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수십기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분 5개는 1920년대 그랴즈노프와 1940년대 후반에 루덴코가 발굴했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은 세계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은 시베리아의 초기 철기시대로 기원전 9~8세기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한 일종이다.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하는데, 이 문화의 명칭은 이 유적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지릭유적의 유물은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와 그 유물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 다녀갔다. 파지릭 유적의 유물은 1991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스키타이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별전은 예전 총독부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던 지금은 없어진 옛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다녀간 해에 파지릭유물특별전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만들 때 말도 함께 매장한다. 파지릭 유적의 대형고분인 1~5호에서는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얼음공주가 있었던 아크 알라하 유적이 있던 우코크 고원의 발굴 이전부터 말의 영양상태와 꽃가루 및 나무절단시기 등으로 무덤의 매장 시기를 추측했다.

 

파지릭유적에서 시도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말은 털이 아주 고운 상태로 유지되어 묻혔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무덤은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의 영양상태와 관련해서 5호분에서 재밌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9마리 말이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굴레장식 한 말이 다른 말 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 말의 상태는 겨울동안에도 잘 먹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3호분에서는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 사이에서 꽃(Scabiosa achroleuca L.)이 확인되었다. 이 식물은 여름 상반기 즉 6월말 또는 7월 초에 피는 것으로 그 때 무덤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꽃 뿐만 아니라 이끼(Hylocomium)종류도 확인되었는데, 봄-여름동안에 자라는 것이다.

 

말 뿐만 아니라 나무도 무덤만드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부분적으로 절단된 자작나무와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그림1)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껍질이 넓어지는데, 가을에는 껍질이 거의 벗겨지지 않는다. 즉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기간은 봄과 여름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는 어린 말이 매장되었는데, 송곳니로 살펴본 나이가 3살 반이라고 하며, 가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은 늦봄 혹은 여름초입부터 초가을에 만들어졌다. 재밌은 현상은 알타이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호분은 말의 매장하는 위치가 앞에서 살펴본 유적들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덤방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말의 매장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다른 유적과의 비교관찰이 필요하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단면도(왼쪽은 발굴당시, 오른쪽은 복원)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1~4호분에 매장된 말의 방향(하단 왼쪽에 2호분의 것이다.)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3마리 씩 2열로 배치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향을 달리해서 배치되었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매장되었는데, 화살표의 끝방향이 말의 두향이다. 6마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방향이다. 그러나 말이 놓인 상태가 아주 일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당시에 무덤구덩이에 죽인 말을 넣는 방법은 밧줄로 매어서 하강시켰을 터인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이마를 타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영국박물관에서 있었던 특별전에 소개된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이었고, 예전 루덴코가 펴낸 책에는 거기 없는 유물도 더 있다. 물론 꼼꼼히 보시는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최근에 있었던 스키타이 문화 특별전 가운데서 가장 많은 유물이 공개되었다고 한다.

 

흑백사진이지만 이미 세상에 알려진 유물은 좀 더 많고, 어제 유물에 대한 설명도 점차 덧붙여 가도록 하겠다.

 

파지릭 2호분은 평면형태가 약간 이상하다. 정확하게 동쪽 단벽의 무덤방 길이가 짧아져서 북쪽의 긴벽을 약간 들여서 축조했다. 이 무덤방의 바닥에도 펠트 및 카페트 가 깔려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펠트는 무덤바닥 뿐만 아니라 벽에도 걸려있었는데, 북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에도 달려 있었다.

기억하시겠지만,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 무덤에서도 벽에 펠트(펠트는 양모를 고열에서 응모해서 만든 천이다. 일종의 양모로 만든 부직포이다. 양모로 짠 천과는 다르다)를 걸어 두었다. 그리고 알타이의 원주민들도 집에서 벽에도 펠트를 걸어둔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한 적이 있다.

