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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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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제 오늘 이 키워드로 많이 찾아오셔서 ....

시베리아 카테고리의 신석기시대, 순동시대, 청동기시대가 다 채워져야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이 문화에 대해서 자세하게 포스팅 할 예정인데, 머 하나씩 해 두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시베리아의 철기시대문화에서는 미라가 확인된다.

필자가 대학교 입학하던 해인 1995년에 한국에 알타이 미라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에서도 순환전시를 한 적이 있다. 너무 전시가 어둡고 유물전시물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해 놓아서 미라의 얼굴은 생각이 안난다. 내가 그때는 러시아 유학갈꺼라고 생각도 안했다. 여담이지만.

 

먼저 알타이 미라의 복원문제를 접근 하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알타이 미라를 복원했는데, 유럽인이라더라...아니다 등....

(역사와 정치의 문제이다)

 

알타이는 산맥의 이름이다. 알타이의 굽이굽이 산맥은 사람이 안 살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 즉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 산 위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 유적이 위치한다. 이런 지형을 러시아어로는 돌리나долина라고 하고, 우리나라 말로는 계곡이 가장 적당하다. 그런데 한국어로 계곡이라고 번역하면 그 뉘앙스가 아주 좁은 계곡에 물이 흘러내리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알타이의 그 산 사이의 그 분지 같은 계곡을 단순히 계곡이라고 번역하기 힘들다.(초창기에는 그렇게 번역을 많이 했다.)

 

하여간 산과 산사이의 평탄지, 낮은 곳으로 완전한 분지는 아니지만 아늑한 곳에 유적이 많다. 알타이 산맥 사이에서는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는 돌리나 곳이 ‘우코크’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47.2032452,86.9194223,5.46z/data=!4m5!3m4!1s0x42b77554a0669b95:0x2fcb81f24cd72647!8m2!3d49.3333333!4d87.5?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이 우코크(Укок, Ukok)고원의 무덤에서는 여성미라가 출토되었다. 우코크 고원의 무덤에 관해서는 너무 많은 내용이라서 올해 차차 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필자는 신석기시대부터 차례대로 하고 싶은데,)

 

그런데 이 여성은 살아서도 매우 인기가 많았겠지만, 죽어서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여성이 발견된 무덤이 있는 유적의 이름은 아크 알라하-3(Ак-Алаха-3,Ak-Alakh-3) 유적이다. 1993년 폴로시막(Наталья Викторовна Полосьмак)이라는 여성 고고학자가 책임을 맏아서 발굴을 하였다. 이 유적은 기원전 5~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필자가 앞에서 포스팅한 사진은 직접 찍었는데, 그때가 2008년인가 였다. 이 미라는 그 때까지 폴로시막 박사가 연구하는 연구소의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2012년에 알타이공화국의 고르노-알타이 시(г. Горно-Алтайск, Gorno-Altaysk)의 아노히나 박물관(музея имени Анохина, Anokhin National Museum)으로 옮겼다.

 

즉 필자가 사진을 찍은 연구소박물관은 노보시베리스크 시의 연구소 박물관에서 찍은 것이고 2012년은 알타이공화국의 박물관으로 옮겼다. 미라 입장에서는 알타이에 쭉 매장되었다가 연구소에서 발굴해서 노보시베리스크로 갔다가 다시 알타이로 돌아온 곳이다.

 

2018/05/02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무덤과 집

 

무덤과 집

앞에서 과거의 무덤은 살아 생전의 집을 옮긴 것에 대해서 신석기시대의 사례를 예로 들고 살펴보았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22?category=714181 그런데 또 필자가 알고 있는 그런 사례를 설명하고자..

eastsearoad.tistory.com

 

알타이공화국은 중국으로 치면 소수민족자치구이다. 러시아는 소수민족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각 지역에 공화국을 인정한다. 러시아연방소속이지만 자기네들의 자치법도 있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알타이 사람들 신화에는 땅 밑에 있는 공주를 건드리면 재앙이 닦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20년간 알수 없는 지진과 홍수 등이 모두 알타이 미라를 꺼내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 알타이로 다시 돌아온 공주를 땅속에 뭍기로 결정했다.

