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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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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께 매장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말은 동물문양의 장식판들을 얼굴에 붙이고 매장되었다. 장식판은 말의 굴레에 달려 있던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동물문양장식은 크게 세 종의 동물이 있고, 그 외에 깍두기 같은 존재가 있는데, 상상의 동물과 실제 동물이 있다. 굽동물과 맹수, 맹금류가 주요하고, 그리핀은 조작된 동물이다. 굽동물이지만 초식이 아니라 잡식인 멧돼지도 초기 스키타이 문화부터 보인다.

 

그 외에 보이는 유물이 사자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사자가 살지 않는다. 그러나 사자가 종종 등장한다. 파지릭 1호분에도 무덤방의 벽 위에서 출토되었다. 펠트로 된 조각인데, 흰색 바탕의 펠트 위에 푸른색과 붉은색 사자머리 5개가 교차되었다. 펠트 가장자리에는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삼각형 장식이 상하에 부착되었다. 이 장식의 펠트, 도안, 스타일등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다. 그러나 문양 모티브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에서 자주 확인되는 요소이다. 같은 유적인 파지릭 2호분과 울란드릭-IV유적의 3호분에서도 확인된다(그림1).

 

 

 

그림 1.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 1호에서 출토되는 펠트제 벽걸이 장식. 무덤방 벽에 걸린채로 출토되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에서 확인되는 사자 문양은 그리핀 모티브를 기반으로 하는데, 실제사자에는 없는 부자연스럽게 긴 귀와 갈기 끝이 말린 표현은 기원전 6~4세기의 아케메니드 유물과 유사하다(그림 2). 수사에 있는 아파다나의 동쪽 벽에 부착된 벽돌에 그려진 그림이다(그림). 비슷한 유물이 금속제로도 있었던 것이 확인되는데(그림 3), 이런 유물을 보고 시베리아에서 모티브를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이란의 남서지역인 Susa에 위치한 페르시아 아파나스 궁전의 동쪽 벽에 그려진 사자머리.

 

그림 3.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아케메네스 왕조의 사자머리, 길이 5.1cm, 너비 6cm

 

파지릭 1호분의 사자는 입술주변과 이빨은 늑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시베리아에 맞게 바꾸어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시아의 모티브가 시베리아까지 넘어오게 된 것은 사자 달린 금속펜던트를 시베리아 스키타이 사람들이 보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예를 들면 페르시아인이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인지, 스키타이 사람이 그쪽에 가서 보고 여기와서 만든 것인지 등)은 알 수 없지만, 그 지역과의 관련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은 시베리아에서 확인되는 사자머리는 호랑이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던 동물이고,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문양요소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문화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 부터 흑해북안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로마노프 왕조 멸망 후)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시베리아에도 스키타이 문화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 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명칭도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공동체 등 여러 명칭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계속해서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러시아어가 워낙 생경해서 쉽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짧고 간결하고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르잔 1유적을 발굴하면서다. 1971~1974년에 발굴된 유적인데, 나이테연대측정법으로 기원전 9세기 중반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의 크기와 규모도 대단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았으나, 특히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왜냐하면,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어 있는 황금의 동물문양장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림 1). 이 유물은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름이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가가린은 소련 아니 인류 역사상 처음 우주로 간 사람의 성도 가가린이다)이 1716년에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로 알려졌다. 그는 시베리아의 토볼스크 라는 지역에서 근무했다. 그곳 농부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표범 혹은 호랑이 장식. 10.9×8.9cm

 

아르잔 1 유적의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직경이 25cm가량이고, 말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호랑이 장식은 에르미타주 유물에 비해서 2배나 크다. 에르미타주 소장품은 허리 버클에 붙었던 장식이고, 아르잔 유물은 말의 가슴에 착장했던 것이다. 말과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유물은 차이가 있다. 크기와 재질, 용도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 표현 기법에도 차이가 있다. 청동제 호랑이는 더 크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이빨과 입술, 발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눈,코,입이 과장된 것은 두 점의 공통점이다. 반면에 꼬리는 황금 유물이 좀 더 현실적이다. 황금 유물의 앞발과 뒷발, 꼬리 등의 빈 공간은 보석류를 상감한 것이다. 현재 보여지는 뒷 판은 상감 후 땜질로 마감했다고 한다. 또한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청동제 유물은 대체로 얼굴이나 몸통이 편평하지만, 황금제 유물은 불룩하게 솟아 있고, 특히 얼굴과 앞 다리, 엉덩이의 근육을 표현해서 매우 볼륨감 있는 느낌이다.

