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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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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다. 흑해와 아조프해가 연결되는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다. 이 곳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유물 속에서 등장하는 스키타이 여신이 발견되었다. 잘 알려진 것은 말의 얼굴가리개이다. 이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도 돈을 더 주고 들어가야 하고, 사진 찍기가 금지된 방에 전시되어 있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위치: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사실 사진찍기 금지가 무슨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많이 소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유물도 아니다. 이런 게 있어야 더 재밌어 하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위한 이벤트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 말가리개가 사진찍기가 금지된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유적에서는 여신관련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2020.08.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북안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탄생설화가 있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들이 하는 이야기가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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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하나는 이미 소개한 말 장식으로 팔레라(그림 1)라고 불린다.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주로 원판형 팔레라로 그 안에 동물문양이나 혹은 이야기(혹은 신화)속의 한 장면을 표현한다. 원판형의 팔레라는 이미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소개한 볼쇼야 블리즈니차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그리스인과 싸우고 있는 아마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잘 못 설명한 것이 있는데, 이 유물은 청동을 주조해서 만든 것이다. 즉 틀에다가 액체화된 청동용융액을 부워서 만들었다. 이 시기에 많은 금속제 유물이 주조로 만들어 졌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기원전 4세기, 팔레라, 청동, 말 머리 장식, 직경 9.5cm

그림 2. 주조틀, 기원전 3~2세기 헤르손 지역


주조틀(그림 2)은 점토로 만들어진 것인데, 양판과 음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경의 금속유물들이 매우 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주조로 붕어빵 굽듯이 구워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동으로 된 유물을 토제로 된 틀에서 제작된 예는 우리나라의 청동으로 된 세문경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토제틀은 거의 발견된 예가 없는데, 제작 후 토제틀을 깨어내어야 거울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문경의 문양이 워낙 세밀하기 때문이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과 쿨-오바 유적에서는 여성상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다시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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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오래간만에 필자가 포스팅 하는데 예전에 사르마트 문화의 마구 장식 가운데서 둥글게 된 장식판이 있었다. 사실 이 마구 장식은 사르마트 문화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발견되었다. 특히 기원전 5세기경에는 알타이 지역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에서도 만들어진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유물은 청동원판으로 된 것인데, 기원전 4세기 볼사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나왔다. 원판의 뒷면을 눌러서 다른 면을 불룩 튀어나오도록 제작된 것이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기원전 4세기,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설명표에는 그리스인과 싸우는 아마존 여전사라고 되어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4세기로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고,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이미 앞서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사르마트 사람들 가운데 여성전사들만 살았던 부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비단 사르마트 문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 일까? 이 여성들이 아마존인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유물이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흉노 무덤인 노용 올 20호 유적에서 나오는데, 비슷하다. 몽골에서는 이 유물이 헬레니즘(그리스)과 관련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이 유물은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와 관련성이 더 깊다고 생각한다. 흉노의 무덤에서 외래계 유물은 대형무덤에서 나오는데 이 대형무덤이 축조되는 시간은 기원전 1세기경이다. 이 때 유라시아 초원을 뒤덮었던 스키타이 문화 대신에 사르마트 문화와 흉노가 반분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로마제국이 자리를 잡았을 때인다. 또 사르마트 문화와 흉노 문화는 각각 스키타이 문화를 뒷잇고 있다. 아직까지 잘 발켜지지는 않았지만 흉노문화 속에는 흑해지역 스키타이 문화의 잔상이 드문드문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원형의 마구장식일 수 있다. 만들기 쉬운 유물이기 때문에 대량으로 만들어서 소비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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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31.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는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문화를 멸망하고 사르마트 문화가 새로이 들어온 것으로 기록했지만 물질문화 상으로는 여러모로 두 문화는 연속적이다. 물론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와 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가 완전히 같지않다.

연속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유물의 구성이나 장식적인 요소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물문양장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에 비해서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장식은 형이상학?적이다.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장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주제 들이 많다.

예를 들면 머리는 말인데 몸통이 길어진 것과 같은 동물인데, ‘용(龍)’이라고 여겨진다. 러시아 및 유럽의 연구자들도 이렇게 이상한 동물을 그리핀 혹은 용이라고 부른다. 더 동쪽에서 발견되면 용이라고 하고, 그리스적인 주제와 혹은 서쪽에서 발견되면 그리핀이라고 하는 것 같다. 아니면 혼용해서 쓴다.

