집장식, 옷의 장식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동물은 자세가 S로 하반신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 말을 공격하는 동물은 사자몸통 및 얼굴+날개+영양의 뿔이 조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그리핀 가운데 호랑이나 표범이 아닌 사자얼굴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원래 서양미술에서 알려진 그리핀은 페르시아 혹은 그리스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으나, 기원전 4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졌고, 이미 시베리아 알타이에서는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된다. 물론 이 그리핀은 호랑이 혹은 표범과 굽동물이 결합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타이에서도 사자의 모습을 한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재지의 컨텐츠가 아닌 수입된 것이다. 매우 먼? 거리와 서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의 페르시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위의 링크된 포스팅의 표에서 확인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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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속에 사람 뿐만 아니라 말도 함께 매장했다. 이런 무덤이 확인되는 곳은 해발 1500m의 파지릭 계곡, 2500m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다. 전자에는 파지릭 유적, 후자에는 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자아이의 무덤인데도 말이 부장되었다. 유목을 기본으로 하는 생업환경에서 동물은 그들의 재산이자, 문화 전반에 동물에 대한 표식이 남아 있다.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은 9마리 매장되었다. 9마리 가운데서 1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갈을 비롯한 굴레, 안장, 머리장식을 착장했다. 말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가장 아래에서 확인된 IX번 말이 머리장식까지 있어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무덤안에 4륜 마차가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끌던 말이라고 생각하면, IX번 말은 가장 선두였을 가능성이 크다.

 

무덤구덩이는 기본적으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남는 공간을 이용해서 매우 좁다. 말 9마리와 마차를 부장하기 위해서 층층이 쌓아서 넣었다. 무덤방의 바깥에 무덤위의 돌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직으로 세운 세 개의 기둥이 기준이 된다. 무덤구덩이의 북쪽에서 동쪽 절반은 세 마리 말이 머리 방향이 동과 서로 교차되게 해서 묻혔다. 가장 아래의 말은 IX번 말로 머리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배는 바닥에 깔고 있고, 그 위에는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등을 아래말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다시 그 위의 말은 머리가 서쪽으로 향하고 등을 아래로 향하도록 배치되었다. 기둥 뒤에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IV번 말만 넣었다. 기둥을 넘어선 서쪽에는 말 3마리가 쌓였는데, 가장 아래의 VIII번 말은 배를 바닥에 깔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 위의 말은 등을 바닥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동향이다. 말 위에는 마차가 분해한 채로 부장했고, 그 남은 공간인 가장 서쪽에 말 2마리가 서로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해서 부장되었다. 위에 있는 말은 말 머리가 무덤구덩이의 입구로 향하고 등이 하늘로 보도록 하는 자세이다.

 

말은 매장할 때 관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매장된다(그림 1, 그림2). 관의 방향이 동서방향이면, 말도 동서방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 통나무관은 모두 동서방향이고, 사람의 두향은 동향이다. 5호를 제외하고는 말의 머리장식이 있는 다른 무덤의 말은 모두 동향을 향하고 있다. 1~3호분에서는 말 머리 장식이 2개체분 출토되었고, 4호와 5호는 하나씩만 출토되었다. 그러나 5호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말 머리 장식이 있는 IX번 말의 두향은 서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말과 인간의 두향에서 규칙성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루덴코의 설명은 관이 동서방향인데, 말이 남북방향으로 매장되지 않는 것이다(그림 1, 2).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말의 두향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루덴코가 상트페테르부르그 출신이고 유럽인이어서, 동양인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자는 자는 방향을 바꾸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꿈을 심하게 꾼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자는 방향을 바꾸면 더 심해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옛날에도 있었을 테고, 두향에 대한 관념도 정해져 있었을 텐데....이런 부분은 알 수 없다.

 

 

     말 번호->

말 장식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재갈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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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안장

 

 

 

 

 

머리장식

 

 

 

 

 

 

 

 

표1. 파지릭 5호분의 말 장식(김재윤 편집)

 

위의 표는 루덴코의 서술에 따라서 말과 관련된 마구를 표로 만들었다. 의문점은 말을 부릴 때 가장 핵심인 재갈에 대한 설명이 애매하다. 애매한 부분은 물음표로 표현했다.

