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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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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대형의 벽걸이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다른 남녀가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 남성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지역의 2500년 전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짧고 달라붙는 상의 자켓과 하의를 착용했지만, 남성이 타고 있는 말은 달랐다.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흡사한 굴레장식과 고리투스(활과 화살통), 안장 및 덮개 등이 그렇다. 이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에서 확인된 반인반수로 표현된 사람도 얼굴은 말탄 남성과 유사하다. 반인반수, 피닉스, 말탄 남성 뿐만 등은 알타이가 아닌 외부적인 성격으로 생각된다. 의자에 앉은 여성이 들고 있는 꽃 모양 등도 마찬가지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표트르 1세는 17세기 후반부터 스키타이 유물을 수집했고, 황금 유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학문적’인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흑해북안에서부터 이다.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지만, 켈레르메스 등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다르지만 비슷한 요소’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림 1. 흑해 북안과 쿠반강. 쿠반강은 코카스서 산맥의 북쪽 지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필자는 흑해북안의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쿤스트카메라에 같이 소장되기 시작하면서 더 그런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관하기 이전에는 쿤스트카메라에 소장되었다.

 

지도를 펴서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흑해(현재 우크라이나 남부)는 그리스와 가깝다. 그래서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민족들이 그리스의 소 도시에서 주문받아서 만들게 되면서 스키타이 요소+그리스 혹은 근동적인 요소가 함께 섞인 유물이 나오게 되었다. 이를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이라고 하는데, 알타이가 발굴되기 이전까지 동물문양장식의 기원을 그리스-이오니아양식에서 찾으려고 했다(파르마콥스키 1914).

 

흑해북쪽과 가까운 곳으로 쿠반강 유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서 이란(페르시아)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의 특징에서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자도 있었다(로스톱체프 1925). 그는 아주 빈약한 유물로 이란의 청동유물, 쿠반 강, 흑해북안, 중국의 오르도스 지역의 유물을 유사성을 주장했는데, 그가 주장한 바는 20년이 지나서 유물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1947년 이란의 북쪽 지비예 유적에서 확인된 유물이다. 이 유적의 유물은 여러 이란적인 요소+스키타이 동물문양이 묘사되었고, 고다르드는 기원전 9세기 까지 올라간다고 생각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일정정도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러나 이 유적은 연대가 지나치게 빠르고 흑해북안의 스키타이문화권 유적인 켈레르메스(기원전 7~6세기)정이다. 왜냐하면 그 뒤에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대략 기원전 7~6세기대의 유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남부 투바 아르잔에서 1971~1974년에 걸쳐서 발굴된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옮겨놓게 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9~8세기로 연대가 확정되었고 그 근거는 나무나이테 연대측정법과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한 것이었다(테르네노시킨 1976, 그랴즈노프 1980). 발굴당시에 연대측정되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다시 유적들의 연대측정을 실시했으나 같은 결과였다(알렉세프 외 2005). 아르잔 1유적에서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표범장식이 확인되었고, 무덤의 구조물로 쓴 부자재 가운데 사슴이 그려진 돌들이 발견된다. 이름해서 사슴돌이라고 하는데, 사슴돌에 그려진 사슴의 모습은 알타이 유적의 유물과도 그 모습에서 관련성이 확인된다.

 

 

그림 2.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아르잔 1, 왼쪽 가장 상단의 그림(1)과 오른쪽 상단(5)에 사슴이 그려져 있는데, 사슴돌이라고 한다.  아르잔 유적의 위치는 포스팅되었다. 사슴돌은 비석과 같은 모습이다. 글자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외부와 내부설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스키타이문화권이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에 걸쳐서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면, 그 외연인 흑해북안은 그리스와 이란 지역과 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문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되는 남성의 모습이나 꽃 모양 등이 이유 없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그랴즈노프 1980, 초기스키타이문화의 차르 무덤, 아르잔)

