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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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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한 고원인 우코크 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인 남성전사 무덤을 살펴보았다. 한명은 15~16세의 소년이고, 또 다른 한명은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이다. 두명은 앞서 살펴보았던 ‘얼음공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에 비해서 그들의 직업에 대한 논란은 없다. 간단하게 전직 무사들이다.

 

 

알타이 산맥의 곳 곳에서 확인되는 스키타이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는 고고학적 연구 뿐만 아니라 인류학적인 연구도 있다. 두 연구가 일치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DNA연구가 점차 도입된다면 좀 더 선명해 지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문제점도 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 2인은 DNA방법을 도입해서 분석한 결과, 소년은 발굴당시에는 소녀라고 인류학적으로 판단했으나, 소녀라는 점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나온 사람들이 유로포이드라고 해서 2500년 전 알타이의 스키타이문화가 유로포이드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알타이 산에서 가장 최상급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앞으로 소개될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인골은 몽골로이드 때문이다. 바르코바와 고흐만(2001)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파지릭문화의 최상계층 사람들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계속 거주한 몽골로이드로 밝혀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유로포이드의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인접한 알타이, 투바, 서부 몽골의 일반 무사급과 비교했을 때 몽골로이드의 비율이 아주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파지릭 문화에서 확인되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은 비슷하며, 최상위 남성들에서만 확인되었다. 그 예외인 유적이 치키셰바는 일명 얼음공주라고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가 출토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을 꼽았다. 이 여성에서 고시베리아 몽골로이드의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치키셰바가 말하는 몽골계통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 중에 하나인 오쿠네보 문화 시기에 형성된 형질인류학적인 요소이다(1997).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는데, 둘 다 몽골로이드로 알려졌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고분의 크기로 보아서 파지릭 유적의 2호가 상위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를 제외하고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이 착용한 옷, 목걸이. 마구장식 등은 서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얼음공주는 알타이 원주민들이 박물관과 분쟁중이어서, 몽골로이드라는 것도 숨기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 2호분 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좀 더 조명을 받는 이유는 오롯이 혼자 묻힌 몽골로이드 여성무덤이기 때문이다.

 

 

 

2인의 여성을 제외하고 최상위남성들만 몽골로이드라고 주장하는 문제도 확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여성 무덤 수 보다 남성 무덤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총 22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성인은 남성 15명, 여성 6명, 유아~청소년기의 아이 5인이 발견되었다. 여성의 수는 적고, 평균수명(29.6세)은 남성(38.5세)에 비해서 낮기 때문에 상위계급의 남성들에서만 몽골로이드가 발견된다고 확정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던 파지릭문화에는 몽골로이드, 유로포이드 계통 사람들이 모두 발견되지만, 몽골로이드 계통의 남성들이 좀 더 큰 무덤에서 많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남성들은 유로포이드 남성전사들이었다.

 

 

그림1.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 기원전 5~3세기대 유적 출토품을 바탕으로 한 복원. 

 

 

참고문헌

치키세바 1997 Чикишева Т.А. К вопросу об 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ом сходстве населения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 сакской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общности // Новейшие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открытия в Сибири: Материалы V годовой итоговой сессии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СО РАН. Новосибирск: Изд-во ИАЭт, СО РАН, 1997. С. 314-320. (치키세바 1997, 파지릭문화와 사카문화 공동체 사람들의 인류학적 공통점에 대한 고찰)

바르코바, 고흐만 2001, Баркова Л.Л., Гохман И.И. 2001 : Ещё раз о мумиях человека из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35. СПб: 2001. С. 78-90(바르코바 ,고흐만 2001, 파지릭유적의 무덤에서 나온 미라에 대해서 한 번 더)..제목은 그대로 번역해서, 재미를 느껴보시라고..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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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전사의 왼쪽 옆에는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고리투스)까지 확인되었다. 화살은 스스로 날아가지 못한다. 날려보낼 장치인 활이 필요하다. 소년관에서는 동물장식이 조각된 고리투스(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은 통)의 장식이 출토되었다. 그들의 활은 그리스인의 눈에도 매우 독특했던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7권의 64장에 박트리아인과 비교해서 스키타이인을 묘사했다.