 

그림1.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내부

 

 

그림2. 파지릭 5호분의 무덤 구덩이 단면도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고학 환경에서는 무덤의 두향방향은 거의 연구되지 않는다. 전 시대는 아니고 선사시대가 특히 그렇다. 왜냐하면 토양특성상 인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몇 몇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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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 안장덮개와 크루퍼

 

그림 2.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머리 부분. 그림1의 상세사진.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말이 9마리 사람 2인과 함께 매장되었다. 2인 중에서 누구의 안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장과 안장덮개이다(안장은 4개 출토되었다). 가죽으로 제작되었으며 사슴털을 이용해서 꿰매었다. 안장의 앉는 부분에는 중간에 건초를 넣어서 푹신하게 했다. 앞면인 안장머리 부분과 뒷면에 2개의 타원형 지지대(그림2)가 있고, 무릎 혹은 엉덩이쪽으로 패널이 붙어져 있다.

지지대에는 사슴이 몸을 뒤튀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중앙에 패널도 부착되었다. 패널에는 그리핀 혹은 맹수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그림 3-3~5).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새겨졌는데, 맹수인지, 새의 얼굴에 맹수가 조합된 것인지는 구분이 힘들다. 패널은 4개(그림1) 모두 맹수 혹은 그리핀머리가 새겨져 있고, 엉덩이의 크루퍼와 연결된 패널에도 끝 부분의 장식(그림 3-7)도 같은 장식이다. 안장의 지지대 위에도 호랑이의 머리조각이 각각 5마리씩 안장머리에 10마리(그림 3-6)부착되었다. 안장뒷부분에는 정확하지 않지만 머리조각을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의 부속품

 

스키타이 문화의 안장은 단단한 프레임과 포멜은 없었지만 오늘날 안장의 모든 요소가 이미 다 있다. 땀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안장덮개, 고삐끈, 복대, 등자쇠, 가슴밴드, 크루퍼까지 모두 다 있다. 크루퍼는 안장 뒷부분과 말 꼬리를 연결하는 스트랩이다.

크루퍼는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지 않는다. 아래의 위키페디아에서 현대 크루퍼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림 1에서 안장의 뒷 부분에서 패널과 연결된 U자모양의 끈이 크루퍼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Crupper

 

이 안장은 지지대가 낮은 편이다. 그림 1을 자세히 보시면 안장을 덮은 붉은색 가죽이 있다. 가죽에는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이 부분은 안장덮개로 땀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사슴가죽이고, 말총을 이용해서 덧 붙인 것이다. 이 안장덮개는 얇은 끈으로 안장과 연결되어 있다.

안장덮개에 덧 붙인 정사각형의 패널은 사슴가죽을 말총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땀을 흡수하기 위한 천은 안장의 안쪽에 부착되었다. 그 위에는 파란색털과 광택이 나는 붉은색 삼각형, 긴 네모꼴의 가죽 아플리케를 덧붙인 것이다. 원형의 금빛 나는 못이 아플리케를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붉은 정사각형에는 4개의 꽃잎과 1개의 원형 못이 박혀서 꽃모양으로 덮고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 가량이지만, 스키타이문화에서 말안장은 기원전 7세기 가량부터 확인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사진은 좀 그렇습니다..내용상.....

 

 

2500년 전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나의 통나무관에 매장되었다. 2호분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되었다. 2호분은 40대 가량의 여성과 55~60세 가량의 남성이었다. 골격의 특징으로 보아서 몽골로이드로 판명되었다. 요즘 같으면 DNA분석법을 썻겠지만, 1947년에 발굴하고, 1953년에 나온 단행본에서는 형질인류학적인 분석에 의존했다.

 

5호분의 남성은 대략 55세 가량이다. 그런데 2호분의 남성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고 한다. 머리크기는 중간정도인데(두개골 계측치 78), 이마는 높고 길고 턱이 돌출되었다. 광대뼈는 넓은 편인데, 그렇게 돌출되지는 않았다.(광대뼈 사이의 직경은 146mm)이다. 코는 길고 좁으며(32×54mm) 강하게 돌출되었다.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니아 강 사이가 민족의 기원지로 밝혀진 오늘날 카자흐인과 키르기즈스탄 인의 얼굴 가운데서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이 남성의 키는 175~176cm이다. 이 남성의 머리색은 검고 약간 곱슬기가 있는 편이다.

