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구덩이를 덮은 돌은 가장 상부에는 큰 돌이고, 그 아래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돌을 채워넣었는데, 3톤정도 된다. 그 아래에는 통나무가 층층이 쌓여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통나무 층 가장 아래에 도굴꾼이 만들어 놓은 1.45×1.9m의 구멍이 남아 있다. 무덤방의 가장 상부는 자작나무 껍질로 덮었는데, 그 곳에도 도굴구멍(0.89×0.93m)이 있었다.
무덤방의 덮개는 두 단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안에 얼음이 채워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덤방은 납작한 판자로 만들어졌는데, 무덤구덩이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무덤방 안에는 다듬은 통나무로 제작되었다. 무덤방 내부의 크기는 높이는 1.4m이고, 2.3×5.2m가량이다.
파지릭 유적의 무덤 구조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점이 있다. 파지릭 2호분의 단면과 그림 1에서 아래의 무덤 단면도를 보시면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의 무덤 단면도
2중의 무덤방 구조 바깥으로 아주 두터운 수직의 나무 기둥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설치되어 3개의 기둥벽(그림 2)이 버티고 있고, 무덤 위의 돌과 통나무층의 하중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림 2. 파지릭 5호분의 무덤 상부, 아직은 무덤방의 덮개를 열지 않고, 상부의 돌만 치운 상태. 수직의 기둥 3개가 보인다. 아래 그림(2)이 무덤방의 덮개인데 도굴꾼에 의한 구멍이 선명하다. 무덤방 바깥으로 마차의 바퀴가 보인다(2).
무덤방의 북쪽 빈공간은 말과 마차가 부장되었다.
그런데 그림 1에서 통나무 관이 1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통나무관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확인되었고, 여성 아래에 남성이 깔려 있었다.
지난 포스팅에서 파지릭 2호분에서 통나무관이 1개인데 여성과 남성이 확인되어서 함께 묻혔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어떻게 보면 바보같은 이야기였다. 그렇게 막 살펴 보지 않아도, 조금만 더 자세히 다른 무덤을 살폈다면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되었던가 통나무관 안에 여성과 남성을 함께 매장되었다.
생각해보면 잔인한 일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또 다르게 해석할 수 도 있다.
한날한시에 혹은 비슷한 시기에 죽었을까? 그게 우연하게 일어났을까?
만약에 그런 경우가 하나였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도 가능하겠지만, 벌써 두 번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먼저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연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여러 가지 정황상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무덤을 만드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봄과 가을이다. 러시아학자들은 영구동토대를 이용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무덤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흩어져서 사는 유목민의 특징상 사람이 모이는 시기는 목초지로 이동하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그때가 여름이 되기 전과 겨울이 되기 전이다. 그 때 때마침 사람들이 죽었을 수 있다. 또 동시에 남녀가 모두..?!
이 모든 과정을 그들도 계획했을까? 영화대사처럼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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