알타이의 영적 센터에서 회장은 샤먼인데, 이 분과  몇몇 사람이 알타이 법원에 박물관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 했으나 졌으나, 국제법으로 소송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상한건 예전에 필자가 본 미라의 얼굴복원 모습은 유럽인도 아니고 아시아인도 아니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은 인도-유럽인종이라는 생각 혹은 연구가 팽배했었다. 그런데 위의 일이 있은 이후로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모든 알타이 미라의 복원된 얼굴은 유럽인에 가까웠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몰로딘 박사는 우코크 고원에서 발굴된의 미라는 공주도 아니고, 중간계급정도이고 어쨌든 이제 알타이에 있다......그리고 알타이의 모든 자연재해가 이 우코크 고원에서 발굴된 미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알타이의 다른 유적인 파지릭 무덤에서 미라가 발굴이 첫 번째이고, 그가 계급적으로도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적이 있다'.(«Эксперт Сибирь» №19(161)

https://web.archive.org/web/20070525114358/http://www.expert.ru/printissues/siberia/2007/19/interview_arheolog_molodin/

 

*참고로 인터뷰한 몰로딘 박사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대표적인 책임수석연구원의 자격으로 인터뷰 했지만 사실은 우코크 고원 발굴책임자인 폴로시막 박사의 남편이다^^

 

미라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계속 포스팅 해 드리겠다. 최근에 떠 돌아다니는 여성미라의 얼굴복원에 관한 내용도 정보를 좀 더 수집해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별로 눈길끄는 이야기가 없는 이 공간에서 오늘은 약간 흥미로운 유적을 소개드리고자 한다.

필자가 지난 6월에 답사 다녀온 박물관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다.

 

2019/06/24 - [세계의 박물관/중국의 박물관] - 합민망합 유적(哈民忙哈) 박물관

 

합민망합 유적(哈民忙哈) 박물관

올해의 첫 번째 답사를 다녀오고, 두 번째 답사를 준비하면서, 일주일도 안된 기억이 가물해진다. 첫 번째 답사는 주로 중국의 몽골지역인 내몽골지역이었다. 꼭 보고 싶은 유적의 유물이 오늘 소개할 곳이다. 왜..

eastsearoad.tistory.com

 

사실 필자가 앞으로 홍산문화 옥기와 관련해서 많이 자료를 활용할 것인데,

중국 내몽골 통요부근에 있는 하민망합 유적이다.

 

(아래 구글 지도를 클릭하시면, 박물관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유적 위에 박물관을 지었음으로 그 곳이 유적의 위치도 된다. 구글지도와 포토 기능 너무 좋다....ㅋㅋ, 아래에 붉은 워터마크 표시가 박물관의 입구이다.)

 

https://www.google.com/maps/place/43%C2%B058'45.7%22N+122%C2%B012'59.7%22E/@43.9805481,122.2100397,2115m/data=!3m1!1e3!4m5!3m4!1s0x0:0x0!8m2!3d43.9793694!4d122.2165833

 

 

43°58'45.7"N 122°12'59.7"E

102 Xiang Dao, Keerqinzuoyizhong Qi, Tongliao Shi, Neimenggu Zizhiqu, 중국

www.google.com

이 유적은 5년에 걸쳐서 주거지 78기와 무덤 14기를 발굴했다 한다.

필자가 이 유적에 대한 분석을 끝낸 건 아니지만, 아는 한에서 설명하면

 

유적 전체 분포도

 

 

이 유적은 ‘홍산문화의 주거지+홍산문화에서 볼 수 없었던 토기+홍산문화와 비슷한 옥기+그 외 홍산문화와 다른 석기’로 이해된다. 연대는 5500~5000년 전에 해당되며, 홍산문화의 가장 늦은 시기인 5기(5000~4400년 전, 김재윤 2019)보다 빠르다.

당연히 앞으로의 논점은 이 유적이 홍산문화의 것인지 아닌지. 혹은 홍산문화 자체에 대한 검토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유적에는 40호 주거지 안에 사람이 98기가 들어간 채로 발굴되었다.

98기는 시신이 완전히 사지가 굽어진 것이다.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누군가 98기의 시신을 굽혀서 한 주거지에 넣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우연히 이렇게 한 건 아닐 것이다. 집터를 무덤으로 사용한 것이다.

책에는 전염병이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아래참고문헌). 이 유적에는 여러 집터에 인골이 묻혀 있는데, 40호를 제외하고 6인, 17인, 22인 등이 묻힌 집터도 있다. 무덤에 인골을 집어 넣은 것도 의도적이었고, 집에 불낸 것도 의도적이다. 불난 집은 12채이다. 불난 집 모두가 무덤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보고서가 완간 된건 아닌데,, 하단에 소개해 둘 책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완전히 보고서 나오기 전에 이런 책이 나온 거 보면....이걸로 끝내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다....)

 

40호 집터 안의 98인이 확인된 정황.
37호에는 22인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화재난 주거지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집터의 가장 하단에 남아 있는 것이 집을 지었던 목재의 흔적이다. 

 

32호는 불은 났는데, 인골을 뭍고 불을 낸건 아니다. 무덤으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불나면서 죽은 사람은 확인되었다.

 

아마 여러방면에 학자들이 연구하면 재밌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같이 유물과 유적중심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보면, 한 가지 더 떠오르는 생각.