파르마코프스키 1914, Фармаковский Б.В. 1914, Архаический период в России. — MAP, 1914, №34. (파르마코프스키 1914, 러시아의 고대시대)

로스토프체프, 1925. Ростовцев М.И.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Л., 1925 (로스토프체프 1925, 보스포르 지역의 스키타이)

테레노시키니 1976, Тереножкин. А.И. Киммерийцы. Киев, 1976.(테레노시킨 1976, 킴메리츠 )

알렉세프 외 2005, А.Ю. Алексеев 2005, Евразия в скифскую эпоху: радиоуглеродная 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хронология. СПб: «Теза». 2005(유라시아 스키타이 시대: 탄소연대)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Godard A. Le trésor de Ziwiye (Kurdistan). Haarlem, 195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마차. 바퀴는 바퀴를 구성하는 프레임 2개로 제작되었다.

 

 

그림 2.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마차의 견인 막대기(1)과 바퀴(2)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파지릭 유적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가 출토되었다. 마차는 원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바퀴가 4개 달려 있고, 바퀴는 바퀴살이 있는 구조이다.

 

마차의 바퀴는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다.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축은 6개의 축으로 연결된다. 견인하는 막대기와 멍에가 있다. 마차의 기본 축은 세로 두 개의 세로 방향 막대기가 중심을 잡는데 하단 막대기는 지지역할을 하며 126cm, 상단은 92cm이다. 앞 뒤 바퀴를 연결하는 막대의 길이는 178cm이다. 이 막대는 흔들림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바퀴의 직경은 160cm가량이고, 바퀴의 프레임을 만드는 가장자리는 길이 66cm이고, 불규칙적인 원통형 모양이다. 바퀴의 가장 중앙 직경은 12cm이고, 이곳에서부터 고정해서 바퀴의 프레임과 연결되는데, 그 곳의 바퀴 살의 간격은 24cm이다. 바퀴의 프레임은 두 개의 구부러지는 막대(각각 290cm)로 구성되는데, 폭은 7cm이고, 두께가 5.6 cm이다. 바퀴 둘레가 겹쳐지는 부분은 30~40cm에 막대기와 벨트로 고정된다(그림 1). 프레임에는 길이 5cm, 너비 1cm로 바퀴살을 넣는 구멍이 있다.바퀴의 살은 모두 34점으로 길이는 70~71cm가량이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의 구조

 

바퀴가 큰 데 비해서 마차의 크기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앞 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는 약 6cm가량이다. 견인바를 묶는 곳에는 앞 차축 쿠션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마차의 몸체는 다소 복잡하다. 상 하단 두 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단은 128× 238cm, 상단은 128×206cm이다. 상하단은 작은 기둥처럼 생긴 발러스터 연결되어 있는데, 높이는 27cm이다. 모두 21개이다.

 

하단프레임에는 세로 막대에 4개의 발러스터가 착장되어 있다. 3개는 앞쪽에 1개는 뒤쪽에 위치한다. 상단 프레임에는 6개의 가로 막대가 운전석 뒤쪽에 세로 방향의 막대기 안쪽으로 착장되어 있다. 발러스터는 가로 방향의 상하 막대기에 삽입되어 구성되는데, 운전석 뒷자석의 프레임은 마차 길이방향의 막대기 안으로 끼워넣게 설계 되었다.

하부프레임의 운전석 뒤쪽에는 길이 22cm의 발러스터가 3개 삽입되어 있다. 직경이 1cm이다. 발러스터는 가로방향의 막대기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데, 이 발러스터 사이는 끈으로도 고정된다.