 

벽에 걸어둔 펠트는 나무못으로 고정되었다. 길이는 8~15cm로 못대가리의 윗 부분이 볼록튀어나온 것과 거의 편평하지만 턱이 있어서 예리하게 칼로 잘라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벽에 달았던 펠트장식은 청동 못으로도 고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못은 납작한 못대가리아래에 막대기 모양으로 한쪽 끝이 뾰족하다. 길이는 9.5~11.6cm가량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나무못

 

그림 2. 파지릭 2호분, 청동못

 

벽에는 꽃과 연봉오리 모양의 문양의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여서 만든 펠트제 장식이 확인되었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연꽃 모티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 3. 파지릭 2호분의 벽걸이 장식. 펠트제. 길이 47cm, 너비 14cm

 

그림 4. 그림 3을 좀 더 가까이 찍은 사진

 

펠트제 벽걸이 장식 외에도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서 잔 양모천으로 된 유적의 2호분에서는 양모로 짠 천으로 깔개가 확인되었다. 양모의 단위는 너비 42cm가 되도록 짠 것이다. 센티미터 당 30실의 비율로 짰다. 무덤방의 가장 바닥에는 펠트를 깔고 그 위를 이 카펫으로 덮었으며 시신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지릭 유적의 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확인되었고, 바샤다르 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있다.

 

그림 5. 파지릭 2호분, 높이 120cm, 너비 228cm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그냥 검은색 펠트를 걸어두었다고 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는 벽의 가장 상단에는 이런 장식까지 덧붙였다. 화려한 무덤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서 통나무관 1개가 확인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파서 만들었는데, 뚜껑까지 잘 제작된 것이었다. 무덤방은 나무방이다. 대부분 낙엽수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무덤방(그림 3)의 모양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각형이 정확하게 아니다.

북쪽벽이 미세하게 조정되었다. 6cm정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모서리에는 위에서부터 4번째와 5섯번째의 나무에 납작한 나무패드(그림1)를 덧대어서 무덤방의 벽을 고정(그림 2)한 것이 확인되었다. 나무패드는 못대가리가 없는 나무와 구리못으로 고정되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무덤방의 북쪽벽을 고정했던 나무패드

 

그림 2. 파지릭 2호분의 북과 동벽의 모서리에 나무패드(그림1)을 덧댄 모습.

 

파지릭 유적에서 큰 고분은 모두 도굴구덩이가 있다. 루덴코는 처음에 도굴이 크게 영향을 못미쳤다고 했지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유물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2호분인데, 얼음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도굴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음을 걷어내고 나서 무덤방에서 많은 유물이 확인되었고, 이를 수습한 후 그 아래의 무덤바닥에서도 유물의 위치가 그대로인 것이 나타났다. 무덤방바닥의 유물이 제자리라는 사실은 후대에 발굴에서도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유물이 확인됨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림 3.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무덤방바닥에서 확인된 유물, 1. 통나무관, 2-석제 그릇(조명과 관련됨), 3-연기흡입용 텐트부속품, 4-두번째 연기 흡입용 텐트부속품, 5-다리가 달린 된 향로, 6-받침이 달린 청동향로, 7-가죽, 8-남성용 의복일부, 9-호랑이 다리가 달린 목제 상, 10-다른 모양의 목제 상에 달렸던 다리, 11,12- 목제 상 다리, 13-목기, 14-토제 항아리 모양의 액체용기, 15-토제 액체용기(14번과 모양이 다름), 16-용기 받침대.

 

그러나 필자가 먼저 공개한 얼음을 걷어낸 후의 무덤방의 유물은 제자리가 아닌 유물이 많은 것을 루덴코도 시인했고, 무덤방 바닥의 유물만 제자리였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통나무관에는

 

그래도 이렇게 남겨진 유물 덕분에 파지릭문화의 장례식에 어떤 물건이 사용되었는지, 혹은 살아았을 때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무덤방 바닥에서는 다리가 4개 달린 목제 상이 발견되었다. 통나무관의 동쪽에 놓여 있었는데, 양고기와 말고기를 놓았을 것이다. 북쪽벽에 가까운 테이블 근처에는 액체를 담는 토기(가 확인되었다. 목제 상과 토기사이에는 목제 그릇이 나무방바닥에 서 있었다. 토기와 목제그릇은 유목민들이 마시는 우유와 우유를 발효한 음식을 담았을 것이다. 매장당시에 일종의 치즈를 공양했던 것이 5호분에서 확인되었는데, 2호분에서는 무덤방안은 아니지만 치즈가 확인되었다. 2호분에서는 연기 흡입용 청동솥과 이를 넣는 텐트가 확인되었다. 텐트는 6개의 막대기로 만들어진 골격이다. 두 세트가 확인되었다(한 세트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그 주변에서 가죽주머니안에 대마씨가 가득 든 채로 확인되었다. 2호분에서만 출토된 석제 그릇도 통나무관의 남쪽에서 확인되었다. 하프와 같은 현악기가 담긴 가죽주머니가 팽계진 채 확인되었다.

