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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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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무덤을 많이 발굴했지만, ‘그’가 남긴 책의 제목으로 ‘차르(цар)’라고 붙인 경우는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1984년 사망).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르면서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파지릭 유적은 1929년에 1호분을 발굴하고 그 뒤에 1947~1948년에 다시 조사해서 책은 1950년에 나왔지만, 1980년에 나온 아르잔 1호 보다는 훨씬 상세하고 책의 내용과 인쇄상태도 훨씬 좋다. 그 사이에 소련의 정치 경제가 많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정치경제안정은 학문성과로 바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르잔 1호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전해지는 정보가 적어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물론 주인공 남녀의 중심무덤방이 도굴이 심하고 빈 방이 많다고 해도, 말 170여 마리에 대한 정보 혹은 말이 확인된 무덤의 사진이나 그림은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가장 중심 무덤방, 13번 무덤방, 31번 무덤방을 제외하고 말만 부장된 무덤을 어제 표로 소개한 바 있다. 말만 부장된 무덤방의 말도 재갈과 재갈멈치 등 마구를 착장한 상태였다. 굴레에는 멧돼지송곳니를 달아서 장식하는 점은 인간과 함께 묻힌 말과 같다.

 

그런데 34a 무덤방에서는 특이한 청동제 재갈멈치가 확인되는데, 3개의 구멍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그림 1-1). 책에 적힌 내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다 한다. 앞서 계속 포스팅한 재갈멈치와는 차이가 있다. 별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냥 3공 재갈멈치와는 다른 거푸집(청동을 부어서 틀을 만드는 곳)을 썼을 텐데, 거푸집 만드는 단계부터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무덤방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말은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무덤에는 너무 경의 수가 많다.

그림 1-5,6도 앞서 본 3공 재갈멈치와 다르지만, 이 유물은 소재가 청동이 아닌 뼈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아르잔-1호 출토 재갈멈치(1, 2-34a번 무덤방 출토, 3-5: 37번 무덤방, 6-5번 무덤방 출토)(5,6-뼈, 그 외 청동)

 

이 무덤방이 위치한 봉분 위에서 그림 2-2의 사슴돌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은 주로 사슴이 많이 그려져셔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슴돌에는 무기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무기의 형태를 보고 사슴돌의 연대를 정한다. 이 사슴돌에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청동거울에 그려진 등에 혹 달린 사슴 3마리와 멧돼지 6마리가 남아있다(가장 왼편의 사슴 옆에 엉덩이와 입만 남은 사슴이 있다). 사슴과 멧돼지 위 쪽에는 검과 알 수 없는 막대기가 달려 있다.

 

이 유적에서는 멧돼지송곳니로 굴레에 달아서 장식을 했다.

멧돼지는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기원전 5세기에 알타이 지역에 존재했던 파지릭 문화의 유적에서는 몇 점(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의 가슴에 달았던 1점)출토되지 않았지만, 아르잔 1유적에서는 아주 많은 양의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굴레 장신구가 출토된다. 멧돼지 모양의 장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2. 아르잔 및 그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1-소스노프카 발견(아르잔과 가까운 곳)2- 아르잔1의 봉분 출토(사각형 돌을 펴서 그린 그림), 3, 10-오르삭-악시 출토, 4-투란(아르잔 무덤에서 우측에 위치한 마을이름) 발견 사슴돌, 5,6,8-아르잔과 가까운 벨로예 호수 출토, 7-우육고원 발견, 9-사말가타이, 11-볼쇼이 아직, 12-친가타그, 13-우육-아르잔 출토

 

 

아르잔-1호의 정보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충족해 줄 유적이 아르잔-2호이다. 아르잔-2호는 연대는 1호에 비해서 늦지만, 황금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은 유적이다. 멧돼지 모양의 황금 장신구도 포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멧돼지, 고리트(활통)에 붙인 장신구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장식은 직접적인 유물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호랑이와 지지대 위에 올라간 청동 산양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수 많은 멧돼지 장식과 사슴돌의 사슴도 포함시킬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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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공화국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무덤이 있었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러시아 학자인 그랴즈노프가 발굴했다.

아르잔-1호이다.

