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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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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 산에서는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의 무덤이 확인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그리핀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합체된 상상의 동물이다. 주체가 어떤 동물이냐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결국 그리핀은 날개가 생명이다. 날개 달린 상상의 동물이다.

 

파지릭 유적에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의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전사의 무덤)에도 없었던, 구리 조각에 찍힌 그리핀이 남아 있다.

이 유물은 옷이나 말의 장식 등에 달던 장식으로 생각된다. 납작하고 가벼운 유물이어서 직물에 부착했을 가능성이 많다. 요즘 옷에 다는 스팽글(빤짝거리는 납작한 장식) 정도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림5에는 금박을 씌운 구리판이 달려 있는 직조물을 소개했다. 이곳에는 그리핀은 찍혀져 있지 않다. 그림 1~4이해를 위한 유물이다.

 

그림 1(a)의 구리 조각에 그리핀은 사자와 그리핀의 함성이고, 그림 (b)는 사슴의 앞다리와 뒷다리만 남아 있다. 그림 2의 산양 머리도 구리판에 찍힌 것이다. 보다시피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못하다. 산양 머리의 상단에는 날개의 일부처럼 보이는 두꺼운 가죽조각이 남아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또 구리 판 위에 그리핀 모양으로 스탬핑(찍혀)있고, 그 위를 금박으로 장식한 유물도 있다.(그림 3, 그림 4).

 

 

그림 3.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날개와 갈기가 있는 염소

 

그림 3은 갈기와 날개가 있는 염소이고, 그림 4는 독수리 머리와 맹수의 몸체를 한 형태로 그리핀 형태이다. 그림 3의 염소는 입을 벌리고 귀가 매우 크고, 귀가 뾰족하며, 뿔이 크다. 다리를 제외하고 몸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 염소는 갈기가 없지만 이 염소에는 갈기와 날개가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

 

그림 4.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에 찍힌 그리핀.

 

그림 4의 그리핀은 앞발은 새의 발톱이지만 뒷 발은 맹수의 발톱으로 꼬리가 길게 표현된 것이 호랑이 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4는 부리가 마주보도록 구부러진 것이다. 호랑이의 근육 표현은 특히 엉덩이 부위에 부채꼴 및 쉼표로 표현되어서 근육을 잘 표현한 것이다. 독수리의 몸통에는 갈기와 날개가 표현되어 있다.

호랑이의 엉덩이에 있는 부채꼴 및 쉼표 모양의 근육 표현은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두 동물은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의 몸에 표현된 동물문양이다. 이미 이 유적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 동물 장식들이 사용되고 발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금박을 입힌 동물양장식 구리판은 파지릭 2호분에서만 출토되는 것이 아니라 파지릭 유적의 7호분에서도 실제로 구리판이 달린 채 확인되기도 한다.

 

그리핀이 새겨지지는 않았지만 구리판 위에 금박을 씌운 스팽글을 단 마구장식이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출토되기도 했다(그림 5). 이 유물은 말의 가슴을 장식하던 유물로 보인다. 모직으로 된 직조물 위에 펠트, 모피를 붙이고 그 위를 구리판을 감싼 금박을 달았다. 중앙에는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이 유물의 사자모양은 페르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5. 파지릭 유적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가슴 가리개의 일부분 안장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안장 아가리개와 연결된 부분, 길이 80cm, 너비 7cm.

 

위의 동판 위에 찍은 그리핀은 금박으로 감쌌다(그림 1~4). 금박은 쉽게 벗겨져서 현재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그리핀을 남겨 놓은 것이 발견되었다. 머리장식 같은 곳..

통으로 만든 금제품은 있는데, 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물질로 감싼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우리가 살펴본 유물 가운데 금박을 감싼 재질은 나무와 구리이다. 밖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까? 안에 든 것이 더 중요할까?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지릭 유적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무덤은 55~60세의 남성과 40세 가량의 여성이 미라처리 되어서 매장되었다. 이 때 모든 사람을 미라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라화 된 사람들은 특정 계급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미라가 들어 있는 무덤에는 규모도 크고, 유물도 많다.

그런데 무덤은 크게 만들어졌을수록 무덤 위에 솟아 오른 봉분이 클수록 그 곳에 먼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굴이 쉬워지는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 만약 도굴당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정보의 제공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무덤에는 남녀의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각각 2점씩 확인되었다. 이미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나무로 제작된 것은 한 점 공개한 바 있다(그림 3-2). 남성의 모자도 가죽으로 된 것을 공개한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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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모자는 이 남성의 계급 때문인지 코로나 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는 왕관이라는 뜻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러시아어 중에 하나이다.

