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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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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23. 16:28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내용은 2017년 5월에 부산복천동박물관의 특강 내용입니다.


1. 페그티멜암각화
추코트카는 가장 북쪽인 동시베리아해와 인접하고 있으며 바위그림은 시베리아해로 흘러가는 페그티멜 강의 하류의 지류인 카이쿨 강에서 확인되었다. 이 지점은 동시베리아해와 거리가 50km 정도이며, 페그티멜 강과 카이쿨 강 사이 1000m~1200m가량 떨어진 곳에 바위그림이 존재한다. 1965~1967년에 걸쳐서 1차 조사가 실시되고, 1968년에 1차 조사보다 약간 하류에서 2지점을 발견하였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 관련된 보고서가 출판된(디코프 1971) 1971년에는 아무르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얀 등 몇 몇 유적도 보고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1).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당시 소련에서는 시베리아 초원지대 및 알타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바위그림이 아무르강 하류 및 추코트카 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그림 2)이 그려져 있는데, 알타이에서도 이 주제가 큰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호응이 있었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미사암계 점판암의 높이 25~30m가량의 암반위에 제 1지점에는 모두 11 곳의 암벽에 그림이 모두 104장면이 그려져 있다. 크게 깊은 선각과 쪼기를 해서 면을 음각으로 처리하는 방법(그림2)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주제는 다양하며, 11곳의 장소마다 그리는 대상물의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공통적인 것도 있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1)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생활습관이 그대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냥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대상물은 고래, 사슴, 곰 등이다. 사슴도 무리를 지어 있는 도상이 있고, 혼자 있는 도상이 있다. 또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인데, 배에 타서 사슴을 끄는 마술과 같은 그림도 있는데(그림 3)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추코트카에서 행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와 함께 그려진 인간의 생활모습도 반영되어 있다. 한 그림은 배를 타고 가면서 순록을 몰던 유카리 족이 그려져 있고, 눈이 내릴 때 스키를 타고 개와 함께 걷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그림 3-2).



뿐만 아니라 머리에 버섯모자와 꼬리가 달리거나(그림 3-1의 가장 우측) 장화를 쓴 신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알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대규모의 성소로 알려진 바이칼 유역의 엘란가쉬 유적에서도 십여 점이 확인된 그림이다. 사람인데, 꼬리가 달린 것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래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그림 4). 한 바위그림에는 고래가 실제로 물을 뿜어 내고 배에 탄 사람들이 이 고래를 잡은 것을 묘사한 것이 있다. 매우 사실적인데,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때 사람들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을 바위그림에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다. 극동에서 고래 그림이 그려진 바위그림은 이곳과 울산의 반구대 바위그림 뿐이라는 점이 눈에 띄며 고래잡이가 생업의 한 축임을 이야기 한다.
페그티멜 바위그림에는 배가 아주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배의 모양, 배에 탄 사람의 수 등에 차이가 있다.




이 바위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을 까?



페그티멜 바위그림은 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한 디코프 박사는 추코트카 근방(북극해)의 생업과 관련을 지어서 많은 점을 해석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고래 등 해양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기원전 1000 년 기(기원전 10세기) 이전에

는 올라가지 않아서

, 바위그림에서 고래 등을 사냥하는 장면도 그 이 상 올라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추코트카에는 캄차트카에서처럼 순록유목업이 예전에는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서, 그림 가운데서 순록이 무리를 지어서 있는 것은 유목업으로 인해서 생긴 늦은 시기의 것이고, 사슴이 홀로 그려진 것이 사슴사냥을 하던 선사인이 남긴 것으로 보았다. 최소한 해양동물 사냥이 이 지역에 기원전 10세기 쯤에 생겼는데, 순록 사냥은 그 보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았다(디코프 1971).


 그런데 바위그림 가운데 9번 암각에 79번 주제 중에는 순록이 선각기법(그림 6)으로 그려진 것인데, 이는 앙가라 강의 신석기시대 유적 바위그림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록의 크기는 추코트카의 것이 조금 작다. 그렇다면 바위그림의 순록 그림은 앙가라 강의 신석기후기 연대를 참고해서 기원전 20세기 보다 약간 늦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디코프 박사는 이 연대에 대해서 자신감은 없어했으며, 기원전 1000년 기 전반(기원전 9~6세기)까지도 연대가 내려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뒤에 페그티멜 바위그림의 연대는 그림의 양식으로 연대가 재고되었다. 시베리아의 것과 비교해서 순록의 굽 가운데 사람 발처럼 그려진(그림 7)이 가장 이른 것으로 보았다. 시베리아 바위그림의 연대는 암각화 주변에서 발굴을 통해서 그 유적에 산 사람이 바위그림을 남긴 것으로 보았고, 유적의 연대와 바위그림 연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순록의 굽 모양이 사람 발처럼 그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3300년 전(기원전 13~14세기 가랑)으로 여겨졌다(피툴코 2002).

