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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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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현재)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는 이름하여 ‘왕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마을이름이 아르잔인데,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는 유적의 이름도 ‘아르잔’이다. 아르잔에는 왕의 무덤이 수십기가 분포한 것으로 그랴즈노프가 보고 했는데, 발굴된 무덤은 2기이다.

 

그림1. 아르잔 1호의 무덤방평면도 

 

아르잔-1호는 전체 평면형태가 원형으로 그 직경은 120m이고, 주변의 호석을 제외하고 무덤방의 너비는 80m가량이다. 모든 무덤방에 사람과 말을 채운 것은 아니다. 특히 말과 인간이 함께 매장된 곳은 중심 매장부를 제외하고 13번, 26a, 26b번방은 확실하다. 31번 방에는 통나무관 2개가 남아 있고, 전체 평면도에는 말이 표시되었지만, 본문에서는 누락되었으나, 청동제 재갈은 출토되었다. 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부의 무덤방에는 사람 10인과 말 6마리가 묻힌 곳이다. 

 

가장 중앙 무덤방에는 주인공을 위한 2차 무덤방이 따로 있고, 그 주변(북, 서, 남)에는 별도의 무덤시설이 따로 있다. 동쪽에는 말이 부장되었다.

중심부의 2차 무덤방(그림 1-1, 그림 2)은 직경 20~25cm의 통나무를 촘촘하게 쌓아올렸는데 높이는 1m 가량이다. 중심 무덤방의 천장은 남아 있지 않았고, 바닥에 직경 20cm의 통나무 17개가 깔려 있었다. 중심 무덤방은 이미 천장이 없어지고, 통나무관의 덮개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도굴 때문에. 매장된 사람의 다리지골 4개만 확인되었는데, 남성은 노인성 뼈 변화가 관찰되었고 여성은 노후의 징후는 없었다.

 

 

 

그림 2. 아르잔 1호의 중심 매장부

 

중심부의 2차 무덤방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1차 무덤방 안에는 무덤방 안에 통나무관을 넣은 곳(그림 3-2), 나무방만 있는 곳에도 사람이 묻혔다(그림 3-5). 그 외에 통나무관은 모두 7개이다. 2번 나무방(2.5×1.2m)에는 통나무관(2.2×0.8m)에는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고, 금제행엽, 원통형장식, 터키석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5번 나무방(1×0.5m, 높이 0.35m)(그림 3-5)은 2번 보다 크기가 작다. 나무방에서는 40~60세 남성이 확인되었다. 무릎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채였다. (굴신장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통나무관은 대체로 크기가 1~1.4m이다. 4번 통나무관(그림 3-4)에는 18~20세의 남성, 6번(그림 3-6)과 7번 통나무관(그림 3-7)에서는 60세 가량의 남성, 8번 (그림 3-8)통나무관에서는 40세가 채 안된 남성, 9번(그림 3-9) 통나무관에서도 남성이 묻혔다. 9번 남성은 나이가 기록되지 않았다. 3번 통나무관에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림 3. 아르잔-1호의 중심 매장부에서 확인된 통나무관, 그림 2의 번호와 일치(필자편집)

 

주인공 2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 8인(3번 통나무관을 포함한)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말은 중심 무덤방에서 6마리 분이 출토되었다. 만약에 성별구분이 정확하다면 이 무덤방에는 2차무덤방 내에 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3번 통나무관은 확실치 않지만, 주변부가 모두 남성이며, 담비가죽, 청동화살촉 등 다른 통나무관과 같은 유물이 출토됨으로 남성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무덤에는 2차 무덤방 안의 여성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출토된 유물은 중심 무덤방(그림 2-1)과 이 무덤방 밖의 2번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담비가죽과 모직 옷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4번 통나무관에서는 담비가죽과 모직 옷을 제외하고 청동단검, 골제화살촉, 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2번 무덤방에서는 금제의 마구장식과 원토형 장식 및 터키석 구슬등이 출토되었다. 중심무덤방에서는 담비가죽, 모직옷조각, 터키석구슬, 마구장식 등이 남아 있었는데, 도굴이 심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통나무관의 크기가 2번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1.4m이다. 5번 무덤방의 길이가 1m가량임으로 비슷한 크기이다. 길이가 1~1.4m정도라면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5번 무덤방(그림 3-5)이나 7번 통나무관(그림 3-7)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통나무관은 크기가 큰 2번방 안의 통나무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형태이다. 측면의 모양은 사다리꼴을 반대로 해 놓은 모양인데, 지면의 바닥이 통나무관의 입구보다 크다. 관의 머리쪽과 다리쪽 모양이 다르다. 통나무관의 바닥이 둥글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관을 고정하기 위해서 바닥에 지지대를 설치했다. 남아 있는 곳은 6(그림 3-6), 8(그림 3-8), 9번(그림 3-9) 통나무관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스키타이 초기의 차르 무덤, 아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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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