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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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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서 환단고기 관련 그리고 그것의 밑바탕이 되는 홍산문화 관련한 내용을 플러그인하는 기능이 막혔다.

실험삼아서, 다른 유투브 동영상은 플러그인이 되는데, 아마도 일부러 막은것이 아닐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미 퍼 놓은 필자의 글에 있는 것을 새로 인용해야 한다.

 

2019/03/14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단고기와 고고학] - 환단고기 역주본과 유투브

 

 

환단고기 역주본과 유투브

오늘 기사를 보다가 유투브의 파워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국내1위 검색포탈사이트 네이버와 거의 비슷하다.(관련기사링크) https://news.v.daum.net/v/20190314175821694 http://www.dt.co.kr/contents...

eastsearoad.tistory.com

위의 유투브에서 2분이 넘어가면 홍산문화에서 용이 확인되어 중국에서 공작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사실과 달라서 알린다.

1. 사해유적은 홍산문화의 유적이 아니라, 홍산문화보다 이전 시기의 흥륭와문화의 유적이다.

 흥륭와 문화는 대략 7500년 전 부터 시작되는데, 가장 이른 절대연대는 흥륭와유적에서 확인된다.

 그렇지만 사해유적은 흥륭와문화의 유적으로 이 유적에서 알려진 절대연대는 1개인데, 대략 7000년 전이다. 

 (필자의 예전 글들이 플러그인이 안되네요..최근 글들은 되는데, 필자의 글 카테고리에서 환단고기비판에서 요서지역 흥륭와문화라고 된 곳을 찾아서 들어가시면됩니다.)  

 

홍산문화는 6000년 전 부터 시작된다.(중국에서는 6500년 전 부터 시작된다고 하나 이는 신뢰할 수 없다. 이는 필자가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2. 사해유적에서 확인된 석소룡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주장이다.

 아래는 사해유적의 유적 평면도인데, 가운데 중앙에 용형퇴석이라고 적혀있는 곳을 이야기 한다.

 사해유적은 수십기의 집터 중앙에 무덤이 있고, 그 옆에 이 집석유구가 확인되었다.

 

사해유적평면도. 중앙에 있는 고불거리는 돌의 집석이 용이라고 주장함. F는 주거지, 집터, M은 무덤, H는 회괭이다. 중국 보고서에는 모두 이런 약칭으로 표시한다.

 

 이를 두고 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용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용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중국의 측의 내용이다. 중국인의 상상력 정도 된다.

 

3. 그럼 왜 중국에서 용이라고 주장하는가?

  이것은 홍산문화를 정치화 하려는 목적과 일맥상통한다.

 우하량 1지점의 알 수 없는 유구를 여신묘로 주장하려는 내용과 같다.

 

2019/03/06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단고기와 고고학] - 우하량 유적의 1지점을 왜 여신묘라고 주장했을까?

 

 

 즉 중국동북지방 중에서 적봉일대에 위치한 신석기문화 중 홍산문화 보다 이전 부터 용이 확인되며, 

 이를 홍산문화와 함께 정치화 하려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는 사해유적의 무덤옆의 집석유구를 용으로 해석한 중국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한국역사라고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그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포스팅을 계속하는 이유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19. 3. 30. 21:1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앞서 영남에 주로 분포하는 동심원문 암각화를 바탕으로 영남이 환동해문화권과 교류했던 것으로 보았다.

(새로 바뀐 글쓰기....전 너무 별로인듯....플러그인 시도하면 10번중 한번 되는 것 같음)

 

작년에 필자가 발표한 원고를 정리해서 논문투고 정리하던 중,  그곳에서 표가 잘못 올려진 것을 발견했다.