버섯 모양의 모자나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이 보다 더 늦은 연대로 알타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연대와 비교해서 기원전 14~8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가장 늦은 그림은 순록의 그림을 묘사한 형태로 결정되는데, 몸통이 삼각형이며, 다리가 막대기처럼 쭉 뻗거나 아래로 벌어진 것인데, 발이 방사상으로 표현된 것 등이다. 왜냐하면 이는 베링해 주변에서 번성했던 고대 베링고모르스카야 문화에서 확인되는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8~5세기로 여겨진다(디코프 1971).
이처럼 암각화는 어느 지역 이든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문제이다. 제일 좋은 것은 발굴을 통해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일 텐데, 모든 암각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다.


posted by 김재윤23
2017. 8. 22. 13:31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이 내용은 2017년 5월에 있었던 부산 복천동박물관 특강의 내용입니다.

예술은 러시아어로는 исскуство라고 하며, 이의 형용사형은 исскуственны 라고 하는데, 그 뜻에 인공적인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같은 의미로 영어의 ’artificial’이 있는데 ‘art(예술)’라는 용어가 들어 있다. 즉 인공적인 것은 모두 예술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유럽이나 동아시아에서 모두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그 자취가 보인다. 유럽은 가장 오래된 동굴에 벽화 그림이 남겨진 유적은 프랑스의 쇼베-퐁다르크 동굴(사진 1, 2)인데, 36천년 전으로 평가된다. 이 동굴 벽화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19951월인데, 2 만년 전에 암벽이 붕괴되면서 동굴전체가 진공포장된 것처럼 발견되기 전(1994)까지 보존되었다.



동아시아의 알타이 지역의 우코크 고원에서는 칼구타 유적에서 말을 그린 벽화(사진 3)가 확인되었다. 쇼베 퐁다르크 동굴의 그림은 화려한 채색화(암채화)이지만, 칼구타의 그림은 동굴 벽을 쪼아서 표현한 바위그림라는 차이점이 있다.


현재 고고자료로 보아서 예술품 혹은 예술로서 부를 수 있는 것은 동서 공히 후기 구석기시대 부터로 생각된다. 현생 인류는 왜 이런 것을 남기게 되었는가? 남겨진 자료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이런 그림벽화 뿐만 아니라 모든 고고자료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질문이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여러 학자들의 의견에 의해면 예술은 종교 혹은 자신의 믿음과 관련된 것이다. 구지 선사시대가 아니라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불교와 관련된 유물들은 학술적 자료이기도 하지만 종교적 상징 혹은 의례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해서 예술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에는 종교와 관련 없는 예술품도 많다. 따라서 적어도 예술의 시작에 있어서는 믿음, 주술, 샤머니즘 혹은 종교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석기시대의 유물가운데는 이미 유적에서 토제로 만들어진 토우가 제작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비너스 상인데 우크라이나의 후기구석기시대 가가리노 유적(사진 4)에서 발견되었다. 인간이 토제로 만든 최초의 물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정상적으로 부풀리게 표현된 가슴과 배 등은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즉 토제나 석제 혹은 골제로 만들어진 형상물 등은 일반적인 움집에서 출토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물건으로 제의성이 담긴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본 강좌에서는 극동의 선사시대 예술을 인류 보편적으로 남겨진 고고유적 가운데서 바위그림(암각화)과 유적에서 확인되는 토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동아시아에서 바위그림과 토우가 널리 퍼져 있지만 태평양을 매게로 하고 백두대간으로부터 시호테 알린 산맥까지 이어 지는 대 산맥을 접하고 있는 지역인 극동은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관련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본고에서도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을 중심으로 바위그림과 토우를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예술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posted by 김재윤23

동아시아에서 발굴해서 출토된 선사시대 토기는 사진과 같은 재질입니다.
이것은 태토(토기나 도자기를 만드는 흙)을 반죽해서 약간 말려서 문양을 그린후 야외노지에서 구워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토기 가운데, 문양을 그리기 전에 붉은색 물질을 바르고 돌등으로 표면을 문질러 마연한 토기가 있습니다. 이를 적색마연토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붉은 빛을 띠며, 마연을 해서 맨들맨들 합니다.







(상단은 아무르강 하류, 하단은 양양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적색마연이라는 제작방법, 시문방법이 유사합니다.)


