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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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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가량의 우코크 고원에는 아크 알라하라고 불리는 강 줄기를 따라서 대략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들이 묻혀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아크 알라하’ 유적 시리즈를 발굴했는데, 얼음공주 무덤으로 유명한 아크 알라하 3유적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을 먼저 발굴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은 1990년, 소년의 무덤인 2호분은 1992년에 발굴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바로 옆에 붙었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무덤바닥에 네모상자모양의 나무관은 있었다. 나무관 북쪽 옆에는 따로 단을 지게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말뼈를 매장했다. 말은 발을 굽히고 배 위에 놓인 상태로 매장되었고 입에는 철제 재갈이 채워졌다. 두개골에는 투부로 찍은 흔적이 남아 있다. 2차 무덤뚜껑은 말까지 덮은 것이다.

 

피장자는 8살 아이인데, 두개골 위편에서 머리장식과 금박이 발견되었다. 소년 고깔모자 끝에 장식된 것은 소(야크 일 가능성)와 아주 유사하다. 머리장식에는 두 마리 그리핀(그림 2)이 부착되기도 했다. 두개골 오른쪽에는 황금 귀걸이(그림 3-4), 목에는 청동제 목걸이를 착용했다. 손과 무릎 사이에는 모피가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동물패턴이 남아 있는 허리띠 버클 잔편이 확인되었다. 버클에 새겨진 동물은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머리부분은 없다(그림 3-1).

모피가죽 아래에 오른쪽 허리 부근에는 청동제 칼이 목제 칼집에 들어가서 있었고, 그 옆에는 청동제 투부(그림 1-9, 그림 5)도 확인되었다. 고리트(활,화살통)은 남아 있지 않지만 8개의 화살촉(그림 1-10, 그림 3-3)이 소년의 발톱부근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 무덤관 내부

 

두개골 주변에는 항아리 모양의 토기(그림 1-3, 그림 4)가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 보다 약간 아래에는 양의 엉치뼈(그림 1-7)가 확인되었는데, 다른 유적의 사례로 보아서 목제 쟁반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제 쟁반도 보이지는 않지만 있었을 것이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소년관 고깔모자 장식의 일부. 그리핀으로 추정된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무덤 부장품. 1: 버클장식일부, 2: 청동제 고리편, 3: 화살촉, 4: 금제 귀걸이, 그 외 번호가 없는 유물은 유물설명도 없었음.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의 무덤부장품. 토기.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의 무덤 부장품. 투부(전투용 도끼)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스키타이문화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8살 남자아이의 무덤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낮다. 여성은 29.6세, 남성은 38.5세 라는 점을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우코크고원에서 발견된 사람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는 전쟁의 상처가 남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이는 이 고원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란곰 유적과는 매우 다르다(노브고르도바 1989). 우코크 고원의 주요사인은 질병, 부상, 노화도 있었을 것이고, 여성은 출산도 포함되었다.

 

같은 알타이 산맥이지만 우코크 고원보다는 해발고도가 낮아서 거주환경이 더 좋았으며 상위계급이 거주했다고 알려진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서 확인된 사람들도 병이 있었다. 파지릭 2호분의 여성에게서 치조농루염, 5호분 남성에서는 척골 관절 변형, 오른손 뼈 끝에는 골다공증도 있었다.

 

특히 관절변형이 심해서 뼈 사이가 벌어지고, 관절은 석화가 진행되어서 움직이는데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이를 분석한 바르코바와 고흐만(2001)은 오랜기간 동안 말 위에서 생활한 결과로 보았다.

 

컴퓨터 단층촬영을 한 결과 얼음공주도 왼쪽과 오른쪽의 무릎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졌다(레탸긴, 사벨로프, 2014, 그림1)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무릎. 윗 줄은 왼쪽무릎관절이고 아랫줄은 오른쪽 무릎관절인데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왼쪽무릎관절30A-좌골 경골에서 연골 아래에 경화증 및 부종발견. 30B-전방십대인자가 거의 들어남(화살표) 오른쪽무릎관절31A-많이 남은 반원상의 연골, 31B-전방십대인자 변형되고 두텁지만 모습은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음(레탸긴, 사벨로프, 2014).

 

헤로도투스 외에도 스키타이 인들에 대해서 글을 남긴 사람이 있는데, 히포크라테스이다.

『공기,물,흙에 대하여』라는 그의 저서에서 스키타이 인들이 골반뼈가 벌어지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현상은 장기간 말을 타면서 생긴 병으로 보았다(히포크라테스의 원전은 찾아보지 않았고, 폴로시막 2001의 내용을 인용했음).