 

 

그림 2. 아르잔 1 출토 청동제 말 가슴 장식

 

아르잔 유적의 가장 중간에 주인공이 묻힌 방 바로 옆에 2번 무덤방(그림 3)은 말이 30마리 들어 있는 무덤이다. 이 무덤방은 8×7.5m이고 높이는 0.9m이다. 말 무덤의 크기가 이 정도이다. 전체 무덤의 크기는 직경이 120m이고, 높이는 3~4m이다. 무덤 전체에 사용된 통나무는 6000개가 넘는다.

무덤에서 시신을 안치하는 곳을 ‘매장주체부’라고 하는데, 이 유적은 매장주체부가 지하가 아닌 지상에 설치되었다. 다시말하면 무덤구덩이를 파지 않았다. 무덤방이 70개 정도 있었는데, 같은 봉분(무덤을 불룩하게 덮은 흙) 아래에 있었다.

 

 

그림 3. 아르잔 1 유적의 무덤방 2번, 말 무덤. 말 30마리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남겨진 화려한 무덤이다..누군가의 희생으로 알아가야 하는...장례식은 산 자의 잔치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서는 그리핀 외에도 수탉문양장식이 여러 곳에 부착된다. 파지릭 유적의 1호분에서는 통나무의 관 외부에 장식되지만, 파지릭 2호분에서는 무덤 방 내에 놓아두었던 토기의 외벽에 수탉이 가죽조각으로 부착되어 있다(그림 1). 두 마리 인데, 전체적으로 모양은 같지만, 벼슬의 높이는 차이가 있다.

 

앞 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토기(그림 2)에도 수탉 그림이 부착되었다.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투르군타스 고분(그림 3)과 타산타-2 유적 2호분에서도 수탉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되었다.

 

동아시아의 유적에서는 토기는 매우 흔한 유물이지만, 이 지역 시베리아에서는 토기가 발생되었다고 하는 신석기시대에도 토기는 흔한 유물이 아니다(김재윤 2019). 그 이유는 유목생활을 하면서 만들기도 편하지 않은 토기를 고분에 묻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토기가 가장 기본적인 고고학문화를 이해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토기는 있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무덤 내부에 부장된 토기의 기형과 문양이 무덤의 상부인 봉분(무덤을 덮은 흙)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차이가 크다(루덴코 1960).

 

토기는 장례용으로 만들고, 가죽장식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는 대체로 1점만 부장되지만 예외적으로 2점이 부장된 유적이 있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얼음공주의 무덤이다. 또 바샤다르 1유적에서도 2점이 출토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토기는 그릇 생김새가 대체로 비슷하다(그림4, 그림 5). 목이 길고 토기의 입술부가 밖으로 벌어진다.

 

 

그림 1.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가죽 아플리케 장식, 토기에 부착되었음.

 

 

그림 2. 아크 알라하 3 유적(얼음공주)에서 출토된 토기와 부착되었던 아플리케 장식

 

 

그림 3. 쿠투르군타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아플리케 장식. 쿠투르군타스 유적은 아크 알라하 1, 아크 알라하 3유적 등과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아크 알라하 강의 하류에서 확인되었고 5기의 무덤이 있다. 해발고도 2090m에 있는 유적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원형 고리는 가죽으로 만든 토기 받침대이다. 베르흐 칼쥔 2유적 출토품.

 

 

그림 4.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필자촬영)

 

그림 5.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문화의 토기 2(필자촬영)

 

 

동아시아에서 토기는 일상용기였으나, 이 지역에서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유물이다.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던 것이다. 나무그릇이나 뿔그릇이 더 흔했다. 나무그릇, 뿔 그릇은 매우 알뜰하게 사용되었는데, 수선한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인간이 주인공인지, 말이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말은 화려하게 치장된 채로 묻혔다. 동시의 같은 문화인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는데, 파지릭 유적에서 말은 좀 더 화려하다. 말을 부리는데 필수인 재갈과, 재갈멈치, 고삐 등은 기본옵션이지만, 안장과 안장덮개는 모든 말에 착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지릭 유적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말의 얼굴을 가리는 화려한 마스크가 발견된다. 파지릭 2호분과 5호분에는 1마리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1호분에는 2마리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20/03/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말 마스크와 살아있는 그리핀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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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분에서 5번말과 10번 말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말과 쓰지 않은 말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여러 마리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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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5번 말은 그리핀의 날개를 귀 사이에 붙이고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의 목에는 가죽과 펠트로 만들어진 갈기가 표현되어 있다. 이 갈기에는 가죽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는데, 그리핀 4마리이다(그림 1).

