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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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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지릭 유적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무덤은 55~60세의 남성과 40세 가량의 여성이 미라처리 되어서 매장되었다. 이 때 모든 사람을 미라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라화 된 사람들은 특정 계급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미라가 들어 있는 무덤에는 규모도 크고, 유물도 많다.

그런데 무덤은 크게 만들어졌을수록 무덤 위에 솟아 오른 봉분이 클수록 그 곳에 먼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굴이 쉬워지는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 만약 도굴당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정보의 제공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무덤에는 남녀의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각각 2점씩 확인되었다. 이미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나무로 제작된 것은 한 점 공개한 바 있다(그림 3-2). 남성의 모자도 가죽으로 된 것을 공개한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

eastsearoad.tistory.com

 

 

남성의 모자는 이 남성의 계급 때문인지 코로나 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는 왕관이라는 뜻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러시아어 중에 하나이다.

이미 소개한 남성의 모자는 가죽으로 되었있었고, 머리의 정수리에 4점의 가죽 조각으로 사슴 뿔을 상징하는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머리에 쓰는 모자의 베이스는 비슷하지만 붙어 있는 장식이 매우 화려한 남성의 모자가 있다.  나무, 가죽, 펠트로 제작된 것이다.

펠트는 모자의 베이스에 사용되었고, 나무와 가죽은 붙어 있는 그리핀 장식에 사용되었다.

나무로 제작된 그리핀의 입속에 뿔 달린 사슴머리(그림 1-1, 2-3)를 표현 한 것이다. 남아 있는 이 나무조각의 높이는 34.5cm, 너비가 15cm가량이다. 그리핀의 목에도 작은 그리핀의 머리가 양쪽으로 한 쌍(그림 2-2)붙어 있는데, 큰 그리핀의 몸통에 삽입 가능한 사각형 구멍이 있다. 이 그리핀의 몸은 큰 그리핀의 몸통에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는 거위가 한 마리씩 조각되어 있다(그림 2-4). 그리핀 본체의 눈과 부리 사이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수염?을 표현하고 있고, 정수리부터 목에는 가죽으로 갈귀를 표현하고 있다(그림 1-1, 그림 2-1).

그래서 이 그리핀은 독수리+굽동물의 갈귀+호랑이의 수염이 합체된 것이다.

 

이 그리핀의 머리 및 목과 함께 출토된 유물은 뿔이 화려한 사슴 장식이다(그림 1-2, 4). 나무와 가죽으로 제작된 것인데, 머리는 나무로 입체적으로 제작되었고, 가죽은 몸통을 표현했는데, 평면으로 표현되었다. 앞 다리와 뒷다리가 구부린 것으로 마치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듯 보인다.  앞서 살펴본 그리핀의 아래에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사슴의 몸통이 평면이어서 어딘가에 부착되었을 것이고,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그림2.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위와 같은 유물

 

특이한 여성의 머리장식도 출토되었다. 앞서서 살펴본 목제의 나무장식과는 달리 주로 가죽으로 제작되었다(그림 3-4). 머리에 텐트를 두른 듯, 쓰면 눈,코,입만 보일 듯하다. 머리 정수리에는 반구형의 모자틀이 있고 그 아래로 가림막을 가린 듯 한 모습이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수탉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3-3)이 세워져서 붙어 있고, 그 아래에 모피조각이 세 점 붙어 있다(그림 3-1). 가림막에도 마름모 모양안에 연꽃 장식이 있는 아플리케가 붙어 있다(그림 3-4).

 

그림 3. 파지릭 2호 출토 여성의 머리장식

 

 

새머리 모양의 장식이 있는 모자가 출토된 유적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아크 알라하 1 유적(1호분), 베르흐 칼쥔 2 유적(3호분), 올론-쿠린-골 10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독수리 머리에 굽이 있는 동물이 양식화 된 표현이다. 굽이 있는 동물은 주로 말, 사슴, 숫양이 대상이고, 새 머리도 양식화 된 것이다.

 

그리핀 장식은 발견당시 금박으로 입혀져 있었고, 붉은색으로 채색되었었다고 한다. 남성의 높은 그리핀 달린 모자의 베이스는 펠트로 제작되었다. 무덤에서 펠트조각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파지릭 2호분의 남녀는 각각 높은 머리장식 1점과 낮은 머리장식 1점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의 머리장식 중 높은 것은 의례용이었겠지만, 여성의 머리장식은 둘 다 평소에 쓰기에는 불편한데, 무엇을 평소에 썼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불편함을 감수한 노력?은 여전한가 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 안에는 사람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현재까지 살펴본 말의 수는 6~10마리까지 매장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굴레와 안장, 안장덮개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유심히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무덤의 말이 매장된 위치는 다른 무덤은 주로 무덤방 옆에서 확인되지만, 이 무덤은 구덩이의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다. 왜 그런지는 어디에도 설명이 안되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는 도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스테리와 같다.