‘박트리아인은 메디아 인과 아주 비슷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행군했으나 갈대로 만든 박트리안 산 활과 단창을 들었다. 스퀴타이(스키타이)족인 사카이(사카)족은 끝이 뾰족하고 빳빳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고유의 활과 단검 말고도 사가레이스라고 불리는 투부(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스키타이족을 사카이(사카)족이라고 부른다.

 

7권은 페르시아전쟁을 묘사했기 때문에 참가한 각 민족을 묘사해 놓은 것인데, 스키타이인에 대한 묘사는 고깔모자, 활, 단검, 전투용도끼로 박트리아인과 구분했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의 북쪽 면에는 스키타이인이 조각되어 있는데, 단검을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왼쪽), 왼쪽 허리에 활집을 차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중앙), 그 뒤에는 활집을 허리에 차고 전투용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그림 1의 오른쪽)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그림1.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 북쪽면

 

스키타이 인들의 활은 비교적 짧은데 75~100cm가량이고, 활은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나무와 심이 들어 있는 복합적인 구조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스키타이 활이라고 부른다. 나무 한 겹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활 보다는 훨씬 더 튼튼했다(G Rausing 1967).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 200년이나 앞선 아르잔-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이 유적은 투바라고 지역인데, 알타이 산 보다 북쪽이며, 상대적으로 바이칼 호수와 가깝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데, 초기 스키타이문화를 이야기 하게 되면 반드시 이야기 될 유적이다.

 

가장 유명한 활과 화살을 동시에 넣는 통(고리투스) 장식은 그림 2의 유물이다. 흑해 북쪽의 켈레르메스 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길이 40.5cm, 폭은 22.2cm로 384.08g가량이다.

 원래는 원통형이었겠지만 1904년에 발굴되어서 당시에 그냥 핀 채로 보관되어서 여러분이 현재 보시면 그냥 장방형의 금제품이다.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겠지만....그래서 이 유물을 그냥 휙 보면 활집의 '밖'을 장식하는 유물인지 모르실 것이다.

 

 

그림 2.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흑해 북쪽, 켈레르메스 4호, 기원전 5세기, 이 유물은 원래는 활집이었기 때문에 둥글게 말렸다.

 

겉은 화려한 황금으로 꾸미고 그 안에는 가죽 혹은 나무 또는 나무껍데기로 만들었다. 사슴은 무릎을 꿇고 있고 사슴뒤에는 표범이 표현되었다. 이 유물의 원래 모습을 생각한다면 표범장식은 두 줄이 되고, 사슴문양은 3줄이 투조된 모습으로 설계한 것이 된다.

 

만드는 사람은 어디에 포인트를 둔 것일까?

표범일까? 사슴일까? 아니면 금딱지 보다는 안의 내용물에 더 신경을 썼을까? 하는..

보이는 것은 사슴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실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에 더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사슴만 그리면 끝날 텐데 구지 금박을 접어서 연결하는 부위의 작은 공간에 2줄의 표범을 촘촘히 새긴 것이다.

 

그리고 원래 중요한 것은 숨기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금딱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헤로도투스도 적어 놓았다. 아무도 별로 아직까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헛소리로만 여겼을 수도 있다....그리고 너무 머리가 아프다..어떻게 하지?.....

 

 

참고문헌

G Rausing, The Bow, Some notes Its Origin and Development.Acta Archaeological Lundesia 6. 1967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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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의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지요?