 

동심원문암각화의 유적은 대부분 영남 내륙에 위치한다(지도참고). 6500~6000년 전은 아무르강 하류와 동해안, 6000~5800년 전은 연해주와 동해안이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이 연대를 영남 동심원문암각화연대의 제작시기로 바로 연결시키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앞서 제시된 연대는 토기를 근거로 한 것인데, 일상생활용품이다. 암각화는 정신적인 영역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1. 사카치알리안, 2. 세레미체보, 3. 쌍탑, 4. 지초리, 5. 영천보성리, 6. 포항 대련리, 7. 대구 진천동, 8. 대구 천내리, 9.고령 앙전동, 10. 고령 안화리, 11. 밀양 안인리, 12, 함안 도항리, 13. 동래 복천동(김재윤 2019)

 

영남에 그려진 동심원문암각화는 남해안신석기시대인이 그린 것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환동해문화권사람들과 정신적인 교감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최소한 영남에서 특히 내륙에 유적이 생기는 시점 이후에 암각화도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영남의 내륙에 마을단위의 유적이 생기는 시점은 청도 오진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5000년 전 이후이며, 동심원문 암각화도 이후일 수 있다(표1).

표1. 시간에 따른 환동해문화권의 범위와 교류권 김재윤 2019

 

*게재되면 완성된원고는 첨부할 예정입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왜 '과학'아카데미일까?

필자에겐 별로 이상하지 않지만, 번역된 글로보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상할 것이다.

역사학박사라면서, 왠 과학아카데미?

 

과학은 ‘наук’ .. science로 번역된다.

우리는 인문학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인문과학이다.

인문학과 예술의 아리송한 경계를 구분한 것인데

자연과학,물리과학,인문과학 등등

 

러시아 인문과학은 매우 논리적이다.

나도 스스로를 논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맞다.

이런 건 사전지식에 없었는데,,,,

그냥 운이 좋았다라는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강한 이끌림과 목적이었다.

 

김 재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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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필자의 이력은 좀 희한하고, 특이하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것. 러시아과학원 혹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어릴 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냥 웬지 끌리고,,, 훨씬 미국보다 있어보였다.

왜냐하면 차이코프스키, 칸딘스키 같은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와 화가의 나라니깐.

미국은 돈만 많치......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6명인데, 내가 다섯 번째이고, 앞의 네분은 경희대학교, 목포대학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에서 재직중이시다. 나머지 한명은 학위는 했다는 걸로 아나 전혀 학계에서 활동이 없다. 또 한 두어명 지금 러시아에서 학위준비중이라는 것도 안다. 활동하는 다섯명 중 한분 빼고는 모두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출신이다.

 

오늘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 대해서 약간 소개하고자 한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는 대학의 상위기관이다.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북한사회과학원은 모두 러시아과학아카데미를 모방한 것이다.)

학부과정은 없고, 대학원 과정만 있으며 전문가 양성기관이다.

러시아가 매우 큼으로 우랄분소, 시베리아분소, 극동분소로 나눠져 있다. 원래 극동분소는 시베리아에 포함되었는데, 해양학과 태평양의 중요성 때문에 극동분소를 나눴다.

물론 본원은 모스크바에 있다.

가장 큰 곳은 시베리아분소인데, 노보시베리스크라고 하는 도시에 있다. 이 도시안에 아카뎀가라독이라고 하는 일종의 과학원도시인데, 그 안에 수백개의 연구소가 있고, 거기에 러시아첨단과학이라고 하는 모든 기술이 집중된 곳이다. 우주기술, 핵물리학 기술 등등

극동분소는 그에 비해서 작은데, 해양학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역사 혹은 고고학연구소는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이건 러시아시험에 그대로 녹아 있는데,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개의 국가시험을 통과해야한다. 그런데 본인이 무엇을 전공하든 반드시 쳐야되는 시험이 역사철학이다. 나머지 두 개는 언어와 전공시험이다. 그래서 역사전공자나 고고학전공자는 어떤 연구분야 보다 힘이 있었고, 그 연구소의 소장은 박사 수만명이 살고 있는 아카뎀가라독을 죄지우지 한다.

이건 아마 공산주의 특유의 교육시스템 때문일 것이다.(누군가 이 블로그 보는 사람중에 나를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공산국가의 교육은 내가 볼 때 꽤 좋다. 적어도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고, 우열반을 나누고, 학교를 서열화 시키지 않는다. 모두가 공평하고, 그리고 인간적이다...한때 우리나라에 국사와 세계사를 수능에서 제외한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나라가 미쳤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땐 나라가 없었지? 아마?)