그 덕분에 2호분의 마구와 굴레장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앞에서 알타이에서도 파지릭 계곡 보다 남쪽에 위치한 우코크 고원에서는 없었던 말장식 중에 하나가 말의 얼굴을 가리는 말의 마스크였다. 말이 다른 동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필자가 루덴코(1953)을 삿삿이 분석해서 조각조각 여러 군데 있는 유물을 찾은 결과 아래와 같은 마구와 말의 굴레장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루덴코가 편집한 것을 필자가 재편집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눈이 팽팽돌아가는 경험이었다. 좀 있으면 논문도 쓸 수 있을 기세이다..ㅋㅋ

 

사실 파지릭 2호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무덤이기도 하다.

온전하게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고분을 도굴한 사람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각 각 세트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구의 용도에 따라서 구분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편집)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 편집)

 

그림3은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인데,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린다. 저런 말의 굴레장식에 각 호수에서 나온 말 마다 다른 장식을 달았던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말의 굴레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레 장식: 목제 재갈멈치-동물문양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제 장식: 가죽(김재윤 편집)

 

 

 

 

림 6. 파지릭 유저 2호분 말의 재갈: 금속(김재윤 편집)

 

 

그림 7.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8.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덮개

 

그림 9.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 관련 유물과 채찍의 손잡이(김재윤 편집)

 

 

그들의 상상력과 디자인 능력은 최고이다. 디자인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이 따라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은 현재의 IT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 일종의 하나인 파지릭 문화에는 인간과 함께 말을 매장하는 풍습이 있다. 말을 여러 마리 묻는데, 대부분 말에는 재갈과 굴레장식등이 입혀진 상태로 함께 묻힌다.

같은 문화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말 6마리, 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 9마리, 어린아이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에는 말 1마리가 확인되었다. 알타이의 파지릭계곡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확인되었다.

파지릭문화에서 말을 꾸미는 장신구에는 굴레장식과 안장을 덮는 안장 덮개가 있다. 2호에서도 안장덮개 조각이 나왔지만, 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바로 옆에는 1호분이 있는데, 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것으로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했다. 1호분에는 말이 10마리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2번째의 말에는 완벽한 안장덮개가 확인되었다. 말 등에 길게 놓여 있었다. 안장덮개는 펠트와 가죽, 털로 만들어졌고 일부에는 금박이 붙어 있다. 펠트 두 장을 붙이고 그 안에 순록털이나 건초로 채워진 것이다.

안장덮개(그림1)의 안장 덮는 부분은 장방형이고 그 아래에는 치레걸이(그림 2)가 달려 있다. 안장덮개 부분에는 그리핀이 염소의 뒤에서 공격하는데, 염소의 뿔을 그리핀의 날카로운 부리로 공격하고 염소는 앞 발은 구부리고 있고 뒷다리 부분은 이미 뒤집어 져서 전체적으로 몸을 꼬고 있다. 그리핀은 날개를 펴고 있다. 재밌는 점은 안장덮개에 표현된 염소를 공격하는 그리핀은 데칼코마니처럼 다른 쪽에도 그대로 표현되었다. 염소를 공격하는 그리핀은 아플리케 수법으로 여러 조각을 안장 펠트에 감침질해서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안장 덮개 아래에는 한 쪽에 세 개씩 펠트로 만들어진 일종의 ‘메달’이 붙어 있다(그림 2). 이 메달은 아래의 큰 원은 양의 머리이고, 양의 입 끝은 뿔달린 호랑이의 머리 2개 사이에 삽입되어 표현되어 있다. 호랑이 머리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양 머리의 가장 자리는 붉게 염색된 말꼬리털이 술로 달려 있다.

 

그림 1. 파지릭 1호분의 2번째 말의 안장 덮개, 길이 119cm, 너비 60cm

 

그림 2. 파지릭 1호분의 2번째 말의 안장 덮개에 붙은 메달(그림 1에 안장 덮개에 붙은 메달)

 

 

이 안장 덮개와 세트인 굴레장식은 팔메트 문양과 사슴 머리로 장식된 것이다. 팔메트 문양은 잎사귀 6개가 서로 마주보도록 조각된 것이고, 사슴은 두 마리가 등을 마주보도록 조각된 것인데, 팔메트 문양과 사슴이 교차되게 배치되었다. 팔메트와 양 두 마리 모두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게 조각되었다. 팔메트장식 4개, 사슴은 모두 5개가 배치되었다. 말의 재갈 멈치 끝에도 팔메트 문양이 조각되었다(그림3).

