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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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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9'에 해당되는 글 1

  1. 2020.03.09 기원전 6~5세기 알타이 산의 무덤아래 사람이 만든 냉동고

 

알타이 산맥은 지형이 아주 복잡하고 높아서 이 지역에서 발원한 강과 강의 지류가 많이 있다. 파지릭 유적이 있는 파지릭 계곡은 연평균 기온이 낮고, 겨울이 길다. 영구동토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데 영구동토대가 알타이 전 지역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고 산과 계곡의 지형조건이 맞을 때만 만들어진다. 그런데 영구동토대가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건축물로 인해서 영구동토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파지릭 유적의 위치)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ll=50.47243177143555%2C89.10164035214848&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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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1호분은 영구동토대의 가장자리에 축조되었고, 2호분은 영구동토대의 정 중앙에 위치한다. 그러나 남쪽에 위치한 파지릭계곡의 입구에는 영구동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여름에 매우 덮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덴코는 파지릭 유적의 무덤 아래에 있는 영구동토층은 자연조건만이 아닌 일종의 '계산된 행위'로 생각했다. (계산된 행위는 필자의 표현이다. 루덴코는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앞에서 우코크 고원에서 이 문화 사람들의 무덤구조를 알아보았다. 무덤방을 크게 파고 그 아래에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는 흙으로 무덤을 채운 후 무덤의 반 이상은 돌로 채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지릭 유적도 비슷한데 무덤구덩이의 크기가 대체적으로 50㎡이고, 깊이는 4m이다.(4호는 30㎡) 무덤방은 무덤구덩이 보다 작으며(1호-17㎡, 2호-13㎡, 5호-8㎡)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 무덤방은 반 이상이 자작나무와 큰 돌로 채워져 있다. 무덤구덩이의 중심높이에서 0.9~2m는 흙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1.3~1.7m까지 돌로 덮인 구조이다.

 

러시아 전역에서 발굴은 주로 여름에 한다. 극동은 늦봄부터 시작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6월이고, 대부분 7~8월에 집중되고, 늦으면 9월까지이다. 파지릭 유적도 여름 하반기에 발굴했다고 한다.

 

영구동토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무덤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동토층의 가장 중앙에 그리고 무덤구덩이의 위치가 동토층이 시작하는 부분과 딱 맞닿아서 확인되었다. 일반적으로 영구동토층은 렌즈형태로  범위는 무덤 가장 위층의 적석(쌓은 돌)범위와 일치한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덤의 상층 가장 중심부는 무너져 내려서 고분을 채운 돌과 무덤방 아래까지 그 돌이 떨어져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영구동토층 가장 상층 부에 있는 토양도 무덤바닥에 떨어졌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하부구조, 1947년에 발굴한 탓에 유구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영구동토층'이라고 하지만 일종의 얼음층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이유는 무덤을 반 이상 채운 '돌' 때문이고, 부수적으로 자연조건이 맞아서 영구동토층이 생기게 된 것이다. 돌은 열 전도율이 매우 낮고 습기를 냉각시킨다. 우리는 지난 포스팅에서 알타이에서 무덤은 주로 늦 봄과 늦 가을에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덤을 만든 후 첫 번째 겨울에 무덤을 채운 돌과 무덤방은 얼어 붙는다. 그 다음해 여름까지는 4m나 되는 깊은 무덤 구조 덕분에 봉분 아래의 흙은 온도가 그렇게 올라가지 않는다. 돌은 열 전도율이 낮기 때문이다. 매서운 겨울이 되면 다시 더 얼어 붙고, 이런 과정의 반복하게 되면 여름이 되어도 영하로 유지된다.

 

즉 무덤 아래에 거대한 냉동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영구동토층 덕분에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나무, 펠트, 가죽, 모피, 비단과 사자의 미라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호분이다. 

인간의 염원이 만든 얼음층이라고 해야하나?

우리는 인간의 염원으로 인해서 온 세상을 전염병으로 뒤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따위의 얼음층 정도야, 기후조건이 맞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놀랍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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