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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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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8. 09:15 고깔모자와 코트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남성들의 복장이 실물로 남아 있는 지역은 알타이이다. 여밈이 없는 긴 셔츠와 바지 및 펠트로 된 스타킹이 발견되었다. 특히 펠트로 된 스타킹은 남녀노소가 모두 착용했다. 키의 여부에 관계 없이 무릎까지 오는 펠트 스타킹이다. 이 위에 부츠를 신었다. 대부분 무릎까지 오며, 가죽과 모피로 만들어졌다. 부츠의 종아리와 발가락을 따로 만들어 연결했다.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안 컬렉션 기마궁수(그림 3)도 펠트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여성 펠트스타킹, 파지리크 2호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부츠

 

 

 

그림 3.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안 콜렉션 기마궁수

 

반면에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남성들은 대신 가죽으로 된 부츠를 신고 있는데, 무릎까지 올라가지 않고 낮은 것이다. 장식판의 스키타이 남성들이 신고 있는데, 이들은 펠트로 된 스타킹은 신지 않았다.

 

그림 4.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남성

 

그림 5. 아파다나 궁전에서 스키타이 외교사절단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에서 스키타이 외교사절단이 조공하는 장면이 있는데, 긴 옷과 펠트로 된 스타킹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외교사절단이 들고 갈 만큼 펠트 스타킹은 중요한 특산품이다. 알타이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와 폴로스막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또 이들도 발목에 끈을 묶은 낮은 신발을 신고 있다. 궁전의 벽화에 있는 각 국의 사절단의 얼굴은 모두 서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얼굴의 형태는 참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 유물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 남성들은 맨발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덜 정확하다. 아마도 그리스 사람들이 표현될 때 대부분 얇은 옷 혹은 벗은 몸, 맨 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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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5.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스키타이 사람들의 고깔모자를 찾아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간접적인 자료(궁전 벽화, 토기)를 살펴보았다. 대개 인접한 국가들의 사람들은 스키타이인을 표시할 때 고깔모자를 쓴 채로 표시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실물자료가 발견되는 알타이에는 고깔모자(물론 하위 유형은 여러 가지이다) 외에 그냥 둥글고 귀를 덮는 흔히들 투구형 모자라고 부르는 자료가 알타이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투구형 모자

 

가장 많이 인용되는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묘사할 때 머리장식, 허리띠와 그 장식은 황금이라고 간략하게 묘사한 것과는 달리 페르시아 문헌에서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사카하우마바르가(하오마(음료)를 마시는 사카), 사카티그락사우다(뾰족한 모자를 쓴 사카), 사카타이 파라드라야(바다 건너 사카족)이다. 그중에 헤로도투스가 언급한 아미르 스키타이는 사카하우마바르가와 같다(스테파노바, 판코바). 현재의 자료로 이들을 구분할 수는 없다.

 

특히 흑해지역의 자료는 유기물질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알타이에서만 실물자료가 남아 있다. 이전에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왕의 장례치르는 방법’에 나오는 미라도 알타이에서 발견된다.

 

알타이의 쿠르간에서는 외투가 발견된다. 모피로 만든 것인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도 모피를 입고 매장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남성은 바지와 모피코트 외에는 그 안에 상의는 입고 있지 않았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모피코트

 

그런데 흑해지역의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암포라는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인공의 여성 무덤방에서 발견되었다. 그릇의 모양와 문양은 전체적으로 그리스 수입품으로 보이는데, 중간에는 스키타이 남성들이 말을 다루고 있는 장면이 함께 표현되었다.

그 중에 한 남성은 맨발에 바지를 입고 벗은 가슴 위에 모피 자켓을 입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3).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은제 암포라 세부.