 

그림 3. 파지릭 1호분의 두번째 말 굴레장식, 그림 1과 세트, 나무와 가죽

 

 

 

우코크 고원에서 확인된 말을 장식하는 가장 많은 동물은 그리핀이었다. 말과 그리핀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되는 그리핀은 좀 더 적극적이다. 살아 있는 말에 순록 혹은 사슴뿔을 매단 마스크를 씌워서, 상상의 동물로 보이게 한다든지 하는 점 때문이다. 또 궁금한 점은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에는 늘 염소, 양, 소 등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유목민에게는 동물은 재산이었을 텐데,,, 왜 그들이 늘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의 상트페트르부르그 시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근현대 유명화가의 그림부터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물까지 없는게 없어서 ‘박물관’이라는 뜻이 딱 맞는 곳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건물 자체가 표트르 때부터 사용되었던 겨울 궁전이다. 건물부터 내부에 든 유물까지 전부 인간이 남겨놓은 그 모든 것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유명한 그림들이 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지하까지 내려가면 고고유물이 있다. 지하에는 주로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의 유물이 많다..‘많다’라는 말로 전달이 안된다. 너무 피곤하다. 너무 많아서...

 

그중에서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차르로 여겨지는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시베리아의 황금 유물 컬렉션은 가장 화려한 방에 배치되어 있다...(그래서 사진이 잘 안나온다..벽에다가 붉은색 카펫을 달아서 유물을 매달아 놓았는데....사진이 죄다 흔들린다..일부러 그런것일까 싶기도 하고...)

 

이 유물들이 시베리아의 어떤 곳에서 수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노력을 했고 하고 있으나, 모두가 동의하는 답은 없을 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다.

그 중에서 필자가 나무 아래서 세 사람이 쉬고 있는 장면을 소개한 주제가 있는 버클 장식을 소개한 바 있다. 바로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나온 머리장식과 이 버클에 표현된 여성의 머리장식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버클에는 잘 이해가 안되는 유물이 한 점 걸려 있다(그림 1).

바로 나무 아래에 걸려 있는 네모꼴? 혹은 타원형의 유물 때문이다. 필자가 여러 책을 뒤적거려도 여기에 대해서 해석을 해 놓은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림1.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 황금유물 컬렉션, 황금 버클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어쩌면 나무 밑에 걸려 있는 이 물건은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일종의 악기인 하프 일 수도 있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유물배치도

 

 

앞에서 파지릭 2호분 무덤 배치를 유심히 보신 분은 이미 이 유구에서 악기가 출토된다는 사살을 눈치 챈 분이 있었을 것이다. 2017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는 이 유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루덴코가 파지릭 유적에 대한 단행본을 펴낼 때 이 유물은 이미 공개되었다.(그림 2)

나무로 만들어진 것인데 전체 길이는 83cm이고, 가장 자리는 11~12cm가량 넓고, 중간 부분은 너비가 3~4cm가량으로 좁아지는 형태로 길고 단단 나무 조각으로 중간에는 비어 있어 공진기 역할을 한다. 하프 바디의 아랫면은 거의 수평이지만 가운데는 오목하다. 가장 가운데 높이는 5cm밖에 되지 않는다. 몸의 중간 부분에는 길이 26cm로 된 소리판으로 덮여 있다. X모양의 공명 조리개가 가운데 길게 나 있다. 바디에서 뚫린 부분은 소리를 확장하기 위한 부분으로 얇은 가죽을 씌웠을 것이고, 그 부분은 바디에 붉은색으로 염색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가죽막에는 3개의 원형 공명구멍이 있었고, 하나는 끝 부분에 다른 하나는 중간에 있었다. 얇은 나무 못으로 막을 악기의 바디에 고정시켰다. 바다의 한쪽에는 끈을 매기 위한 홀더가 있었는데 길이가 24cm가량이다. 몸통의 넓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부착된 돌출된 부위에 묶어서 사용했던 것이다. 남아 있는 줄의 수는 4개 이상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현악기, 일종의 하프, 가죽막은 그림이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그림 1의 나무 밑에 걸려 있는 물건을 보면, 앉아 있는 여성 방향으로 튀어 나온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어쩌면 악기의 스트링 홀더가 아닐까? 이런 악기를 그냥 들고 다녔을 리는 없고, 아마 가죽 주머니 같은 곳에 넣고 다녔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나무 밑에 걸려 있는 물건에는 세로 방향으로 긴 줄이 4~5줄 표현되어 있다.

