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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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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파지릭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부장되어 있었고, 말 6마리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장식이 있었고, 1마리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우리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시대에 존재했던 얼마 떨어지지(상대적으로) 않은 파지릭 유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아크 알라하 3유적)과 전사 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에는 없는 말의 장식이 파지릭 유적에서는 발견되었다. 바로 말의 눈을 덮는 말의 마스크이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2호분 뿐만 아니라 1호분과 5호분에서도 확인되는데, 그 모습은 차이가 있다.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펠트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의 마스크에는 귀가 달려 있는 귀 사이에는 숫양의 머리가 있고 그 위에 수탉 같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새는 분리가능하는한데, 다리는 막대를 깍아서 만든 것이고 날개는 막대 프레임으로 별도로 만든 것이다. 마스크의 가리개에는 일곱 마리 물고기가 장식되어 있다.

1호분에서는 2점, 5호분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말의 마스크도 기본적으로 말의 귀 사이에 사슴뿔 혹은 산양머리, 그리핀 장식 등을 얻은 구도로 제작되었다. 말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것과 말의 턱 아래까지 가리지 않는 2호분으로 구분된다. 말의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장식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말 마스크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말 마스크의 실측도

 

5호분의 것(그림 3-4)은 말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눈 구멍만 있는 것이다. 작은 끈이 턱밑에서 묶을 수 있는 구조이다. 귀는 따로 가죽으로 달린 것이다. 귀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화려한 뿔이 있는 순록(혹은 숫사슴) 머리(그림 3-3)를 조각해서 붙였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3,4)출토품과 2호분 출토품(2), 그림 3-5는 그림 1,2와 같은 유물

 

그림 4. 파지릭 1호분 출토 말 마스크, 그림 4-1의 사슴 뿔 표현 끝에는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총이 숱장식으로 붙어 있다고 했으나 잘 표현되지 않았다. 

 

1호분의 말 마스크는 2점인데, 1점은 말의 얼굴을 감싸는 부분은 호랑이를 도식적으로 표현하고 사슴뿔 한쌍을 귀 사이에 붙여서 표현했다. 귀와 사슴뿔은 가죽을 덧붙인 것인데, 파란색으로 채색해고 금박을 입혔다. 사슴뿔의 끝은 붉은 색으로 염색된 말총의 숱이 장식되었다(그림 4-1).

 

 

그림 5. 파지릭 1호분 출토 말 마스크 복원도, 그림 4-2와 같은 유물, 필자가 열심히 이 유물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소개했으나, 사진도 오래되고,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이 잘 와 닿지 않는다..

 

1호분에서 출토된 두 번째 말 마스크에는 뿔이 잇는 날개 달린 그리핀과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말의 귀 사이로 달린 것은 그리핀의 날개이다. 그리핀은 앞발로 호랑이를 잡고 있다. 호랑이는 이빨을 가습에, 앞발톱은 그리핀의 다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그림 4-2, 그림 5). 그리핀의 귀는 길고 뾰족하며, 목은 수평으로 덮여 있고, 사자의 갈기는 독특한 구멍으로 표현되어 있다. 말의 옆얼굴에서 입을 가리는 부분은 금박으로 호랑이의 줄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이 말 가면은 총 4판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의 귀와 그리핀의 날개는 두꺼운 가죽으로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파지릭 문화에서 2호분의 말 마스크와 같이 숫염소의 단순한 뿔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사슴의 화려한 뿔로 변화된다. 말 마스크를 쓴 말을 보면 저게 말인지, 사슴인지 혹은 그리핀 어떤지 모를 것 같다. 살아 있는 하이브리드 동물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닌지 알면서....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에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55~60세 남성과 40대의 여성이 함께 매장되었다. 도굴되었지만 무덤의 크기나 남아 있는 유물, 미라처리된 시신 등으로 인해서 파지릭문화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인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알타이 지역에 속한 일종의 지역문화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도굴되었다. 이미 남성과 여성 미라는 손상이 심한 상태여서 그들이 입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이다. 여밈 없는 셔츠 두 벌이 확인되었는데, 하나만 복원되어서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인데, 남성의 옷이다(그림1). 인도산 면으로 직조된 직물로 만들어진 셔츠이다. 복원되지 못한 많이 찢겨진 셔츠는 너비가 44~45cm가량의 인도산 면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각기 4개의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것도 크기로 보아서 남성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의 상의, 여밈없는 셔츠, 에르미타주 소장