 

그림 4.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머리

 

그림 5.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일부

 

그림 6.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일부 2

 

그림 7. 파지릭 2호분 출토 목제 목걸이

 

그림 8.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카락

 

그림9. 파지릭 2호분 출토 모자장식

 

그림 10.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용부츠 일부

 

그림 11. 파지릭 2호분 출토 여성용 타이즈  일부

 

그림12.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장식

 

그림 13. 파지릭 2호분 출토 여성용 머리장식

 

그림 14.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꼭대기 장식

 

그림 15. 파지릭 2호분 출토 모피가죽(위), 가죽지갑(하)

 

그림 16. 파지릭 2호분 출토 귀걸이

 

그림 17. 파지릭 2호분 출토 은제 거울

 

그림 18. 파지릭 2호분 출토 대마씨(위)와 대마씨가 담긴 가죽주머니(아래) 

 

그림 19. 파지릭 2호분, 연기흡입용 텐트의 골대와 청동용기

 

그림 20. 파지릭 2호분, 목침

 

그림 21. 파지릭 2호분, 목제 상(위), 상다리 일부(하)

 

그림 22. 파지릭 2호분, 용기받침

 

그림 23. 파지릭 2호분, 용기받침과 목제그릇

 

그림 24. 파지릭 2호분, 항아리모양의 액체용기, 토제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에서 파지릭계곡에 위치한 파지릭유적의 무덤 중에서 2호를 집중살피고 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문화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좀 더 좁은 개념으로는 스키타이문화가운데서도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유적이다. 2500년 전 유적인데, 이때 동아시아에서 알려진 문화는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막바지, 한국도 현재 연구된 바로는 청동기시대이다.

 

어제 2호분에서 얼음을 처음 걷어낸 무덤방의 내부를 잠시 공개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무덤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항상 말의 매장된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우코크 고원의 유적을 예로 들어서...

 

2호분은 다른 유적 혹은 이 유적의 다른 무덤과는 달리 말이 매장된 위치가 무덤 구덩이에서 매우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포스팅에서 무덤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2020/03/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 2500년 전 알타이 산 무덤 속의 이것은 무엇일까?

 

2500년 전 알타이 산 무덤 속의 이것은 무엇일까?

그림 1. 그림 2. 2500년 전 알타이 산에서도 파지릭 계곡에는 파지릭문화로 불리던 유적이 확인되었다. 파지릭문화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는 스키타이 문화(권)‘으로도 불린다. 유적에서는 대형무덤 5개가..

eastsearoad.tistory.com

 

말 무덤이 확인된 곳은 무덤의 표토층에서 0.7m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말은 세 마리가 매장되었고 향나무와 낙엽송의 가지로 덮은 채로 확인되었다. 말을 묻은 후, 무덤의 가장 윗부분은 적은 양의 흙과 함께 대량의 통나무와 큰 돌로 채워졌다.

 

특히 2호분은 1호분과 함께 무덤방의 위쪽으로 통나무가 9층이 높여 있었고, 말을 매장한 후에 2층을 더 쌓아 올렸다. 통나무의 수는 모두 240개였다. 통나무의 길이는 6.5~6.9m로 무덤구덩이의 크기보다 작아서 8개의 통나무를 동서방향으로 2층 놓아서 마무리 했다.

 

무덤구덩이를 채운 흙은 구덩이를 파낼 때 사용했던 토양으로 채워져 있으며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이었다. 흙 위에는 돌을 쌓았다. 붉은 석회암 사암으로 계곡 경사면에서 확인되는 돌이다. 화강암도 파지릭계곡의 경사면에서 수집되는 것이다.