 

황금벨트에 표현된 나무 아래의 물건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데, 화살과 활이 들어간 스키타이 고리트라고 불리는 유물이다. 고리트는 전사들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무기이다. 쉬기 위해서 허리춤에 있던 무기를 풀러서 나무밑에 걸었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우코크 고원의 전사 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이 유물에 대해서 살핀 바 있다. 하지만 고리트라고 하기에는 고리트에 씌운 고깔모자도 없다. 그리고 이 유물이 만약 고리트라면 벨트에 표현된 이 유물에서 여신방향으로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2020/02/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알타이 산의 스키타이 전사 2인의 활집과 평화

 

알타이 산의 스키타이 전사 2인의 활집과 평화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16세 가량의 소년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함께 확인되었는데, 우리는 이미 소년과 장년기의 남성이 어떤 물건과 함께 부장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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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이 황금벨트를 디자인 한 사람이었더라도, 가장 중요한 소재인 나무 아래에 무기보다는 악기를 매달았을 것 같다. 휴식을 위한 주제를 선택했다면...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시대에 존재했던 얼마 떨어지지(상대적으로) 않은 파지릭 유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아크 알라하 3유적)과 전사 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에는 없는 말의 장식이 파지릭 유적에서는 발견되었다. 바로 말의 눈을 덮는 말의 마스크이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2호분 뿐만 아니라 1호분과 5호분에서도 확인되는데, 그 모습은 차이가 있다.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펠트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의 마스크에는 귀가 달려 있는 귀 사이에는 숫양의 머리가 있고 그 위에 수탉 같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새는 분리가능하는한데, 다리는 막대를 깍아서 만든 것이고 날개는 막대 프레임으로 별도로 만든 것이다. 마스크의 가리개에는 일곱 마리 물고기가 장식되어 있다.

1호분에서는 2점, 5호분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말의 마스크도 기본적으로 말의 귀 사이에 사슴뿔 혹은 산양머리, 그리핀 장식 등을 얻은 구도로 제작되었다. 말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것과 말의 턱 아래까지 가리지 않는 2호분으로 구분된다. 말의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장식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말 마스크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말 마스크의 실측도

 

5호분의 것(그림 3-4)은 말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눈 구멍만 있는 것이다. 작은 끈이 턱밑에서 묶을 수 있는 구조이다. 귀는 따로 가죽으로 달린 것이다. 귀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화려한 뿔이 있는 순록(혹은 숫사슴) 머리(그림 3-3)를 조각해서 붙였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3,4)출토품과 2호분 출토품(2), 그림 3-5는 그림 1,2와 같은 유물

 

그림 4. 파지릭 1호분 출토 말 마스크, 그림 4-1의 사슴 뿔 표현 끝에는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총이 숱장식으로 붙어 있다고 했으나 잘 표현되지 않았다. 

 

1호분의 말 마스크는 2점인데, 1점은 말의 얼굴을 감싸는 부분은 호랑이를 도식적으로 표현하고 사슴뿔 한쌍을 귀 사이에 붙여서 표현했다. 귀와 사슴뿔은 가죽을 덧붙인 것인데, 파란색으로 채색해고 금박을 입혔다. 사슴뿔의 끝은 붉은 색으로 염색된 말총의 숱이 장식되었다(그림 4-1).

 

 

그림 5. 파지릭 1호분 출토 말 마스크 복원도, 그림 4-2와 같은 유물, 필자가 열심히 이 유물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소개했으나, 사진도 오래되고,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이 잘 와 닿지 않는다..

 

1호분에서 출토된 두 번째 말 마스크에는 뿔이 잇는 날개 달린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말의 귀 사이로 달린 것은 그리핀의 날개이다. 그리핀은 앞발로 호랑이를 잡고 있다. 호랑이는 이빨을 가습에, 앞발톱은 그리핀의 다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그림 4-2, 그림 5). 그리핀의 귀는 길고 뾰족하며, 목은 수평으로 덮여 있고, 사자의 갈기는 독특한 구멍으로 표현되어 있다. 말의 옆얼굴에서 입을 가리는 부분은 금박으로 호랑이의 줄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이 말 가면은 총 4판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의 귀와 그리핀의 날개는 두꺼운 가죽으로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파지릭 문화에서 2호분의 말 마스크와 같이 숫염소의 단순한 뿔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사슴의 화려한 뿔로 변화된다. 말 마스크를 쓴 말을 보면 저게 말인지, 사슴인지 혹은 그리핀 어떤지 모를 것 같다. 살아 있는 하이브리드 동물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닌지 알면서....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에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55~60세 남성과 40대의 여성이 함께 매장되었다. 도굴되었지만 무덤의 크기나 남아 있는 유물, 미라처리된 시신 등으로 인해서 파지릭문화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인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알타이 지역에 속한 일종의 지역문화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도굴되었다. 이미 남성과 여성 미라는 손상이 심한 상태여서 그들이 입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이다. 여밈 없는 셔츠 두 벌이 확인되었는데, 하나만 복원되어서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인데, 남성의 옷이다(그림1). 인도산 면으로 직조된 직물로 만들어진 셔츠이다. 복원되지 못한 많이 찢겨진 셔츠는 너비가 44~45cm가량의 인도산 면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각기 4개의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것도 크기로 보아서 남성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의 상의, 여밈없는 셔츠, 에르미타주 소장