 

색도와 밀도가 다른 각기 3개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전면과 후면의 판은 두 개 반쪽씩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앞뒤면 하단의 가장자리는 쐐기모양으로 4조각을 앞뒤로 붙여서 아래로 갈수록 옷이 퍼지는 모양이다. 목선을 둥글고, 소매는 손목으로 갈수록 모아지는 형태이다(그림 2).

앞판의 가장 중앙에는 붉은 솔기 장식이 있고, 목, 밑단 및 팔목은 빨간색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다(그림1). 전체 길이는 113cm이고, 어깨너비는 84cm, 하단의 너비는 125cm이다(그림2).

루덴코는 셔츠 두 장 모두 크기가 매우 커서 남성의 것으로 보고 있다.

소매, 목, 밑단 및 솔기 바닥의 마감은 여러 민족지 자료에서 보호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악령의 진입을 막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그림1의 패턴

 

우리가 이미 살펴본 얼음공주의 여밈없는 셔츠 역시 비슷한 스타일이다. 인도산 야생의 실크로 비슷한 형태이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셔츠와 같은 소재(인도산, 면)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크 알라하 5유적과 쿠트르쿤타스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의류가 남아 있는 파지릭문화의 무덤에는 셔츠가 확인된 유적은 몇 개 되지 않으며, 모피코트는 팔을 끼워서 착용하지 않고, 어깨에 걸친 채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입직물로 만들어진 셔츠는 20세기 초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에게도 흔한 의복이 아니었던 것으로 최상위 계급들만 입었는데, 그러한 경향은 이때부터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루덴코는 남성의 셔츠와 여성의 셔츠는 성별에 관련없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았다. 여러 전통적인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안에 입는 옷은 알타이 사람들은 남성, 여성, 아이들 없이 모두 같다(라돌로프 1989). 몽골의 여자아이 옷 또한 남자아이와 같다(비크트로바 1977). 시베리아의 많은 민족(축치, 코략, 토파족)들도 남성과 여성의 곳은 모두 같은 형태로 재단되었고 그 전통이 남아 있다(마레티나 1977).

알타이의 파지릭문화에서 확인되는 여밈없는 셔츠는 중국의 신강성 수바시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바느질, 마감, 색상 및 소재 등이 매우 유사하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의 셔츠 외에도 아주 화려한 여성용 모피코트, 치마, 타이즈 등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물이 많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의복과 직조물)

라돌로프 Радлов В.В. Из Сибири. Страницы дневника. М. 1989. М.: Наука, 1989. 718 с.(라돌로프, 1989, 일기장, 시베리아로부터)

비크토로바 1977, Викторова Л.Л. Монгольская одежда // МАЭ. Л.: Наука, 1977. Вып. 32. С. 169-199.(비크토로바 1977, 몽골의 의복)

마레티나 1977, Маретина С.А. Одежда народов северо-западной Индии // МАЭ. Л.: Наука, 1977. Вып. 32. С. 5-26.(마레티나 1977, 인도북서부지역 사람들의 의복)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처리하는 장례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필자가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에 다녀간 적인 있는 시베리아의 ‘얼음공주’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되었다.

거의 훼손되지 않은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알타이에 미라가 있는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도 알려졌다. 1920년대 발굴된 파지릭 유적에서도 알려졌을테고, 아마 그 전에 도굴한 사람도 알았을 것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했을 그 당시인 17세기에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한 미라는 그 존재가 귀했기 때문에 ‘얼음공주’는 공주라는 호칭까지 얻을 수 있었다.