 

직경 120m 내부에는 6000여개의 통나무로 쌓아 올린 무덤방 70여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중심부에는 2중의 무덤방을 만들었다. 중심부의 가장 안쪽 무덤방에는 주인공 남녀과 이 무덤방을 벗어나서 북, 서, 남쪽에는 8개의 사람이 함께 매장되었고, 동쪽에는 말이 6마리가 확인되었다. 아쉽게도 무덤은 이미 도굴되었고 주인공 남녀는 사지골만 4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중심 무덤방의 북쪽에 9호 무덤방이 있는데, 통나무관만 들어갈 공간이고, 중심무덤방과 바로 인접하고 있어서 중심무덤방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 무덤에서 중심무덤방을 제외하고는 13번과 31번 무덤방에서 사람이 묻혔는데, 관이 2개이고 말이 함께 매장된 것으로 보아서 9번 무덤방은 이 무덤의 주인공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중심무덤방에 딸린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중심무덤방을 기준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방사상으로 나무를 연결하고 확장해서 지름 80m까지 무덤방을 축조했다. 길다란 막대로 둥근 원형의 무덤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덤방의 모양은 제각각이며, 각 방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다. 인간과 말이 들어간 무덤을 제외하고는 말만 들어간 무덤방은 13개이다.  아래의 표는 알 수 있는 말만 들어간 무덤방이다. 참고문헌에는 170여 마리 분이 출토되었다고 하지만, 중심무덤방 6마리, 13번 무덤방 7마리, 31번 무덤방 10마리를 더 해도 총합은 맞지 않다.  늙은 말만 골라서 넣었다.

 

 

아르잔-1호에서 말 만 들어간 무덤방

말의 매장 수

2번 무덤방

90마리

2~3번 무덤방 사이

3마리

3번 무덤방

3마리

5번 무덤방

15마리

10번 무덤방

2마리

17번 무덤방

8마리

20번 무덤방

18마리

25-b 무덤방

?

26a, 26b무덤방

11마리

34a무덤방

5마리

37번 무덤방

13마리

68번 무덤방

2마리

 

70여개의 무덤방 중에서 빈 방은 53개나 된다. 후대의 고고학자들이 무덤크기를 보고 왕의 무덤이라고 명명은 했지만, 무덤구조는 경상도 사투리로 그냥 ‘퍼석’하다.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는 6000여 개의 통나무로 견고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말한 바 있듯이 마치 ‘성냥쌓기’하듯이 가로 세로 통나무를 3~4단씩 교차해서 올렸다.

 

 

계속 포스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후대의 파지릭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 유적에서 통나무로 만든 무덤방은 모서리 부분에 홈을 내어서 결구시키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빈틈없이 무덤방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그 방법을 모르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무덤 가장 중심부의 주인공 남녀가 묻힌 중심 무덤방의 가장 안쪽 무덤방(2차 무덤방)은 단면도(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무덤방의 벽이 빈틈 없이 만들어졌다. 가로세로를 교차해서 쌓는 방법이 아니라 방의 모서리에 홈을 내어서 결구시켜서 만들었다.

 

그림1. 아르잔-1호의 중심 무덤방

 

 

 

그들은 이러한 기술이 있었지만 무덤을 크게 만드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포스팅 한 바 있듯이 아무것도 없는 방, 아귀가 맞지 않아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무덤의 가장 북쪽 등으로 보아서 가장 크게 만드는 것에 ‘꽂힌’것이다. 그래서 무덤도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 위에 축조했지 않았을까?

 

무덤을 땅 위로 올리는 것은 아르잔-1호 이전인 청동기시대에도 없었고, 아르잔-2호는 약간 애매하지만 주인공의 무덤방은 다시 무덤 구덩이를 팠다.

 

아르잔-1호와 같은 무덤구조가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궁금하기 그지 없다.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무덤인지, 그 시절 유행했었는지. 아직 예가 하나 뿐이니 뭐라고 규정할 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귀찮아서 그냥 가만 두기만을 기대해 본다.

