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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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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2.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을 구성하는 요소는 동물장식, 무기, 마구이다. 그 중에서 동물장식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굽동물과 맹수, 맹금류가 주요한 소재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이 주로 영위된 곳은 초원지대이고 이곳에 사는 동물이 그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입견을 깬 것은 물고기 형태의 문양장식이다. 많지는 않지만 주로 기원전 5~4세기에 유물이 출토된다. 우랄 남부의 초원지역인 이레크 강(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경계지역) 주변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장식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강에도 물고기가 살기 때문에 (얼마나 식용으로 이용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의 물고기 장식, 목제 그릇을 덮었음, 황금

2020.11.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물고기 문양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물고기 문양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문화(시베리아와 흑해)의 특징이 약간은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사브로마트 문화-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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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가이모노바 유적의 물고기 장식

2021.09.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가이모노바 유적] - 목제 스키타이 굴레장식의 흔적

 

 

가장 어색한 물고기 장식은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안장을 덮은 덮개의 양쪽 끝에 달려것으로, 말을 장식한 것이다.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유적, 바샤다르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들 유물은 흑해지역과 이레크 강 주변에서 발견되는 유물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안장덮개

 

흑해지역과 우랄 남부지역은 페레보드치코바에 의하면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서부지역에 속하고 알타이는 동부지역이다. 그녀의 분석에는 물고기 장식은 제외되어 있었으나 물고기 장식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수량은 작지만 물고기 장식이 기원전 5~4세기 경에 발견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서부지역에서는 그릇 장식 뿐만 아니라 마구 장식 등으로 금속제(황금, 청동)로 제작된 것이다.

 

*유적의 위치는 아래의 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하류의 그리스 도시 올비야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케르치 해협에 수공업장으로 유명한 판티카페움(Panticapaeum, 판치카페이)이라는 도시가 흥행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사람들도 밀레트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지만 흥행한 것은 기원전 4세기 부터이다.

유적은 미트리다트 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아폴론을 모시는 아크로폴리스가 설치되었다. 판티카페움은 금속공예가 발달한 도시로 여러 장면이 묘사된 장식판, 은제 그릇과 황금 그릇, 여성 장신구 들이 만들어졌다. 장신구 중에는 포도송이 모양의 귀걸이, 소상, 도토리 작은 그릇 모양의 펜던트 등이 달려 있었다. 목걸이 가운데는 도토리 모양의 황금 구슬로 제작된 유물도 있다.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와 무덤에서는 토기도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기원전 5~4세기 토기 가운데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토기이다. 검은색 물감은 화산에서 나온 물질인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검은색 물감은 단순한 물감(그림 1)이 아니라 광택이 있는 일종의 래커이다. 전체에 검은색의 래커 칠을 덮은 후에 필요한 부분을 긁어내고 붉은색을 칠한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래커칠 대신에 물감으로 채색한 토기가 주를 이룬다. 그 이유를 검은색 래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그리스의 랙커토기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판티카페움은 이곳에 위치했던 보스포러스 왕국의 유적으로 생각된다.

보스포러스 왕국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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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것은 흑해 스키타이 지역 내에서 발견된 그리스 도시들이었다. 19세기에 흑해연안을 중심으로 발굴한 결과로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에서 그리스 흔적들이 많이 보여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에 지대한 영향을 형성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이후로는 시베리아 유적들에서 그 기원지로 볼 수 있는 유적들이 발견, 발굴되면서 그리스 기원설은 러시아내에서는 크게 통용되지 않는다. 필자가 살펴보기에도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으로 보기에는 그리스 문화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적인 무기류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Антич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Отв.ред. Г.А. Кошеленко, И.Т. Кругликова, В.С. Долгоруков; авт. Е.М. Алексеева, А.К. Амброз, Т.М. Арсеньева и др. М.: Наука, 1984. 392 с.(코세렌코 편집, 1984, 흑해북안의 그리스 상고기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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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의 코카서스 북쪽 스키타이 세계에서 가장 이른 유적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코카서스 남쪽 우라루투에서 제작된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거울, 각배, 철제 검 등이 그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 각배는 거울과 같은 인물이 그려져서 두 유물이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개를 달고 있는 여성 외에도 온몸에 털이 나 있는 인물은 거울과 각배에서 모두 발견되었다. 각배의 인간은 하반신 부위에 맹수와 겹쳐그려져서 반인반수처럼 보이는데 각배가 잘 남아 있지 않아 분명하지 않다.

 

각배의 동체부는 둥글게 돌아가기 때문에 여러 방향으로 그림이 도안되어 있다. 가장 큰 중앙의 인간과 가지가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 그 왼쪽에 그려진 사자와 싸우는 남성, 그 아래에는 기둥 2개가 방향이 달리 표현되어 있다. 2개의 기둥은 각배가 떨어져 나가면서 완전치 않지만 꼭대기가 불룩한 연꽃 형태인데, 우라루투의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발견된 식물 그림과 유사하다(그림 2).

