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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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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암각화 유적에서는 여러 곳의 유적에서 배 그림이 발견된다.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유적 및 우수리강변의 칼리노프카 유적, 세레미체보 유적 등에는 배 그림이 발견되었다. 특히 칼리노프카 유적에는 마스크형 암각화와 함께 그려져서 배 그림의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아무르강 하류에서 마스크형 암각화(그림 1)가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9000년 전으로 판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쌍탑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에 똑같은 그림(그림 3)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의 마스크

 

그림 2. 사차키 알리안 암각화

그림 3. 눈강 유역의 쌍탑 유적

 

마스크형 암각화는 동심원을 기반으로 한 그림이다. 그래서 동심원문양도 마스크형 그림과 동시기에 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된 지초리 유적에서는 동심원문양만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림 4. 세레미체보 유적

 

그림 5. 지초리 유적

 

우수리 강변의 세레미체보 유적에서도 마스크형 문양과 동심원문양이 함께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세레미체보 유적이나 두만강 유역의 지초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동심원문양은 9000년 전까지 올려 보기 힘들다. 이 때의 신석기시대 유적 자료 특히 마을 유적이 발견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리노프카 유적, 세레미체보 유적이나 지초리 유적은 연해주의 뚜렷한 신석기문화인 루드나야문화의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김재윤 2019). 배 그림도 이 시기에 그려졌을 수 있다. 대략 6500~6000년 전 이다(김재윤 2021).

 

 

 

참고문헌

 

김재윤, 2019, 「선사시대 동심원문 암각화를 통해서 살펴본 환동해문화권의 범위와 교류영역 - 고아시아족과 퉁구스족문제를 겸해서」, 『한국상고사학보』,제 104호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31.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에 위치하며, 동시에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다. 시호테 알린 산맥의 중부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 곳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즉 백두산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에서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진 방법과 같은 기법의 호랑이와 배 그림 등이 발견된다.

 

사카치 알리안 유적은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곳이다. 사카치 알리안 마을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말리셰보 마을까지 아무르 강가의 5km 범위 내에 화산암 바위 위에 그림이 남겨져 있다. 아무르 강 하류에서 직선거리 560 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내만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페그티멜 유적과 반구대가 절벽위에 그려져 있다면, 사카치 알리안은 강가에 바로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은 좋지만 유적파괴도 극심하다.

 

6지점에서 103개의 화산암 돌(그림 1)에서 1~12개의 표현물이 확인되었다(그림 1, 아래 사이트 참고). 암각화의 기법에 따라서 선쪼기 기법과 선 긋기(세선)로 구분되는데 각각 신석기시대와 중세시대에 그려졌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인간의 얼굴 혹은 마스크를 쓴 얼굴, 뱀, 사람, 배, 사슴-배, 사공이 탄 배, 새, 원심원 및 동심원 문양 등 기하적인 것도 백 여점 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원형의 문양이나 동심원문인데,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의 얼굴모양(그림 2-3~7)을 표현했다는 생각이다.

 

그림 1.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그림 2. 사카치 알리안 암각화(김재윤 2021b)

 

동물문양 중 사슴은 대단히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 사슴으로 추정되는 동물가운데, 몸통의 내면이 격자로 표현된 사슴(그림 2-2)과 호랑이(그림 2-3)표현은 반구대(그림 3-D,E)도 볼 수 있다(김재윤 2021b)

 

그림 3. 반구대 암각화(암각화보존연구소2020, 김재윤 2021b)

 

반구대 암각화에도 다양한 사슴표현이 있기 때문에 사카치 알리안과 다른 사슴표현도 많다. 그래서 더 눈이 가는 것은 ‘배(boat)’이다.

 

사카치 알리안의 암각화는 아래에 소개해 드린 사이트로 들어가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영문도 있음). 강가의 큰 돌에 그림이 있어서 접근하기 쉽지만 그만큼 유실도 많다. 사이트에서 잘 찾아 들어가면 3D로 암각화가 있는 돌을 돌려 보면서 그림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Ласкин А.Р. ПЕТРОГЛИФЫ СИКАЧИ-АЛЯНА: ИСТОРИКО-КУЛЬТУРНЫЙ КОНТЕКСТ И СОСТОЯНИЕ СОХРАННОСТИ :Автореф. дис...канд.ист.нук., Москва, 2015 (라스킨, 『사카치 알리안 유적: 역사문화적 접촉과 보존상태』, 2015, 15면)

김재윤, 2021a,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2021.

김재윤 2021b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한국의 암각화』, 2020.

https://aurockart.ru/

 

Петроглифы Нижнего Амура и Уссури

Трехмерное моделирование петроглиф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aurockart.ru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29. 09:22 고깔모자와 코트

 

 

해발 2000m의 쿠투르군타스 유적 남성은 이중으로된 나무방 속에 통나무관에 안치되었다. 통나무관이 매장되는 경우는 파지리크 문화에서 드물어서, 계급이 높은 신분에서 확인된다고 보았다. 통나무관이 발견되는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이 처음으로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도굴 때문에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남성도 해발 2500m위에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과 비슷한 사회적 역량이지 싶다. 이 유적에서도 모피조각이 발견되어서 남성은 모피로된 코트를 입었을 수 있다. 그나마 잘 남아 있는 남성의 모피코트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와 3호 남성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모피코트이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남성은 꼬리 달린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그림 2).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여성 모피는 통으로 발견된 예가 없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을 수 있고(포스팅 참고),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다.