이미 소개한 남성의 모자는 가죽으로 되었있었고, 머리의 정수리에 4점의 가죽 조각으로 사슴 뿔을 상징하는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머리에 쓰는 모자의 베이스는 비슷하지만 붙어 있는 장식이 매우 화려한 남성의 모자가 있다.  나무, 가죽, 펠트로 제작된 것이다.

펠트는 모자의 베이스에 사용되었고, 나무와 가죽은 붙어 있는 그리핀 장식에 사용되었다.

나무로 제작된 그리핀의 입속에 뿔 달린 사슴머리(그림 1-1, 2-3)를 표현 한 것이다. 남아 있는 이 나무조각의 높이는 34.5cm, 너비가 15cm가량이다. 그리핀의 목에도 작은 그리핀의 머리가 양쪽으로 한 쌍(그림 2-2)붙어 있는데, 큰 그리핀의 몸통에 삽입 가능한 사각형 구멍이 있다. 이 그리핀의 몸은 큰 그리핀의 몸통에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는 거위가 한 마리씩 조각되어 있다(그림 2-4). 그리핀 본체의 눈과 부리 사이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수염?을 표현하고 있고, 정수리부터 목에는 가죽으로 갈귀를 표현하고 있다(그림 1-1, 그림 2-1).

그래서 이 그리핀은 독수리+굽동물의 갈귀+호랑이의 수염이 합체된 것이다.

 

이 그리핀의 머리 및 목과 함께 출토된 유물은 뿔이 화려한 사슴 장식이다(그림 1-2, 4). 나무와 가죽으로 제작된 것인데, 머리는 나무로 입체적으로 제작되었고, 가죽은 몸통을 표현했는데, 평면으로 표현되었다. 앞 다리와 뒷다리가 구부린 것으로 마치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듯 보인다.  앞서 살펴본 그리핀의 아래에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사슴의 몸통이 평면이어서 어딘가에 부착되었을 것이고,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그림2.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위와 같은 유물

 

특이한 여성의 머리장식도 출토되었다. 앞서서 살펴본 목제의 나무장식과는 달리 주로 가죽으로 제작되었다(그림 3-4). 머리에 텐트를 두른 듯, 쓰면 눈,코,입만 보일 듯하다. 머리 정수리에는 반구형의 모자틀이 있고 그 아래로 가림막을 가린 듯 한 모습이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수탉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3-3)이 세워져서 붙어 있고, 그 아래에 모피조각이 세 점 붙어 있다(그림 3-1). 가림막에도 마름모 모양안에 연꽃 장식이 있는 아플리케가 붙어 있다(그림 3-4).

 

그림 3. 파지릭 2호 출토 여성의 머리장식

 

 

새머리 모양의 장식이 있는 모자가 출토된 유적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아크 알라하 1 유적(1호분), 베르흐 칼쥔 2 유적(3호분), 올론-쿠린-골 10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독수리 머리에 굽이 있는 동물이 양식화 된 표현이다. 굽이 있는 동물은 주로 말, 사슴, 숫양이 대상이고, 새 머리도 양식화 된 것이다.

 

그리핀 장식은 발견당시 금박으로 입혀져 있었고, 붉은색으로 채색되었었다고 한다. 남성의 높은 그리핀 달린 모자의 베이스는 펠트로 제작되었다. 무덤에서 펠트조각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파지릭 2호분의 남녀는 각각 높은 머리장식 1점과 낮은 머리장식 1점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의 머리장식 중 높은 것은 의례용이었겠지만, 여성의 머리장식은 둘 다 평소에 쓰기에는 불편한데, 무엇을 평소에 썼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불편함을 감수한 노력?은 여전한가 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 안에는 사람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현재까지 살펴본 말의 수는 6~10마리까지 매장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굴레와 안장, 안장덮개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유심히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무덤의 말이 매장된 위치는 다른 무덤은 주로 무덤방 옆에서 확인되지만, 이 무덤은 구덩이의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다. 왜 그런지는 어디에도 설명이 안되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는 도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스테리와 같다.

그 덕분에 2호분의 마구와 굴레장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앞에서 알타이에서도 파지릭 계곡 보다 남쪽에 위치한 우코크 고원에서는 없었던 말장식 중에 하나가 말의 얼굴을 가리는 말의 마스크였다. 말이 다른 동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필자가 루덴코(1953)을 삿삿이 분석해서 조각조각 여러 군데 있는 유물을 찾은 결과 아래와 같은 마구와 말의 굴레장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루덴코가 편집한 것을 필자가 재편집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눈이 팽팽돌아가는 경험이었다. 좀 있으면 논문도 쓸 수 있을 기세이다..ㅋㅋ

 

사실 파지릭 2호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무덤이기도 하다.