청동솥도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물건이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되는 이 유물은 기원전 4세기 이후 서쪽의 사르마트 문화나 동쪽의 흉노문화에서도 여전히 사용된다. 물론 사용방법과 그 모습은 변화되었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장식, 1세기 사도브이 유적, 돈강 하류의 노보체르카르크 시

 

사르마트 문화에서 나오는 황금 관(황금장식이 붙은 모자 포함)도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있어왔던 의복장식 중에 하나이다.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황금으로 된 유물에 유색의 돌을 감입하는 제작방법이 새롭게 나오는데, 호흘라치 유적의 관은 이를 대표한다. 호흘라치 유적과 같은 주제의 장식이 코비야코프스키 유적과 우스티-라빈스카야 유적에서도 나왔으나, 유기물질로 된 모자에 붙이는 용도이기 때문에 이 유적의 유물에는 유색의 돌을 붙이지는 않았다.

 

자세츠카야(2011)는 호흘라치 관에 감입된 유색의 돌은 유목민족의 특징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붉은 빛이라도 하나의 돌을 사용하지 않고 톤이 다른 붉은 색 돌을 사용했고, 녹색도 마찬가지이다. 이 관을 만든 장인은 그리스 문화 뿐만 아니라 사르마트 문화도 매우 잘 이해하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 관을 쓴 사람이 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를 대표하며, 관의 주인공의 취향과 화려함이 그대로 녹아서 누구라도 그녀를 알아 볼 수 있도록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림 2.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유적 주인공 복원, 1세기, 돈강 하류의 노보체르카르크 시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아무나 이 관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찍이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의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과 각배를 연구한 막시모바(1979)도 이 관을 만든이는 그리스 문화(헬레니즘)과 유목문화를 모두 잘 이해한 사람만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자세츠카야와 막시모바는 이 관을 만든 사람을 단순히 어떤 문화의 장인이라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공방부터, 시리아 혹은 파르티아에서도 이러한 작품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관에 들어 있는 여러 관념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4세기 훈족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주제로 보아서 유목민의 특징을 잇고 있다고 결론내렸다(자세츠카야 2011).

 

 

 

참고문헌

Максимова М. И. Артюховский курган. Л. 1979(막시모바 1979, 아르튜호프 쿠르간)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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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30.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유적에서 출토된 화려한 왕관은 하단에 부착된 여성 때문에 보스퍼러스 해협에 있던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그리스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로스토프체프(1925)는 이 관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자료가 축적되면서 의아한 점도 많이 생겼다. 황금관에 여러 장식을 고정했던 방법은 금으로 된 와이어 끈을 이용한 것인데, 틸리아-테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 방법이다(포스팅참고). 이 유적은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이 유적의 관은 매장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호흘라치 유적과 비슷한 모티프를 가진 우스티-라빈스카야 유적과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의 관은 유기질제로 된 모자와 같은 것에 붙이는 방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호흘라치 유적은 그렇지 않고 주조물로 된 나무, 사슴, 새를 입체적으로 붙이는 방법이고, 하단의 여성상, 새등도 따로 제작해서 붙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다.

 

2022.01.11 - [이름없는 왕의 무덤:틸랴-테페유적] - 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북방유목문화

 

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북방유목문화

아프카니스탄에 위치한 틸랴-테페 유적의 6호 무덤은 여성이 피장자인데, 매우 화려한 옷을 입고 매장되었다. 목 아래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 표현된 장식판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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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북방 유목문화

틸랴 테페 유적은 아프카니스탄에 위치한 유적으로 여러 문화가 복합되었다고 생각된다. 6기의 무덤 가운데 1기가 남성무덤인데 이곳에서 그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다. 다른 무덤과는 달리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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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흘라치 유적과 틸리아-테페 유적의 관 제작 방법이  비슷한 방법(와이어 사용)으로 제작되었는데, 여기저기서 발견되지 않는 다면  호흘라치 유적의 관이 보스포러스 해협에서만 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틸리아-테페 유적의 관에는 그리스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 유물의 공통적인 주제는 나무와 새이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의 관. 뒷면.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이유에서도 호흘라치 관은 스키타이나 사르마트 문화에서 보이는 특징이 관찰된다. 왕관의 바닥과 맹금류의 제조에 일종의 수지성 암흑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터키석이나 유색 돌의 뒷면의 빈 공간을 채우데 검은색 수지 물질이 종종발견된다. 예를 들면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토므리크 유적과 엘리자베토프카 유적에서 발견된 칼집의 판에는 비슷한 성분의 물질로 채워진 것이 발견되었다. 어두운 색 수지 물질도 많이 발견되는데 사르마트 문화의 여러 무덤(키라소노프 유적, 주토프스키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자세츠카야 2011).