 

이 무덤에는 무덤방 속에 2개의 관이 있었고 소년과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중년인 남성이 각각 묻혔다. 소년의 관에는 목제칼이 있다고는 했는데, 앞서 살펴본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에서 출토된 금속제 칼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년 남성의 관에도 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앞에서 살펴본 2.5cm크기의 황금 장식판에도 칼을 차고 있는 전사를 표현할 정도인데...

그리고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불리는 각 지역의 스키타이문화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요소 중에 하나가 무기라고 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 청동칼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바로 옆에는 2호분이 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이 무덤속에는 철제칼이 아닌 청동제 칼이 확인되었다. 시신의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17.5cm의 단검(짧은 검)이 칼집속에 든 채로 확인되었다(그림 1,2). 청동제 칼이다. 칼집은 한쪽면은 목제이고, 다른면은 가죽제였다. 목제로 남은 면이 바깥이었는데, 원형의 단추가 3점 달려 있었다. 칼집의 반대편은 두터운 가죽으로 제작되었고 동그란 목제 단추가 칼의 뾰족한 부분과 가까운 부분에 붙어 있다.

 

청동칼은 손잡이와 검신이 한몸으로 제작된 것으로, 손잡이 끝에는 아무런 장식이 붙어 있지 않고 손잡이 부분에만 홈이 있다. 칼의 중앙에는 칼의 끝부터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까지 능이 서 있는 모습이다(그림 2-2).

 

그림 2.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 청동칼, 그림1과 같음

 

검집에 검이 들어가 있는 상태(그림 2-3)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검이 외부에 노출되는 부분은 날이 아니라 손잡이이다. 따라서 검에 어떤 장식적 요소를 더한다면 검의 손잡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유물이 그림 3의 유물이다. 알타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그림3. 알타이에서 출토된 청동칼, 손잡이에 그리핀이 부착되었다. 검코에도 기하학적인 동물문양장식이 표현되었다.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 청동칼은 알타이 지역 뿐만 아니라 타가르문화에서 많이 알려졌다. 타가르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 산이 아닌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분지에 알려진 문화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권) 중에서도 알타이 산에서 확인되는 파지릭문화에 해당된다. 타가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8~7세기 정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타이의 북쪽에 위치하는데, 비교적(상대적으로) 가깝다.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지역문화로 생각하시면 된다.

 

타가르 문화에서 청동검(그림4)은 전체적인 청동칼의 모습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출토품과 유사하지만, 손잡이를 많이 꾸민 청동검이 확인된다.

검을 잡은 부분과 검의 코 및 그 끝을 동물문양장식으로 장식되었다.

 

그림4. 미누신스크 분지 출토,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기원전 6~5세기

 

그림4의 유물은 손잡이 끝이 그리핀이 서로 마주보도록 설계되었다. 그리핀의 부리가 휘어져서 특히 윗부분이 아래부분을 감싸고 있다.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인 검 코에는 늑대가 표현되었다. 두 마리가 서로 대칭으로 있다. 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춘 채 이마를 맞대고 있다. 손잡이 부분에는 중앙에 홈이 손잡이 방향으로 깊게 파져 있다. 길이는 26cm이다. 검날의 중앙에 능이 확실하게 서 있다.

 

동물문양장식에는 마구, 장신구, 무기 등 이곳저곳에 모두 응용되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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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소장되었다.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총독이었던 가가린을 통해서 수집한 유물임을 알았다. 그 유물은 수채화로 그려져서 보관되었는데 수채화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필자도 수채화를 공간된 책(Scythians: 2017)을 통해서 공개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2017년 영국에서 열린 스키타이유물특별전이 그간 열린 전시회 가운데 가장 크게 열렸다고 전해진다.

 

가가린이 보낸 유물이지만 수채화에는 없는 재미있는 허리띠의 버클이 있다.

길이가 14.5cm, 무게는 180.1m이다.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었으며, 가가린의 목록에 10번째 유물로 알려져 있다.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주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 유물에는 뱀과 늑대가 싸우는 장면이다. 늑대는 다리를 구부린채 싸우고 있는데, 뱀은 늑대 몸통을 휘감고 있다. 뱀의 입은 열려 있고, 늑대 머리위에 있다.

