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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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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은 1972년에 처음 발굴되었는데, 1호로 명명된 무덤이 가장 최대의 성과였다고 한다. 이 무덤에서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이 붙은 토기(그림 1)가 발견되었다. 이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은 출토지가 명확하고,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암각화의 동물그림도 언제 그려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노보고르도바는 이 토기 때문에 유적을 전부 발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 출토 토기

 

1호는 이미 서쪽이 모래 채취로 인해서 파괴되었는데, 처음 발굴에서 트렌치의 벽에서 반쯤 썩은 통나무가 나왔고, 이를 정리해서 무덤구덩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전에 문화층 조사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유적의 단면을 잘라서 보는데 그 때 구덩이를 파게 된다. 우리나라는 긴네모꼴로 파지만, 러시아에서는 정사각형으로 판다. 트렌치는 그 구덩이를 일컫는다. 필자가 어렸을때는 수박장수는 수박을 세모로 잘라서 익은정도를 보여주고 팔았는데, 비슷한 행위이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지만... )

 

1호(그림 2-A, Б-, В)는 나무무덤이 다. 통나무방은 높이 80cm이고, 4단을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동쪽은 2.4m, 북쪽은 2.5m, 남쪽은 1.85m이고 바닥에는 직경 5~8cm의 나뭇가지가 깔려 있었다.

통나무 위는 두꺼운 나무로 나무방과는 반대방향으로 덮었고, 그 사이의 작은 나뭇가지로 메꾸었다. 무덤구덩이는 모래와 잔돌로 채웠다. 바닥에는 나뭇가지 위에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일부만 보존된 인골, 완전히 보존된 2기의 인골이 각각 놓여 있다. 무덤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인골은 2기만 있었고 나머지 3기는 부서진 상태이다. 4명의 성인(성인 남성, 장년남성, 장년 여성, 성인여성)과 10~12살 어린 아이의 인골이다. 완전한 인골은 모두 다리를 웅크린 상태이다.

피장자의 다리 부근에서는 화살촉 두 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화살통 2기가 들어간 것이다. 골제 화살촉(단면 삼각형)이 대부분이고 청동화살촉은 2점 발견되었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과 출토 유물, A- 단면도, Б-무덤 평면도, В-무덤방덮개, 1-철제 칼, 2-5: 청동칼, 6-청동거울, 7-12: 화살촉 13,14, 16-18, 25-27: 청동버클장식, 15-청동제 갈고리, 19-청동제 송곳, 20-축소된 투부(전투용도끼),21,22-청동화살촉, 24-멧돼지 이빨 펜던트, 28-청동제 버클, 29-석제 원판? 용도미상

 

두개골 부위에서 중요 유물들이 나왔는데, 손잡이가 달린 청동거울, 축소된 투부, 청동버클, 은제 반지, 석제 원판, 토기 항아리(그림 1)도 두개골 근처에서 나온 것이다. 울란곰 유적의 모든 용기는 대부분 두개골 위에서 발견된다. 인접한 지역과의 차이이다.ㅋ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19~20세기 까지도 곰 축제가 있었던 볼가 강 유역에는 초기 철기시대 아나닌스카야 문화가 있었다. 이 지역은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설정된 곳 보다는 북쪽에 위치한다. 초원지대가 아닌 삼림지대이고 문화적 특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개로 설정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설정된 지역에서는 주로 무덤만 발견된다. 각 지역의 무덤 특징은 차이가 있지만 무덤에서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런데 아나닌스캬야 문화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취락 유적들이 발견된다. 계절성 정착지, 작업장, 성지 등이 발견되었다. 통나무로 지어진 성채도 발견되었다. 이런 유적이 발견된 곳은 주로 어두운 침엽수 타이가 지역으로 비체그다, 페스호라, 메젠 강에 위치하며 구릉 위에 성채가 있다. 성채는 건물을 두르는 나무 목책이 있고 그 내부에는 통나무로 된 집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문화에서는 토기가 아주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그림 1). 앞서서 설명했듯이 이 문화의 분포범위는 매우 넓은데 그 내부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토기 특징이다(아시흐미나 2014).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토기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토기는 아주 극히 일부이다. 알타이에서는 무덤 속의 1~2점 씩 발견된 쿱신(액체용 담는 그릇, 호형토기)외에는 거의 없다.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주로 그리스의 암포라라고 불리는 그릇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장식 일부는 유사한 요소를 띠지만, 이러한 특징 때문에 구분되었다.