온전하게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고분을 도굴한 사람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각 각 세트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구의 용도에 따라서 구분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편집)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 편집)

 

그림3은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인데,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린다. 저런 말의 굴레장식에 각 호수에서 나온 말 마다 다른 장식을 달았던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말의 굴레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레 장식: 목제 재갈멈치-동물문양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제 장식: 가죽(김재윤 편집)

 

 

 

 

림 6. 파지릭 유저 2호분 말의 재갈: 금속(김재윤 편집)

 

 

그림 7.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8.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덮개

 

그림 9.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 관련 유물과 채찍의 손잡이(김재윤 편집)

 

 

그들의 상상력과 디자인 능력은 최고이다. 디자인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이 따라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은 현재의 IT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 일종의 하나인 파지릭 문화에는 인간과 함께 말을 매장하는 풍습이 있다. 말을 여러 마리 묻는데, 대부분 말에는 재갈과 굴레장식등이 입혀진 상태로 함께 묻힌다.

같은 문화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말 6마리, 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말 9마리, 어린아이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에는 말 1마리가 확인되었다. 알타이의 파지릭계곡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확인되었다.

파지릭문화에서 말을 꾸미는 장신구에는 굴레장식과 안장을 덮는 안장 덮개가 있다. 2호에서도 안장덮개 조각이 나왔지만, 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바로 옆에는 1호분이 있는데, 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것으로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했다. 1호분에는 말이 10마리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2번째의 말에는 완벽한 안장덮개가 확인되었다. 말 등에 길게 놓여 있었다. 안장덮개는 펠트와 가죽, 털로 만들어졌고 일부에는 금박이 붙어 있다. 펠트 두 장을 붙이고 그 안에 순록털이나 건초로 채워진 것이다.

안장덮개(그림1)의 안장 덮는 부분은 장방형이고 그 아래에는 치레걸이(그림 2)가 달려 있다. 안장덮개 부분에는 그리핀이 염소의 뒤에서 공격하는데, 염소의 뿔을 그리핀의 날카로운 부리로 공격하고 염소는 앞 발은 구부리고 있고 뒷다리 부분은 이미 뒤집어 져서 전체적으로 몸을 꼬고 있다. 그리핀은 날개를 펴고 있다. 재밌는 점은 안장덮개에 표현된 염소를 공격하는 그리핀은 데칼코마니처럼 다른 쪽에도 그대로 표현되었다. 염소를 공격하는 그리핀은 아플리케 수법으로 여러 조각을 안장 펠트에 감침질해서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안장 덮개 아래에는 한 쪽에 세 개씩 펠트로 만들어진 일종의 ‘메달’이 붙어 있다(그림 2). 이 메달은 아래의 큰 원은 양의 머리이고, 양의 입 끝은 뿔달린 호랑이의 머리 2개 사이에 삽입되어 표현되어 있다. 호랑이 머리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양 머리의 가장 자리는 붉게 염색된 말꼬리털이 술로 달려 있다.

 

그림 1. 파지릭 1호분의 2번째 말의 안장 덮개, 길이 119cm, 너비 60cm

 

그림 2. 파지릭 1호분의 2번째 말의 안장 덮개에 붙은 메달(그림 1에 안장 덮개에 붙은 메달)

 

 

이 안장 덮개와 세트인 굴레장식은 팔메트 문양과 사슴 머리로 장식된 것이다. 팔메트 문양은 잎사귀 6개가 서로 마주보도록 조각된 것이고, 사슴은 두 마리가 등을 마주보도록 조각된 것인데, 팔메트 문양과 사슴이 교차되게 배치되었다. 팔메트와 양 두 마리 모두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게 조각되었다. 팔메트장식 4개, 사슴은 모두 5개가 배치되었다. 말의 재갈 멈치 끝에도 팔메트 문양이 조각되었다(그림3).

 

그림 3. 파지릭 1호분의 두번째 말 굴레장식, 그림 1과 세트, 나무와 가죽

 

 

 

우코크 고원에서 확인된 말을 장식하는 가장 많은 동물은 그리핀이었다. 말과 그리핀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되는 그리핀은 좀 더 적극적이다. 살아 있는 말에 순록 혹은 사슴뿔을 매단 마스크를 씌워서, 상상의 동물로 보이게 한다든지 하는 점 때문이다. 또 궁금한 점은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에는 늘 염소, 양, 소 등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유목민에게는 동물은 재산이었을 텐데,,, 왜 그들이 늘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의 상트페트르부르그 시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근현대 유명화가의 그림부터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물까지 없는게 없어서 ‘박물관’이라는 뜻이 딱 맞는 곳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건물 자체가 표트르 때부터 사용되었던 겨울 궁전이다. 건물부터 내부에 든 유물까지 전부 인간이 남겨놓은 그 모든 것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유명한 그림들이 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지하까지 내려가면 고고유물이 있다. 지하에는 주로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의 유물이 많다..‘많다’라는 말로 전달이 안된다. 너무 피곤하다. 너무 많아서...