압날문은 문양을 그리는 방법을 말합니다. 시문도구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는 지역과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이 토기의 시문도구는 빗처럼 생긴 도구로 계속해서 찍어서 문양을 새긴 것입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2017. 7. 27. 19:33 책소개

 

 

앞으로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이 책의 내용을 쉽게 풀어서 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쓴 책이고, 직접 쓴 논문을 엮어서 하나의 테마로 정리했습니다.


현재의 정부가 남북철도를 연결하고 유라시아관문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 정말 가능성 있는 이야기 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있었던 길이거든요...


혹시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이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만.

전문가 용이니...쬐금 어렵다고 느끼실지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posted by 김재윤23
2017. 7. 27. 19:30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극동전신상토우가 출토되는 아무르강하류와 연해주, 두만강은 환동해문화권으로서, 이 유물은 동일한 문화권임을 나타낸다.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최고 인물형토우는 말리쉐보 문화에서 나타나며 이러한 전통 혹은 극동전신상토우에 대한 아이덴티티는 아무르강 하류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까지, 연해주와 두만강 하류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까지 전해진다. 또한 동물형토우는 아무르강 하류가 연해주나 동해안에 비해서 위도가 높은 지역이기는 하지만 바다와 산맥 등 같은 자연환경으로서 어로를 중심으로 한 비슷한 생계경제가 공유되어서 환동해문화권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각주:1]


 

 

 

 

 

 

 

 

 

 

 

 

 

 

 

신석기시대 토우는 왜 만들어졌을까? 토우는 동북지방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확인되는데, 요서지역 흥륭와 문화의 백음장한 유적에서는 주거지의 노지아래에서 출토된 바가 있다. 또한 다른 유적에서도 주거지나 특별한 유구에서 출토됨을 볼 때 집과 관련된 의례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무르강 하류의 토우는 아무르강 하류에 현존하고 있는 나나이족과 니기달 족 등의 여러 민족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사진 3)이 있는데, 얇은 동체부와 머리표현 등이 신석기시대의 출토의 것과 유사하다는 연구가 있다. 이들 민족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인들에게 동화되기 전까지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사람들로, 의식주 생활습관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목우는 집과 가족 부엌의 불씨를 보호하는 의미로 각 가정에 세워놓았다. 극동전신상토우도 주거지내에서 확인된다는 점에서 볼 때 민족지자료와 같은 의미로 사용 되었을 것이다. 
 현대처럼 모든 일상을 사진이나 글로 남기는 행위가 없던 시대에 환동해문화권을 이해하는  고고자료로서 극동전신상토우는 환동해문화권의 선사시대 인물의 표상이며 물개형토우나 곰형토우는 대산맥과 동해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물 혹은 사냥물로서 그들의 생업을 말없이 표현하고 있다.

  1. [/footnote]



     하지만 한반도 동해안에서는 극동전신상토우가 아직 출토된 예가 없다. 한반도 전체가 다른 동북아시아지역에 비해 토우의 출토양이 많치 않은 편이지만 동해안은 토우가 많이 출토되는데, 앞으로 출토될 것을 예상해본다.  




    [footnote] [본문으로]

posted by 김재윤23
2017. 7. 27. 19:26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환동해문화권에 속하는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서포항 유적에서 비상하게 생긴 토우가 출토되었다. 이 토우는 입상이며, 머리와 몸통이 따로 제작되어서 사람으로 생각되었지만, 성별을 알 수 없고, 머리 정수리가 뾰족하고, 머리와 몸통이 각을 이루고 있다(그림 1-6~9). 도대체 이 토우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사시대 다른 동북아시아의 토우는 적어도 여성, 남성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머리도 둥글게 표현되며 머리와 몸통도 일자로 부착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각주:1]


   극동전신상토우는 아무르강 하류의 7000년 전 신석기문화인 말리쉐보문화에서 최초로 등장한다(사진1-4: 그림1-4; 그림1-3). 이 토우는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最古의 인물상토우이다. 그 이후에 6000년 전부터 시작되는 콘돈문화에서 눈썹과 코가 더욱 뚜렷해진다(사진1-1·2; 그림1-4). 몸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구멍이 하단에서부터 있는데, 나무를 끼워서 토우를 세우기 위한 기능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후기 문화인 보즈네세노프카 문화에서도 극동전신상토우가 확인된다. 가늘게 표현된 눈, 눈썹과 코가 연결되어 표현된 점 등은 콘돈문화의 것과 유사하다. 현재의 자료로는 아무르강 하류에서는 신석기시대 이후에는 극동전신상토우가 확인되지 않는다.
 