토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목제 잔에 달린 금속으로 된 동물장식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외, 2009, У истоков археологии Волго-Камья (к 150-летию открытия Ананьин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Елабуга, 2009 (쿠지미니흐 2009, 볼가-카마강 유역의 고고학 자료 2009

Ашихмина Л. И. Генезис ананьинской культуры в Среднем Прикамье (по материалам керамики и жилищ). Казань, 2014.(아시흐미나 2014, 카마강 중류의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토기와 집으로 본 계통)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서는 그리핀 외에도 수탉문양장식이 여러 곳에 부착된다. 파지릭 유적의 1호분에서는 통나무의 관 외부에 장식되지만, 파지릭 2호분에서는 무덤 방 내에 놓아두었던 토기의 외벽에 수탉이 가죽조각으로 부착되어 있다(그림 1). 두 마리 인데, 전체적으로 모양은 같지만, 벼슬의 높이는 차이가 있다.

 

앞 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토기(그림 2)에도 수탉 그림이 부착되었다.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투르군타스 고분(그림 3)과 타산타-2 유적 2호분에서도 수탉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되었다.

 

동아시아의 유적에서는 토기는 매우 흔한 유물이지만, 이 지역 시베리아에서는 토기가 발생되었다고 하는 신석기시대에도 토기는 흔한 유물이 아니다(김재윤 2019). 그 이유는 유목생활을 하면서 만들기도 편하지 않은 토기를 고분에 묻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토기가 가장 기본적인 고고학문화를 이해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토기는 있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무덤 내부에 부장된 토기의 기형과 문양이 무덤의 상부인 봉분(무덤을 덮은 흙)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차이가 크다(루덴코 1960).

 

토기는 장례용으로 만들고, 가죽장식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는 대체로 1점만 부장되지만 예외적으로 2점이 부장된 유적이 있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얼음공주의 무덤이다. 또 바샤다르 1유적에서도 2점이 출토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토기는 그릇 생김새가 대체로 비슷하다(그림4, 그림 5). 목이 길고 토기의 입술부가 밖으로 벌어진다.

 

 

그림 1.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가죽 아플리케 장식, 토기에 부착되었음.

 

 

그림 2. 아크 알라하 3 유적(얼음공주)에서 출토된 토기와 부착되었던 아플리케 장식

 

 

그림 3. 쿠투르군타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아플리케 장식. 쿠투르군타스 유적은 아크 알라하 1, 아크 알라하 3유적 등과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아크 알라하 강의 하류에서 확인되었고 5기의 무덤이 있다. 해발고도 2090m에 있는 유적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원형 고리는 가죽으로 만든 토기 받침대이다. 베르흐 칼쥔 2유적 출토품.

 

 

그림 4.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필자촬영)

 

그림 5.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 2(필자촬영)

 

 

동아시아에서 토기는 일상용기였으나, 이 지역에서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유물이다.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던 것이다. 나무그릇이나 뿔그릇이 더 흔했다. 나무그릇, 뿔 그릇은 매우 알뜰하게 사용되었는데, 수선한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목제 잔, 우유를 담은 그릇, 쿠미스와 버터를 받친다고 한다. 알타이의 카미족에게도 특별한 제기는 없다고 한다. 삶은 고기를 평소에 사용하는 목제 장반과 잔으로 국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는 특별한 미라와 공간은 있지만, 음식물을 뻑쩍하게 공헌하는 의식은 없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에위치한 파지릭문화의 고분 중에 한 곳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나무방 안에 통나무 관이 안치되었다. 나무방 안에는 통나무 관을 안치하고 빈 공간은 생활공간으로 생각된다. 그 곳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던 목제 쟁반, 목제 잔, 뿔잔, 토기 3점이 있었다. 말 6섯 마리와 61cm가발을 쓴 시신을 미라로 처리해서 넣은 무덤 치고는 매우 소략하다. 대신해서 토제, 목제, 뿔제 등 여러 소재로 제작되었다. 금속기로 만든 그릇은 없었다. 대신 칼이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그릇은 대부분 몇 차럐 수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제쟁반(그림 1) 위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었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주변에는 유독 갈색으로 변해졌는데, 냄새도 났고, 마치 고기 국물처럼 변했다. 목제 쟁반 아래에 손잡이가 둥근 철제 칼(그림 2)이 놓여 있었다.

 

그림 1. 목제 쟁반(목제 쟁반은 다리가 잘린 채 확인되었고, 다리는 같은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목제 쟁반 아래서 발견된 칼의 손잡이

나무방 바닥에는 깨진 토기(그림 3,4)가 확인되었는데, 목이 긴 ‘장경호’ 3점이 확인되었다. 2점은 구경(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붙고, 어깨 부위에도 2줄의 점토띠가 붙었다. 다른 1점은 역시 목이 긴 장경호인데, 수탉모양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토기에 가죽 아플리케(그림 5)를 붙인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뿔로 만든 그릇이 확인되었는데, 야크의 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야크 털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알타이 산맥에서 고분을 만들었던 파지릭 문화의 사람들은 야크라는 동물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러시아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인데….야크는 고산에 사는 일종의 소인데, 쉽게 검색가능하다.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콜렉션에는 같은 형태의 뿔 잔이 금박이 입혀져서 발견되었다.