 

우리시각에서 보면 모스크바에서 있는 러시아과학원이 제일 좋다고 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냥 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이다. 그 중에서 어디 소속인 것이지.

대학의 상위기관이며, 연구자 중에 좀 못한 사람이 대학교수로 가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과학원의 선임연구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명예로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러시아도 예전 같지는 않아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가 많이 손질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안타깝다. 러시아의 보석인데.

그 잘난 미국식 때문에 대학이 더 중심이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한다고 들 한다.(예전 소련때는 3D업종이 의사, 대학교수였다.)

그리고 역사학이나 고고학도 전공을 많이 안하고, 돈되는 학문에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사람이 몰린다 인기가 없다. 이런 말은 돈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역사학과 고고학 연구비를 지원을 많이 안한다는 그런 말이다.

 

 

학부부터 유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러시아대학으로 가면 된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대학이 있다.

물론 러시아에는 모두 국립이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거점국립대학 같은 곳이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러시아연방극동대학(https://www.dvfu.ru/)이다. 영어로도 사이트를 운영한다.

만약에 학부부터 유학을 한다면 꼭 거점대학으로 가는 것이 좋다. 그 외는 너무 이상한 학교도 현재 러시아에 넘쳐난다. 거점대학이 매우 유서도 깊다. 극동연방대학도 100년이 넘은 걸로 안다.

우리나라는 너무 투자를 안한다. 극동연방대학은 일본에서 아주 공을 들이고 있어서, 친일성향은 깊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모스크바대학 아니면 여기라고 생각된다. 혹은 노보시베리스크연방대학.

 

언어는 가서 배울 것을 권한다.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선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 머리를 한번 개조한다는 표현이 맞다.

우리나라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건, 아마도 일본문법책 베낀거를 설명하는 수업듣는 것일텐데. 그거 아무소용없다.

필자도 그냥 알파벳 정도만 알고 가서 배웠다. 러시아연방극동대학에서 어학코스를 하는 쉬콜라가 있는데 잘가르친다. 필자도 그곳에서 배웠다. 아마 사이트에서 확인가능할 것이다.

약간 나의 자랑을 하자면, 그 쉬콜라에서 한 4달 정도 공부하고,

필자는 러시아과학원의 여름 발굴을 따라갔다가 다시 등록했다.

내가 듣던 반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서 다시 시험쳐서 레벨테스트 해서 들어가야 했다.

그 결과 같은 레벨로 측정된 사람은 모두 4명인가였다. 일본인 1사람-일본에서 러시아어4년 전공했고, 몇 달째 어학연구수중, 한국인 1사람-수녀였는데, 2년 넘게 러시아에서 어학연수중. 그리고 한명도 몇 년 째라고 했던거 같은데. 난 러시아어 배우기 시작한지 4달째였고, 발굴2달갔다온 게 다 였다. 그런데 말은 내가 제일 잘했다.(재수없으시겠지만..)


 

그래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건 한국에서 안된다(물론 개개인이 다르니 이렇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어는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이고, 영어와도 매우 다르다.

 그런데 러시아어를 알면, 아주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세상의 반 넘는 땅이 러시아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중앙아시아에서도 학위를 따려면 러시아어를 해야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독립하면서 자국언어를 쓰기는 하지만, 자국언어로 소련당시의 연구된 자료들이 모두 치환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언어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요즘 젊은중앙아시아사람들은 러시아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앞으로 올 미래를 생각하면, 러시아어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면, 러시아에서 어학코스를 권한다. 본인이 원하는 도시에서.

러시아의 낭만과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상트페체르부르그를 권하고, 가까운 곳은 블라디보스톡, 시끌벅쩍하고 난 수도가 아니면 싫어 하시는 분은 모스크바에 가면된다. 시베리아에는 노보시베리스크가 있다.