무덤구덩이는 보통 무덤 봉분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파지릭 유적에서도 확인되는데, 3호분과 4호분이 그렇다.

 

통나무로 만든 무덤방에는 대형 통나무를 파서 만든 통나무관이 있다. 2호분에는 길이가 4.2m, 너비가 87~95cm, 두께는 72cm가량의 통나무관이 1개 확인되었다.(남녀 미라가 확인되지만, 관은 1개이다)

통나무 관의 외부는 매끈하지만, 내부는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다. 배닥은 편평하고, 양쪽 끝에는 한 쌍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통나무관을 옮길 때 두꺼운 밧줄을 끼워서 옮겼을 가능성이 있고, 운반할 때도 사용했을 것이다.  통나무 관의 측벽 두께는 3~4cm, 바닥은 9~13cm, 양쪽 끝벽은 25~30cm인데, 두향쪽이 넓다.

 

관의 두껑은 낙엽송의 줄기로 제작되었는데, 2호분은 거의 파손되어서 잘 알 수 없다(그림 4). 1호분의 것을 참고로 하면(그림 1),  높이는 22~30cm이고, 두께는 3~4cm에 불과하며 좀 더 크다. 관보다 훨씬 가벼우며 전체적으로 아치형모양이다. 덮개의 크기는 관 보다는 약간 커서 하부의 관을 완전히 덮도록 만들어졌다.

 

그림 1. 2호분의 통나무관 상태는 좋지 않아서, 현재 남아 있는 통나무관은 1호관이다. 에르미타주에 보관 중이다. 길이 3.71 m, 너비 65-78cm, 높이 58-60cm이다. 

 

2호분에서 확인된 통나무관의 가장자리 측면에는 사슴모양의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화려한 뿔로 보아서 북쪽 사슴, 즉 순록이다. 관의 양쪽 측면에 아주 작은 못으로 시계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삼격형 구멍이 뚫려 있다. 무덤방의 바닥은 두꺼운 검은색 펠트로 덮여 있었다.

 

그림 2. 2호분의 통나무관 측면에 부착되었던 사슴(순록)모양 아플리케장식(흑백과 같은 유물)

 

그림 3. 야외에서 유물 수습해서 보존처리 하는 장면(1), 하단의 그림은 5호분에서 확인된 펠트를 복원하는 중이다. 1948년.

 

 

그림 4는 무덤방의 내부를 공개한 것이다. 통나무관의 위치 뿐만 아니라 각종 유물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번호는 유물의 위치이고, 유물의 종류는 아래에 표시해놓았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그림4. 파지릭 2호분의 무덤내부. 얼음층 아래를 걷어낸 후 처음 모습.

 

1.통나무관 및 그 의 부자제, 2-사슴가죽조각, 3-첫 번째 연기흡입용텐트 막대기, 4-두번째 연기흡입용 텐트의 막대기, 5-남성미라의 시신 일부, 6-여성시신의 일부, 7-여성신발, 8-여성 머리장식 일부, 9-수닭장식의 붙은 여성머리장식, 10-9번 머리장신에 붙어 있던 검은색 모피의 일부, 11-목걸이 일부, 12-금제, 귀걸이에 달던 펜던트, 13-허리띠 일부, 14-은제 허리띠 버클, 15-은제, 말모양 치레걸이, 16-말모양 치레걸이로 벨트, 17-은제 거울이 담긴 가죽주머니, 18-청동거울이 담긴 모피주머니, 19-고양이장식이 있는 모피 주머니, 20-대마씨가 담긴 가죽 주머니, 21-그리핀 부리모양의 사슴머리장식, 22-같은 장식인데, 약간 모양이 다른 것, 23,24-목제로 제작된 그리핀 머리, 25-목제 사슴머리, 26-계단모양의 목제뚜껑, 27-목침, 28-목침을 담는 통, 29-액체용기를 담는 토기편, 30-나무잔에 달렸던 뿔 손잡이, 31-양의 뿔, 32-하프(악기)일부, 33-철제 칼, 34-목제 칼, 35-뿔로 만든 화살촉, 36-뿔 망치, 37-수술이 달린 양모로 짠 수건, 38-여성용 타이즈, 39-남성용 타이즈, 40-남성용 옷(일종의 가운), 41-여성용 옷, 42-구리제 도장모양의 장신구, 43-소매가 있는 여성용 의복, 44-담비제 모피, 45-검은색 말(종마) 모피코트, 46- 붉은색 모피 옷, 47-갈색 모피 가죽에 붙었던 구슬장식, 48-붉고 갈색인 천으로 만든 옷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그림 2.

