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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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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시니가이 문화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시니가이 문화가 교류 흔적? 혹은 사람의 이주 흔적? 등이 경남 진주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토기, 석기, 청동기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1. 토기
 평거동 청동기시대 주거지(집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점토띠를 부착한 돌대문토기와 구연단을 접은 이중구연(입술이 두겹)토기가 출토된다. 이 토기들은 한국에서 청동기시대 가장 빠른 시기인 조기(早期)로 평가되고 있다. 좀 더 세분화 하면 조기 후반 혹은 전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절대연대는 대체적으로 BC1316~1122(보정연대)까지 여러 시료가 있음.)


 평거동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토기는 입술부위를 접어서 만든 것이고, 이 보다 앞서(청동기시대 시작 무렵, 조기 기원전 15세기) 들어온 서북지방에서 들어온 토기에서 발전해서 재지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는 모순점이 있는데, 이중구연토기는 모두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기형(토기의 모양)이 다른 것이 있으며 이중구연이라고 해도 구연부 제작방법에 차이가 있다. 먼저 주장된 것은 나팔상으로 벌어지는 발형토기(그림1.2)이다.

그림 1. 평거동 출토 이중구연토기. 

그림2. 그림1을 복원한 것. 발형토기

그러나 평거동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같은 시기에 기형이 다른 것은 경부(목)이 생기는 옹형토기(그림)가 있다. 

그림 3. 이중구연토기(점토띠를 덧붙임)

그림 4. 그림3을 실측한 것(왼쪽) 그림 5를 복원한 것(오른쪽)
 

뿐만 아니라 구연부 제작방법에도 차이가 있는데, 점토를 부쳐서 만든 발형토기(그림3)와 옹형토기(그림 5, 그림3의 오른쪽)가 있다.

그림 5. 이중구연토기(입술부위에 점토띠를 부친 것), 옹형토기



이들 토기는 연해주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1유형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며 같이 출토되는 석기 들 중에서도 연해주 출토의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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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지역(연해주 내륙)에서는 이중구연토기(그림 1-3), 경부가 길게 형성된 호형토기, 옹형토기, 봉상파수부토기가 확인된다.

이중구연토기는 기형은 정확하지 않지만, 신석기 후기의 발형토기와 관련성이 있다.

옹형토기(그림 1-1)는 구연부만 외반하며 기고 보다 구경이 큰 기형 인데, 이미 신석기 후기에 등장한 기형으로, 이 문화에서는 무문화 되어 확인되기 때문이다.

봉상파수부 토기(그림 1-2)는 한쪽에만 파수가 부착된 것으로 무문양토기이다. 호형토기는 경부가 짧은 것과 경부가 긴 것으로 구분된다. 경부가 긴 호형토기는 직립하는 것과 구연이 외반하는 것이 있다.

호형토기(그림 1-6)와 옹형토기(그림 1-4)는 이중구연의 옹형토기와는 달리 구연단이 홑구연으로 처리된 것과 구연단을 약하게 접었지만 거의 홑구연화 된 것이 관찰된다.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에서는 적색으로 마연한 토기가 확인되었지만, 시니가이 문화에서는 특수한 물손질을 통해서 전면이 마연된 특징이 있다. 하린 유적에서는 잔발형토기에 무각목 돌대문토기가 출토된다. 돌대문은 일주되었는데, 점토띠를 둘러서 부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부 옹형토기에는 동최대경의 위치에 뉴상 돌대가 부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시니가이 문화에서는 높이 4cm미만의 소형토기가 출토되었다. 호형도 있고, 발형도 있다. 특히 시니가이 A유적과 하린 유적에서는 발형토기의 저면이 장방형 혹은 타원형에 가깝다.

(그림 1. 시니가이문화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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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니가이 문화는 연해주에서 청동유물을 반출 하는 청동기시대 문화이다. 연해주 내륙 한카호 주변의 시니가이 유적과 하린 유적을 발굴하고 이 문화가 알려졌다. 그런데 이 문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해안과 내륙에 차이를 인지하고 이를 분석한 것은 얀쉬나(2004)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수보로보-6 유적을 정리하고, 보도라즈젤나야 유적, 루드나야 프리스턴 유적의 청동기시대층을 수보로보 유형으로 정리하였다(쿠루피얀코 얀쉬나 2002). 또한 해안가에 위치한 유적 중 에프스타피-1 유적과 리도프카–1 유적을 같은 성격의 유적으로 보고 리도프카-티페바이스키 유형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림 1. 리도프카-1 하층 토기, 얀쉬나 2004)   

 뿐만 아니라 연해주 내륙에 위치한 아누치노-14, 아누치노-4 유적 등의 유물을 분석해서 기존의 알려진 시니가이 문화와 같음을 밝혀서 아누치노-시니가이 유형으로 명명하였다. 이들 전체 문화를 아누치노-시니가이-리도프카로 명명하고 수보로보 유형(얀쉬나 2004)과 리도프카–티페바이스키 유형(얀쉬나 2004)은 연해주의 해안가, 아누치노-시나가이 유형은 연해주의 내륙에 위치한 지역적 유형으로 보았다(얀쉬나 클류예프 2005) 본고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시니가이 문화로 하며 서부 유형과 동부 유형으로 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부유형 중 리도프카-티페바이스키 유형이라고 명명된 리도프카-1 유적 전체가 에프스타피 1 유적과 동일한 유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유사한 외반구연의 이중구연옹형토기는 존재하지만 리도프카-1 유적에는 경부에 침선이 들어간 호형토기가 주체를 토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림 1). 따라서 리도프카-1 유적의 하층 만을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유형으로 보고자 한다. 