 

 

 

참고문헌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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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9. 09:22 사르마트 문화

러시아 돈강 하류에 위치한 노보체르카르크 시의 호흘라치 유적은 사르마트 문화의 후기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아주 화려한 황금관이 출토되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상판과 하판의 주제가 다르고 황금과 유색의 돌로 장식된 관이다. 상단에는 나무, 사슴, 새가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는 어떤 여성과 새가 황금판에 부착되어 있다.

하판의 여성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라고 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 유물이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되었다는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막시모바 1979).

여성의 주변에 감입되어 있는 붉은색, 녹색, 자주색, 흰색의 색감은 초원에서 많이 사용하던 색감이다. 이렇게 특징적인 관은 쓰는 사람의 취향이 깊게 반영된 것으로, 사르마트 문화 혹은 알란인들 유목민의 대표자 였다는 점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이 관을 만든 사람은 사르마트 문화 및 그 주변의 유목민 문화 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화의 유물도 익숙하게 만들던 그런 장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다는 근거는 없다(막시모바 1979).

 

이 유물의 상단에 장식된 주제와 유사한 호흘라치 유적과 비슷한 주제가 우스티-라빈스카야 유적과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모두 사르마트 문화의 유적으로 1세기 유적이다(포스팅 참고).

2022.06.16 - [사르마트 문화] -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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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주제는 1세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4세기 후반~5세기의 훈족에게서도 발견되었다. 볼가 강과 돈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베르흐-야블로치니이 유적에서 나온 펜던트이다. 이 장식판은 앞과 뒤가 전혀 다른데, 앞면은 풍뎅이?와 같은 벌레(그림1)를 형상화 한 것이고 뒷면(그림 2)에는 염소, 나무와 새, 개(혹은 맹수)가 작은 황금 알갱이를 붙여서 만들었다. 앞면에는 붉은색 가넷을 감입했다. 뒷면의 모트브는 우스티-라빈스카야 유적의 장식판과 더 가깝다.

 

그림 1. 베르흐-야블로치니이 유적, 4세기말~5세기 훈족의 유적

 

그림 2. 그림 1의 뒷면

 

즉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에 굽동물과 새가 복합된 주제는 매우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전해진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는 나무의 표현, 굽동물의 종류는 변화되어 왔고 어느 순간부터 새도 등장하게 되었다. 아마도 유라시아 초원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용된 주제 중에 하나이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호흘라치 유적의 이 황금관은 누구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까?

 

참고문헌

Максимова М. И. Артюховский курган. Л. 1979(막시모바 1979, 아르튜호프 쿠르간)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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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7.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호흘라치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관이 출토되었다. 하단과 상단의 주제가 각각 다른데 마치 지도와 같다. 하단에는 그리스 여성과 새가 표현되었고 상판에는 나무, 사슴, 새가 표현되었는데, 그리스 북부의 초원지역인 사르마트 지역을 의미하고 있다.

 

사슴과 나무 주제는 사르마트 문화 이전, 스키타이 문화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우라루투의 유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라루투는 아나톨리 지역 가운데서 코카서스 남쪽에서 기원전 8세기경부터 자리잡고 있던 국가이다. 앗시리아 보다 더 강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새는?

 

호흘라치 무덤의 관에 있는 새는 날개를 펴고 전면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리스 여성의 양쪽에 2마리가 있고, 상단에도 날개를 접고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새가 2마리씩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의 관에 있는 새 장식

 

하단의 그리스 여성과 새는 금으로 된 머리밴드와 따로 제작해서 붙인 것이다. 새의 배와 날개에는 유색의 돌로 상감되어 있다. 새의 부리끝에는 이상한 줄기가 달려 있다.

 

그런데 같은 시대의 고르피기아(케르치 해협의 그리스 도시)의 검에도 새가 있다. 하지만 새는 측면이고 토끼를 물어 뜯는 장면이다. 또 비늘장식처럼 새의 깃털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2. 고르피기아의 검 속에 표현된 새와 토끼

 

코롤코바와 자세츠카야는 이 새장식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전해져온 새의 자세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2-1)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유적(그림 2-2,3)에서도 양 날개를 편 새들은 출토되었다(그림 2).