 

루덴코는 도굴에 의해서 무덤이 큰 손상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발굴자라도 그런말을 했을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도굴된 무덤의 모습..그 고생을 하면서 팠는데, 도굴당했다니.

나도 읽는 내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에서 얻지 못하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에 만족? 혹은 불만인 상태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미라로 처리되었고 통나무관은 1개 뿐인 무덤이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 미라를 설명할 때 언급했지만 미라를 처리할 때 가장 큰 과제 중에 하나가 관절을 끊지 않는 것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에 비해서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은 온몸에 절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관절을 손상시키지 않고 방부처리용액을 삽입하기 위해서 다리와 팔 안쪽을 따라 길고 얕게 절단을 했다. 그런 다음 말총으로 그 상처들을 꿰맸다.

 

엉덩이, 다리, 팔, 어깨에는 1cm가량의 구멍이 있었는데, 근육조직에 보존액을 주입했던 것으로 보이며 칼로 예리하게 절단되었다. 남성의 머리와 피부는 소량의 오일과 왁스가 혼입된 소지를 발랐다(바르코바 고흐만 2001).

머리의 두피는 다른 피부를 연결해 놓았는데, 도굴로 인해서 시신이 훼손되면서 오른쪽에서 왼쪽 귀로 이어 지는 부분만 남은 상태이다.

 

형질인류학적인 분석에 의하면 몽골로이드의 특징이고 키는 176cm, 체형이 매우 견고하고 탄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몸은 문신으로 덮여 있었으나 1947년에 발굴된 미라의 몸은 완벽하게 복원은 되지 못했다. 머리외에 팔과 다리만이 남아 있고 문신을 한 부분의 피부만이 남아 있다.

 

미라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피부에 방부처리를 한 엠버링 처리도 중요했지만 무덤 아래에 형성된 영구동토층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얼음에서 남성의 신체가 드러나자 말자 분해되기 시작했다. 연구와 보존을 위해서 문신이 있는 피부를 보존하기 위해서 피부만을 벗겨내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문신으로 덮여 있고 일부는 등에도 남아 있다. 왼 팔은 오른팔과는 달리 손목 약간 위에 까지 문신이 새겨져 있다(그림 1-1). 오른쪽 무릎아래에도 문신이 남아 있었으나 왼쪽 무릎 아래에는 없었다. 문신의 그림은 주로 상상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이브리드 형 동물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 미라(김재윤 편집)

 

우선 눈에 띄는 동물은 왼쪽 등의 견갑골에서 확인되는 꼬리가 길게 말려 올라간 짐승(그림 1-2,6)이다. 뒷다리 및 길게 말려 올라간 꼬리만이 남아 있고, 머리는 없지만, 꼬리 모양과 발톱 등으로 보아서 호랑이 혹은 표범 종류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팔에는 미라처리를 위해서 근육과 지방을 추출하기 위해서 사후 절단을 한 다음 힘줄과 함께 꿰매고 문신처리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 1-3). 이러한 예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팔뚝에 새겨진 문신(그림 1-1~)3은 발굽이 있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결합된 모습이다. 독수리의 머리, 새의 부리가 있고 뿔이 있는 환상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발굽이 달린 그리핀의 이미지는 표트르의 시베리아 황금 컬렉션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중국동북지방까지 널리 퍼져 있던 문양특징이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다양하게 합성된 것이 확인된다.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 오른쪽 팔(그림 1-2의 네모안)에 그려진 그리핀 가운데서 호랑이 몸체에 날개가 달린 그리핀은 같은 무덤에서 나온 말의 덮개 장식(그림 2)과도 비슷하다. 세부적인 표현은 다르지만 꼬리를 하늘로 들고 있고 발 모양,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런데 어제 필자는 파지릭 2호분 남성이 매장 당시에 손을 겹치고 있었을 것이라는 루덴코(1953)의 설명을 그대로 전한바 있다. 그 근거는 파지릭 5호분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이 죽은 후에 미라 절개 후에 문신을 처리했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위의 그림대로 팔은 양팔을 뻗은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루덴코는 이 부분을 놓친 듯 하다. 루덴코가 5호분 남성과 많은 연관을 시킨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안장덮개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얼음공주)