나라면? 상트페체르부르그를 갈 것이다


김재윤


*그리고 첨언하면, 문법책 보고싶으시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에서 출판된 것을 구해 보시기 바란다. 그게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아마 한국어로 된 러시아어문법책은

일본책 베낀걸 재판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나라말과 러시아말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영어와 러시아어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그 차이가 우리나라와 러시아어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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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작년에 필자가 진짜 재밌게 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나 빼고도 다 재밌게 보셨겠지만.

그런데 여주인공이 처음배웠다는 영어단어

Gun, Glory and sad endding이었다. 오늘 제목은 그걸 살짝 바꾼 것이다

얼굴 가리고 총들고 지붕 위에서 적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그리고 명예...

주인공이 들고 있던 총의 옛 모습이 검이었을 테니깐. 우리가 살고 있는 배경이 그 때 그 슬픈시절이 아니니, 새드엔딩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오늘 약간 풀어놓을 것은 인류사 최초의 무기이다.


 

사실 요즘 필자는 환단고기 때문에 홍산문화를 난도질하는 중이다. 첫걸음은 토기인데,,왜냐하면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편년문제 때문이다. 편년은 그냥 시간 혹은 기간 쪼개기로 생각하면 된다. 이 부분은 논문은 두어편 있어야 할 듯한데,, 한편은 곧 공개될테고, 다른 한편은 시베리아 자료가 약간 부족해서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좀 많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유물이 아래의 사진이다.


 사진1.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조합식석인검(적봉박물관에서 필자촬영)


조합식석인검, 석인창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석인골병도(石刃骨柄刀)라고 한다.

주로 나무나 뼈를 갈고 홈을 파서 석인(石刃)을 끼워넣은 것이다.

석인이라는 용어는 어려워 보이나, 영어로 하면 blade인데, blade는 그냥 쓸 수 없어서 어딘가에 끼워서 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늘 설명한다. 석기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된 것은 컴퓨터가 방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크기로 변한 것과 같은 거라고 설명하면, 모두 잘 이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과 만들기 적합한 재료, 그리고 이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은 후기구석기시대 부터라고..(이 부분은 논점에서 벗어남으로 다음에 설명한다.)


이 유물이 중국요서지역에서 보이는 것은 홍산문화부터이다.

그런데 이 유물은 시베리아의 것이다.

시베리아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문화까지, 청동검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지속된다. 또 이 유물이 주로 분포하는 바이칼 유역의 아래 동네인 몽골, 중국신강, 카자흐스탄 까지 5000년 경에 출토된다. 아마도 알타이 산맥과 붙어 있는 천산산맥을 따라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그림 2. 후기구석기시대(1~4)와 순동시대(5~7)의 조합식검과 창




그림 3.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조합식 석인검


필자는 이 유물이 언제 어디서 없어지고, 생겼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동쪽의 끝은 중국요서지역 홍산문화(6000~4500년 전) 및 그 이후의 소하연문화(4500~3500년 전)이다. 제대로 알려면 홍산문화의 언제적부터 이 유물이 나오는지도 살펴야 하고, 어떤 상황(유적)에서 출토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유물이 들어가는 서쪽과 남쪽도 궁금한데,,,..확실한건 시베리아에서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청동검 등장까지 사용된다. 그리고 정확하게 청동검과 이 유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인류사 최초의 무기라고 생각된다. 혹은 무기형태...무기에 사회적역할을 부여하면 후기구석기시대무기는 약간 어불성설이지만, 그런데 무기의 모습을 띤 것은 맞다.

 그래서 필자는 이미 구석기시대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의 첫 모습은 다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요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이 유물의 기원 찾기 때문에 시베리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영의 Great game 이전에 시베리아에 포함되었던 현재의 카자흐스탄에도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이는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진 배경과 관련 있는데,,,아마 다른분들이 많이 포스팅했을 가능성이 많다)


유라시아를 내가 통째로 다 할 수는 없으니, 지역도 한정시키고, 주제도 몇 개로 줄일려고 한다. 시베리아는 중앙유라시아에 포함된다. 서울대 김호동교수는 중앙유라시아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보고 있다(김호동,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 이 유물 때문에 시베리아 후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포스팅하고,,,,원고도 적어야 한다.