 

또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도 모피코트가 등장한다. 금으로된 가슴장식 혹은 목걸이에도 스키타이 남성들이 유목을 하는 장면이 가장 안쪽에 표시되었다. 그중에 가장 중앙에 있는 두 남성이 바지만 입고, 모피코트를 두고 서로 잡아 당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림 4. 톨스타야 유적의 가슴걸이(혹은 목걸이) 중 세부

 

알타이의 혹독한 기후를 생각한다면 모피코트는 당연하지만, 흑해지역의 자료는 좀 의외이다. 이제까지 살펴온 여러자료(특히 그리스 토기)에서 스키타이 남성들이 옷은 다 입었지만 종종 맨발로 표현되는데 맨발에 모피코트는 아이러니 하기 때문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암포라에 스키타이 남성도 맨발이다. 그렇다고 스키타이 남성들이 다 맨발로 다니는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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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28. 08:15 고깔모자와 코트

 

그리스 토기, 암포라(손잡이가 상하로 달린 물병)에 그려진 스키타이 궁수와 hoplites이다. 호플리트는 창과 방패를 주로 사용하는 그리스 시민 군인이고, 투구와 갑옷을 입고 등장한다.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가 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에르미타주 소장, 암포라, Munich 1410의 그림, 기원전 530~520년. 그는 주로 붉은 바탕에 검은 문양을 그린 사람이다. 검은문양이 유행하던 마지막 시기에 활동했고, 그 이후로 점차 붉은 문양으로 바뀌어 간다.

 

스키타이 궁수가 쓴 모자는 사이악스가 그린 모자와 비슷하게 중앙 부분이 급격히 좁아지면서 뽕긋 솟은 모자이다.

얼핏보면 이 그림은 호플리트와 스키타이 궁수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키타이 궁수를 호위하는 장면이다. 창을 든 그리스 군인은 스키타이 궁수를 향해 창을 던지는 장면이 아니다.

 

그리스 토기에 스키타이 궁수들이 왜 등장할까? 그리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4세기에 스키타이 궁수들이 아테네의 경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대부분 그리스 토기의 스키타이 궁수들을 경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그냥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암포라의 그림은 기원전 6세기의 것이다. 그리스 토기에 나타난 스키타이 궁수가 반드시 아테네의 경찰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연구자들도 있다. 또 스키타이 궁수가 아테네에 나타난 시점이 기록에 적힌 기원전 5세기 보다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이들은 그리스 토기 화가들이 실제로 유라시아 초원 유적에서 발견되는 실제 스키타이 고리투스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상해서 그린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뭏튼 왜 그리스 토기에 스키타이 궁수가 나오는지 궁금증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약간 풀리기도 했다. 호플리트와 스키타이 궁수가 서로를 호위하는 장면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뭐 누가 알겠는가.

 

아뭏튼 필자의 관심은 그리스 토기 보다는 고깔모자이다. 이 외에도 그리스 토기에서 알 수 있는 스키타이 궁수의 모자가 더 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했던 스키타이 물건은 뽕긋 솟은 고깔모자와 고리투스였던 것은 틀림없다.

 

참고문헌

Ivantchik, Askold (1 December 2006). "'Scythian' Archers on Archaic Attic Vases: Problems of Interpretation". Ancient Civilizations from Scythia to Siberia.

Vos, M. F. (1963). Scythian Archers in Archaic Attic Vase-painting. J. B. Wolters.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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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25. 08:10 고깔모자와 코트

 

트럼펫을 불고 있는 스키타이 궁수가 그려진 아테나 토기. black figure. 사이악스(Psiax)가 그림. 기원전 520-550년 작품. 직경 19.1cm, 이 접시도 어제 소개한 바와 같이 1837년에 이태리 Vulci 뮤지엄에서 구입해서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나팔을 불고 있는 스키타이 궁수이다. 분명히 어제 보여드린 에피테토스가 그린 스키타이 사람과는 다르다. 모자와 의복도 약간 차이가 있고, 얼굴표현(특히 코)도 다르다. 특히 모자가 차이가 크다. 에피테토스가 그린 스키타이 궁수의 모자는 정수리에 힘이 없어서 말리는 고깔모자이고, 사이악스의 그림처럼 빳빳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이악스가 그린 고깔모자는 중앙부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형태로, 그냥 이등변삼각형 모양(베히스툰 비문)의 고깔모자와도 다르다. 그리고 귀를 덮는 부분이 귀가 보이도록 2갈래로 갈라져 있다.

필자가 처음 알아 낸건 아니고, 이미 야센코가 이를 추출했다.