 물론 거대한 무덤이 동시대에는 여러 개 있었을 경우가 적지만,  만약 이러한 매장법이 중요한 아이덴티티 였다면 무덤을 땅위로 축조하는 점, 방사상의 무덤구조 등은 후대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는 직경 120m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위에 나무를 쌓아올렸는데, 가장 중앙의 중심 무덤방을 기준으로 방사상으로 퍼져서 전체 무덤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이 무덤의 중앙에는 무덤방 안에 또 무덤방(2차무덤방)이 있는 구조로 이곳에는 10인이 매장되었으며, 이 무덤의 북쪽에 있는 9호 무덤방은 중심무덤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중심무덤방에는 말이 무덤방의 동쪽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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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르잔-1호의 평면도

 

9번 무덤방처럼 통나무관 안에 단독으로 매장된 경우는 중심무덤방 안에 있는 무덤방과 같은 특징이기 때문에 중심매장부와 관련된 사람의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르잔-1호에는 중심 무덤방을 제외하고 13번과 31번 무덤방에서 사람과 말이 함께 묻혔다. 으며, 통나무관이 2개 있어서 2인의 매장된 곳 이기 때문이다. 13번(7.5×5.5m, 높이 2.5m)과 31번 무덤방(5.5×5.5m)은 9번에 비해서 큰데, 통나무관 2개씩이 확인되었고, 13번 무덤방에는 말이 7개체분이 발견되어서 각 방의 주인공의 계급 혹은 무덤 가장 중심부에 묻힌 주인공과의 관련성이 훨씬 9번 무덤방에 비해서 클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3번 방은 이미 도굴당했는데, 무덤방 바닥에는 검은 색 모피와 양모직물로 만든 옷이 남아 있었고, 인간의 뼈와 사람과 관련된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13번과 14번 방 사이에 두개골 3개과 모피와 직물과 만든 옷, 청동 핀, 청록색 터키색을 상감한 금제 귀걸이와 황금 장식판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기마용 말 7마리와 재갈,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6개의 펜던트, 말꼬리를 장식한 황금판 등이 출토되었다.

 

필자는 이곳의 상황이 의심스러운데, 평면도에도 나오지 않고, 출토된 유물도 기술로만 남아 있다. 도굴꾼이 흘리고 갔다.  이 무덤에서는 사람의 뼈는 적어도 통나무관 혹은 무덤방에서 나오는데, 예외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또 다른 무덤방인 31번 무덤방은 도굴당하지 않았고, 말 10마리가 무덤방의 왼편에 일렬로 가지런히 놓인 상태였다. 말 10마리 모두 재갈과 재갈멈치 및 굴레장식으로 멧돼지송곳니를 이용했다.

그런데 31번 무덤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2~4번 말의 몸통 뼈 사이에는 나무걸쇠가 확인되었다. 두개골과 거리가 멀어서 굴레가 아닌 안장을 고정하는 걸쇠 일 가능성이 있다. 안장은 이미 섞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자 다음은 31번 방에서 출토된 말의 마구이다.(그림 2) 

그런데 그림 2을 보시면 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앞의 포스팅에서 다른 무덤방의 마구와 비교해 볼 때?

 

2020/05/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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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르잔-1호 무덤 31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재갈과 굴레장식. 번호는 말의 번호와 일치. 2~4번 말의 몸통에서 확인된 걸쇠는 도면이 없었다.

 

 

 

 

 

 

 

 

 

 

 

 

앞에서 설명했던 재갈만 있고 앞에서 보았던 재갈멈치가 없다.

이 무덤방에는 10마리의 말 두개골이 가지런했고 도굴당한 흔적도 없었지만, 재갈만 있었고 구멍 3개 있는 재갈멈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재갈의 끝 구멍(그림 2-6, 그림 3-19 )에 둥근 나무판이 청동고리로 연결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나무판이 말의 입 옆을 눌러서 재갈멈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아르잔-1 출토 재갈멈치, 이 유적에서는 재갈멈치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림 19와 그림 2-6은 같은 유물.

 

 

 

통나무관(전체길이와 너비: 180×60cm, 통나무관의 내부: 130×35cm, 통나무관은 중심 무덤방에서 출토된 것을 확인하시면 되는데, 통나무의 안을 다 판 것이 아니다. 도면이 제시되지 않았다.) 남서쪽 통나무관에서 40세 이상의 남성이 발견되었다.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옆으로 뉘운 상태로 매장되었다. 다른 통나무관(전체 길이 2.3m, 관의 내부길이 1.5m)에는 뼈가 보존되지 않았다.