 

신석기시대 늦은 시기로 갈수록 무덤과 집은 구분된다(김재윤 2017).

즉 이 단계는 이미 무덤이 마을유적과는 별도로 확인됨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이래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통요(通遼)는 그간 유적이 많지 않아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는데....

너무 좋은 유적이 중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너무 좋은? 연구하기에 좋은....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참고문헌

內蒙古文物考古硏究所, 香港中文大壑中國考古藝術硏究中心, 2018, 『哈民玉器研究』, 中國書房

김재윤 2016, 5000B.P.이후 평저토기문화권 동부지역의 무덤으로 전용된 주거지에 대한 이해, 한국신석기연구

김재윤 2019,  「홍산문화의 편년에 대한 검토-‘압인之자문토기’를 중심으로」, 『고고학』, 18-2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작년에 필자가 진짜 재밌게 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나 빼고도 다 재밌게 보셨겠지만.

그런데 여주인공이 처음배웠다는 영어단어

Gun, Glory and sad endding이었다. 오늘 제목은 그걸 살짝 바꾼 것이다

얼굴 가리고 총들고 지붕 위에서 적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그리고 명예...

주인공이 들고 있던 총의 옛 모습이 검이었을 테니깐. 우리가 살고 있는 배경이 그 때 그 슬픈시절이 아니니, 새드엔딩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오늘 약간 풀어놓을 것은 인류사 최초의 무기이다.


 

사실 요즘 필자는 환단고기 때문에 홍산문화를 난도질하는 중이다. 첫걸음은 토기인데,,왜냐하면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편년문제 때문이다. 편년은 그냥 시간 혹은 기간 쪼개기로 생각하면 된다. 이 부분은 논문은 두어편 있어야 할 듯한데,, 한편은 곧 공개될테고, 다른 한편은 시베리아 자료가 약간 부족해서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좀 많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유물이 아래의 사진이다.


 사진1.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조합식석인검(적봉박물관에서 필자촬영)


조합식석인검, 석인창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석인골병도(石刃骨柄刀)라고 한다.

주로 나무나 뼈를 갈고 홈을 파서 석인(石刃)을 끼워넣은 것이다.

석인이라는 용어는 어려워 보이나, 영어로 하면 blade인데, blade는 그냥 쓸 수 없어서 어딘가에 끼워서 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늘 설명한다. 석기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된 것은 컴퓨터가 방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크기로 변한 것과 같은 거라고 설명하면, 모두 잘 이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과 만들기 적합한 재료, 그리고 이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은 후기구석기시대 부터라고..(이 부분은 논점에서 벗어남으로 다음에 설명한다.)


이 유물이 중국요서지역에서 보이는 것은 홍산문화부터이다.

그런데 이 유물은 시베리아의 것이다.

시베리아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문화까지, 청동검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지속된다. 또 이 유물이 주로 분포하는 바이칼 유역의 아래 동네인 몽골, 중국신강, 카자흐스탄 까지 5000년 경에 출토된다. 아마도 알타이 산맥과 붙어 있는 천산산맥을 따라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그림 2. 후기구석기시대(1~4)와 순동시대(5~7)의 조합식검과 창




그림 3.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조합식 석인검


필자는 이 유물이 언제 어디서 없어지고, 생겼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동쪽의 끝은 중국요서지역 홍산문화(6000~4500년 전) 및 그 이후의 소하연문화(4500~3500년 전)이다. 제대로 알려면 홍산문화의 언제적부터 이 유물이 나오는지도 살펴야 하고, 어떤 상황(유적)에서 출토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유물이 들어가는 서쪽과 남쪽도 궁금한데,,,..확실한건 시베리아에서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청동검 등장까지 사용된다. 그리고 정확하게 청동검과 이 유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인류사 최초의 무기라고 생각된다. 혹은 무기형태...무기에 사회적역할을 부여하면 후기구석기시대무기는 약간 어불성설이지만, 그런데 무기의 모습을 띤 것은 맞다.

 그래서 필자는 이미 구석기시대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의 첫 모습은 다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요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이 유물의 기원 찾기 때문에 시베리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영의 Great game 이전에 시베리아에 포함되었던 현재의 카자흐스탄에도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이는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진 배경과 관련 있는데,,,아마 다른분들이 많이 포스팅했을 가능성이 많다)


유라시아를 내가 통째로 다 할 수는 없으니, 지역도 한정시키고, 주제도 몇 개로 줄일려고 한다. 시베리아는 중앙유라시아에 포함된다. 서울대 김호동교수는 중앙유라시아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보고 있다(김호동,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 이 유물 때문에 시베리아 후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포스팅하고,,,,원고도 적어야 한다.


필자의 수업자료에서..(중앙유라시아로 규정된 부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