 

우코크 고원의 여성미라와 비교해 보면, 파지릭 2호분의 미라는 훨씬 넓은 범위에 그림이 그려졌다. 양쪽 가슴과 등에도 문양이 있으며, 무릎 아래에도 그림이 있다. 여성미라에는 가슴에는 그림이 없고, 이 남성처럼 온몸에 절개가 남지도 않다. 특히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는 복부에 절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피부 밑의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여성미라에게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등에는 가운데 척추를 따라서 작은 구멍이 2줄로 왼쪽에는 11개, 오른쪽에는 3개 있다(그림 1-8의 척추). 이 구멍은 남성이 살아생전에 의료 목적으로 치료를 한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 유적의 미라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오늘은 사진이 좀 그렇습니다....그래도 양해바랍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묻힌 무덤이다. 안타깝게도 도굴로 인해서 유물의 위치와 시신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지난번에 살펴본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는 미라였다. 파지릭 유적은 얼음공주보다도 무덤의 크기나 부장품으로 보아서 상위계급에 속한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얼음공주는 전직 샤먼이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55~60세 가량이고, 여성은 40대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필자가 공개한 유물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매장할 당시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도굴꾼의 소행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출토위치

 

남성의 목걸이는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여성의 목걸이는 잘 남아 있고, 필자가 공개한 바 있다. 남성도 목걸이를 했을 가능성이 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이 모두 목걸이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무덤의 여성과 남성은 모두 목이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특히 여성미라는 훼손이 심한데, 팔찌 등을 가져가기 위해서 오른손 뿐만 아니라 무릎관절 아래가 다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덕분에 무덤에 관이 하나인데 어떻게 시신을 안치했는지 대한 궁금증은 영원한 미스테리이다.

 

관 통째로 도굴꾼이 가져 간 것이 아니냐고? 그럴 수 없는 것이 무덤관이 놓일 장소가 없다. 파지릭 유적 뿐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예로 보아서 무덤방에 관이 2개인 경우 관은 나란히 놓인다.

 

그런데 왜 도대체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을까?

 

루덴코는 여성이나 남성의 미라에서 먼가를 얻기 위한 행위로 생각한다. 그 예로 든 것이 파지릭 5호분의 남성미라인데, 이 남성미라의 손이 오른손이 아래로 왼손은 위로 가게 해서 ‘×’모양으로 교차하고, 생식기 위에 피부를 뚫고 실로 고정시킨 것에 착안했다. 만약에 이 무덤의 미라가 같은 자세로 처리되었다면, 그리고 도굴꾼이 탐을 낸 것이 목걸이나, 팔찌 였다면?(이 유적에서 확인된 혹은 미처 못 가져나간 여성용 목걸이는 목제였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은 전투용도끼에 세 번 맞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눈썹에는 칼자국이 있고,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미세하게 찢겨져 있었다. 머리의 두피는 벗겨진 상태이다. 나머지 모발은 미라 처리시 뇌 제거를 위해서 구멍을 뚫기 전에 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두개골에는 뼈가 제거된 흔적이 1곳 이상에 남아 있다. 고대에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뼈를 제거하기도 했겠지만 파지릭 2호분의 남성 두개골은 뇌조직을 제거하고 뇌를 토양, 소나무껍질 및 낙엽송 등으로 채워서 미라로 처리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다.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미라도 그 내부가 전부 흙과 나무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두개골에 천공한 위치는 다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미라 두부(루덴코 1953)(위-남성, 아래 여성)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두부, 그림 2의 상단과 같은 미라.