 

그림 3. 스키타이 문화의 새 장식

 

호흘라치 유적에서 출토된 관의 하단 중앙에는 그리스 여성이 있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두 마리 새는 초원의 특징이다.

 

참고문헌

Королькова Е.Ф. 2008, Сарматские украшения и сибирское золото древних кочевников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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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6.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경 유라시아 초원에는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어서 사르마트 문화라고 명명된 문화가 볼가 강~ 돈강 유역에서 생겨나서 서쪽의 드네프르강~드네스트르 강으로 퍼져나갔다.

이 문화는 2세기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호흘라치 유적의 관은 가장 잘 알려진 유물 중에 하나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족들은 일찍부터(스키타이 문화)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앞이마를 가리는 밴드 형식과 머리높이 보다 높은 장식이 있는 크라운 형식이다. 밴드 형식의 머리장식은 뒤에 로마의 황제들도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호흘라치 무덤의 관은 크게 상판과 하판으로 구분된다. 특히 상판은 나무와 사슴, 새로 구성되어 있고, 하단은 그리스 여성이 표현되어 있다. 이 머리장식은 머리밴드와 크라운이 결합된 형식이다.

호흘라치 관의 하단에 표현된 여성은 머리모양으로 보아서 아프로디테로 추정된다(자세츠카야 2009). 자세히 보면 여성의 귀 뒤로는 길게 머리를 땋거나 혹은 머리밴드에서 흘러내린 끈이 어깨 높이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머리형식은 1~3세기 아프로디테를 표현한 방법이라고 한다(로스토프체프 1993).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유적 출토 관(冠)의 세부

 

그러나 머리띠(밴드)를 착용하거나 머리를 어깨 높이 혹은 그 아래까지 하는 긴 머리스타일은 단순히 그리스에서만 유행했던 머리스타일은 아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어깨 혹은 어깨 아래까지 오는 긴 머리 스타일과 머리띠를 착용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 머리밴드는 스키타이 세계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인기가 많았다. 또 II~III세기 이란에서도 여왕과 남성사제는 머리띠 혹은 머리에 컬이 있는 스타일이었다(야센코 2006).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된 수많은 그리스로마의 사람을 표현한 테라코타제품들 가운데 머리띠를 착용하거나 긴 컬을 표현한 것은 여왕,여신,제사장이다(호자 2005).

 

그렇다면 호흘라치에서 출토된 관 속의 그리스 여성은 그리스에서 유행한 머리스타일이다. 하지만, 단지 그리스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인접한 지역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사르마트 문화 시기에 머리밴드는 최상위 계급(통치자 및 귀족)만이 착용하지는 않았다. 일반인들도 착용했다. 단지 금과 화려하게 치장된 것은 고귀함, 부, 신의 권능을 부여 받은 상징으로 여겨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가죽이나 천에 유리구슬이나 일반 구슬을 달아서 착용했다.

사르마트 문화의 유적에서는 아주 많은 구슬들이 출토된다고 한다.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목걸이, 팔찌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유물들은 머리밴드에 장식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아주 소략한 무덤에서도 구슬들은 출토된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 А.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М(야센코 2006, 고대 유라시아의 의복)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Ростовцев М.И. 1993 : Парфянский выстрел. // ПАВ. №5. 1993. С. 98-107.(로스토프체프 1993, 파르티아 샷)

Ходза Е. Н. 2005, Вослед Прометею. Греческие терракоты в Эрмитаже. СПб(호자 2005, 프로메테우스의 유산.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그리스의 테라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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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4. 09:22 사르마트 문화

로마의 황제들이 북방민족의 머리장식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부터이다. 그들이 사랑한 은제 쟁반에 남겨진 황제의 모습으로부터 알 수 있다.

여기서 북방민족은 사르마트 문화와 그 이전의 스키타이 민족이다. 또 페르시아에서도 착용했다. 알려지기로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원정을 떠나서 돌아올 때 페르시아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졌다.