 

2021.07.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탁사이 1 유적] -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금으로 된 십자형 그리핀이 표현된 장식판과 산양머리 장식판이 고깔모자와 상의에 부착되었다고 추정된다. 발굴당시에 고깔모자와 상의는 남아 있

eastsearoad.tistory.com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은 통나무관에서 꺼내진 상태로, 미라로 처리된 시신은 찢겨진 상태로 발견되어서 몸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코트는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된 아플리케 장식(그림 3,4)과 그 위에는 둥근 금박이 씌워진 화려한 코트이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코트

 

 

그림 4. 그림 3의 디테일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은 쿠트르군타스 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는데, 주머니의 조각으로 보고 되었으나, 코트의 조각 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모피코트를 입었던 경우가 울란드리크 1유적 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역시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된 스타일이고, 여러 번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쿠바레프는 그 흔적이 여러 아이들이 돌려 입으면서 생긴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해발 2000m가량의 이중목곽묘 안에 통나무관이 있고 무덤을 덮은 돌의 범위가 25m가량인 쿠투르군타스 무덤은 특히 알타이에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시설이 있었다. 알타이에서는 처음 발견된 예이다. 말의 굴레장식에 달았던 사람얼굴의 목제품도 몽골로이드의 얼굴이 아니다.

 

쿠투르군타스 무덤에는 예상대로 30~40세 남성이 매장되었다. 도굴꾼은 뚜껑도 열지 않고 부수고 유물들을 꺼내갔다. 남아 있는 유물은 목이 긴 토기(쿱신이라고 불림)(그림 2-10), 뼈로 된 화살촉, 수탉 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1), 목제 산양머리 장식(그림 1), 활통에 달았던 일종의 단추(그림 2-14), 그리핀 형태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3), 가죽으로 된 산양뿔 장식(그림 2-12) 등이 조각이 나서 남아 있었다. 남성은 모피코트(그림 2-7)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산양머리

 

또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매듭끈(그림 2-9)도 발견되었다. 활과화살통에 달았던 것이었는데, 이 유적에서도 같은 용도였을 것이다.

 

가죽아플리케가 붙은 모피조각(그림 2-7)도 발견되었는데, 주머니로 보고되었으나, 비슷한 문양은 알타이에서 발견된 여러 옷 조각에서 볼 수 있었다.

 

마구의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그림2-1~6). 그런데 눈에 띄는 유물은 말의 머리를 조각한 것이다(그림 2-3). 금박을 입힌 채 남아 있었는데, 모두 4점이 발견되었다.

 

 

그림 2.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출토유물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쿠투르군타스의 무덤구덩이 내부에는 직경 7~8cm가량 통나무를 쌓아올린 4.2×2.2m 크기의 나무방이 설치되었다. 나무방을 덮은 통나무는 11개가 조밀하게 붙어 있고, 북쪽 부분 말이 매장된 곳으로 도굴로 깨진 상태였다. 나무방의 덮개는 도굴로 인해서 구멍이 있었고 그 속에 무덤위를 덮었던 돌이 들어간 상태였다(그림 1-1). 안쪽의 덮개는 나무방 크기에 맞게 만들어 진 것으로 는 것으로 6개의 나무판자로 덮었다(그림 1-2).

 

이중나무방 안에는 통나무관이 있었는데, 도굴꾼이 통나무덮개까지 구멍을 내고 시신을 꺼낸 상태였다(그림 1-3).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 바깥은 그릇위에 고기를 두는 공간이지만 발견된 것은 토기 1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무덤에서 발견된 목제쟁반과 철제 칼은 무덤의 바깥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쿠투루군타스 유적 1호

 

말은 모두 10마리가 부장되었는데, 10마리를 밀어 넣은 상태였다. 서로 납작하게 깔려 묻혀 있었고 철제 재갈을 물고 마구가 착장된 상태였다. 말이 흐틀어진 흔적이 없기 때문에 마구가 도굴당하지는 않았는데, 굴레장식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얼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모양의 굴레장식(그림 2)이 발견되어서 흥미롭다. 아시다시피 얼굴모양의 굴레장식이 발견된 예는 파지리크 유적 1호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그림 2. 얼굴모양 굴레장식

 

이 유적의 무덤에는 알타이에서 관찰되지 않던 무덤구조 가운데 연도가 발견되었고, 인면에 표현된 사람도 몽골로이드의 얼굴이 아니어서 궁금증을 유발한다(연도가 있는 스키타이 무덤은 흑해지역의 특징이다). 하긴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과 5호분 여성도 유럽인종의 여성으로 판명되었기에 동양인종이 아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