 

그중에서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차르로 여겨지는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시베리아의 황금 유물 컬렉션은 가장 화려한 방에 배치되어 있다...(그래서 사진이 잘 안나온다..벽에다가 붉은색 카펫을 달아서 유물을 매달아 놓았는데....사진이 죄다 흔들린다..일부러 그런것일까 싶기도 하고...)

 

이 유물들이 시베리아의 어떤 곳에서 수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노력을 했고 하고 있으나, 모두가 동의하는 답은 없을 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다.

그 중에서 필자가 나무 아래서 세 사람이 쉬고 있는 장면을 소개한 주제가 있는 버클 장식을 소개한 바 있다. 바로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나온 머리장식과 이 버클에 표현된 여성의 머리장식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버클에는 잘 이해가 안되는 유물이 한 점 걸려 있다(그림 1).

바로 나무 아래에 걸려 있는 네모꼴? 혹은 타원형의 유물 때문이다. 필자가 여러 책을 뒤적거려도 여기에 대해서 해석을 해 놓은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림1.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 황금유물 컬렉션, 황금 버클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어쩌면 나무 밑에 걸려 있는 이 물건은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일종의 악기인 하프 일 수도 있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유물배치도

 

 

앞에서 파지릭 2호분 무덤 배치를 유심히 보신 분은 이미 이 유구에서 악기가 출토된다는 사살을 눈치 챈 분이 있었을 것이다. 2017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는 이 유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루덴코가 파지릭 유적에 대한 단행본을 펴낼 때 이 유물은 이미 공개되었다.(그림 2)

나무로 만들어진 것인데 전체 길이는 83cm이고, 가장 자리는 11~12cm가량 넓고, 중간 부분은 너비가 3~4cm가량으로 좁아지는 형태로 길고 단단 나무 조각으로 중간에는 비어 있어 공진기 역할을 한다. 하프 바디의 아랫면은 거의 수평이지만 가운데는 오목하다. 가장 가운데 높이는 5cm밖에 되지 않는다. 몸의 중간 부분에는 길이 26cm로 된 소리판으로 덮여 있다. X모양의 공명 조리개가 가운데 길게 나 있다. 바디에서 뚫린 부분은 소리를 확장하기 위한 부분으로 얇은 가죽을 씌웠을 것이고, 그 부분은 바디에 붉은색으로 염색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가죽막에는 3개의 원형 공명구멍이 있었고, 하나는 끝 부분에 다른 하나는 중간에 있었다. 얇은 나무 못으로 막을 악기의 바디에 고정시켰다. 바다의 한쪽에는 끈을 매기 위한 홀더가 있었는데 길이가 24cm가량이다. 몸통의 넓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부착된 돌출된 부위에 묶어서 사용했던 것이다. 남아 있는 줄의 수는 4개 이상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현악기, 일종의 하프, 가죽막은 그림이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그림 1의 나무 밑에 걸려 있는 물건을 보면, 앉아 있는 여성 방향으로 튀어 나온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어쩌면 악기의 스트링 홀더가 아닐까? 이런 악기를 그냥 들고 다녔을 리는 없고, 아마 가죽 주머니 같은 곳에 넣고 다녔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나무 밑에 걸려 있는 물건에는 세로 방향으로 긴 줄이 4~5줄 표현되어 있다.

 

황금벨트에 표현된 나무 아래의 물건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데, 화살과 활이 들어간 스키타이 고리트라고 불리는 유물이다. 고리트는 전사들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무기이다. 쉬기 위해서 허리춤에 있던 무기를 풀러서 나무밑에 걸었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우코크 고원의 전사 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이 유물에 대해서 살핀 바 있다. 하지만 고리트라고 하기에는 고리트에 씌운 고깔모자도 없다. 그리고 이 유물이 만약 고리트라면 벨트에 표현된 이 유물에서 여신방향으로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2020/02/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알타이 산의 스키타이 전사 2인의 활집과 평화

 

알타이 산의 스키타이 전사 2인의 활집과 평화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16세 가량의 소년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함께 확인되었는데, 우리는 이미 소년과 장년기의 남성이 어떤 물건과 함께 부장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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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이 황금벨트를 디자인 한 사람이었더라도, 가장 중요한 소재인 나무 아래에 무기보다는 악기를 매달았을 것 같다. 휴식을 위한 주제를 선택했다면...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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