 

색도와 밀도가 다른 각기 3개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전면과 후면의 판은 두 개 반쪽씩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앞뒤면 하단의 가장자리는 쐐기모양으로 4조각을 앞뒤로 붙여서 아래로 갈수록 옷이 퍼지는 모양이다. 목선을 둥글고, 소매는 손목으로 갈수록 모아지는 형태이다(그림 2).

앞판의 가장 중앙에는 붉은 솔기 장식이 있고, 목, 밑단 및 팔목은 빨간색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다(그림1). 전체 길이는 113cm이고, 어깨너비는 84cm, 하단의 너비는 125cm이다(그림2).

루덴코는 셔츠 두 장 모두 크기가 매우 커서 남성의 것으로 보고 있다.

소매, 목, 밑단 및 솔기 바닥의 마감은 여러 민족지 자료에서 보호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악령의 진입을 막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그림1의 패턴

 

우리가 이미 살펴본 얼음공주의 여밈없는 셔츠 역시 비슷한 스타일이다. 인도산 야생의 실크로 비슷한 형태이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셔츠와 같은 소재(인도산, 면)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크 알라하 5유적과 쿠트르쿤타스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의류가 남아 있는 파지릭문화의 무덤에는 셔츠가 확인된 유적은 몇 개 되지 않으며, 모피코트는 팔을 끼워서 착용하지 않고, 어깨에 걸친 채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입직물로 만들어진 셔츠는 20세기 초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에게도 흔한 의복이 아니었던 것으로 최상위 계급들만 입었는데, 그러한 경향은 이때부터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루덴코는 남성의 셔츠와 여성의 셔츠는 성별에 관련없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았다. 여러 전통적인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안에 입는 옷은 알타이 사람들은 남성, 여성, 아이들 없이 모두 같다(라돌로프 1989). 몽골의 여자아이 옷 또한 남자아이와 같다(비크트로바 1977). 시베리아의 많은 민족(축치, 코략, 토파족)들도 남성과 여성의 곳은 모두 같은 형태로 재단되었고 그 전통이 남아 있다(마레티나 1977).

알타이의 파지릭문화에서 확인되는 여밈없는 셔츠는 중국의 신강성 수바시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바느질, 마감, 색상 및 소재 등이 매우 유사하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의 셔츠 외에도 아주 화려한 여성용 모피코트, 치마, 타이즈 등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물이 많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의복과 직조물)

라돌로프 Радлов В.В. Из Сибири. Страницы дневника. М. 1989. М.: Наука, 1989. 718 с.(라돌로프, 1989, 일기장, 시베리아로부터)

비크토로바 1977, Викторова Л.Л. Монгольская одежда // МАЭ. Л.: Наука, 1977. Вып. 32. С. 169-199.(비크토로바 1977, 몽골의 의복)

마레티나 1977, Маретина С.А. Одежда народов северо-западной Индии // МАЭ. Л.: Наука, 1977. Вып. 32. С. 5-26.(마레티나 1977, 인도북서부지역 사람들의 의복)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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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처리하는 장례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필자가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에 다녀간 적인 있는 시베리아의 ‘얼음공주’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되었다.

거의 훼손되지 않은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알타이에 미라가 있는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도 알려졌다. 1920년대 발굴된 파지릭 유적에서도 알려졌을테고, 아마 그 전에 도굴한 사람도 알았을 것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했을 그 당시인 17세기에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한 미라는 그 존재가 귀했기 때문에 ‘얼음공주’는 공주라는 호칭까지 얻을 수 있었다.

 

루덴코는 도굴에 의해서 무덤이 큰 손상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발굴자라도 그런말을 했을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도굴된 무덤의 모습..그 고생을 하면서 팠는데, 도굴당했다니.

나도 읽는 내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에서 얻지 못하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에 만족? 혹은 불만인 상태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미라로 처리되었고 통나무관은 1개 뿐인 무덤이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 미라를 설명할 때 언급했지만 미라를 처리할 때 가장 큰 과제 중에 하나가 관절을 끊지 않는 것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에 비해서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은 온몸에 절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관절을 손상시키지 않고 방부처리용액을 삽입하기 위해서 다리와 팔 안쪽을 따라 길고 얕게 절단을 했다. 그런 다음 말총으로 그 상처들을 꿰맸다.