 

 

2호분의 남성미라의 두부는 소련과학아카데미 군의학 치과부서에서 이바첸코(G. M. Ivashchenko)가 분석했다. X선 촬영결과 오른쪽 턱 아래의 첫 번째 어금니가 망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치아에는 낭포가 생겨서 여포성낭종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어금니의 압력 때문에 남자는 평생동안 치아가 아팠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성은 몽골로이드로 전체 얼굴높이는 146mm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요즘은 향수를 쓰지 않지만, 한때 향수를 상당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향수가 없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식탁 위에 디퓨저가 있는데, 유칼리투스 향이 약간씩 난다. 가끔 상상해본다. 집에서 나무 향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자작나무로 된 무덤방도 아늑했을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의 파지릭 유적에서 2호분을 살펴보는 중이다. 도굴 때문에 손상이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재밌는 유물들이 있다. 그리고 피곤하기도 하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빈 공간안에 다 채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를 끄는 유물이 많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도 금으로 된 유물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나무, 펠트, 가죽 등으로 제작된 유물이 많다. 무덤구덩이를 팔 때부터 쓰던 나무망치, 나무쐐기 등이 들어 있는데, 과히 나무로 칠갑을 두른 듯 하다.

 

잠시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재밌는 인연이 있는 유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콜렉션의 유물이다. 버클장식으로 길이 15.2cm, 너비 12.1cm,무게는 459.3g정도이다.

큰 나무 아래에 세 사람이 있는데, 여성은 앉아 있고, 남성 한 명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다.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의 다리 쪽에는 한 남성은 앉아 있는데 말 두 마리의 고삐를 꽉 쥐고 있다. 말은 재갈과 굴레장식이 착장되었으며 안장까지 착용한 상태이다. 말과는 반대쪽으로 말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얼굴이 매우 둥글고 독특한 머리장식을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은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버클 장식, 표트르 시베리아 콜렉션

 

그림 2. 그림 1의 상세

 

 

이 버클 장식을 보면서 이미 필자가 공개한 바 있는 2호분의 유물 가운데서 생각나는 유물은 없나요?

 

....

 

말 굴레 장식?

아직 2호분의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성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다.

 

그림 3은 파지릭 유적 2호에서 출토된 것인데, 출토된 위치는 그림 4에서 확인가능하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 출토, 머리장식. 높이 40, 직경 17.8cm(참고문헌인 영국박물관에서 나온 책에 이 유물이 파지릭 5호분의 것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이 유물은 2호분의 것이다. )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머리장식의 출토위치

 

 

 

파지릭 2호분의 머리장식은 나무, 가죽, 머리카락, 펠트, 실크를 조합한 것이다.

이 독특한 머리 장식은 머리에 닿는 부분인 기초 부분은 나무로 나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원통형이지만 귀의 위쪽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고 다시 나무를 덧대어서 둥글게 만들어 진 것이다. 현재는 오른쪽만 남아 있다. 이 나무원통의 덮개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 뒷쪽에는 1.5~2cm가량의 원형 구멍이 2개 있고, 구멍이 4개 더 있다. 그 중 두 개는 원통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로 된 아래의 받침대로부터 관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 구멍은 실크로 덮여 있었다. 뒤쪽 중앙의 구멍에는 하늘로 솟아 오르도록 설계된 땋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이 꼬리모양의 머리장식은 가운데는 사람의 머리카락이고 말의 총으로 쌓아서 힘을 받도록 만들어졌다. 말의 모는 머리카락 전부를 감찬 것은 아니고 아랫단 부분만 쌓다. 꼬리 모양 머리카락 장식은 나무머리모자의 구멍 아래서 관통시켜서 펠트로 감싼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길이가 총 38cm가량이다.

 

그림 1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과 비교했을 때 아주 비슷한 유물이어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아시다시피 2호에서 이 유물은 위치가 제자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벨트 장식에서 볼 때 여성의 머리장식이다. 그리고 이것을 쓴 여성은 삭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이 알타이 지역에서 갔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앞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도 아주 높은 머리가발 장식을 썼는데, 그녀도 삭발을 하고 그 가발 장식을 썼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혹시 머리를 매일 감을 수 없어서, 삭발을 했나? 그래도 머리스타일은 중요하니 머리장식을 썼나? 아니면 이런 높은 머리장식을 쓰기 위해서 삭발을 했나?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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