 

일단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문화/사르마트 문화에서 보이는 여성의 머리장식은 앞이마를 가리는 머리띠가 있고 정수리 부근에 이등변삼각형(나무 모양)의 높고 복잡한 머리장식으로 치장을 하는 것이 흑해 북쪽에서 발견된다. 특히 앞이마를 가리는 머리띠 장식은 상당히 널리 유행한 장식 다. 기원전 5세기~4세기 알타이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확인된다.

 

그림 1. 기원전 4세기 사흐노프스키 쿠르간, 머리밴드 형식

 

그림 2.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복원, 그림 1은 앞이마를 가리는 모습으로 사용되었다.

 

 

흑해지역에서 앞이마를 가리는 고리 모양의 머리장식은 기원전 7세기 멜구노프 유적에서도 나온다(그림 3-1). 이 시대에는 크라운도 있다. 단순한 머리밴드가 아니라 머리높이 보다 더 높게 하는 것이다(그림 3-2). 물론 이 유물은 그리스제품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이 유물이 왜 이곳에서 발견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림 3. 멜구노프 유적(상)과 켈레르메스 유적(하), 기원전 7세기

 

 

크라운 형태(머리 보다 높은)는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5호분에서 나온 카페트의 여성들도 착용하고 있었다. 또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남성들도 비슷한 관을 썼다. 이 유적은 기원전 5~기원전 3세기이다(아래포스팅 참고).

 

 

그림 4.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 카페트

 

2020.12.18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기원전 5~3세기 신전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기원전 5~3세기 신전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유물 속에 인물이 많이 숨어 있다. 평면판 속의 사람들, 입체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다. 그런데 여성도 발견되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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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에서 머리보다 높은 장식을 하는 관의 형태와 앞이마를 가리는 머리밴드 형식이 이미 기원전 7세기경부터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각각 존재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4세기경부터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앞이마를 가리고 정수리를 높게 하는 장식이 특히 여성들 사이에 번져나갔다. 이는 여성의 무덤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이다.

 

둘 중에 누가 더 오랫동안 사용되었을까? 당연히 더 간단한 머리밴드 형식이다. 동유럽에서 발견되는 4~5세기 훈족의 무덤에서도 금으로 된 밴드 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다(그림 5,6). 이들은 천으로 된 머리밴드를 장식했다. 실제로 금 안쪽으로 유기물질이 부착된 채 남아 있는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다. 흑해지역도 유기물질은 잘 남아 있지 않는다.

 

그림 5. 훈족의 머리장식, 5세기, 리굴스키 리만 유적(상)과 카라-아르크 유적(하)

 

그럼 사르마트 문화의 상징적인 호흘라치 유적의 관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크라운 혹은 머리밴드?

 

그림 6. 호흘라치 유적의 여성관, 1세기

 

 

참고문헌

Яценко С. А.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М(야센코 2006, 고대 유라시아의 의복)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3.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여러 모습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로마 황제가 그려진 은제품으로 주제가 전환되었다. 사실 로마황제는 필자의 관심사도 아니고 잘 모른다. 그러나 사르마트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문화에서 나오는 왕관장식이 사르마트 문화 및 서아시아의 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전달한 것 뿐이다.

 

로마 북방의 민족들에게 머리장식은 단지 권력자들만이 것은 아니었다. 카자흐스탄 바티르 호수 옆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머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는데, 나무그릇에 담긴채 발견되었다. 일종의 린넨으로 된 끈으로 상단에는 얇은 붉은색 실크 천으로 덮여 있었고 150개의 금판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림 1. 카자흐스탄 바티르 호수 옆 동굴에서 출토된 머리끈, 길이 46cm, 너비 3cm

 

이러한 머리띠는 복잡한 머리장식의 일부일 것으로 여겨진다. 스키타이 머리장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앞머리를 머리띠로 가리고 뒤에 화려한 장식판으로 붙이는 것이었다(미로시나 1981, 포스팅 참고). 스키타이와 그리스 여성의 모자 및 관장식 복원을 연구한 미로시나에 따르면 비슷한 유물은 그리스에서도 있었다고 한다(미로시나 1983).

 

그림 2.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여성머리 복원(미로시나 1981)

2021.09.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여성머리장식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여성머리장식

이제까지 보여드린 스키타이 여신인 거울을 들고 있는 여신인 티파티가 표현된 네모꼴의 장식판은 여성의 베일에 달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몸을 돌리고 있는 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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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세기 흑해지역의 스키타이와 사르마트 문화에서 발견되는 머리띠 장식은 사실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도 나무로 된 것이 발견된다. 바르부르가지 유적에서 발견된 것은 꽃(장미) 장식이고 타샨타 II유적에서 나온 것은 사슴장식이다. 신기하게도 이들 나무장식은 그리스와 흑해북안에서 발견되는 황금티아라와 비슷하다.