 

 

고대 아테나의 화가들은 토기에 그림을 그렸는데, 많은 주제 가운데 사람들이 있었고, 이민족의 모습도 있었다. 스키타이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만 간혹 발견된다. 기원전 525~505년경에 활동했던 사이악스(Psiax)도 북방 민족을 그렸다. black figure가 red figure로 전환되는 시기의 작가여서, 두 종류 그림이 모두 있다.( 채색된 그리스 토기들은 만들어진 공방, 화가의 작품에 따라서 세세하게 나눠진다.) 사이악스는 작은 꽃병에 그림을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했다. 스키타이 사람을 그린 것은 접시에 그렸다.

 

 

그리스 토기는 ArchaiOptix라는 분의 위키미디어를 참고하시면 된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ArchaiOptix/Athenian_red_figure_vase_painters_I_From_the_earliest_pot_painters_to_the_Pioneer_Group#Athenian_red_figure_vase_painters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London 2005) (edited by John Curtis and Nigel Tallis)

К.С. Горбунова. Чернофигурные аттические вазы в Эрмитаже. Каталог. Л.: «Искусство». 1983(고르부노바, 1983,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black figure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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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24. 08:10 고깔모자와 코트

 

그리스 화가 에피테토스가 그린 red figure 접시, 지름 19.5cm, 기원전 520-550년, 중부 이태리  Vulci에서 발견. 카니노와 무시냐노의 5대 왕자 나폴레옹 샤를 보나파르트의 수집품에서 1937년에 구입.

 

 

사진은 그리스 토기이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달리면서 활을 쏘고 있는 여성(남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음)을 그린 것이다. 필자는 그리스 토기는 전혀 모르지만, 스키타이 사람들의 모자 때문에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찾아 볼 수? 밖에 없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흑해지역 자료에 엄청나게 널려 있던 그리스 토기들이 아른거린다.)너무 이질감이 느껴지는 토기들이다. 사진 속의 유물은 브리티시 뮤지엄에 소장된 것으로 기원전 520~55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발견된 장소는 이태리 중부의 Vulci 라는 곳이다.

 

그리스 토기는 대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전문화가가 그린다고 한다. 토기를 만드는 사람과 토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대부분인데 이 접시에 그림을 그린 사람은 Epiktetos라는 화가이다. 스키타이 여성궁수 왼쪽과 오른쪽에 서명이 있다. 그는 매우 유명한 화가인데, 기원전 520~490년에 활동했다. 토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자신이 애호하는 토기의 기형이 따로 있다고 한다. 화병에만 그리는 사람, 접시에만 그리는 사람 등등...그리스 토기는 기형에 따라서 이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바꿔 부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기형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는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그림 속의 스키타이 사람 때문에 주마간산처럼 그리스 토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혹시 나중에 한 백년 지나면 우리나라 학생들도 전공하지 않을까?재밌을 꺼 같다).

 

이 접시 속의 스키타이 모자를 보면 분명히 높은 모자인데, 정수리 부분이 말려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페르시아 인장이나 베히스툰 비문(아래 포스팅 참고)에는 분명히 고깔모자의 정수리가 높이 서 있다. 아마도 고깔모자의 재질이거나, 아니면 안쪽에 높이 세울 수 있는 장치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유라시아 고대 민족들의 의복을 연구한 야센코는 빳빳한 재질로 만들면 높이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은 아테나의 화가들이 스키타이 사람들을 그릴 때 많이 그렸다고 한다. 커티스에 따르면 복장 자체는 Medes의 복장이다. 화살은 스키타이 활통인 '고리투스'이다. 커티스는 이 그림은 스키타이 사람의 정체성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커티스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에 스키타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흑해 북쪽에서 그리스 문화가 정신없이 등장하면서 스키타이 문화가 점점 옅어지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 이후이다. 아마도 토기에 그림을 그린 그리스 화가들이 스키타이 사람들을 잘 모르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곳까지 가 본적이 없다면....