 

엉덩이, 다리, 팔, 어깨에는 1cm가량의 구멍이 있었는데, 근육조직에 보존액을 주입했던 것으로 보이며 칼로 예리하게 절단되었다. 남성의 머리와 피부는 소량의 오일과 왁스가 혼입된 소지를 발랐다(바르코바 고흐만 2001).

머리의 두피는 다른 피부를 연결해 놓았는데, 도굴로 인해서 시신이 훼손되면서 오른쪽에서 왼쪽 귀로 이어 지는 부분만 남은 상태이다.

 

형질인류학적인 분석에 의하면 몽골로이드의 특징이고 키는 176cm, 체형이 매우 견고하고 탄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몸은 문신으로 덮여 있었으나 1947년에 발굴된 미라의 몸은 완벽하게 복원은 되지 못했다. 머리외에 팔과 다리만이 남아 있고 문신을 한 부분의 피부만이 남아 있다.

 

미라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피부에 방부처리를 한 엠버링 처리도 중요했지만 무덤 아래에 형성된 영구동토층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얼음에서 남성의 신체가 드러나자 말자 분해되기 시작했다. 연구와 보존을 위해서 문신이 있는 피부를 보존하기 위해서 피부만을 벗겨내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문신으로 덮여 있고 일부는 등에도 남아 있다. 왼 팔은 오른팔과는 달리 손목 약간 위에 까지 문신이 새겨져 있다(그림 1-1). 오른쪽 무릎아래에도 문신이 남아 있었으나 왼쪽 무릎 아래에는 없었다. 문신의 그림은 주로 상상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이브리드 형 동물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 미라(김재윤 편집)

 

우선 눈에 띄는 동물은 왼쪽 등의 견갑골에서 확인되는 꼬리가 길게 말려 올라간 짐승(그림 1-2,6)이다. 뒷다리 및 길게 말려 올라간 꼬리만이 남아 있고, 머리는 없지만, 꼬리 모양과 발톱 등으로 보아서 호랑이 혹은 표범 종류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팔에는 미라처리를 위해서 근육과 지방을 추출하기 위해서 사후 절단을 한 다음 힘줄과 함께 꿰매고 문신처리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 1-3). 이러한 예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팔뚝에 새겨진 문신(그림 1-1~)3은 발굽이 있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결합된 모습이다. 독수리의 머리, 새의 부리가 있고 뿔이 있는 환상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발굽이 달린 그리핀의 이미지는 표트르의 시베리아 황금 컬렉션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중국동북지방까지 널리 퍼져 있던 문양특징이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다양하게 합성된 것이 확인된다.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 오른쪽 팔(그림 1-2의 네모안)에 그려진 그리핀 가운데서 호랑이 몸체에 날개가 달린 그리핀은 같은 무덤에서 나온 말의 덮개 장식(그림 2)과도 비슷하다. 세부적인 표현은 다르지만 꼬리를 하늘로 들고 있고 발 모양,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런데 어제 필자는 파지릭 2호분 남성이 매장 당시에 손을 겹치고 있었을 것이라는 루덴코(1953)의 설명을 그대로 전한바 있다. 그 근거는 파지릭 5호분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이 죽은 후에 미라 절개 후에 문신을 처리했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위의 그림대로 팔은 양팔을 뻗은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루덴코는 이 부분을 놓친 듯 하다. 루덴코가 5호분 남성과 많은 연관을 시킨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안장덮개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얼음공주)

 

우코크 고원의 여성미라와 비교해 보면, 파지릭 2호분의 미라는 훨씬 넓은 범위에 그림이 그려졌다. 양쪽 가슴과 등에도 문양이 있으며, 무릎 아래에도 그림이 있다. 여성미라에는 가슴에는 그림이 없고, 이 남성처럼 온몸에 절개가 남지도 않다. 특히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는 복부에 절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피부 밑의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여성미라에게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등에는 가운데 척추를 따라서 작은 구멍이 2줄로 왼쪽에는 11개, 오른쪽에는 3개 있다(그림 1-8의 척추). 이 구멍은 남성이 살아생전에 의료 목적으로 치료를 한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 유적의 미라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오늘은 사진이 좀 그렇습니다....그래도 양해바랍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묻힌 무덤이다. 안타깝게도 도굴로 인해서 유물의 위치와 시신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지난번에 살펴본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는 미라였다. 파지릭 유적은 얼음공주보다도 무덤의 크기나 부장품으로 보아서 상위계급에 속한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얼음공주는 전직 샤먼이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55~60세 가량이고, 여성은 40대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필자가 공개한 유물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매장할 당시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도굴꾼의 소행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출토위치

 

남성의 목걸이는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여성의 목걸이는 잘 남아 있고, 필자가 공개한 바 있다. 남성도 목걸이를 했을 가능성이 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이 모두 목걸이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무덤의 여성과 남성은 모두 목이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특히 여성미라는 훼손이 심한데, 팔찌 등을 가져가기 위해서 오른손 뿐만 아니라 무릎관절 아래가 다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덕분에 무덤에 관이 하나인데 어떻게 시신을 안치했는지 대한 궁금증은 영원한 미스테리이다.