  댜코프 선생의 리도프카 문화(댜코프 1989)의  주요한 토기는 경부에 침선이 들어간 호형토기이다(그림 2). 후에 시도렌코(2004)가 아호빈 유형으로 정정하였다. 시도렌코는 댜코바 선생이 개념화 한 리도프카 문화의 개념이 모호해지게 되면서, 댜코바 선생이 조사한 연해주 해안가 유적(기원전 15세기~기원후 1세기)의 청동기시대 이후 철기시대 문화까지를 포함해서 리도프카 문화로 재정립하고 다시 4개의 유형으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동부해안가에 위치한 유적은 프후순 유형과 테튜헤 유형이 있는데, 프흐순 유형은 시니가이 문화 보다 앞선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테튜헤 유형은 시니가이 문화의 동부유형에 해당된다.

(그림 2. 댜코프의 리도프카 문화 호형토기)


 하지만 테튜헤 유형 가운데 수보로보-6 유적과 베트로두이 유적은 시간차이가 너무 크다(시도렌코). 연해주에서 베트로두이 유적이 존재한 1~4세기 동안은 연해주의 철기시대인 폴체 문화이다. 베트로두이 유적은 하층과 상층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무리하게 댜코프 선생의 유적과 업적을 따르고자 하는데서 기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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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보이스만 문화의 1단계토기)

(그림2. 보이스만 문화의 토기 2단계)

보이스만 문화에서는 그림과 같은 토기가 출토된다.
시문구로 연속해서 찍은 토기이다.
각 층마다 시문방법(문양을 찍는 방법),  문양 범위 등이 다르다.
 특히 1단계와 2단계 토기의 구연부(그림1, 그림2)는 문양을 빽빽하게 시문하면서 마치 계단처럼 만들어졌다.

그러나 3단계가 되면서는 이러한 현상은 없어진다. 문양 시문방법에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앞의 포스팅을 참고하면, 각 층의 연대를 알 수 있는데, 크게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문화층이 쌓였다고 볼 수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18?category=732912


그러나 1단계, 2단계와  3단계 사이에는 연대의 공백이 200년 정도 있으며 구연부의 모양차이 때문에 보이스만 문화 내에서도 구분할 필요도 제기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단계와 4단계 사이가 문양이 가장 크게 변화하는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반 독자가 볼 때는 그게 무슨 의미? 할지도 있지만 동아시아고고학에서 토기의 변화는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이다. 계통의 변화, 다른 지역으로 부터의 영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앞서 포스팅한 루드나야 문화와의 토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10?category=732912

http://eastsearoad.tistory.com/111?category=732912


고고학적으로는 다른 문화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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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보이스만-2 유적의 가장 하층토기, 원보이스만 문화의 토기)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모두 6개 문화층에서 출토된 순서대로 토기의 연대가 지정되었다.
토기는 시문구(문양을 시문하는 도구)를 찍은 토기이다.

층마다 토기의 문양이 다르다. 시문범위, 시문방법, 문양형태.
한 층은 어떤 연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토기가 모여 있다.
보이스만 2 유적의 가장 하층(1층)은 그 상층과는 토기의 그릇형태가 다르다. 바닥이 뾰족하다.
그 상층은 모두 바닥이 편평하다. 뿐만 아니라 토기 문양형태도 차이가 있는데, 구연단에만 토기문양을 시문하고, 시문구도 단순하다. 상층의 토기에 빗살같은 도구로 찍은 토기라면, 가장 하층의 토기는 단치구로 찍은 토기이다. 그래서 가장 하층 토기를 보이스만 문화와는 다른 원(原)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1층 보다 상층에 위치한 2층~7층 토기는 보이스만 문화라고 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장 윗단에서 출토된 토기가 가장 하층이다. 토층을 거꾸로 표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표의 가로 방향토기는 같은 층에서 출토된 토기이다. 가장 끝에 있는 숫자는 그 토기가 출토된 층에서 검출된 탄소의 반감기로 측정한 탄소연대측정치이다. 지금으로 부터 몇 년 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표의 단이 바뀔 때 마다 즉, 층 마다
토기의 시문방법, 시문범위, 입술모양 등이 차이가 있다.


사실 토기연구는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연구이다. 적어도 동아시아고고학에서는.
그런데 아마 대중이 가장 재미없는 부분은 이 토기와 관련된 것일 것이다.
적어도 블로그에는 좀 쉽게 적고 싶은데.....

다음 포스팅에는 좀 더 보이스만문화토기를 소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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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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