5호분의 여성에 대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고, 미라처리에 관한 부분만 남아 있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통나무관에서 확인된 남성의 모습

 

 

5호분의 남성은 미라처리를 했으나, 2호분의 미라와는 다르다고 했다. 어떤 점이 다를까?

 

미라처리를 했다는 말은 두개골의 뇌를 제거했고, 신체에서도 근육과 장기등을 제거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남성의 두개골 뒤쪽에는 정수리에서 약간 왼쪽을 통해서 뼈를 잘라내었다. 11cm가량으로 꿰맨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남성의 뒷면은 목 아래 3cm 척추까지 세로 절개선이 남아 있다. 이 절개면은 어깨를 가로지르는 절개면과 교차된다. 어깨부위의 절개면은 5cm간격으로 꿰매었다. 목 부위의 절개면은 어깨면을 묶은 끈 보다 가는 끈을 이용했다(그림 2).

몸에는 겨드랑이에서 갈비뼈까지 절개한 흔적이 있는데, 말총으로 꿰맨 흔적이 선명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신체에 절개흔적이 남아 있고 말총으로 꿰매었다. 가슴의 피부는 겨드랑이 부분에서부터 여섯 번째 갈비뼈까지 찢어진 상태이다. 흉부의 절개면 9cm아래에서부터 복부 절개가 시작되는데, 배꼽 오른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타구니까지 남아 있다. 배꼽 옆에는 2~3cm가량의 작은 절개면이 있다(그림3).

팔의 절개면은 겨드랑이 안쪽에서부터 팔꿈치 안쪽까지 있다. 손과 손가락 바깥쪽에도 절개면이 남아 있다. 손근처와 팔뚝 바깥쪽에 길이 4~5cm가량의 절개면이 남아 있다. 남성의 오른손의 중지와 남성의 성기를 관통해서 실로 묶였다.

하반부의 천골 안쪽 가장자리로부터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까지 절개면이 연결된다. 무릎 뒤에만 3~4cm 간격이 남아 있다. 발목뼈에서 둘째 발가락까지 이어지는 절개면이 있다.

남성의 몸에 있는 절개면은 모두 말총꼬리를 사용했는데, 손가락을 고정시키는 부분에만 양털을 이용했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의 남성 두개골 뒷모습

 

그림 3. 파지릭 5호분 남성의 전신

 

 

여성은 엠블링하는 방법이 약간 달랐는데, 두개골은 측두골과 두정골 사이의 왼쪽에 남아 있는데, 절개면은 꿰매져 있었다(그림 4). 후두부에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2개의 절개면(4cm, 10cm)이 남아 있다. 오른쪽 관자놀이의 귀 앞과 왼쪽 뺨에도 절개면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목과 쇄골에는 반원형으로 절개되었다.

몸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가슴 양쪽 겨드랑이에서 유두부위까지 절개면이 남아 있다. 흉부의 가장 아래쪽에는 오른쪽 배꼽과 장골 뼈를 통과하는 절개면이 있는데, 치골과 대퇴골 사이의 허벅지 안쪽에서 마무리 되었다. 팔에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겨드랑이에서 손까지 절개면이 잇는데, 팔꿈치 뒤에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손에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절개면이 남아 있다.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한 모습이다(그림 5). 

여성의 등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양쪽 어깨에 절개면이 있고, 목과 척추에 세로의 절개가 있다. 목에는 절개면이 10cm, 척추에는 6~7cm가량이다. 왼쪽과 오른쪽 천 골 아래에서 다리까지 무릎 부위 4~5cm정도만 제외하고는 절개되었다. 왼쪽 다리에는 절개면이 하나 더 있다.

 

그림 4. 파지릭 5호분의 여성 뒷모습

 

 

그림5 . 파지릭 5호분의 여성미라

 

파지릭 2호분의 미라와 다른 점은 파지릭 5호분의 남성은 근육을 모두 제거 했지만, 2호분은 그렇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 모두 절개면을 말총으로 꿰매었다. 남성의 손을 묶는 부분만 양모를 사용했다. 미라의 처리를 할 때 꿰맨 흔적을 말총으로 하는 것은 같은 시기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일명 얼음공주)도 마찬가지였다.