베히스툰 비문-->

2022.10.17 - [고깔모자와 코트] - 다리우스 1세와 스키타이 왕

 

다리우스 1세와 스키타이 왕

유라시아 초원 서부지역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인접한 지역과 교류한 흔적이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우라루투, 앗시리아,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 나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London 2005) (edited by John Curtis and Nigel Tallis)

К.С. Горбунова. Чернофигурные аттические вазы в Эрмитаже. Каталог. Л.: «Искусство». 1983(고르부노바,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black figure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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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19. 12:03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서부지역의 스키타이 문화는 고대 이란 지역의 국가와 많은 관련성이 있다. 앗시리아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존재하는 동안 북방에는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리우스 1세가 스키타이 왕을 잡은 것은 매우 큰 업적이었나 보다. 그의 업적을 적어놓은 베히스툰 비문에서도 유독 스키타이 왕을 뚜렷하게 그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전투하는 장면이 새겨진 도장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베히스툰 비문의 스키타이 왕은 그의 상징인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었고, 페르시아 도장에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실린더 모양의 도장은 페르시아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다양한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 종류의 돌을 사용했는데, 그 중에는 푸른색 옥수석(blue chalcedony)으로 만들어진 길이 2.15cm의 도장에 다리우스와 스키타이 왕이 싸우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그림1).

 

그림 1.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페르시아 도장, 발견된 곳 모름. 다리우스왕의 승리

 

 

이 유물(그림 1)을 다리우스 왕의 승리를 그린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무 위에 있는 표식 때문이다. 이것은 아후라마즈다’(조로아스터교의 신) 라고 하는 신의 표식이다. 관을 쓴 페르시아 인들은 다른 도장에도 있지만 아후라마즈다의 표시가 없으면 왕으로 인식하지 않았다(그림 2). 베히스툰 비문에도 가장 상단에 아후라마즈다의 표시가 있고 그 아래에 다리우스왕과 그가 잡아온 포로들을 잡아서 세워 놓았다.( 이 비문의 내용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들이 전하는 사건과 달라서 이 비문에 대해서 찬반의 논란이 있다.)

아후라마즈다의 표식이 없는 도장(그림 2)에도 고깔모자와 고리투스를 든 이는 있지만, 영국박물관의 설명에는 그를 스키타이 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John Curtis and Nigel Tallis 2005).

 

 

그림 2.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페르시아 도장, 페르시아 남성과 고리투스를 찬 남성의 전투장면. *고리투스-스키타이 활통

 

 

 

참고문헌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London 2005) (edited by John Curtis and Nigel Ta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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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18. 12:04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서부지역에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했으며, 현재의 이란에는 앗시리아부터 페르시아 제국이 존재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와 고대 이란 국가는 서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양 지역 모두 동물문양장식을 이용한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다르고 그곳에 살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문양에도 차이가 있다.

 

기원전 7세기 코카서스 북쪽의 쿠반강에는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20세기 초에 발굴했는데, 이미 많은 유물이 유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가 얼마나 인접한 국가와 영향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코카서스 남쪽의 아나톨리 지역의 우라르투, 앗시리아, 그리스의 유물과 스키타이 문화 유물까지 그나마 남아 있다.

특히 앗시리아의 유물은 금으로 된 잔과 투부, 의자 장식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수입품이라고 단순하게 알려져 있지만, 외교품일 가능성이 크다.

 

철로 된 투부는 전투용 도끼를 의미하는데 자루 부분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동물문양으로 뒤덥혀 있다(그림 2). 특히 동물문양은 북방의 스키타이 문화와는 다르다. 가장 쉽게는 동물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구분하는 선을 2줄로 넣는 방법(그림 1의 우측)은 북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페레보드치코바).

 

그런데 필자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투부에 스키타이 사람이 표현되어 있었다. 고깔모자를 쓰고 투부를 아래로 들고 있는 사람(남성)이다(그림 1의 좌). 같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금잔은 틀림없이 이란의 전통이지만, 투부는 스키타이 왕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제작했을 것도 같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투부 중 세부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기원전 7세기에도 앗시리아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고깔모자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또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순도 100%의 앗시리아의 금잔과는 달리, 이 투부를 만들때 선물 할 대상을 매우 신경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한 수입품이라기 보다는 외교품일 가능성도 크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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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10. 17. 10:45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초원 서부지역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인접한 지역과 교류한 흔적이 기원전 7세기경부터 확인된다. 아시다시피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우라루투, 앗시리아,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 나왔다. 그리고 기원전 6~5세기 이후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유적과 유물에 스키타이 사람들이 나타난다.