 

운전석 바로 뒤쪽부터 상단프레임이 시작되는데, 길이가 27cm인 가로 막대가 사이에 6개의 납작한 막대기가 삽입되어 있다. 운전석 바로 뒤쪽의 가로 막대기는 발러스터 3개 및 끈으로 연결되었다. 상부 프레임에는 세로로 14개의 막대기가 세워져서 선반과 같은 구조인데, 막대기 사이는 벨트와 같은 역할을 파는 격자판이 하단을 고정하고 있다. 이 격자판의 전체 둘레는 3.5m이고 탄성이 좋은 막대를 이용했다. 직경 6-7mm의 나무막대기를 세로로 고정해서 격자 모양이 되도록 했고, 격자 간의 길이는 4~4.5cm이다. 세로방향의 막대기는 짧게 끊어져서 가로 방향의 막대기와 패드로 연결되었고, 어떤 곳은 천으로도 연결시킨 부위도 있다. 격자판은 전체가 붉은 색으로 칠해졌다.

운전자의 좌석에서 다리를 놓는 난간과 상단의 지붕은 두께 1cm가량의 널빤지로 덮여 있다. 측면에는 구멍을 통해서 끈으로 묶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리핀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맹수몸통에 독수리 날개를 붙인 것이 표현된 황금유물을 살펴 본 바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그리핀은 목제 유물에 좀 더 자유롭고 흥미롭게 표현된다.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5호분에는 말 9마리가 부장되었고, 1마리 외에는 굴레, 안장이 있었다. 말의 재갈과 연결되는 굴레에는 장식물이 부착되는데, 크게는 기하학적인 문양장식과 동물문양장식이 있다. 전자에는 반원형의 장식이 부착되었다. 후자에는 산양머리, 사슴(전신)+맹수머리 장식되었다. 굴레는 남아 있지 않지만 재갈멈치와 Y자형 고리에 늑대+맹수머리가 남은 것도 있다.

사슴과 맹수머리가 장식된 굴레장식의 Y자형 고리에는 늑대머리, 재갈멈치 끝에는 맹수가 장식된 유물이 있다. 재갈멈치는 S자형으로 한쪽 끝에 맹수머리가 표현되었다. 맹수의 입은 독수리 입이어서 그리핀에 가깝다(그림1). 이 부분이 말의 뺨 위로 올라오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림1. 파지릭 5호분의 말 굴레장식

 

 

그리핀은 2~3가지 동물이 조합되는데, 맹수와 굽동물이 조합되기도 하고, 맹금류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필자가 아직 정확한 규칙성 혹은 조합의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찾을 꺼라고 생각한다. 그 상관관계가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것인지, 넓디 넓은 지역적 차이일 수도 있다.

 

일단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그리핀은 많은 종류가 독수리 머리를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다(그림2).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말 굴레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아직은 소개하지 않은 알타이의 투엑타 고분(그림 2-1,10,11,13,15~17), 바샤다르 고분(그림 2-6)에서도 알타이에서 그리핀은 독수리 머리를 변형한다.

독수리의 정수리부터 목을 따라서 갈기를 표현하고 새에는 없는 귀를 표현한다. 독수리 목의 갈기는 말의 갈기를 표현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귀도 원형모티브와 끝이 뾰족한 모티브가 있다. 원형(그림 2-8,17)은 호랑이의 귀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고, 끝이 뾰족하고 길쭉한 타원형 귀는 말(그림 2-3,7,10,11,13,15,16)을 모티브로 했을 수 있다. 귀가 없는 유물도 있다.

 

파지릭 5호분에서는 확인된 그리핀 가운데 그림 1의 재갈멈치 끝 장식은 맹수머리에 독수리의 부리(그림 2-8)를 부친 것이다. 독수리 부리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다. 파지릭 1호분에서도 재갈멈치(그림 3-1,2,5) 끝 장식이 그리핀이 표현된 것이 있다. 맹수머리에 독수리 입이다. 알타이의 대형고분(그림 2)에서 확인되는 그리핀 장식과는 조금은 다르다.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그리핀(그림 2-9)도 차이가 있다. 갈기가 표현되지 않고, 맹수의 입 부위에 부채꼴 모양으로 방사형을 표현하고 있으며, 귀도 가죽으로 따로 제작해서 붙인 것이다. 이 유물은 파지릭 2호분에서 확인된 모자장식과 유사한 그리핀 표현이다.