 

루덴코는 절개를 하고 근육을 제거한 것은 방부제를 바르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바르코바의 연구에 따르면 파지릭의 미라 피부와 머리에는 송진과 밀랍을 사용했는데, 송진은 특히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다마르(dammar)와 셀라크(shellac) 라는 것이 밝혀졌다(바르코바,  고흐만 2001). 미라 처리할 때 쓴 발삼 물질이 밝힘으로써 교류지역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폴로스막은 더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 중국과 접하면서 살던 사람들은 발삼을 대신 다른 물질을 이용했다고 한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되는 남성와 여성미라의 몸의 수많은 절개면은 근육제거를 위한 것도 있지만 피하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클 수도 있다. 가장먼저 부패가 시작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 고분의 미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의 블로그를 계속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스키타이 문화에는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통나무관이 매장되었다. 2500년 전의 알타이 산에서 확인되는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모두 확인된다.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중에서도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5호분은 그간에 소개해 드린 무덤과는 달리 마차가 들어가 있어서 좀 다른 양상이다.

잘 알려진 대형의 고분은 도굴이 심하다. 아시다시피.

하지만 도굴꾼은 마차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무덤방 밖의 말과 마차가 부장된 공간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무덤방 내부의 통나무관과 그 안의 유물에만 탐을 낸 것 같다. 왜냐하면 아래 포스팅에서 보시겠지만 무덤의 단면에서 살펴본 모양은 무덤방 천장에만 구멍을 냈다. 만약에 무덤방 바깥의 말과 마차공간에도 손을 대었다면, 무덤을 덮은 돌이 흐틀어졌겠지만, 무덤상부의 함몰은 무덤방의 중앙에서만 관찰된다.

도굴꾼은 실망했을 것이다. 황금이 가득찬 무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덤방 안은 거의 텅텅 비었고, 통나무관 안에도 황금 유물 대신에 목제 혹은 목제에 금박을 씌운 유물정도만 확인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덤방은 이중으로 내부에 있는 2차 무덤방의 크기는 5.2×2.3m, 높이는 1.4m, 외부의 1차 부덩방의 크기는 3.4×6.42m,높이는 1.68m가량이다. 2차 무덤방의 바닥에는 6cm 너비의 나무판은 13개 깔려 있다. 2차 무덤방의 벽은 8개의 통나무, 천장은 13개의 통나무. 외부에 있는 1차 무덤방의 벽은 10개의 통나무, 천장은 18개의 통나무로 구성된다.

이 무덤이 다른 무덤과 구분되는 점 중에 하나가 무덤방의 통나무를 그대로 쓰지 않고 무덤방 내부는 편평하게 다듬었다는 점이다. 1차 무덤방과 2차무덤방 사이를 지지하는 나무상자는 다른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무덤구조에서 또 다른 점 중에 하나는 무덤방의 남쪽 방향 일종의 창(그림 2)이 있는데, 이곳으로 통나무를 한 다발 가로질로 넣어서 통나무관의 뚜껑을 누르고 있다(그림 1-21). 무덤방의 하중을 견디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루덴코의 책에는 설명이 없었지만, 무덤방에 창을 만들고 일부러 넣었다는 점에서 하중을 견디기 위한 구조라고 생각된다.).

 

2020/04/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 2500년 전 관은 하나, 사람은 두 명

 

시베리아 알타이 2500년 전 관은 하나, 사람은 두 명

무덤구덩이를 덮은 돌은 가장 상부에는 큰 돌이고, 그 아래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돌을 채워넣었는데, 3톤정도 된다. 그 아래에는 통나무가 층층이 쌓여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통나무 층 가장 아래에 도굴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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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포스팅에서 무덤의 단면도에 1번 나무상자가 1차무덤방과 2차무덤방을 지지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두번째 나무상자이다.

 

그림1.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내부

1. 마차바퀴의 축, 2: 관 뚜껑; 3: 안치된 시신; 4-마차바퀴의 지지대, 5-사다리, 6-안장덮개, 7-9: 마차바퀴의 부속품; 10-말; 11-카펫에서 풀린 실타래; 12-액체 담는 토기의 파편; 13-펠트조각; 14-양 가죽; 15-목제 상 다리; 16-막대기; 17-뼈로 만든 북; 18-펠트제 베개; 19-손잡이가 나무인 뿔 그릇; 20-여성의 머리장식; 21-끈으로 묶인 나무판; 22:무덤방의 일부 목제; 23: 마차 부속품

 

 

 

그림 2. 파지릭 5호분의 2차무덤방(안의 무덤방)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방 안에는 주로 확인되는 유물은 정해져 있다. 토기(액체담는 그릇), 뿔 그릇, 나무 그릇과 같은 그릇 종류, 목제 쟁반(아크 알라하 1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혹은 다리가 있는 상(파지릭 2호분 파지릭 5호분)은 공통적인 듯 하다.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 및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없었지만 파지릭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 중에 하나는 악기이다.