 

특히 페르시아와 관련해서는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이나 다리우스 1세의 Behistun 비문 등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채색토기 안에 스키타이 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외국인에 비친 스키타이 사람들로 자신들의 스타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베히스툰 비문은 다리우스 1세의 조상 및 그의 업적을 적은 것이다. 업적은 주로 자신이 통치한 영토를 적은 것인데 23개의 국가 명칭이 적혀 있다. 거기에는 스키타이도 해당된다. 아케메스 왕조가 최대 영토를 이루었을 때, 카스피해 우측의 스키타이 땅 일부를 삼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기원전 500 페르시아 제국, William R. Shepherd, 1923.

https://maps.lib.utexas.edu/maps/historical/history_asia.html

 

그리고 비문의 뒷부분에서는 키루스 II세와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의 죽음으로 초래된 반랍을 진압하기 위해서 1년동안 싸운 전투에서 끌려온 포로를 새겼다. 9명의 포로를 목에 줄을 메어서 끌고 오는 장면인데,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왕이 가장 마지막에 있다(그림 2).

각 포로의 상단에는 누구인지가 적혀 있는데, 가장 마지막 인물의 상단에는 Skunkha는 뾰족한 모자를 쓴 사카(스키타이)의 왕이다고 씌여 있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310112440/https://www.livius.org/sources/content/behistun-persian-text/behistun-minor-inscriptions/

 

 

그림 2. 기원전 6세기경 베히스툰 비문의 일부

 

 

그림 3. 기원전 6세기 말 베히스툰 비문을 그린 것. 작가는 알 수 없음. Всемирная история (в четырёх томах) Древний мир., «Специальная литература»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1997.

 

어느 왕이나 그 치적은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각 나라 왕들의 목에 줄을 메고 가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아파다나 궁전에는 여러 국가의 대표단들이 그려져 있는데, 다들 다양한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베히스툰 비문에서는 스키타이 왕에게만 고깔모자를 그려놓았다. 아마도 스키타이 왕을 잡은 것이 가장 큰 업적이었던 모양이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유라시아 서부에서 언제부터 고깔모자를 썼는가 하는 것이다. 이 비문을 보아 기원전 6세기 말에도 이들은 고깔모자를 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Всемирная история (в четырёх томах) Древний мир., «Специальная литература»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1997.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여성들이 썼던 원통형 모양의 티아라는 이웃한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라르투와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주로 남성과 그리핀이 쓰고 있다. 아마도 당시에 유라시아에 매우 유행했던 모자였다고도 여겨진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이 주로 쓰고 다니던 모자이다. 흑해지역의 대형무덤에서 나온 것들은 유기질제 모자(가죽, 천)에 금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양 옆으로 베일을 달았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발굴되었다. 베일과 장식판의 위치 남은 유물로 보아서 고깔모자를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다(그림 1).

 

그렇다면 삼각장식판으로 고깔모자를 만든 유물은 매우 드문경우이다. 그래서 아마도 트라키아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깔모자는 남성들도 썼다. 실제로 유물로 발견되지 않는데 대부분 썪어서 없어져서다. 대신에 유물 속에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관찰된다.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의 남성, 이웃한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궁전벽화에도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이 나온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출토 예

 

그림 2. 페르세폴리스의 궁전벽화

 

하지만 이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여성은 사슴장식을 한 고깔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기원전 5세기에도 그 전통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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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세기 고대 흑해연안에 살았던 스키타이 여성들 중에는 유독 화려한 모자를 썼던 경우가 무덤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스키타이 칼라프라고 불리는 이마를 가리도록 된 모자를 일컫는다.

 

또 티아라 라고 불리는 유물도 발견된다. 몇몇 무덤에서 발견되는데,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 높은 종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다르다. 유기질제로 된 모자 틀에 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상단이 편평하다(그림 3).

 

이들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여성형상물에서도 확인된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발견된 아르김파사는 티아라를 착용하고 있다(그림 1). 또 비슷한 시기에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속 여성도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데, 티아라와 비슷하다(그림 2).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얼굴 위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부분

 

그림 3. 크라스니이 페레코프 유적 출토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서 메토피드라고 불리는 이마장식을 제외하고는 티아라, 고깔모자, 칼라프 모두 머리 위로 높게 하는 것이 스키타이 여성들의 모자 특징이다. 모자는 높을수록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을 보면 고깔모자의 전통은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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