이 무덤방에서는 모직물과 모피옷이 많이 확인되었고, 귀걸이와 금제 장식핀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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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 무덤이 스키타이 문화라는 유라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의 발원지 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동물문양장식, 무기와 마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특정하게 고정된 자세로 때로는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된 유물이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겪기 전까지 필자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널리?

 

그런데 이 생각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행동반경이 작은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농경시대를 오랫동안 거쳐왔고, 현대가 되어서는 섬나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멀리갈수 없고 가봐야 서울-부산이 가장 먼 거리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소수민족들은 지금은 그들의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었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들은 수천 km 반경의 지리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한다(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소수민족).

 

다시 돌아가서,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가능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반경은 있었지만.

동물문양장식은 왕래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표식?과 같은 기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각 지역의 무덤양식이 다르고 토기도 차이가 있는데, 비슷한 동물문양이 나타난다는 점, 또 동물문양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과장되게 표현해서 체계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아르잔-1호를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어제 소개해 드린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원형 호랑이장식 때문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직 형상화 된 그리핀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산양장식이 출토된다(그림3,4). 말무덤인 26a, 26b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에서는 최소한 말 뼈 11마리분이 확인되었고 재갈과 재갈멈치 세트도 11벌 출토되었다. 굴레에 달던 각종 장식판들도 있다. 특히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장식판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1. 무덤방 26번, 무덤방 26번의 북쪽벽에서 청동산양(26)이 있었는데,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그림 2. 무덤방 26번 출토 마구의 굴레장식 (1-7: 멧돼지 송곳니, 8-나무, 구멍에 멧돼지송곳니를 끼움, 9,10-목제)

 

그 중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청동으로 제작된 산양장식물이다. 산양이 발을 세우고, 청동판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모두 5점 확인되었고, 산양 아래의 청동판은 원뿔모양과 방형의 청동판 위에 올라간 것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 손잡이(그림4-1)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산양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앞 다리와 뒷다리의 근육, 다리의 관절, 굽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눈이 매우 둥글고 크게 과장되었고 다리도 뚱뚱하게 과장되었다. 사슴이나 말 등의 우제류는 날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산양은 캐리커쳐 한 느낌이다. 뿔도 면(그림 4-2)을 각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둥글게 표현한 면(그림 4-1)도 있다. 산양을 지지하는 지지대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래가 비어 있다. 구멍을 통해서 굴레에 달아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6: 상단의 3번유물과 같음, 7-상단의 1번유물)

 

 

 

 

그림 4.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1-그림 3의 2번유물, 2-그림 3의 4번 유물) 

 

그런데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 있다. 아르잔과 멀지 않은 곳으로 저지대인 미누신스크 지역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으로 타가르 문화라고 하는 문화가 알려진 곳이다. 필자가 스키타이 문화의 표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타가르문화의 위치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되는 문화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모양의 받침대 위에 다리를 펴고, 뿔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뿔이 아르잔 출토의 산양과는 달리 마디가 있고 더 길어서 야생염소로 생각한다. 다리를 뻗었고,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 과장된 눈, 지지대 등 아르잔 1호의 산양표현과 같다. 물론 다리가 날씬하다는 점, 귀가 표현된 점 등은 차이가 있다. 염소아래의 지지대가 비어 있음으로 막대기에 꽂아서 일종의 지팡이 꼭지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높이 18.6cm, 타가르문화, 기원전 7세기

 

타가르 문화가 있던 미누신스크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문화가 영위되었던 곳이다. 과장된 염소의 눈은 카라숙문화에서 사슴문양의 눈표현인데, 이 시절에는 청동단검의 손잡이 끝에 사슴머리가 달려서 출토되었다. 설명드린 바 있는데, 아르잔-1호 무덤의 봉분 위에는 등에 혹이 볼록 난 사슴이 그려진 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론이 흑해북쪽일 것이라는 의견은 1850년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주로 흑해북안을 위주로 발굴하면서 먼저 나온 것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그 의견은 약간씩 흔들리다가 아르잔 1호의 발굴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유물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잔 1호는 직경 120m의 크기와 6000개의 통나무를 써서 모든이를 압도하긴 했지만 실제 무덤은 견고함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유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많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렀다. 그 중에서 2기가 발굴되었다.