 

2500년 전 알타이 산에서도 파지릭 계곡에는 파지릭문화로 불리던 유적이 확인되었다. 파지릭문화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는 스키타이 문화(권)‘으로도 불린다. 유적에서는 대형무덤 5개가 1940년대에 발굴되었다.

 

무덤을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무덤을 흙과 돌로 채운 공간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의례와 관련된 부서진 토기 등은 종종 다른 문화에서도 출토된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무덤구덩이를 발굴하는 동안 내내 뭔가를 기대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무덤방 바깥에는 주로 말이 매장된 것이 확인되기도 했던 것을 우리는 파지릭 유적 보다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우코크 고원에서 보았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에서는 흥미로운 것이 당시에 무덤을 축조할 때 사용했던 도구 들이 무덤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무덤방 위에서 나무로 만든 삽도 있었다.

2호분에서는 나무로 만든 무덤방 부근만 아니라 무덤구덩이 여러 곳에서 목제 쐐기(그림 1)와 망치(그림 2)가 발견되었다. 나무쐐기(그림1)는 길이가 30~73cm가량으로, 머리부분은 타원형이었을 테지만 도끼로 내려쳐서 끝은 변형되었고, 끝의 뾰족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2호에서는 나무망치(그림2)는 낙엽수림의 줄기로 제작되었는데, 나무의 뿌리부분이 이용되기도 했다. 전체길이는 46~70cm이고, 손잡이의 직경은 12cm, 손잡이 길이는 25cm가량이다. 매우 무겁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흔적이 타격흔으로 남아 있다.

 

이 두 유물은 특히 2호분에서 대량의 나무쇄기와 망치가 발견되었다. 2호분에는 자갈과 흙을 섞어서 무덤구덩이를 충전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3. 4호분과 무덤을 채운 흙이 모래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차후에 다시 설명하겠다.)

 

 

그림3.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의 자작나무 무덤방, 왼쪽은 발굴되었을 당시를 설명하고, 오른쪽은 원래 무덤이 축조되었을 당시를 복원한 모습이다.

 

2호의 무덤구조 중에 다른 호수의 무덤과 다른 점은 가장 아래 바닥이다.

나무로 만든 무덤방 아래에 돌을 깨서 두께 10cm정도로 깔고 그 위에 검은 흙으로 덮고(5cm)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은 2중으로 되어 있는데, 2호는 이중 나무방 사이의 공간이 비어 있다. 무덤방의 상부는 가장 위 무덤방 위에는 많은 자작나무로 채웠고, 외부 무덤방 천장은 두터운 자작나무로 덮은 다음 그 안에는 자작나무껍질을 깔고, 마지막으로 관목(Potentilla dasiphora fruticosa L. Rybd.)으로 덮었다.

 

안의 무덤방은 높이 1.53m, 평면형태는 3.65×4.92m이다. 외부의 무덤방은 높이 2.1m, 평면형태는 4.15×5.7m이다. 내부무덤방의 바닥은 나무판으로 제작되었는데 두께 5~6cm가량 너비 12~24cm의 17개로 구성되었다. 무덤방의 가장자리에는 가로 8개(북과 남쪽), 세로 7개(동과 서쪽)로 짜여있고, 천장은 20개로 구성되었다. 외부 무덤방에는 천장은 28개의 통나무이고, 벽은 남쪽과 북쪽은 10개의 통나무로 짜여있다. 동과 서쪽의 개수는 표시되지 않았다.

 

그림 4.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천장을 열고 본 무덤내부. 유물을 아직 수습하지 않은 상태.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6 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