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그림 2의 다른 면
그림 4.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네모 꼴 방패를 든 스키타이 전사
그림 5.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의 다른 면
그림 6.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말에서 떨어진 그리스 전사의 얼굴과 갑옷
그림7.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그림 6의 다른 면, 말에서 떨어진 그리스 전사의 칼 집
그림8.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그림 6의 다른 면
아래 포스팅에서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다.
2020/0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 - 2500년 전, 알타이 남성전사의 방패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방패를 설명하면서 이 황금 빗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길이 12.6cm, 너비 10.2cm의 이 작그마한 황금빗에는 세 명의 전사가 전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2명은 같은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고, 한 명은 그 두 명과 마주보고 있다. 말탄 무사와 네모꼴 방패를 손에 쥔 무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으로 둘은 같은 편이고, 승자는 말 탄 무사이다. 얼굴 방향이 다른 한 명은 말에서 떨어졌다.
말탄 전사(그림 2,3)와 그와 얼굴 방향이 같은 보병(그림 4,5)은 스키타이의 전사다. 그러나 말탄 무사가 쓰고 있는 투구는 스키타이 투구가 아닌 코린트식 투구이고, 정강가리개도 그리스 식이다(그림 2,3). 그의 허리에는 활과 화살통(고리투스)와 검이 든 칼집을 차고 있다. 화살통은 비었다(그림 5). 그의 뒤에 서 있는 보병의 복장은 긴 소매의 윗도리와 헐렁한 바지, 뒤로 벗겨졌지만 고깔모자(그림 3), 네모 모양의 방패와 단검(짧은검)(그림 2)은 스키타이 무사의 것이다. 윗도리와 아랫도리에는 동그라미 장식이 빽빽이 장식되었다.
말에서 떨어진 사람은 그리스식 갑옷과 장검(긴 검)(그림 7, 8)의 집을 착용하고 있으며, 방패의 모양도 스키타이 보병 전사의 것과 다르다.
말탄 무사와 그의 뒤에 서 있는 얼굴 방향이 같은 사람이 스키타이 전사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유적에서 출토된 같은 모양의 방패와 단검, 말에 묘사된 마구장식, 화살통 등이 그렇다.
그럼 그리스식?
이 유물은 솔로하라고 하는 흑해북쪽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스키타이 귀족이 그리스 어느 공방에 ‘order made’한 유물이다. 아르타모노프는 말을 탄 전사와 그 뒤에 있는 사람 그리고 말에서 떨어진 사람의 얼굴(그림 6)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턱수염의 모양이 차이가 있고 말탄 전사의 이마가 낮고 머리가 길며, 턱수염 위로 나온 입술(그림 2,3) 등은 그리스 장인에게는 낯선 이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사들은 머리를 기른 무사의 미라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그리스 장인은 스키타이 주문자의 기호에 맞도록 스키타이적인 요소를 넣었지만, 스키타이의 말 탄 무사위에는 그리스식(코린트식) 모자(그림 3)와 무릎가리개를 착장시켰다. 그리고 세 사람의 아래에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5(그림 2)마리를 표현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에서는 주로 맹수는 표범과 호랑이 등이 표현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말에서 떨어진 무사는 그리스식 갑옷(그림 5,7)을 입었지만, 바지(그림 7,8)는 네모꼴 방패를 들고 있는 무사(그림 4,5)와 같다. 스키타이 전사의 바지를 입힌 것이다.
그 maestro는 다음의 주문을 위해서 여지를 남겨 둔 것으로...(황금빗을 주문한 스키타이 귀족이 아무리 기술이 훌륭하더라도 담긴 내용물이 맘에 들지 않는 다면 다시 주문할 이유가 없을 것임으로...)
솔로하 유적은 1912년과 1913년에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했고 기원전 5세기 늦은 시기부터 기원전 4세기 중반에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럼 도대체 스키타이 문화는 언제부터, 어느 지역의 문화인가?
필자는 시베리아 알타이에 있는 유적을 설명하다가 흑해북쪽에 있었던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유적의 유물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가 이해하기 쉽게 ‘스키타이 문화’라고 설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키타이 세계’ 혹은 한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권’은 문화의 복합체이다. 문화+문화+문화....으로 이해된다.
아니 그렇다면, 문화를 연결하는 공통성이 있지 않았겠는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하는데, 무구, 마구, 동물문양 장식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기원전 9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부터 흑해북쪽(현재 우크라이나)부터 알타이, 시베리아, 카자흐스탄까지 확인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이후는 사카문화라고도 부른다. 다음 연대표를 보시면 된다.
그림9. 스키타이 문화권(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표의 제일 첫 번째 상단이 그 문화가 있던 지역이다. 필자편집
이제까지 우리는 코끼리 코의 끝을 잠시 보고 만졌던것이다..알타이 고원에 있던 얼음공주라고 하는 여성샤먼의 미라를 매개로...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Манцевич А.П. 1987 : Курган Солоха. Л.: «Искусство». 1987. 143 с.(만체비치 1987, 솔로하 무덤유적)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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