 

 

그림 1. 파지릭 1호분에서 출토된 5번 말의 마스크와 갈기, 굴레

 

 

말의 등에는 가죽 두 판을 붙여서 그 안을 사슴털로 채워 넣어 만들었다(그림 2). 안장은 배쪽으로 끈을 돌려 고정시키고, 앞 가슴으로도 연결시켜 고정된다. 연결 시킨 부위에는 가죽으로 된 염소머리(그림 1-3)가 붙어 있었고, 앞 가슴에도 그리핀이 날개를 편 채 붙어 있었다(그림 1-1,4). 안장에는 가죽으로 된 아플리케 장식이 있고, 큰뿔 사슴을 공격하는 호랑이가 묘사되어 있다. 덮개의 가장자리에는 물고기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는데, 적마의 꼬리털이다. 물고기에는 날개가 붙어 있어서 역시 추상화된 표현이다.

 

 

말꼬리는 가죽케이스(길이 65cm, 너비 3.8cm)로 싸져있었다. 가죽케이스 끝에는 푸른 털과 적마의 털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2-1). 두 개의 가죽조각을 중간을 연결해서 이어 붙인 것인데, 두 종류의 색깔을 사용했다. 가운데 소용돌이 모양의 가죽 아플리케도 두 종류의 색깔을 이용했다.

 

그림 2. 파지릭 1호분에서 출토된 5번 말의 안장과 꼬리

 

 

말의 마스크 안에는 굴레장식이 드러난다. 말 안장에 연결된 염소와 같은 모양의 장식이 연결부위마다 붙어 있는데, 6섯마리이다. 재갈멈치의 끝은 팔메트 문양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넝쿨 식물이 표현되어 있다(그림 1).

이 말의 굴레장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말의 굴레에 붙은 염소장식 사이에는 다른 요소는 확인되지 않는다.

 

반면에 마스크가 없는 8번 말의 굴레장식을 보자. 9개의 장식판이 달려 있었다(8개만 남아 있음). 그리핀은 5마리이다. 독수리 모양의 그리핀으로 코등에 장식하는 곳에 한 마리는 날개를 피고 갈리진 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럼 4마리는 어디에?

 

자세히 관찰하면 코등과 말 귀로 연결되는 ‘T’자 부위에는 구멍이 하나 있고, 그 아래에 붙은 장식판은 옆에 붙은 염소머리와 다르다. 실제로 코등에 붙은 날개표현과 같다. 즉 이곳에도 그리핀이 있었다(그림 4-1). 대칭되게 있었음으로 반대쪽에도 한 마리 더 있었을 것인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오른쪽 귀 아래에 남이 있는 장식판도 ‘T’자부위에 붙은 것과 같은 표현이다. 실제로 조각난 채로 확인되었다(그림 4-2). 그렇다면 반대편이도 한 점 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왼쪽편에도 염소머리 위쪽에 뭍은 장식은 염소머리와는 다르고 날개만 남아 있는 형태이다. 즉 이 말의 굴레 장식판은 귀 아래 두 단은 그리핀, 콧 등에도 그리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의 굴레 장식은 청동제 제갈과 고삐가 달린 채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기도 하다. 재갈멈치에도 양쪽에 그리핀이 표현되었다. 그런데 왼쪽의 그리핀은 재갈멈치에 달린 그리핀과 얼굴이 다르다. 부러져서 다른 것으로 수선했다. 그리핀에는 귀 자리에 구멍이 있는데, 가죽 귀가 원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8번 말의 굴레,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의 갈기에는 금박이 약간 남아 있다. 원래는 전체를 금박으로 입혔을 것이다. 실제로 금박이 많이 붙은채 있는 유물도 있다. 

 

그림 4.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8번 말의 장식 중 일부, 3,4는 그림 3의 재갈멈치

 

마스크를 쓴 말은 말의 굴레에 그리핀 장식이 없다. 말 자체가 그리핀으로 형상화 되었다. 그리핀의 날개가 달린 마스크, 말의 갈기 등이 그렇게 표현되었다. 알타이의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대부분 독수리 목에 반드시 말의 갈기를 표현한다. 파지릭 5호의 말은 거대한 그리핀으로 보이도록 만들어 진 것이다.

 

반면에 마스크가 없는 말은 5개의 그리핀을 얼굴에 붙이고, 재갈멈치에도 양쪽으로 그리핀을 표현했다.