그림 3. 토기, 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부착되어 있다.
그림 4. 토기, 수탉 모양 아플리케가 부착됨
그림 5. 그림 4에 붙은 가죽 아플리케

목제 잔과 막대기가 세트(그림 6)로 확인되었다. 유제품(쿠미스)을 젓고 마시던 잔으로 추측된다. 목제 잔의 손잡이는 표범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맛대고 부착되었고, 36cm가량의 막대기 끝에는 ‘U’자형으로 따로 제작되어서 막대기와 축조되어 끼우게 되어 있었다.

유목민들에게 표범은 신, 조상, 저승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안토노바 1986)

그림 6. 목제 막대기와 목제 잔, 손잡이가 표범 장식이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어느 덧 2년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 많이 보지는 않지만

필자의 포스팅에 관심을 가지는 중학생도 있었고,

이미 성년이 된 사람도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 하면서,..여러 가지 필자에게 물어본다.

답이 10일정도 늦어서 많이 미안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안하게 되면서 네이버에 접속조차 잘 안하게 되니 그랬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그 분이 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한다.

 

지금도 생소한 이 학문을

필자는 예전 포스팅에 적었지만 영화를 보고 알게되었다.

그 떨리던, 함몰되던 기분, 그 짜릿한 기분.

보자마자 내꺼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어린애의 생각은 진짜 비현실적인데..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러시아유학결심할 때랑 꼭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 비현실적인 것이 내꺼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엄마 아빠도 공부잘하는 딸이기를 바랬지만, 내가 무엇할 것인가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고고학과..재밌어보인다. 그런데 가면 꼭 제일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셨다..

내 전공을 두고 크게 다툰적이 없다.나는 늘 커서도 그 점에 감사해한다.

아마 내가 성실하기도 했고, 믿음도 주었을 것이다..꼭 먼가 하겠다 하면 했으니깐.

 

물론 한때 원하던 곳을 못가게 되어서 못 마땅해도 했지만,,,

그때 마침 아빠와 관계도 많이 않좋아서....그게 더 좋게 작용한 것이지

그 때만 해도 지금만큼 취업 운운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교육부를 거친 학생들이다.

그때 특히 교육부는 취업안되는 과는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대학생이 되어도, 생각을 못하는 애들이 많다.

강의 중에 내어준 과제물 피드백을 했는데, 한 학생은 말도 안되게 나의 피드백에 반감을 비친다.. 자기가 최고인데, 니가 먼데 피드백을 하냐는 식의....

걔는 나보다 거의 20살이 어린 학생인데 생각하는 수준은.... 

그 애는 동화책 읽기부터 해야. 글짓기도 안된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잘못했다고 우기고, 자기는 자기가 받은 피드백이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과제물은 한 장정도만 '자기생각'을 적어오라는 거였다.

난 과제물을 거창한 걸 내지 않고, 자신생각을 적는걸 좋아한다. 거창한 거 내봐야....그냥 결국 남의 연구 편집이 대부분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필자는 도면 한장 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걸 과제로 준다.

또 그런 과제 보고 탄복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면 한 장을 보고도 여러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정말 사람은 다 너무 나 다르구나.

학생에 대한 불평을 적기는 했지만,, 대부분 원만한 사람의 사람머리속은 비슷한데 다 다르다.

민주주의 그 자체다.

그래서 애들을 존중해주려고 하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맞다고 하고 또 첨삭해준다.

그러나 위에 적은 학생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너무 머릿속에 남는다.스트레스 잘받는 필자에게 학생의 이런 피드백은.....

 

그 과제에 제시된 그림은 아래의 것이다.

아래 그림은 각 지역에서 토기가 발생되는 지역을 최근 자료로 표시한 것이다.

이것과 고든 차일드가 설명한 ‘신석기혁명(1951년)’이라는 개념과 비교해서 자신의 생각을 한 장에 적어오라는 거였다. 물론 한장 보다 많아도 된다. 

신석기혁명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개념이다. 그걸 처음 입에서 말한 사람이 고든차일드라는 고고학자이다.

토기발생지역비교(P.Jordan, M. Zvelebil 2010)

참고문헌

P.Jordan, M. Zvelebil. “Ex Oriente Lux: The Prehistory of Hunter-Gather Ceramic Dispersals.” Ceramic before farming: the dispersal of pottery among prehistoric Eurasian hunter-gathers. P.Jordan, M. Zvelebil ed. London: Publication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University College London, 2010. pp.31-8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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