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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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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여러 모양의 그리핀 장식이 출토된다. 알타이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다른 모양으로도 변형되는데 갈기가 없고 뿔과 귀만 달린 독수리 그리핀이고 목이 길게 표현되어서 ‘S’자형에 가깝다.

 

S자형 그리핀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서 많이 볼 수 있다(바르코바 1987).(이 유물은 독수리 머리에 맹수의 귀만 붙인 것으로 뿔이 없는 점은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시베리아에서 출토된 것이 현재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

2020/02/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의 사연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의 사연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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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뿔 없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함께 표현되는 주제는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이다. 동물투쟁문(그림 1)이라고 부른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동물투쟁문 중 일부(아르타모프 1973, 필자편집), 에르미타주 소장

 

동물투쟁문은 파지릭 유적에서 주로 펠트 혹은 가죽 아플리케 장식으로 표현(그림 2)되었고, 카탄타 유적에서는 나무판에 조각된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3)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은 주로 금속이다. 재료의 차이에서 오는 표현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매우 유사하다. 특히 나무판에 새겨진 카탄타 출토의 동물문양장식(그림 3)은 전체평면형태도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과 같다.

 

 

 

그림 2. 시베리아 알타이 파지릭 유적과 카탄타 유적(k)에서 출토된 동물투쟁문양 주제,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시베리아 알타이의 카탄타 유적에서 출토된 목제 장식판(그림2-k 유물과 동일)

 

동물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래서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황금 투쟁문양도 기원전 5세기 혹은 그 보다 약간 늦은 기간의 유적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동물투쟁문은 알타이의 문양에 독수리(그림 1-1,2) 혹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그림 1-3~6)이 머리쪽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두 마리가 싸우는(정확하게는 포식자가 물어 뜯는) 장면이다. 알타이의 파지릭과 카탄타 유적(그림 2)에는 주로 2마리만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프 1973, 사카족의 보물)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칼라콜 계곡에는 2600년 전 미라가 잠들었던 바샤다르 라고 하는 유적이 있다. 이 유적에서 2호는 통나무관 2개가 있었다. 앞서서 보았던 파지릭 유적에서 남녀가 함께 매장될 경우 통나무관 1개를 이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파지릭 유적이 바샤다르 유적 보다 약 100년 정도 늦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파지릭 유적과 비슷한 시점에 남녀가 같은 통나무에 매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 확인된 통나무관 1개는 엎어진 채로 확인되었는데, 여성의 관으로 통남관 조차도 거의 파손이 심한 상태였고, 가장 남쪽에 고정되었던 통나무관은 그나마 잘 남아 있다. 이 안에 들어 있었던 남성미라는 정식 발굴시에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발견된 통나무관은 루덴코는 어디서도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우선 관은 낙엽수가 아닌 잣나무 종류로 만들어진 것이다. 관의 가장자리 끝에는 보통 귀가 하나씩 이었으나 바샤다르 유적 2호분의 관은 관의 귀가 두 개다. 뿐만 아니라 관의 뚜껑은 여물통 모양이 아니라 편평하다. 관의 한쪽 옆은 뚫린 형태로 무덤방 벽에 붙인 걸 감안해서 만든 것이다. 길이는 3.1m가량이고, 높이는 0.56m이다. 통나무 관의 가장 위쪽에는 구멍이 있는데, 같은 간격으로 낸 것이다. 이 곳에는 청동 못(그림 2-1,2)을 밖았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의 통나무관의 덮개(위)와 관(아래)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2호 통나무관의 못(1,2,3,4)

 

 

통나무관과 덮개에는 호랑이가 주요한 주제이다. 덮개에는 호랑이가 산양과 멧돼지 및 사슴(elk) 등이 호랑이에게 제압당하는 장면이다. 관에 그려진 호랑이 4마리 중 첫 번째 호랑이는 산양을 제압하고 있다.

 

 

 

그림 3.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 덮개(그림1과 동일), 필자편집

 

 

호랑이는 호랑이처럼 보이지만, (실제) 호랑이와는 다르다.