필자의 수업자료에서..(중앙유라시아로 규정된 부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바이칼 유역에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를 통틀어 토기가 많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토기는 확인된다.

 

바닥이 뾰족하거나 약간 둥그스럼한 토기가 출토된다.

토기 문양은 망상문(그물문양이라는)이라고 불린다.

망상문이라 불리는 문양이 찍힌 토기는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에 전 시기에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몽골, 카자흐스탄 등지에도 있다.

 

키토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키토이 유적에서 출토된 사진이다.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그림1). 

  


그림 1. 키토이 유적 출토 토기


그림 2는 샤만카 2 라고 하는 바이칼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다.


그림 2. 샤먄카 2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62호 출토, 

В.И. Базалийский 2012, ПОГРЕБАЛЬНЫЕ КОМПЛЕКСЫ ЭПОХИ ПОЗДНЕГО МЕЗОЛИТА – НЕОЛИТА БАЙКАЛЬСКОЙ СИБИРИ: ТРАДИЦИИ ПОГРЕБЕНИЙ, АБСОЛЮТНЫЙ ВОЗРАСТ

인용)


 역시 망상문이다. 그러나 그물문양을 찍었다기 보다는 나무판에 줄을 감아서 만든 도구로 두드렸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런 문양을 타날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이칼 유역의 망상문은 그냥 그렇게 중앙아시아에도 알려져 있음으로 그 용어를 씌는 것이 혼돈을 막을 수 있다.

 

바이칼 유역에는 토기가 많지 않다. 동아시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토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바이칼 유역 이남, 몽골, 중국신강, 카자흐스탄)과 중간 정도의 특징일 수 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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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코보 문화 1  (0) 2019.05.30
posted by 김재윤23

 

오늘 기사를 잠시 보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호미와 관련된 내용인데, 아마존에서 대박났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보자마자 완전 어이없었다.(기사의 수준이나 기사를 낸 신문사나....)


https://news.v.daum.net/v/20190217134610706

 

왜냐하면......

호미는 우리나라서는 밭을 갈지만,,,,,,,

고고학 유적 발굴할 때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중국은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발굴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발굴도 여러 과정이 있지만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벗길 때 주로 사용된다.

 

호미는 어떻게 사용하나?

그렇다. 호미는 주로 쪼그려 앉아서 사용한다.

?

자루가 짧기 때문이다. 자루에 붙은 앞부분이 작아서 밭고랑과 같이 좁은 사이를 팔 때 요긴하게 쓰이지만, 자루를 길게 만들려면 앞이 커져야 하는데 그럼 호미와는 완전히 다른 도구다.

 

그런데 호미는 나에게 러시아발굴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학당시에 한러 공동발굴에 종종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미를 대거 들고 가서 발굴에 참여했다.

러시아사람들은 놀랬다


너무 편리하고,,,,빨리 일이 되고, 문화층도 반듯하게 닦여서...

그냥 그네들이 보기에는 발굴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호미라는 존재가 없었고, 발굴할 때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종종 중국인들이 밭에서 사용하는 건 봤다고 한다.


없을 까?

그들은 쪼그려 앉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서양인들 대부분이 그렇다.

왜냐하면 호미는 다른 도구에 비해서 자루가 짧기 때문에 조그려 앉아서만 사용할 수 있다.

쪼그려 앉는 것이 불편한 러시아사람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물론 쪼그려 앉는 것이 되는 사람도 있다. 서양사람들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매우 힘들어했다. )


러시아에는 중국산 호미가 팔지만 몇 번 쓰면 분리가 잘되어서

매번 한국에서 호미를 들고 오기를 희망했다.ㅋㅋ

 나이드신 러시아학자들은 사용하기 힘들어했지만 주로 어린학생들에게 쥐어주며 문화층을 닦도록 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도 대부분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무릎이 아프다는 것이다.


다시 기사로 돌아가서,,, 아마존에서 대박났다고 하는 기사를 믿을 수가 없다.

