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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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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수십기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분 5개는 1920년대 그랴즈노프와 1940년대 후반에 루덴코가 발굴했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은 세계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은 시베리아의 초기 철기시대로 기원전 9~8세기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한 일종이다.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하는데, 이 문화의 명칭은 이 유적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지릭유적의 유물은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와 그 유물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 다녀갔다. 파지릭 유적의 유물은 1991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스키타이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별전은 예전 총독부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던 지금은 없어진 옛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다녀간 해에 파지릭유물특별전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만들 때 말도 함께 매장한다. 파지릭 유적의 대형고분인 1~5호에서는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얼음공주가 있었던 아크 알라하 유적이 있던 우코크 고원의 발굴 이전부터 말의 영양상태와 꽃가루 및 나무절단시기 등으로 무덤의 매장 시기를 추측했다.

 

파지릭유적에서 시도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말은 털이 아주 고운 상태로 유지되어 묻혔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무덤은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의 영양상태와 관련해서 5호분에서 재밌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9마리 말이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굴레장식 한 말이 다른 말 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 말의 상태는 겨울동안에도 잘 먹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3호분에서는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 사이에서 꽃(Scabiosa achroleuca L.)이 확인되었다. 이 식물은 여름 상반기 즉 6월말 또는 7월 초에 피는 것으로 그 때 무덤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꽃 뿐만 아니라 이끼(Hylocomium)종류도 확인되었는데, 봄-여름동안에 자라는 것이다.

 

말 뿐만 아니라 나무도 무덤만드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부분적으로 절단된 자작나무와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그림1)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껍질이 넓어지는데, 가을에는 껍질이 거의 벗겨지지 않는다. 즉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기간은 봄과 여름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는 어린 말이 매장되었는데, 송곳니로 살펴본 나이가 3살 반이라고 하며, 가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은 늦봄 혹은 여름초입부터 초가을에 만들어졌다. 재밌은 현상은 알타이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호분은 말의 매장하는 위치가 앞에서 살펴본 유적들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덤방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말의 매장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다른 유적과의 비교관찰이 필요하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단면도(왼쪽은 발굴당시, 오른쪽은 복원)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1~4호분에 매장된 말의 방향(하단 왼쪽에 2호분의 것이다.)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3마리 씩 2열로 배치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향을 달리해서 배치되었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매장되었는데, 화살표의 끝방향이 말의 두향이다. 6마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방향이다. 그러나 말이 놓인 상태가 아주 일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당시에 무덤구덩이에 죽인 말을 넣는 방법은 밧줄로 매어서 하강시켰을 터인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이마를 타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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