 

두 마리 말을 비교해 보니 더 명확해 지는 것 같다. 말을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혹은 말이 그리핀 임을 표시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알타이에 위치한 2500년 전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파지릭 유적을 살펴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흑해 북안의 유적들의 유물도 간간히 필자가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유목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들이 남긴 유물인 동물문양 가운데 늘 사슴문양이 있다. 사슴은 양, 염소, 말과 같은 우제류이긴 하지만 기르지 않는다. 사냥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슴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가장 인간이 많이 잡은 동물일 것이다.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에도 가장 많은 그림 중에 하나이고, 패총에서도 사슴뼈가 많이 출토된다. 시베리아 알타이의 암각화에도 사슴은 가장 많은 주제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 주제는 사슴은 아니다.

 

왜 사슴과 같은 특정 동물이 금 혹은 목제로 만들어져서 정해진 자세로 표현되어서 여기저기 다 장식되었을까?

왜 호랑이 혹은 표범은 둥글게 몸을 말아서 표현했을까? 이 동물은 흑해 북안부터, 알타이, 투바, 미누신스크 지역에서 출토된다. 심지어는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출토된다(그림 2).

 

필자가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란 제외)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유적의 무덤구조나 토기 등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는 명칭을 쓴다.

 

파지릭 1호분에서는 말 10마리가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3번 말의 안장 덮개(그림 1, 그림 2)는 펠트로 제작되었다. 가죽, 말꼬리, 금은 부속물로 사용되었다.

우선 안장덮개는 안장 위를 덮는 유물이다. 펠트 안장덮개 아래에는 가죽방석이 따로 만들어졌고 그 위를 덮은 유물인데, 가죽방석에 고정되었다. 가죽방석 안은 사슴털 혹은 풀로 채워졌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1호분의 3번 말 안장덮개, 길이 119cm, 너비 60cm, 펠트로 제작됨. 말안장 끝에 붙은 양머리 장식의 털은 말총을 이용, 양의 눈에는 금박장식, 펠트덮개 아래에 가죽방석이 있음. 고정됨. 가죽방석 안은 사슴털과 마른 풀로 채워짐.

 

 

 

파지릭1호의 안장덮개에는 그리핀이 영양을 공격하는 구조로 펠트 조각을 덧붙여서 표현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합성된 동물이다. 두 동물이 공격하는 구도의 동물문양은 늘 갑과 을이 정해져있다. 공격자는 그리핀이나 맹수류이고, 공격당하는 쪽이 야생염소, 사슴, 양, 염소 등이다. 파지릭 1호분의 그리핀은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독수리머리라기 보다는 사자의 얼굴이다. 공격당하는 야생염소는 뒷다리가 뒤집어진 상태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매우 사실적이다.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푸른색, 황색, 검은색 등을 배열해서 매우 화려하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사실적이지만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사실적이라는 말은 동물의 종(種)구분이 가능하지만, 부분적인 표현- 눈과 입모양, 귀모양, 뿔모양 등은 매우 과장되었다.

추상적 표현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리핀이다. 세상에 없는 동물이지만 그리핀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어떤 동물의 조합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파지릭 1호분 안장덮개의 사자머리 그리핀은 아케메니드의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것이다(그러나 이 의미는 이 유물 자체가 들어왔다는 것은 아니다. 펠트조각을 이어서 만드는 기법은 알타이에 이미 있던 기법이다.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사람들이 만들었다). 알타이에서는 주로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확인된다. 바깥의 표현과 내부의 표현이 함께 표현되었다. 매우 사실적이지만 매우 추상적이다.

그리핀은 페르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와 만만치 않게 시베리아 기원설도 대두되어 있다.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그리핀이 유물로 표현된다.

 

그리핀이란 동물문양장식은 각 지역마다 특색은 있지만 여러 동물을 합체해서 만든다는 기본 아이디어 혹은 아이덴티티는 같다. 그리핀을 예로 들었지만 몸을 말고 있는 표범장식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널리 퍼져있었을까?

 

그림 2.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환상의 맹수. 1~5: 흑해북안의 유적, 6~10: 카자흐스탄(천산산맥의 유적), 12-이란 출토품, 이외에도 미누신스크 분지(타가르 문화)에서도 환상의 동물은 출토된다.

 

부족의 상징이었을까? 깃발과 같은 상징? 그러나 깃발은 하나이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여러 개의 표현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동물문양장식은 각 개개의 동물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어떤 기호와 같은 역할을 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기호에 대한 의미를 알았다면 그렇게 널리 사용된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같은 동물의 종(種)이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그러나 세부적 표현은 다른 유물이 널리 퍼져있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예를 들면 환상의 맹수는 ‘양 1000마리’. 혹은 환상의 맹수는 ‘오늘부터 전쟁 중..’ 머 그런...

 

현대의 인터넷 환경에서와 같이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사회가 이미  있었지 싶다...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고문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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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