 

그림 3.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나무 디아뎀. 1: 바르부르가지, 2: 타샨타 II유적

 

자세츠카야는 머리띠 장식은 당시에 일종의 부적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복잡한 머리장식이더라도 앞머리를 가리는 머리띠를 하고 착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습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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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상상력을 보태면, 누군가 높은 권력자 중에 한명이 머리띠 장식 덕분에 목숨을 살렸을 수 있다. 날라오는 화살이 운좋게 머리띠 장식에 맞고 튕겨나갔다거나...스키타이 화살은 당대 가장 출중한 무기였기 때문이다..이러한 경위가 전해지고 전해져서 어떤 부적, 혹은 행운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참고문헌

Мирошина 1981 — Мирошина Т.В. Некоторые типы скифских женских головных уборов IV-III веков // СА. №4.(미로시나 1981, 기원전 4~3세기 스키타이 여성 머리장식)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22.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유라시아 초원의 서부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세기 가량으로 이 문화의 후기인 1세기경에는 남쪽에 로마 제국이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1세기 이후에는 아부구스트, 네로, 트리야누스는 중부유럽 뿐만 아니라 도나우, 드네프르, 볼가 강~돈강의 하류에 로마의 군대를 이리저리 돌리며 배치했다(포스팅참고)

2022.07.20 - [사르마트 문화] - 1세기 돈 강 유역에서 발견된 로마의 은쟁반

 

1세기 돈 강 유역에서 발견된 로마의 은쟁반

유라시아 서부의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특히 동쪽의 돈강 유역 부근의 고분에서는 로마제 은제 식기 등이 발견된다. 특히 은제 쟁반의 가장 중앙에는 원판에 그리스로마신화가 주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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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계급이 사용하던 그리스로마신화가 들어간 은쟁반이 시기를 달리하며 중부유럽과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볼가강~돈강 유역의 쿠르간에서 은제쟁반이 있다.

 

북방 초원에서 발견되는 은제쟁반이 팔기 위해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외교관계 혹은 화친을 위한 물건이라는 것은 당시의 로마에서 은제품을 매우 사랑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로마의 은(銀) 사랑은 황제의 얼굴이 들어간 장식용 원판을 은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흑해북안의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보스퍼로스 왕국의 4세기 네크로폴에서 출토되었다. 콘스탄티누스 II세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그림 1).

 

그림 1. 4세기, 보스포러스 왕국의 네크로폴 출토. 콘스탄티누스 II세(1,2), 은제품으로 금박을 입혔다.

 

승리의 장면을 표현한 이 은제 원판에는 콘스탄티누스 II세는 머리에 머리띠를 차고 있었다. 원래 머리띠는 로마의 황제들이 착용하지 않았다. 아니 증오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주와 금판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황제부터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쓴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머리띠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기원전 323)이 동방원정을 떠나서 페르시아 왕관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자는 동방의 장식을 증오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황제의 의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장식이 되었다(자세츠카야 2011).

 

은제 원판의 콘스탄티누스 II세는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고 그는 화려하게 치장된 의장용 군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띠도 금과 진주로 장식된 것이다. 그의 모습은 다른 은제 쟁반에도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2. 콘스탄티누스 II세. 은제 쟁반 위에 표현됨. 흑해북안의 보스퍼러스 네크로폴에서 출토됨.

 

뿐만 아니라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와 그의 아들 호노리우스와 아르카디우스의 머리, 라벤나에 있는 성 비탈리 교회의 유명한 모자이크에 있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테오도라 황후의 머리에도 비슷한 장식이 있다(자세츠카야 2011).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로 로마의 황제와 황후들은 증오하던 동방의 머리장식을 착용했다.

사실 머리띠 장식은 로마 북방의 민족들에게 아주 오래부터(스키타이 문화) 애용되던 의상장식이라는 것은 이 블로그를 계속 보는 사람은 알 것이다.

 

참고문헌

Засецкая И. П. Сокровища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Новочеркасский клад. СПб.: ГЭ, 2011. 328 с(자세츠카야 2011, 노보체르카스크 퇴장지, 호흘라치 쿠르간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