 

아시겠지만, 히포크라테스도 헤로도투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히포크라테스가 좀 더 일찍 (20여년)태어났으나 헤로도투스의 출생연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물론 히포크라테스는 스키타이 인들을 비하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 사실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스키타이 인들의 출생율에 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스키타이 인들이 평균수명이 짧다는 생각도 현재 러시아학자의 관점이다. 그 당대의 다른 문화 사람들이 그 만큼 살았는지가 밝혀져야 그들의 수명이 짧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그때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인들이 가장 오래 살았는지,

그래서 이 부분은 그냥 알게 된 사실로만 여겨야지 이를 두고 그들의 수명이 짧다 길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참고문헌

노브고르도바 1989 Новгородова Э.А.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М.: Наука, 1989. 383 с. (노브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문화)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유적의 무덤에서 나온 미라에 대해서 한 번 더)..제목은 그대로 번역해서, 재미를 느껴보시라고..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레탸긴, 사벨로프, 2014, А. Ю. Летягин, А. А. Савелов Жизнь и смерть «Алтайской принцессы>>(레탸긴, 사벨로프 2014 알타이 얼음공주의 삶과 죽음)// : 29 Сен 2014 , Мой НГУ , том 57/58, №3/4 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도 알타이 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고원인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무덤의 방향은 동북-남서방향이 긴 장축방향이다. 무덤구덩이는 위는 크고, 무덤바닥으로 갈수록 작아지는데, 지상에 드러난 무덤구덩이의 크기는 3.95×2.7m, 바닥은 3.16×1.9m이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무덤 단면도

 

첫 번째 무덤방의 덮개가 드러났는데(그림 2),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이곳의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170c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통나무 12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 크기는 168×270cm이다. 무덤방의 첫 번째 뚜껑을 열자 다시 무덤 뚜껑이 있었다. 무덤의 북쪽 빈공간에는 말이 한 마리 부장되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의 무덤방 첫 번째 덮개(숫자는 높이를 의미함)

 

 

무덤바닥에는 크지 않는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얼음공주 무덤처럼 통나무관은 없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2×0.95cm인데, 높이는 상층의 압력으로 인해서 무너져 내린 상태여서 정확하지 않다. 두 번째 덮개는 7개의 통나무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림3.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의 무덤방 두 번째 덮개

 

 

무덤바닥은 5개의 납작한 나무판자를 놓은 것이다. 사자는 8살의 남자아이다. 오른쪽으로 누웠고, 무릎을 살짝 구부렸고, 머리는 동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의 무덤방 덮개가 열린 모습

 

어린아이의 무덤이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고, 같은 시기의 다른 아이 무덤(아크 알라하 5유적의 2호분)과 비교해도 큰 편이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무덤방을 설치하고 위에 돌을 쌓아서 마감하는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크기는 어른 무덤에 비해서 작다. 어린 아이의 체격이 작으니 무덤 크기도 차이가 있다. 장례식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자의 체격에 따라서 관의 호수가 정해진다는 사실을.

 

계속 포스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앞의 어른관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1호분 어른 무덤에는 통나무관이 있었지만 어린 아이 무덤에는 그런 관은 없다.

 

문득 든 생각은 이 사회에서 이들이 가장 값지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있어서 황금일까?

영화인디어나존스의 몇 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성배를 찾아서 헤매는 편이 있다. 가장 마지막에 그 성배는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도 잘마르고, 쭉바로 큰 나무는 무지 비싸다고 들었다. 가격은 모르지만.

남대문이 전소되고 복원할 때 나무 때문에 가장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러시아에도 그들의 크리스마스(유럽과는 다름)가 있는데, 집에 전나무를 들여서 꾸민다.

혹은 그렇지 못하면 전나무 나뭇가지라도 걸어두고 집안을 장식한다.

그런데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주 크다. 그 상쾌함이란 말할 수 없다.

필자도 유학 당시에 러시아 할머니의 아파트에 방 한칸 렌트해서 살았는데, 할머니가 그 즈음에 어디서 구해오셔서 걸어두셨다. 그 나무 향이 온 집에 퍼지는 경험을 했는데,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더우기 공기난방을 해서 매우 건조한데 가습기 역할도 일정 하는 것 같았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표토를 벗기고 난 후의 적석모습. 오른쪽의 점선이 있는 부분이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이 있던 곳이다.

 

러시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성아이의 무덤이다. 어린아이의 무덤은 2500년 전 스키타이문화의 한 종류인 파지릭문화의 무덤이다.