 

물론 그리핀이 전신으로 표현된 장식도 출토된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2호분에서 대마씨가 담긴 가죽으로 된 용기에는 그리핀 두 마리가 확인되었다(그림 4-4). 뿐만 아니라 바샤다르(그림 4-5), 투엑타(그림 4-1), 베렐(그림 4-3) 유적 등에서 출토된다. 그림 4-1의 투엑타 출토품은 단순독수리라고 보기 쉬우나, 둥근 귀가 표현되어서 2마리 이상의 동물이 합체된 것이다.

 

 

 

그림 2.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그리핀 머리

 

 

그림 3. 파지릭 1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장식

 

그림 4. 알타에서 출토되는 전신 그리핀

 

 

참고문헌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말이 매장되어서 말과 인간은 혹은 동물과 인간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드린 벽걸이의 오른쪽 모퉁이 하단에 그려진 남성 때문이다. 남성이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쓴 사슴뿔 모양이 달린 모자는 말 머리에 올라가는 것과 흡사했다.

 

말은 스키타이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재물이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키타이 말은 치장되었다. 주로 동물문양장식으로 치장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물도 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는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드렸는데, 그 중에서 동물문양이 아닌 원형 모티브의 장식이 붙은 굴레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와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유물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이 문화에서 말이 풀 착장된 것은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물론 필자가 지금껏 계속 소개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이....

필자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가운데서 큰 나무 아래에 3인이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유물을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 유물에는 말 2마리가 거의 반을 차지 할 정도로 크게 표현되어 있다. 말은 쌍둥이처럼 똑깥이 표현되었는데, 재갈이 물려져 있고, 굴레를 착용하고 있으며, 안장과 안장덮개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말은 측면으로 표현되었는데, 말의 굴레는 얼굴 길이방향 대로 향하는 끈과 얼굴을 가로지르는 방향의 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방향의 굴레는 귀 아래의 이마와 코 사이를 지나가면서 중간에 장식이 붙어서 이마와 콧잔등을 장식한다(그림 1).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황금유물은 크기가 가로 16.1cm, 길이가 12.3cm밖에 지나지 않지만 매우 대단히 정교하게 말이 표현되어 있고, 말의 굴레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파지릭 고분에서 출토되는 말의 굴레와 거의 유사하다. 굴레에 붙은 장식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사실은 용도가 있다. 이 부분은 가로와 세로 끈이 교차되어서 묶음이 생기는 부위이다. 황금유물의 굴레 마디에는 구멍이 3개(한마리 기준) 있는데, 다른 보석류 들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파지릭에서 출토된 유물은 굴레장식은 대부분 목제로 제작되었고 그 위를 금박해서 입힌 기법이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 말의 가슴장식과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유물에 표현된 말과 파지릭 5호분의 벽걸이 일부에 표현된 말의 비교(김재윤편집)

 

그림 1의 유물을 착장한 말을 앞에서 보면 이마, 콧잔등에 장식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파지릭 문화에서는 가슴에도 장식이 붙어 있었다. 왜?

그렇다. 굴레장식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장식+기능이 있다.

말의 안장을 고정하기 위해서 말의 가슴과 안장을 연결하는데, 그 부위에 장식물을 부착했다(그림 2). 5호분에서는 열매처럼 생긴 장식물과 반원형의 목제장식이 확인되지만, 많은 말에서 동물송곳니 모양의 장식물을 부착한다. 그리고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해발 1500m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2500년 전 알타이에는 무덤 안에 말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파지릭 5호분에는 말 9마리를 먼저 밀어넣고, 마차를 분해해서 함께 묻었다.

