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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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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1 2500년 전, 파지릭계곡의 스키타이문화 무덤구조2

파지릭유적은 2500년 전 혹은 보다 약간 더 오래된 시간에 만들어진 무덤이 주요한 장소이다. 이 유적은 좁게는 파지릭문화에 속하고, 넓게는 스키타이 문화이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던 무덤을 중심으로  밝혀졌다. 앞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로 유명한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도 이 문화의 유적이다.

 

파지릭 유적은 1929년 1호를 그랴즈노프가 발굴하기 시작해서, 1947~1949년에 발굴되었다. 그래서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각 유적에 대한 리포트가 나온 후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논문 및 저서가 나오지 않고, 유적발굴이 곧 자신의 저작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후자의 형태는 중국과 러시아 등 광대한 범위의 국가에서는 약간의 변명처럼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가령 예를 들면 5000~4500년 전 사이에 유적이 발견되지 않다가, 발견되었다면 그 자체로 연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덴코가 발굴한 2~5호의 파지릭 유적은 대부분 1953년에 발표된 책에 기술된 내용이다. 그래서 각 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지만, 루덴코는 파지릭 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을 내어서, ‘파지릭문화’를 규정하려 했다.

 

예를 들면 파지릭 유적의 무덤구조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루덴코는 전체적으로 남들과 다른 고분을 ‘콕’ 찝어서 특히 설명을 많이 한다.

무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본 평면형태는 1~4호의 대형 고분에는 동쪽으로 돌이 길게 배치되어 이어지지만 5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 대신 앞의 4개 고분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5호 무덤 주변에는 평면형태가 고리모양인 적석구조물이 확인된다(그림 1). 5호분의 적석 범위는 재는 곳의 위치에 따라서 5~7m이다. 남쪽에는 봉분에 붙어서 직경 3.5~3.7m의 것이 2개 확인되었고, 북쪽에는 2.5~3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5호분 평면형태. 다른 무덤의 평면 모습은 1953년 책에는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2호와 5호를 중심으로 책에 기술되어 있다.

 

2호분을 비롯해서 가장 크기가 작은 4호분을 제외하고는 무덤구덩이의 크기는 51~55㎡이다. 4호무덤구덩이는 30㎡이다. 깊이는 표토층에서부터 4m정도이다.

2호의 무덤구덩이의 평면형태는 긴 네모꼴이다. 무덤구덩이의 입구가 바닥보다는 약간 크다.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발굴모습, 1-무덤의 최상부를 절개해서 파내려가는 장면, 2-무덤구덩이의 입구모습. 1947년 발굴당시의 모습.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보이지 않던 유물이 발견되는데, 바로 무덤구덩이를 발굴해 내려가면서 확인되는 삽, 말뚝과 망치들이다. 이는 그 때 당시에 스키타이 인들이 무덤을 파는 도구로 생각된다.

특히 2호분에서는 무덤구덩이의 북쪽에 있는 무덤방 위에서 발견되었다. 2호분에서 출토된 목제 삽은 두 점의 손잡이 길이가 다르다. 115cm(그림 3-b), 127cm(그림 3-c)이고, 삽의 작업면은 길이 35~38cm, 너비는 약 12cm이다.

 

 

 

 

그림 3. a-3분에서 출토된 나무망치, b,c-2호분에서 출토된 나무 삽. 축척1/9

 

혹시 이 유물을 보고 삽이 아닐꺼라고 의심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삽은 삼각형의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삽이 맞다.

손잡이에 아무런 고리가 없지만, 이런 모양의 삽은 현재 러시아에서 사용된다.

물론 삽의 앞부분은 다르다.

삽의 크기는 신체에 비례한다. 러시아 삽은 자루가 매우 길고 단면이 두꺼워서 한국사람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신체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유학당시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러시아와 공동발굴을 했었는데 첫 해가 지나자 한국사람들은 한국삽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2호분의 삽의 자루가 다른 것도 사용하다가 부러졌을 가능성도 있고, 신체조건이 다른 두 사람의 삽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보통 고고학자는 부러진 것을 표기할 때 사용하다가 부러졌는지, 아니면 원래 그 길이었는지를 관찰해서 적어둔다. 루덴코도 나름 예리한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원래 길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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