 

무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발굴을 하는데, 발굴과정은 만드는 과정을 반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덤 만들 때 가장 나중에 한 일은 무덤구덩이를 돌로 덮었다. 뒤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돌을 덮은 흙이 쌓여서 표토층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표토를 벗기고 나면, 무덤구덩이를 채운 돌이 드러난다. 그 돌은 ‘적석’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제 알았다. 그 적석은 대개 둥글게 쌓기 때문에 직경으로 크기를 알 수 있는데 11m이다(그림1) . 표토에 드러난 무덤의 높이는 40cm이다.

 

 

적석을 다 드러낸 후에 알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상층은 큰 자갈돌을 넣었고, 그 이하에는 작은 돌들로 충전되어 있고, 무덤방과 가까운 곳에는 돌과 흙을 함께 섞어서 넣었다. 적석의 가장 중심부가 큰돌로 채워졌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의 가장자리를 돌린 돌(호석)의 범위는 직경이 약 9.4m이다(그림2).

 

그런데 왜 무덤구덩이가 정확하게 중앙이 아닐까?

 

그것은 묘광을 판 흙을 한쪽에 모아두고 그 위에도 돌로 덮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 내부에 흙도 돌과 함께 섞어서 무덤구덩이 안을 채웠다.

 

재밌는? 혹은 철학적 현상이다.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인가도 싶다.

그리고 지난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분석한 결과 가발을 부친 물질에서 내장을 구성한 성분이 추출되었다고 알려드린 바 있다. 이집트 미라가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고도 했다.

똑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림2. 아크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성아이의 무덤. 중앙의 적석을 드러내고 난 후 무덤구덩이와 호석. 가운데 긴네모꼴이 무덤구덩이고 가장자리가 무덤을 두른 호석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알타이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중에 한 곳인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무덤의 바로 옆 북쪽에 바짝 붙어서 무덤이 1기 있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으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아래의 포스팅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배치도를 볼 수 있다)

 

2020/0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의 남성무덤, 아크 알라하 1유적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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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지역의 한 갈래인 파지릭문화에서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무덤은 모두 현재까지 5인만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무덤 부장품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말도 부장되었고, 허리띠와 버클도 착장했으며, 고깔모자도 썼고 고리트(활 및 화살통)도 부장되었고, 이미 소개된 동검도 부장되었다. 아이의 크기에 맞게 축소시켜서 부장되었다.

주인공은 시베리아의 남자아이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복원도

 

 

아크 알라하 1유적에 묻힌 사람들과는 친족관계로 생각되며, 1호분 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무덤은 만들어졌다.

 

적석(돌을 쌓은 둘레)의 직경은 11m이다. 앞에서 포스팅을 읽으신 분은 알겠지만 읽지 않은 분은 뭔소리인가 하실텐데.

스키타이 문화는 표토에 무덤의 가장 윗 부분이 약간씩 드러나 있다. 무덤의 구조 때문이다. '표토'라고 부르는 땅의 가장 윗부분을 벗기면, 무덤을 만들었던 흔적이 나온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무덤 구덩이를 파고 관을 넣고 돌을 쌓아서 마무리 하기 때문에 표토를 벗기면 돌의 범위가 드러난다. 고고학에서는 돌이 빼곡하게 쌓이면 ‘적석(積石)’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발굴을 하기 위해서 땅의 제일 상부에 해당하는 표토를 벗기면 적석은 금방드러난다. 그 직경이 이 무덤에는 11m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가까운 곳에 아크 알라하 5유적이 있다. 그 곳의 2호분도 아이의 무덤인데, 드어난 적석의 직경이 6m이다. 거의 2배가 차이가 난다.

 

땅을 파고 무덤을 축조하는 것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현재도 아파트을 지을 때 가장 돈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과정이 지하를 팔때라고 한다. 우리나라 토목기술은 세계제일등이 아닌가? 그래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흩어져서 살았던 유목민들이 노동력을 모으는 것은 그것을 컨트롤하는 타워의 힘이다.

(그 당시 컨트롤타워를 지배하는 것은 정보, 재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다.)

무덤을 크게 만드는 문화일수록 무덤의 크기는 계급차이로 생각하기도 한다.(필자는 좀 다른 생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드러난 무덤의 크기는 같은 아동의 무덤이라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이 더 크고 부장품도 더 많고 성인과 가깝다.

같은 문화에서 비슷한 연령의 아이 무덤이라도 무덤크기와 부장품이 차이가 있다.

그것이 발굴로 알게 된 사실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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