아마존에서 호미가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서양인들의 신체구조상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호미와 같은 땅을 가는 도구는 사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싸게 판 것=구매양 으로 증명할 수 없다.(이것을 지적한 기사의 댓글도 있었다)


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영주대장간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도 대장간이 운영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좀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그리고 질좋은 국산호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산 호미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민족적인 자긍심을 아마존에서 찾으려 한 것 같은데....

한계이겠지만..

 

*카테고리 만들기도 싫어서 그냥 비판많이 한 카테고리에 걸어둡니다.


그리고 환단고기 문제도 계속포스팅할 예정입니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요즘이 아마도 입시철? 준비기간이다보니 고고학 전공 관련학과 문의가 많다.


그래서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전국에 고고학 관련학과 혹은 사학과내에서 고고학 전공이 있는 교수가 있는 곳을 직접 일일이 적어두겠다.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은 이제 아니실 듯.....)


https://eastsearoad.tistory.com/138?category=725433


이미 말씀드린대로 대부분 거점 국립대학교이며, 사립대학교에도 있다.

단 현재시점에서 몇 몇 대학교 사학과에서 고고학전공 교수가 1명이며, 그 분의 정년이 1~2년 안에 끝 인 경우와 1명의 결원이 생긴 몇몇 곳은 생략했다. 만약 새로운 교원이 생기면 고고학 관련 강의가 생길테니 다시 공지하겠다. 또한 고고학과 고대사를 드나드는 교수님이 계신 학과도 생략했다. 그리고 또 잘 찾아보면 고고학전공교수가 없더라도 강의는 개설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 경우도 제외했다.(대부분 이 경우는 울며겨자먹기로 강의가 개설되는 경우여서 자라는 꿈나무에게는 .....)

 

<부산경남권>

경북대학교 인류학과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계명대학교 사학과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동양대학교 문화재발굴보존학과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인제대학교 인문문화융합학부

 

<서울경기강원권>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강원대학교 사학과

경희대학교 사학과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연세대학교 사학과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숭실대학교 사학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호서호남권>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공주대학교 사학과

목포대학교 고고학과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위의 순서는 권역으로 묶은 후 지역, 학교 모두 가나다순이다.

 

단순히 사료를 공부하는 역사학과 혹은 사학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수의 교원이다.

그래서 각 학과의 교과과정(교과목)을 살펴보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고고학 관련 수업의 개수를 대략 알 수 있다.(물론 여러 변동사항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고고학 전공 교수가 적을수록 고고학 전공관련 수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고고학 전공 교수도 자신의 전공시대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된 수업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고고학전공교수가 많은 학과로 가는 것이 여러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로 인해서 고고학자로서 꿈을 키우는데 유리하다.



매화꽃 피는 것을 보니 이제 곧 새내기들로 교정이 꽉 찰 듯.......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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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연해주 고고학에 대해서 글을 여러번 올렸다.

철기시대에 대한 마무리가 올해 끝나면 마저올리겠다.

몇 개의 문화에 대해서 정리할 것이 있는데,,,,이번 방학에는 손이 안가지만. 그래도 올해 마무리하고,,,,연해주고고학개론서를 끝내고 싶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연해주를 벗어난 지역을 강의하고 있다.

유라시아 중에서 시베리아중심이다.

생각해 보면 연해주연구한 것도 시베리아와 한국의 연결고리라고 어렴풋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기회가 생겨서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지역도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동아시아를 벗어나니,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또 동아시아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은 무척 재밌는 지역이다. 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한데...

결국 몇 개의 주제를 필자가 선택하겠지만,, 머릿속에 뱅뱅 돌고 있는 무수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할지 나도 내가 궁금하다.

 

신석기시대...지금까지 해 온 시대구분으로는 두 번째 시대이다.

그런데,,,,지금까지 해온 세계적인 연구자들의 연구가 점점 희미해진다.

흔히들 알던 신석기시대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이 여기서는 너무 확연하게 들어난다.

작년에 발표한 내용도 그런 주제였다.