 

관 통째로 도굴꾼이 가져 간 것이 아니냐고? 그럴 수 없는 것이 무덤관이 놓일 장소가 없다. 파지릭 유적 뿐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예로 보아서 무덤방에 관이 2개인 경우 관은 나란히 놓인다.

 

그런데 왜 도대체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을까?

 

루덴코는 여성이나 남성의 미라에서 먼가를 얻기 위한 행위로 생각한다. 그 예로 든 것이 파지릭 5호분의 남성미라인데, 이 남성미라의 손이 오른손이 아래로 왼손은 위로 가게 해서 ‘×’모양으로 교차하고, 생식기 위에 피부를 뚫고 실로 고정시킨 것에 착안했다. 만약에 이 무덤의 미라가 같은 자세로 처리되었다면, 그리고 도굴꾼이 탐을 낸 것이 목걸이나, 팔찌 였다면?(이 유적에서 확인된 혹은 미처 못 가져나간 여성용 목걸이는 목제였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은 전투용도끼에 세 번 맞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눈썹에는 칼자국이 있고,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미세하게 찢겨져 있었다. 머리의 두피는 벗겨진 상태이다. 나머지 모발은 미라 처리시 뇌 제거를 위해서 구멍을 뚫기 전에 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두개골에는 뼈가 제거된 흔적이 1곳 이상에 남아 있다. 고대에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뼈를 제거하기도 했겠지만 파지릭 2호분의 남성 두개골은 뇌조직을 제거하고 뇌를 토양, 소나무껍질 및 낙엽송 등으로 채워서 미라로 처리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다.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미라도 그 내부가 전부 흙과 나무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두개골에 천공한 위치는 다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미라 두부(루덴코 1953)(위-남성, 아래 여성)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두부, 그림 2의 상단과 같은 미라.

 

 

2호분의 남성미라의 두부는 소련과학아카데미 군의학 치과부서에서 이바첸코(G. M. Ivashchenko)가 분석했다. X선 촬영결과 오른쪽 턱 아래의 첫 번째 어금니가 망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치아에는 낭포가 생겨서 여포성낭종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어금니의 압력 때문에 남자는 평생동안 치아가 아팠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성은 몽골로이드로 전체 얼굴높이는 146mm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요즘은 향수를 쓰지 않지만, 한때 향수를 상당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향수가 없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식탁 위에 디퓨저가 있는데, 유칼리투스 향이 약간씩 난다. 가끔 상상해본다. 집에서 나무 향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자작나무로 된 무덤방도 아늑했을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의 파지릭 유적에서 2호분을 살펴보는 중이다. 도굴 때문에 손상이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재밌는 유물들이 있다. 그리고 피곤하기도 하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빈 공간안에 다 채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를 끄는 유물이 많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도 금으로 된 유물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나무, 펠트, 가죽 등으로 제작된 유물이 많다. 무덤구덩이를 팔 때부터 쓰던 나무망치, 나무쐐기 등이 들어 있는데, 과히 나무로 칠갑을 두른 듯 하다.

 

잠시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재밌는 인연이 있는 유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콜렉션의 유물이다. 버클장식으로 길이 15.2cm, 너비 12.1cm,무게는 459.3g정도이다.

큰 나무 아래에 세 사람이 있는데, 여성은 앉아 있고, 남성 한 명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다.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의 다리 쪽에는 한 남성은 앉아 있는데 말 두 마리의 고삐를 꽉 쥐고 있다. 말은 재갈과 굴레장식이 착장되었으며 안장까지 착용한 상태이다. 말과는 반대쪽으로 말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얼굴이 매우 둥글고 독특한 머리장식을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은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버클 장식, 표트르 시베리아 콜렉션

 

그림 2. 그림 1의 상세

 

 

이 버클 장식을 보면서 이미 필자가 공개한 바 있는 2호분의 유물 가운데서 생각나는 유물은 없나요?

 

....

 

말 굴레 장식?

아직 2호분의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성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다.