연해주와 북한의 두만강 유역에서도 극동전신상토우가 확인되는데, 신석기시대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청동기시대인 리도프카 문화(그림 1-5)와 서포항 아래층(그림 1-7·8)과 위층(그림 1-6·9)그림에서 확인된다. 연해주 리도프카 문화의 토우는 얼굴과 몸통의 형태는 보즈네세노프카 문화의 것에서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머리 정수리가 뾰족하게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타원형이고, 눈, 코, 입 등이 상략되었으며, 몸통을 관통하는 구멍 대신 하반신이 편평하게 제작되어 단독으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양손을 양쪽으로 뻗고 있는 점도 이전 시대와 차이점이다. 이 토우를 전신상이라고 판단하게 된 근거도 청동기시대의 것이 단독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하반신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서포항 출토의 것은 극동전신상 토우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 얼굴 형태가 더욱 간략하게 표현 되었는데 얼굴모양이 사다리꼴 모양 혹은 삼각형을 띠고 있으며 몸통이 안정감 있게 표현되었다.


 아무르 강 하류는 토우가 출토되는 곳 중에서 동북아시아 대륙에서 제일 위도가 높다. 현재의 기후로는 겨울에는 아주 혹독한 자연환경이지만 사계가 뚜렷하고,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식량획득이 용이한 곳이다. 세석인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가장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고토기가 출토된다. 아무르강 하류의 오시포프카 문화는 토기의 등장으로 보아서 정착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토우도 정착생활을 하게 됨으로 주거공간과 가족에 대한 보호의식이 생기게 되면서 토기와 마찬가지로 등장하게 되었다. 정착생활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점에 일어난 곳에서 토우도 확인 되었을 것이다.

   극동전신상토우 이외에도 동물형 토우 중 물개형 토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르 강 하류의 수추섬, 연해주의 에피스타피 4, 세죽리 등(그림 2)에서 확인되었다. 물개는 북태평양 연안에서만 서식하는데, 아시아에서는 시베리아 연안으로부터 캄차카반도·베링해(海)·사할린섬·쿠릴열도 등에서만 겨울에는 홋카이도 및 한국 동해안에도 나타난다. 이 물개를 모티브로 한 토우는 요서·요동·길림 지방 등 태평양과 접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아무르, 연해주 등 태평양 연안의 지역에서는 확인된다. 물개는 500kg이 넘는 대형 해양동물로, 19세기 말까지 극동의 나나이족, 울치 족 등에게 중요한 식량한 자원이 되었다. 또한 오산리 C지구(그림 2-4·5)와 수추섬의 주거지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토우(그림 2-1;사진2-1)가 출토되었다. 각각 곰모양토우와 사슴모양토우로 다르게 보고되었지만, 동물의 모습이 거의 비슷해서 같은 종류로 생각된다. 물개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이 같은 서식환경임을 나타낸다. 한반도 동해안에서 극동인물상토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동해안의 자료로 아무르 강 하류와 연해주의 관련성이 제기되고 있다.


[각주:2]



 
참고문헌

 

김재윤 2008, 선사시대의 極東 全身像 土偶와 환동해문화권,한국상고사학보,60

김재윤 2015, 평저토기문화권 동부지역의 6500~6000년 전 신석기문화 비교고찰, 韓國考古學報96

김재윤 2017, 『접경의 아이덴티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Окладников А.П. Фолов Б.А., 1980, Древнейшее исскуство Скверной Азии ; петрографы, орнаменты,мифы:Наука стран социализма; Семидесятые годы-(오클라드니코프 외 1980, 북아시아의 고대 예술세계,사회주의 국가와 과학세계)

Тураев В.А. 2003, Хозяйственно-культурная дифференция коренных народов дальнеого востока в исторической ретроспективе :Типология культуры коренных народов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россии-владивосток Дальнука (투라예프 2003, 극동 원주민들의 생계경제 차이점, 러시아 극동 원주민의 문화유형)

  1. [/footnote]


    서포항 토우와 유사한 것이 아무르강 하류, 연해주, 두만강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출토된다. 인접한 중국동북지방에서는 특히 남성상의 토우가 존재하지 않고 여성상이 주류를 이룬다. 동북아시아 사람모양의 토우가 머리와 몸통을 보통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직선으로  부착하는데, 반면에 앞서 설명한 토우는 무성인 사람모양으로 머리와 몸통에 부착되는 방법 등이 차이가 있어서 다른 현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토우를 『극동전신상 토우』라고 명명하였고, 성을 표현하지 않는 특징을 포함한다. 상기한 지역에서만 출토되기 때문에 환동해문화권의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footnote] [본문으로]

  2. [/footnote][footnote] [본문으로]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