 

결국, 인간은 아마 구석기시대에 만들 수 있는 건 이미 다 만들었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라고 생각했던 것, 토기, 마제석기, 무기 등.

올해부터는 유라시아고고학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강의를 하다가 생긴 궁금증 혹은 의심을 풀기 위한 연구이다.

그래서 유라시아고고학 중에 일부 지역인 시베리아에 대한 강의를 포스팅할 계획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답은 영남이 환동해문화권의 교류지역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미 필자가 연구한 바를 토대로 환동해문화권의 범위와 그 교류지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선사시대 환동해문화권의 교류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중심으로 연해주와 우리나라 강원도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2,3). 


표2. 환동해문화권의 동심원문암각화와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18)



3. 시간에 따른 환동해문화권의 범위와 교류권(김재윤 2018)



연해주와 동해안의 교류는 신석기시대 루드나야 문화의 세르게예프카 유형과 오산리 유적의 A,B지구 및 오산리 C지구의 III~V층에서 확인되는 오산리식토기와 융기문토기를 근거로 논의 되었고, 그 시점은 6000~5800년 전이다[각주:1](김재윤 2015, 2017). 이후부터 강원도에는 첨저토기가 출토되는 5100년 전[각주:2] 동안은 동해안에 유적이 확인된 적이 없다. 만약 동해안에서 유적이 확인된다면, 연해주와의 문화권은연대가 좀 더 길어질 수 있다.

  즉 5800~5100년 전 환동해문화권의 범위는 불투명하며, 5100년 전께는 연해주와 강원도의 생업권은 끊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점은 자이사노프카문화가 시작되는 시점과도 비슷하다(3, 김재윤 2017a).


   다시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흥성문화(김재윤 2004, 강인욱 2017) 및 시니가이문화가 강원도 영서지역을 통해서 진주 남강의 평거동 유적까지 내려온 흔적이 청동유물, 토기, 석기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시니가이문화가 내려온 연대는 3100~2900년 전께이다(김재윤 2018a).

  그런데 연해주와 강원도의 신석기시대 문화권이 형성되기 이전에 아무르강 하류의 문화가 동해안까지 확인된 정황도 있다. 오산리C지구의 신석기시대 최하층인 VI층 및 문암리, 망상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적색마연토기가 아무르강 하류의 말리셰보문화에서 전해졌고 관련이 있는 연대는 6500~6000년 전을 확인한 바 있다. 오산리C지구의 VI층은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토기 제작이 없었던 동해안에서 갑자기 적색마연토기가 확인되는 것은 이미 토기문화가 있던 곳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아무르강 하류의 말리셰보문화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김재윤 2015, 2017).

  그런데 토기 뿐 만 아니라 아무르강 하류에서 출토되는 말리셰보 문화 및 보즈네세노프카 문화의 극동전신상토우를 근거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아무르강 하류도 환동해문화권에 속할 가능성을 했는데 환동해문화권으로 생각했다(김재윤 2008).

 하지만 앞서 본고에서 고찰한 아무르강 하류의 동심원문암각화로 보아서 연해주와 아무르강 하류와의 문화권은 9000년 전 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이 때부터 6000년 전까지는 아무르강 하류가 환동해문화권에 포함될 수 있으며, 북부지역일 수 있다.

  또한 9000년 전께는 쌍탑1기와 노보페트로프카 문화가 유사하기 때문에 아무르강 중류 및 눈강 유역도 환동해문화권의 북부지역인 아무르강 하류와 관련성이 있다(3). 그러나 아무르강 중류 및 눈강 유역은 환동해문화권에 속한다기 보다는 환동해문화권의 북부와 교류한 간접적인 영향권으로 볼 수 있다.

  6000~5800년 전 환동해문화권은 앞서 보았듯이 연해주와 강원도 오산리 부근이다. 그러나 오산리 유적 이남인 태백산맥이 끝나는 죽변유적의 토기는 오산리 및 한반도 남부지역과의 관련성이 더 크다[각주:3].