 

무슨 소리?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각 동물의 종류를 알 수 있을 정도이지만, 추상적인 표현도 가미되었다는 이야기다. 호랑이의 표면을 장식한 곡선 문양과 우제류를 장식한 나선문양은 실제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루덴코는 파지릭문화 동물문양장식의 특징에서 기하학적인 표현이 덧 입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레보드치코바도 사실적인 동물표현에 기하학적인 내부표현방법이 파지릭문화 동물문양장식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사실 동물표현에 나선문 혹은 동심원문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무덤방 5호의 여성 주인공의 가슴장식 혹은 목걸이는 금으로 제작된 것이다. 호랑이를 포함한 우제류가 표현되었는데, 동물 사이를 메꾸는 것은 나선문양이었다. 같은 유적의 무덤방 5호에서 확인된 모형 솥에도 여러 동물이 장식되어 있고 그 사이를 나선문양이 메꾸고 있었다.

 

2020/06/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호랑이 눈

2700년 전 시베리아 호랑이 눈

호랑이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이른 시점부터 확인되는 동물문양장식이다. 아르잔-1호의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가 출토지가 명확해서, 유물의 연대를 알 수 있다. 아르잔-2호에도 호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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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 여성의 검과 칼

스키타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보통 허벅지에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전사도 목검이 있었는데, 허리가 아닌 바지주변, 허벅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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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통나무관에 새겨진 동물을 표현하고 있는 나선문양(우제류) 및 파상문(호랑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같은 통나무관에 새겨진 굽동물의 몸통은 털을 모방한 것일까?

 

 

 

그림4. 바샤다르 유적2호분의 통나무관의 덮개(위)와 관(아래)에 새겨진 호랑이

 

 

 

 

그림 5.  바샤다르 유적2호분의 통나무관의 덮개에 새겨진 사슴

 

 

 

그림 6.  바샤다르 유적2호분의 통나무관의 덮개에 새겨진 산양

 

 

 

 

그림 7. 바샤다르 유적2호분의 통나무관의 덮개에 새겨진 멧돼지

 

 

 

 

그림 8. 바샤다르 유적2호분의 통나무관의 덮개에 새겨진 산양

 

자세히 살펴보면 동물의 어깨와 대퇴부에도 같은 표현이다. 실제 동물은 몸통과 그 부분의 털의 색깔이 다르지만 통나무관에는 같은 표현이 되어 있다. 그냥 (통나무에 동물을 새긴) 장인이 그런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같은 그는 실력이 너무 좋다. 동물의 종(種)을 구분할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동물의 내부표현은 같은 문양을 반복한 것이다.

 

나선문양, 파상문이 실제 의미하는 바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반복된다. 반복적인 요소는 내부를 표현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동물의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알타이에 위치한 2500년 전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파지릭 유적을 살펴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흑해 북안의 유적들의 유물도 간간히 필자가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유목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들이 남긴 유물인 동물문양 가운데 늘 사슴문양이 있다. 사슴은 양, 염소, 말과 같은 우제류이긴 하지만 기르지 않는다. 사냥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슴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가장 인간이 많이 잡은 동물일 것이다.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에도 가장 많은 그림 중에 하나이고, 패총에서도 사슴뼈가 많이 출토된다. 시베리아 알타이의 암각화에도 사슴은 가장 많은 주제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 주제는 사슴은 아니다.

 

왜 사슴과 같은 특정 동물이 금 혹은 목제로 만들어져서 정해진 자세로 표현되어서 여기저기 다 장식되었을까?

왜 호랑이 혹은 표범은 둥글게 몸을 말아서 표현했을까? 이 동물은 흑해 북안부터, 알타이, 투바, 미누신스크 지역에서 출토된다. 심지어는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출토된다(그림 2).

 

필자가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란 제외)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유적의 무덤구조나 토기 등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는 명칭을 쓴다.

 

파지릭 1호분에서는 말 10마리가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3번 말의 안장 덮개(그림 1, 그림 2)는 펠트로 제작되었다. 가죽, 말꼬리, 금은 부속물로 사용되었다.

우선 안장덮개는 안장 위를 덮는 유물이다. 펠트 안장덮개 아래에는 가죽방석이 따로 만들어졌고 그 위를 덮은 유물인데, 가죽방석에 고정되었다. 가죽방석 안은 사슴털 혹은 풀로 채워졌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1호분의 3번 말 안장덮개, 길이 119cm, 너비 60cm, 펠트로 제작됨. 말안장 끝에 붙은 양머리 장식의 털은 말총을 이용, 양의 눈에는 금박장식, 펠트덮개 아래에 가죽방석이 있음. 고정됨. 가죽방석 안은 사슴털과 마른 풀로 채워짐.