 

그림 1. 스키타이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각배의 상세

 

그림 2.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발견된 식물 그림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켈레르메스와 각배가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각배와 거울 각 조각의 가장자리를 연결하고 있는 눈김이 새겨진 띠이다. 거울의 문양판은 은제 거울 위에 붙인 금제풉인데, 각 조각은 중간에 눈김이 있는 띠를 매개로 붙인 것이다. 각배에서도 같은 띠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또 각배에서 반인반수가 발 밑에 두고 있는 꼬임문양은 거울에서도 반인반수 문양 아래서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두 유물은 같은 장소에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참고문헌

Максимова М.И. 1956 : Ритон из Келермеса. // СА. XXV. 1956. С. 215-235.(막시모바 1956, 켈레르메스에서 출토된 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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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남쪽에 위치한 우라르트는 스키타이 세계와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곳이고, 특히 에레부니 성곽 이후에 세워진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성벽에서는 스키타이 화살촉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우라르트의 최대전성기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에레부니는 2개의 사원지가 가장 주목받는다. 특히 수시 사원이라고 이름 지워진 곳에서는 1958년에 Argishti I세가 Ivarsha(신)을 위해서 지었다는 비문(설형문자)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에레부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곳이다(그림 3). 비문은 사원의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수시 사원은 칼디 신의 사원과는 달리 면적이 40㎡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메소포타미아 건축 스타일이라고 한다. 전체 평면적은 10.00 × 13.45 m이지만, 내부 면적은 5.05 × 8.08 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벽이 매우 두텁다(그림 2).

 

그림 1. 예레부니 성곽 유적의 평면도

 

그림 2. 수시 사원의 평면도

 

그림 3. 수시 사원의 입구, 비문이 걸려 있다.

 

그림 4. 수시 사원의 입구 안쪽,

 

그림 5. 예레부니 성곽의 복원도, 그림 1의 네모 속의 위치를 복원함. 안뜰.

 

수시 사원의 벽은 하단은 특히 정밀하고 돌로된 블록을 쌓은 것인데, 유적에서 가장 정밀하다. 실제로 남아 있는 사진에도 거의 간극이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지워졌다(그림 3). 발굴당시에 확인된 수시 사원 성벽의 높이는 2.6m가량이다(그림 4). 현재는 성벽의 하단 부만 남아 있다(그림 3).

 

수시 사원은 예레부니 성곽 내에서 예레부니 사람들에 의해서 지워지지 않은 곳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아마도 하티(hatti)사람들이거나 혹은 다른 곳이라고 한다. 성곽 내의 다른 방들과 비교해 볼 때 수시 사원이 다른 방법으로 지워져서 그렇게 추정하기도 하지만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 시대에 페르시아 사원으로 재건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림 6. 오른쪽이 예레부니 성곽의 평면도, 왼쪽의 붉은 색이 수시 사원을 재건한 모습이다.

 

 

참고문헌

Оганесян К.Л. Арин-берд. I. Архитектура Эребуни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1950-1959 гг// Изд-во АН Армянской ССР, 1961. — 116 с. —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раскопки в Армении, №9).(오가네샨 1961, 1950~1959년 발굴된 자료로 본 아린-베레드 I유적, 예레부니 건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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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2. 09:22 책소개

 

인쇄 중인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에서 아직 블로그에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 한 부분은 환동해문화권 고고자료와 고아시아족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오클라드니코프가 자신이 발굴한 고고자료를 민족과 접목하면서 생긴 것이다. 그가 민족지자료로 고고자료를 해석하려 한 점은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제 인간형상물의 용도가 민족지 자료로 보아서 집과 관련된 제의적인 유물일 수 있다는데 동의한 부분이다. 또한 무덤에서 나온 자료를 민족지자료와 비교해서 얻은 성과도 상당하고 필자도 한국고고학에서 이러한 부분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1.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와 민족지자료의 비교, 1~23: 우스티 우다 4호 출토품, 24: 나나이족 샤먼의 모습

 

하지만 정정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여러 논고를 통해서 고아시아족을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사람들로 생각했다가 고고학 자료가 증가하면서 기원전 일천년기의 철기시대 폴체문화와 관련시켰고, 다시 만주-퉁구스족으로 정정했다.

그가 최초로 언급한 고아시아족인 나나이족, 울치족은 현재는 만주퉁구스어군으로 분류되고, 고아시아족 혹은 고시베리아족 혹은 니흐브족이 해당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성과가 쌓이면서 생긴문제이기 때문에 오클라드니코프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는 당시에 충실하게 연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클라드니코프는 아무르강과 연해주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고아시아족의 원류임을 전하면서 한국을 언급했는데, 동삼동 유적의 토기 및 패총을 들어서 연해주와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이 밀접하게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5).

문제는 이 연구관점이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져서 한국민족의 원류가 퉁구스 및 예맥인이 아닌 고아시아족이라는 관점일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고아시아족으로 예를 든 바이칼 유역의 글라스코보 문화는 신석기시대가 아니고 순동이 확인되는 시대이며, 한국동삼동 유적과 연해주의 신석기문화는 관련성이 크지 않다. 물론 연해주와 강원도는 환동해문화권이지만 동해안의 양양 오산리 이남의 자료인 죽변, 세죽과 같은 출토품은 오산리 유적과 관련성이 더 많다.

오클라드니코프의 논저 당시에는 알려진 동삼동 유적의 예는 미국인 샘플이 조사한 것을 주로 참고했을 것인데, 그 이후에 동삼동 유적은 다섯 번에 걸쳐서 재조사되었다.

오클라드니코프는 연해주 신석기인과 한반도 신석기인의 ‘관련성’을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를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원류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고아시아족으로 해석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한반도 소백산맥 이동의 남부지역에는 독자적인 신석기문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남부지역 신석기문화가 단계적으로 발전된 사실은 자명하다.

따라서 환동해문화권의 동심원문 암각화가 소백산맥 이동에서 확인된다고 해도 이는 환동해문화권 사람들과의 교류 흔적이며, 환동해문화권이 고립적인 지역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반도 남부지역 신석기문화 전체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없고, 더욱이 아무르강 민족문제와도 관련시키기도 힘들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선사문화: 연해주 고고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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