 

 따라서 영남 동심원문암각화의 유적은 남해안 신석기문화가 자리잡은 가운데(6910B.P. 이후, 3) 환동해문화권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해주 및 아무르강과 관련 있는 6000~5800년 전이다. 이 지역은 환동해문화권의 간접영향권으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다.

 환동해문화권의 신석기시대는 9000~6000년 전에 아무르강 하류가 환동해문화권의 가장 북부지역에 속하며, 그 이후 6000~5800년 전 연해주와 동해안만이 문화권일 가능성이 있다(3). 5800년 전 이후로 동해안에서 유적이 확인된다면 이 시점은 더 지속적일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환동해문화권은 두만강 유역의 흥성문화 및 연해주 시니가이문화가 연해주와 강원도가 직접적인 관련성을 보이는데, 강원도 영서지역을 통해서 소백산맥이동의 진주 남강 유역에서 확인된다. 현재로서 확실한 연대는 시니가이문화의 이동성이 보이는 3100~2900년 전이다. 환동해문화권은 신석기시대와는 다른 경로인 강원도 영서지역으로 소백산맥 동쪽의 영남 남강 유역까지 환동해문화권과의 교류한 흔적이 남아 있다. 토기, 석기, 청동기 등 구체적인 양상이 확인되어서 신석기시대보다는 더 뚜렷한 관련성을 보인다. 하지만 진주 남강을 환동해문화권의 남부지역으로 결정하기에는 좀 더 확정적인 증거가 답보되어야 할 것이며, 현 상황에서는 간접적인 영향권으로 일단 두고자 한다[각주:4].

 따라서 3100~2900년 전 청동기시대에는 환동해문화권으로 한반도와 강원도 영서지역이 포함될 수 있다(3).

 

 신석기시대 환동해문화권의 형성배경은 태백산맥 및 시호테알린산맥과 태평양을 매개로 한 생업권이 문화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필자가 생각하는 아무르강 하류 및 연해주와 강원도의 관련성은 생업권을 의미하며, 고고학적으로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김재윤 2017). 전파론적인 해석과는 차이가 있다. 신석기시대 여러 기간에 걸쳐서 아무르강 하류 오시포프카문화 및 말리셰보문화의 모습이나 연해주의 세르게예프카 문화양상 이 동해안에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환경에 따른 생업권 때문이며, 동심원문 암각화가 태백산맥에서 분기된 소백산맥이동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은 환동해문화권과의 교류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이 산맥과 바다를 매개로 한 생업권임을 알 수 있는 것은 5000km [각주:5]이상 떨어진 곳 추코트카의 페그티멜 암각화에서 신석기시대 그려진 사슴문양과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고래그림이 반구대암각화와 같은 방법으로 그려지고, 사카치알리안의 호랑이 문양은 반구대암각화와 비슷하게 그려졌다는 것은 같은 생업권을 의미하며, 반구대암각화도 환동해문화권의 영향이 일정부분 있다(김재윤 2017b, 2-12,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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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astsearoad.tistory.com/277

https://eastsearoad.tistory.com/278?category=772722


*본고는 2018년 12월에 있었던 제 49회 한국상고사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1. 이 연대는 양 지역의 문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아닌 서로 관련된 시점이다. [본문으로]
  2. 중동부지역 신석기문화는 오산리식토기 출토된 오산리C지구 3,4,5호 주거지(5750±15B.P.)(소상영 2016) 이후부터 첨저토기가 확인될 때까지 공백이 있다. 문암리의 중기유물층(5120±36B.P.)(소상영 2016의 표 13) [본문으로]
  3. 죽변 유적에서 확인되는 토기는 연해주 보다는 오산리와의 비교우위를 점한다(임상택 2012). [본문으로]
  4. 이는 청동기시대 형성배경은 신석기시대와는 다른 생업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고로 고찰코자 한다. [본문으로]
  5. 이 경로는 야쿠티아지역을 통해서 아무르강 중류, 하류 및 동해안을 따라서 내려온 경로를 계산한 것이다. 만약 해안선만을 따라서 추정하면 10,500km가량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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