 

 

 

파지릭1호의 안장덮개에는 그리핀이 영양을 공격하는 구조로 펠트 조각을 덧붙여서 표현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합성된 동물이다. 두 동물이 공격하는 구도의 동물문양은 늘 갑과 을이 정해져있다. 공격자는 그리핀이나 맹수류이고, 공격당하는 쪽이 야생염소, 사슴, 양, 염소 등이다. 파지릭 1호분의 그리핀은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독수리머리라기 보다는 사자의 얼굴이다. 공격당하는 야생염소는 뒷다리가 뒤집어진 상태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매우 사실적이다.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푸른색, 황색, 검은색 등을 배열해서 매우 화려하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사실적이지만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사실적이라는 말은 동물의 종(種)구분이 가능하지만, 부분적인 표현- 눈과 입모양, 귀모양, 뿔모양 등은 매우 과장되었다.

추상적 표현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리핀이다. 세상에 없는 동물이지만 그리핀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어떤 동물의 조합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파지릭 1호분 안장덮개의 사자머리 그리핀은 아케메니드의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것이다(그러나 이 의미는 이 유물 자체가 들어왔다는 것은 아니다. 펠트조각을 이어서 만드는 기법은 알타이에 이미 있던 기법이다.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사람들이 만들었다). 알타이에서는 주로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확인된다. 바깥의 표현과 내부의 표현이 함께 표현되었다. 매우 사실적이지만 매우 추상적이다.

그리핀은 페르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와 만만치 않게 시베리아 기원설도 대두되어 있다.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그리핀이 유물로 표현된다.

 

그리핀이란 동물문양장식은 각 지역마다 특색은 있지만 여러 동물을 합체해서 만든다는 기본 아이디어 혹은 아이덴티티는 같다. 그리핀을 예로 들었지만 몸을 말고 있는 표범장식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널리 퍼져있었을까?

 

그림 2.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환상의 맹수. 1~5: 흑해북안의 유적, 6~10: 카자흐스탄(천산산맥의 유적), 12-이란 출토품, 이외에도 미누신스크 분지(타가르 문화)에서도 환상의 동물은 출토된다.

 

부족의 상징이었을까? 깃발과 같은 상징? 그러나 깃발은 하나이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여러 개의 표현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동물문양장식은 각 개개의 동물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어떤 기호와 같은 역할을 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기호에 대한 의미를 알았다면 그렇게 널리 사용된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같은 동물의 종(種)이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그러나 세부적 표현은 다른 유물이 널리 퍼져있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예를 들면 환상의 맹수는 ‘양 1000마리’. 혹은 환상의 맹수는 ‘오늘부터 전쟁 중..’ 머 그런...

 

현대의 인터넷 환경에서와 같이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사회가 이미  있었지 싶다...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고문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파지릭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기원전 5세기 가량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는 이르면 기원전 9세기 까지도 올라가는데, 그때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을까?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동물문양장식은 무엇일까?

 

그림 1은 에르미타주에 소장중인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중에 하나이다. 버클장식이다. 둥글게 말린 표범이다. 꼬리와 다리를 말아서 원의 중간을 채우고 있다. 앞 발과 뒷 발, 귀, 꼬리의 끝은 둥글게 파진 홈으로 표현되었는데, 원래는 보석을 감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형의 감입홈에는 옥이나 기타 보석류의 돌을 끼운 후에 금판은 나중에 땜질했다(그림 1). 뒷면에는 가죽띠에 고정하기 위한 고리가 세 개 땜질되어 있다(그림 2).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버클 장식. 10.9×9.3cm

 

그림 2. 그림1의 뒷 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원형의 동물장식은 표트르가 모은 수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생각된다.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아 수집품은 정확한 출토지를 몰라서, 유물의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아르잔 1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아르잔 1유적의 위치(아르잔: 보라색 표시, 파지릭 유적: 녹색)

 

그림 4. 아르잔 1유적 출토, 청동제 버클 장식

 

 

투바지역의 아르잔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이다. 탄소연대측정과 나이테연대 보정으로 B.C 885~790로 밝혀졌다.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기 전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흑해 북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시베리아 남부의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면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은 시베리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르잔 1유적에서 이미 각종 마구 및 동물문양장식등이 확인되고, 정확한 나이테연대측정법이 한 몫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미 제공한 표에서 흑해보다 시베리아가 좀 더 올라가고 그 곳에 초기 스티카이문화라고 적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르잔 1의 청동제 버클 장식은 보석의 감입을 위한 감입홈이 없는 점과 청동제(그림 4)라는 특징으로 보아서 황금제 버클(그림1)장식보다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표트르 1세의 황금제 버클 장식은 이보다 늦은데 루덴코는 대략 기원전 600년 경 혹은 기원전 500년 경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형의 동물문양장식은 흑해북안의 켈레르메스 유적의 2호분에서도 출토된다.