 

아르잔-1호는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로 기원전 9세기 가량으로 생각되는 유적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파지릭 고원(파지릭 유적)과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유적과는 이 유적의 무덤 구조가 많이 달라서 가장 가까운 강이름을 따서 ‘우육문화’ 혹은 ‘투바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일종의 지역(투바) 명칭인 것이다. 무덤의 구덩이를 파지 않고 무덤을 만들었으나, 사람무덤인지, 말 무덤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 많이 묻혔다. 사람은 총 15인이고, 말은 대략 160마리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잘 남아 있지 않은 서쪽 부위의 말을 포함한 것이다.

 

말은 어떤 말일까? 기승용 말이며, 12~15세의 늙은 말이고, 수컷이다. 당연히 자연스럽지 않고 골라서 넣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말 무덤이 아닐까 하는,,,필자의 우스게 소리이다.

 

무덤의 동쪽 부위에 있는 그나마 네모 반듯한 방에는 말만 매장된 무덤방 3개가 있다. 무슨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덤방 2와 무덤방 3 사이에도 말 3마리가 확인되었고, 청동재갈이 (그림 5-2,4,6)출토되었다. 그랴즈노프도 이곳에는 무덤방 번호를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덤방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2번과 3번 방 사이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동쪽편

 

그림 2.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무덤방 2번은 9.5×8m이고 높이는 0.9m가량이다. 말 30마리를 접어서 넣었다. 그림 2의 번호는 말의 번호이다. 말의 두개골이 무덤 중심부를 향하고, 다리를 접고 하늘을 쳐다보도록 묻혔다. 이 곳에서 유명한 청동제 원형 호랑이 장식이 출토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특히 아르잔-1 유적의 재갈과 재갈멈치에 관심이 많다. 2번 무덤방도 이미 당연히? 중심 무덤방과 함께 도굴당해서, 출토된 마구들은 이미 말에서 벗겨진 상태였다. 몇 번 말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이 거의 비슷하니깐 참고하시면 된다.

 

특히 재갈멈치에 구멍이 3개이고, 재갈멈치를 끼우기 위한 재갈의 끝에 달린 고리모양이 원형이 아니라 사다리꼴(그림 3-2)에 가까운 점에 주목한다. 재갈멈치에 구멍이 세 개인 것은 중간의 것은 재갈과 연결시키고, 위 아래의 구멍은 굴레와 고삐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재갈과 재갈멈치는 청동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에 대한 이해는 그림 7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3-3은 굴레에 달았던 장식품이다.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되었는데, 189개가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가운데 구부러진 것 외에도 둥근 원판에 네모구멍이 있는 뼈로 만든 장식(그림 3-6의 오른쪽)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 1호의 무덤방 2번 출토 마구

 

 

 

무덤방 3번(12.5×7.5m)은 무덤방 2번의 동쪽에 인접했고, 2번 방 보다 2배 이상 높다(2.2m). 가로 2개, 세로 3개로 쌓아서 올린 것이다. 북쪽 반이 말의 뼈 였는데, 머리뼈가 30개 출토되었는데, 무덤방 2번 보다 더 밀도 있다. 이곳에서도 최소한 6벌의 마구 세트가 출토되었다.

 

무덤방 5번(10×6.5m)은 무덤방 2번의 북벽에 위치하고, 높이는 2.4m로 3번 무덤방과 비슷한 높이이다. 15마리의 말뼈가 출토되었고 머리는 중심 무덤방을 중심으로 한다. 역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5-1,3,5) 등이 출토되었다

 

그림 4.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

 

 

그림 5. 아르잔 1호의 무덤방 5호(1,3,5)와 무덤방 2~3호 사이에서 출토된 마구(2,4,6)

 

아르잔-1호의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은 우코크 고원 및 파지릭 계곡에서 출토된 재갈과 차이가 있다. 아르잔 1호의 무덤 재갈은 기능에 좀 더 충실했다면, 300년~400년 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재갈멈치에 구멍도 없고, 고삐 구멍이 따로 만들어졌다(그림 6).

 

 

그림 6. 파지릭 1호에서 출토된 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

 

 

그림 7.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말, 재갈이 입에 물린 채 그대로 출토되었다. 재갈과 재갈멈치를 이해하시라고 인용한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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