 

그림 3은 파지릭 유적 2호에서 출토된 것인데, 출토된 위치는 그림 4에서 확인가능하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 출토, 머리장식. 높이 40, 직경 17.8cm(참고문헌인 영국박물관에서 나온 책에 이 유물이 파지릭 5호분의 것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이 유물은 2호분의 것이다. )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머리장식의 출토위치

 

 

 

파지릭 2호분의 머리장식은 나무, 가죽, 머리카락, 펠트, 실크를 조합한 것이다.

이 독특한 머리 장식은 머리에 닿는 부분인 기초 부분은 나무로 나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원통형이지만 귀의 위쪽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고 다시 나무를 덧대어서 둥글게 만들어 진 것이다. 현재는 오른쪽만 남아 있다. 이 나무원통의 덮개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 뒷쪽에는 1.5~2cm가량의 원형 구멍이 2개 있고, 구멍이 4개 더 있다. 그 중 두 개는 원통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로 된 아래의 받침대로부터 관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 구멍은 실크로 덮여 있었다. 뒤쪽 중앙의 구멍에는 하늘로 솟아 오르도록 설계된 땋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이 꼬리모양의 머리장식은 가운데는 사람의 머리카락이고 말의 총으로 쌓아서 힘을 받도록 만들어졌다. 말의 모는 머리카락 전부를 감찬 것은 아니고 아랫단 부분만 쌓다. 꼬리 모양 머리카락 장식은 나무머리모자의 구멍 아래서 관통시켜서 펠트로 감싼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길이가 총 38cm가량이다.

 

그림 1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과 비교했을 때 아주 비슷한 유물이어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아시다시피 2호에서 이 유물은 위치가 제자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벨트 장식에서 볼 때 여성의 머리장식이다. 그리고 이것을 쓴 여성은 삭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이 알타이 지역에서 갔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앞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도 아주 높은 머리가발 장식을 썼는데, 그녀도 삭발을 하고 그 가발 장식을 썼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혹시 머리를 매일 감을 수 없어서, 삭발을 했나? 그래도 머리스타일은 중요하니 머리장식을 썼나? 아니면 이런 높은 머리장식을 쓰기 위해서 삭발을 했나?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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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수십기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분 5개는 1920년대 그랴즈노프와 1940년대 후반에 루덴코가 발굴했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은 세계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은 시베리아의 초기 철기시대로 기원전 9~8세기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한 일종이다.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하는데, 이 문화의 명칭은 이 유적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지릭유적의 유물은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와 그 유물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 다녀갔다. 파지릭 유적의 유물은 1991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스키타이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별전은 예전 총독부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던 지금은 없어진 옛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다녀간 해에 파지릭유물특별전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만들 때 말도 함께 매장한다. 파지릭 유적의 대형고분인 1~5호에서는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얼음공주가 있었던 아크 알라하 유적이 있던 우코크 고원의 발굴 이전부터 말의 영양상태와 꽃가루 및 나무절단시기 등으로 무덤의 매장 시기를 추측했다.

 

파지릭유적에서 시도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말은 털이 아주 고운 상태로 유지되어 묻혔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무덤은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의 영양상태와 관련해서 5호분에서 재밌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9마리 말이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굴레장식 한 말이 다른 말 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 말의 상태는 겨울동안에도 잘 먹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3호분에서는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 사이에서 꽃(Scabiosa achroleuca L.)이 확인되었다. 이 식물은 여름 상반기 즉 6월말 또는 7월 초에 피는 것으로 그 때 무덤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꽃 뿐만 아니라 이끼(Hylocomium)종류도 확인되었는데, 봄-여름동안에 자라는 것이다.

 

말 뿐만 아니라 나무도 무덤만드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부분적으로 절단된 자작나무와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그림1)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껍질이 넓어지는데, 가을에는 껍질이 거의 벗겨지지 않는다. 즉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기간은 봄과 여름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는 어린 말이 매장되었는데, 송곳니로 살펴본 나이가 3살 반이라고 하며, 가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은 늦봄 혹은 여름초입부터 초가을에 만들어졌다. 재밌은 현상은 알타이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호분은 말의 매장하는 위치가 앞에서 살펴본 유적들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덤방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말의 매장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다른 유적과의 비교관찰이 필요하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단면도(왼쪽은 발굴당시, 오른쪽은 복원)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1~4호분에 매장된 말의 방향(하단 왼쪽에 2호분의 것이다.)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3마리 씩 2열로 배치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향을 달리해서 배치되었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매장되었는데, 화살표의 끝방향이 말의 두향이다. 6마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방향이다. 그러나 말이 놓인 상태가 아주 일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당시에 무덤구덩이에 죽인 말을 넣는 방법은 밧줄로 매어서 하강시켰을 터인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이마를 타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