파지릭 2호분에는 일종의 하프가 확인되었고, 파지릭 5호분에는 뿔로 만든 드럼 모양(그림 3)의 악기가 확인된다. 무덤방의 유물이 관 안에 있었는지 관 밖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 밖에(그림 1-17)서 확인되었다.

 

2020/03/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 무덤에서 나온 스키타이 문화의 악기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 무덤에서 나온 스키타이 문화의 악기

러시아의 상트페트르부르그 시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근현대 유명화가의 그림부터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물까지 없는게 없어서 ‘박물관’이라는 뜻이 딱 맞는 곳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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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파지릭 5호분 출토 뿔로 만든 북

 

기원전 5세기 가량에 현악기(파지릭 2호분)와 타악기(파지릭 5호분)가 이미 존재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마차와 악기는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알타이의 다른 유적(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는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조합이기도 하다.

차 타면,,,,음악듣는..!!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남부 알타이 산에서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 말을 매장하는 풍습이 이었다. 무덤의 가장 위는 둥글게 돌을 깔고 무덤구덩이를 채웠으며, 무덤구덩이 가장 아래에는 통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무덤방과 통나무관을 넣었다.

무덤방의 바깥 빈 공간에 말을 여러 마리 매장했다. 말은 대부분 말을 부리는데 필요한 재갈 뿐만 아니라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굴레장식까지 갖쳐진 상태였다.

 알타이산에서 파지릭계곡 뿐만 아니라 우코크 고원 등 여러 지점에서 비슷한 매장풍습이 확인된다. 이러한 유적을 그룹화 해서 파지릭문화라고 부른다. 파지릭문화는 마구, 무기, 동물문양장식을 상징으로 하는 유라시아의 스키타이문화권의 일부이다. 스키타이문화권은 넓은 지역을 아루르는 명칭으로 각 지역에서 문화가 나타난다.

 

 그런데 파지릭문화에서 특히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말 뿐만 아니라 마차를 매장한 무덤이 있다. 마차의 바퀴는 4개이고, 수레바퀴는 통판이 아니라, 바퀴의 살이 있다. 통판의 수레바퀴가 달린 마차는 이미 유라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나타난다. 파지릭문화는 시베리아의 초기철기시대문화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는 무덤구덩이의 북쪽을 빈 공간으로 두고 말 9마리와 4개의 수레바퀴가 달린 마차가 확인되었다. 말은 모두 같은 상태로 묻힌게 아니라, 말 마다 착장한 장식에 차이가 있다. 말 1마리(I번 말)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고, 재갈만 물린 말 4마리(II,III,V,VI번 말), 재갈+굴레장식+안장이 있는 말 3마리(IV,VII,VIII번 말), 재갈+굴레장식+안장+머리장식까지 있는 말 1마리(IX번 말)가 확인되었다.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말은 IX번 말이다. 말의 머리까지 장식을 화려하게 했다. 그림 1에서 무덤구덩이의 가장 아래에 있어서 가장 먼저 무덤에 들어갔다.

이제까지 살펴본 파지릭 문화의 무덤 가운데 말의 치장 정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무덤이기도 하다.

말의 머리장식을 한 현상은 아크 아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없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머리부터 등끝까지 치장한 말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의 5호분 무덤의 북쪽 단면도 

1.바퀴의 축; 2.마차의 몸체; 3. 마차몸체의 백조장식 ; 4. 검은색 펠트로 된 마차의 덮개; 5.펠트조각; 6.펠트로 된 카펫트; 7. 삽의 손잡이; 8. 마차의 바퀴; 9. 마차를 끄는 막대;10. 말총; 11. 카펫에서 풀린 실꾸러미; 12. 13.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14. II,III,V,VI번 말의 마구; 15. IV번의 안장; 16, 17-VII번의 말 안장과 굴레장식; 18, 19-VIII번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20 ,21-IX번 말의 안장과 굴레장식 ; 22-IX번 말의 머리장식; 23-IV번 말의 굴레장식; I~IX: 말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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