크기가 약 2cm밖에 안되지만, 굴레장식으로 고양이과의 짐승이 몸을 말고 있는 유물이다.

이 유적은 20세기 초반에 발굴되었는데, 기원전 7세기 가량으로 학계에서는 생각한다. 흑해북안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 중에 하나이다.

 

그림 5. 흑해 북안, 켈레르메스 2호분, 두 번째 유물이 몸을 둥글게 만 고양이과의 동물문양장식,  골제품. 지름 2cm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루덴코 196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1980.(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고분, 아르잔)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알타이 산에는 파지릭 계곡에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언젠가 발견되었고, 연구자가 학술적 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1947년에 루덴코가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소개한 파지릭 2호분은 도굴당했으나, 문신이 남아 있는 남성미라와 여성미라의 존재는 알타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유적에서 대형고분에 속하는 무덤은 1~5호분으로 이 발굴로 인해서, 스키타이 문화(권)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는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알타이에는 아직 소개하지 않은 비슷한 시기의 무덤이 많지만, 앞서 살펴본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를 많이 한다. 이 무덤에서는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직업은 샤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미라가 온전한 채 확인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무덤은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적의 비교대상이 될 만큼 풍부한 유물을 간직했다.

 

특히 앞서 살펴본 남성의 모자? 혹은 코로나(크라운)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그리핀 조각이 붙어 있는 장식을 보았다. 목이 길고 갈귀가 있는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남성전사가 확인된 유적이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의 모자와는 달리 고깔모자의 끝에 새머리가 달린 비교적 단순한 모자를 착용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의 여성미라 모자 2점 모두 요란한 모자이다. 한 점은 나무로 된 모자의 정수리 끝에 머리카락을 땋아서 붙은 형태이고, 다른 한 점은 가죽과 모피로 얼굴 앞면을 제외하고 ‘커튼’처름 만든 것인데, 정수리에 새 장식이 부착되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새가 장식된 모자는 아니지만, 아주 높은 가발을 착용했고, 새를 장식했다. 폴로스막은 이를 유라시아 스텝의 유목민이 숭배하는 세계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세계수(世界樹)는 유라시아 스텝 유목민을 포함하는 고대민족의 사상을 표현 것인데, 하늘, 사람이 사는 땅, 지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세계관을 세계수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이는 나무가 위치한 곳이 땅밑에서 자라서 땅위에서 나무기둥이 자라며, 하늘에서 잎을 뻗기 때문이다. 세계수라는 명칭은 고대 유목민들이 그들이 살았던 세계의 모습이 나무로 추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파지릭 유적 2호분은 파지릭문화에서 가장 상위 계급이라고 러시아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도 더 높다고 한다. 가장 큰 근거가 모자 혹은 코로나 라고 부를 수 있는 장식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물론 파지릭 유적 2호분이 무덤의 크기도 크고, 없는 유물도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파지릭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및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는 상대적으로 많다.

알타이에서 한 계곡에 묻힌 일련의 무덤은 한 가족 혹은 친족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파지릭 2호분 뿐만 아니라 다른 무덤(1, 3, 4, 5호분)의 부장양상도 파지릭 계곡의 무덤이 우코크 고원 보다는 높은 계급일 것이라는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높은 머리장식은 이러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 무덤의 크기가 작은 것은 혼자서 묻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에서 찾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얼음공주는 왼쪽 가슴조차도 미라처리를 위해서 그 안에 풀과 흙을 채워넣었다. 미라처리를 그렇게 공들여서 했는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녀의 권력 혹은 그녀의 그 무엇인가를 이어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학자들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많이 연결 혹은 비교하는 이유는 파지릭 2분 남성미라 몸에 새겨진 동물모양의 문신과 얼음공주 몸의 문신은 같은 사람이 새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지릭 2호분 여성미라의 몸에는 문신이 없었다.

문신은 일종의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과 글자는 몸속의 DNA처럼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새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ISBN 5-02-017744-Х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개론 혹은 초보적 연구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큰 상위에 첩 첩으로 반찬을 깔아 놓고, 아무것도 차린 것 없습니다’라고 하는 상황...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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