말은 말의 역할에 따라서 재갈, 굴레장식, 안장, 머리장식까지 착장했다. 말과 관련된 장신구의 컨텐츠는 모두 동물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이미 소개해드린 바 있는 안장과 말머리 장식에도 어김없이 동물문양장식이 곳곳에 표현되었다. 안장에는 호랑이와 사슴이 조각되어 있었고, 머리장식은 사슴의 뿔이 장식되어 있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스키타이 문화에서 동물문양은 크게 굽동물, 맹수, 맹금류가 경우에 따라서 조합된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는 말이 9마리 출토되었고 그 가운데 4마리에는 굴레, 안장이 착장되었고, 1마리는 이와 함께 말 머리장식까지 확인되었다.

말 굴레 장식 중 2개체는 동물문양장식이 아닌 원형 모티브 이다. 1개체분은 매듭부분만 남아 있고(그림 1, 2). 다른 1개체분은 전체가 남아 있다(그림 3). 그림 3은 잘 남아 있는 말의 굴레인데, 동심원 3개를 표현했다. 재갈멈치의 끝장식도 원형 모티브이다. 이 말 굴레는 펠트로 제작된 안장덮개(그림 4)가 함께 세트를 이룬다.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1개체 분 중 하나는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인 Y자형에는 늑대머리가 장식되어 있고, 재갈머리는 호랑이의 두상이다. 호랑이와 늑대는 단순하지 않고, 귀 모양이 실제와 다르다(그림 5). 이 굴레는 그림 6의 안장덮개와 세트이다(그림 6).

  산양(Saiga)머리로 장식된 굴레(그림 7)도 확인된다. 굴레에는 산양머리 7개체분, 재갈멈치의 끝에 각각 한 개씩 장식되었다. 동물문양장식은 굴레에 전신이 달리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머리만표현되었다. 이마를 장식하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고, 콧잔등은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산양머리로 장식되었다. 이 굴레장식은 안장(그림 8)과 안장덮개(그림 9)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안장은 안장의 전단부와 후단부가 대칭을 이루고 반원형의 장식에는 말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말 안장의 기본제작 방법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유물과 같으나,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다.

  머리장식이 있는 말은 굴레(그림 10)장식의 그림 5(1,2,5,)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이 굴레장식은 재갈멈치의 끝에 달린 맹수머리의 입이 차이가 있다. 그림 8의 재갈멈치 끝에 부착된 맹수머리의 입은 독수리 부리가 달려 있어서 그리핀에 가깝다. 그림 8의 굴레는 사슴, 맹수, 그리핀과 늑대가 조각된 것이다. 사슴 사이의 맹수머리는 그림 5-3, 4가 이 굴레장식의 것이다. 그림 8의 굴레장식을 착용한 말은 다른 말과는 달리 머리 장식(그림 12)을 착용하고 있었고 실크로 된 안장덮개가 있었다(그림 11). 안장덮개는 얇은 실크로 새와 꽃이 수 놓아진 것이었다. 이 말의 안장은 그림 13이다. 이 말이 무덤에서 가장 아래에 있었고 I번 말로 지칭되었으며 마차를 선두에서 리드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1)

 

그림 2.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그림1과 동일

 

그림 3.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그림 4.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덮개, 그림3과 세트

 

 

 

그림 5.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 그림 6과 세트인 굴레장식은 1,2,5.

 

그림 6. 파지릭 5호분 출토 말의 안장덮개, 그림6과 세트

 

 

그림 7. 파지릭 5호분출토 말의 굴레장식, 산양머리가 장식됨

 

그림 8. 파지릭 5호분 출토 그림 7과 세트. 말의 안장

 

그림 9. 파지릭 5호분 출토 그림 7,8과 세트, 말의 안장덮개

 

그림 10.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굴레, 그림 11~13과 세트

 

그림 11.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안장덮개, 그림 10, 12,13과 세트

 

그림 12.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머리장식(3,4), 그림 10, 11, 13과 세트

 

그림 13. 파지릭 5호분 출토 I번 말의 안장, 그림 11~12와 세트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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