뱀과 싸우는 주제는 시베리아 콜렉션 가운데 딱 2점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 하나이다. 그리스 유물에도 뱀이 등장할 때는 독수리와 뱀, 사슴과 뱀이 싸우는 장면만 알려져서 그리스와는 관계없는 유물이다.

 

그림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버클장식

 

이 유물은 거푸집을 이용해서 제작된 주물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유물의 주물은 세밀하지 않고, 표면을 다듬지 않은 상태이며, 광택은 이 버클을 오래사용한 결과이다. 이 유물에서는 늑대의 달걀모양 귀와 코 앞의 나뭇잎, 꼬리에는 다른 돌을 끼워 넣어서 표현했던 것인데, 상감기법이라고 한다(그림 2-1).

 

그림2.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버클장식, 그림1과 같은 유물. 1번은 그림1의 다른 면이다. 그림 2-1을 보면 늑대 코와 뱀 사이의 장식물이 확실히 나뭇잎임을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나뭇잎이 없었다면 버클로써의 역할을 못했을 것이다. 

 

이 버클의 뒷면(그림 2-1)에는 늑대의 앞발 아래에 거친 직조물이 붙어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직조물의 밀집도는 1㎠ 당 16×18정도이다(그림 3).

 

 

 

그림3. 시베리아 황금컬렉션의 유물에 부착된 직조물, 이 중에서 3번째가 뱀과 늑대 싸움의 버클에 붙어 있던 장식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앞뒤면을 다 봐도 걸쇠가 없다(벨트에 달려면 그 부분이 있어야 된다. 불룩 튀어나오면 반대편 가죽 벨트에는 구멍이 있으면 되고, 버클에 구멍이 있으면 반대편에 걸쇠가 밖힌 부분을 만들면 된다. 자신이 가진 벨트를 잘 살펴보시기를...)

 

이 유물은 주물해서 만들어낸 동물문양장식에 사각형 플레임은 나중에 땜질로 붙인 것이다. 짧은 면을 가장 마지막에 붙였다.  이 유물에서 벨트에 고정할 수 있는 공간은 늑대의 코 앞에 붙은 나뭇잎 사이(그림 2-1)의 둥근 원형 구멍이다. 뱀과 늑대사이의 나뭇잎이 있어야만 고정시킬 수 있는 구멍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고정시키는 것은 뱀이었고 뱀 바깥에 있는 사각형 프레임이 있어야 비로소 더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베리아 콜렉션에서 사각형 프레임의 버클 장식에는 둥근 원형의 구멍이 있는 경우가 또 있다. 이 유물에서 둥근 구멍이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른 빈공간이 많아서 인데, 다른 유물은 그렇지 않다.

 

디테일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과는 달리 말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말은 9마리가 들어가 있었으며, 5벌은 마구와 말을 치장하는 굴레장식 등이 완벽하게 치장되어 있었지고, 2벌은 말 옆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을 장식하는 굴레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된 것이 그리핀이었다.

그리핀은 상상의 동물이다.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이 한 형상으로 합체된 것이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 출토된 말을 장식하던 그리핀(그림 1,2)은 특징이 독수리 부리모양의 부리, 머리 정수리를 장식하는 상투, 목을 따라서 표현된 갈기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가장 유사한 것은 루덴코가 발굴한 투엑타 1호분(그림3, 그림 4-5)에서 출토되었다. 얼굴과 갈기모양 등이 유사하다. 특히 그림 3-5,6 그림 4-5유물은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과 같이 입체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목의 하단에는  날개부분에 착장할 수 있게 자루가 만들어졌다. 날개는 따로 제작되었다. 

 

그림3.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 장식.

 

그림4. 투엑타 1호분의 그리핀 장식. 5번 유물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 유사하다. 4번은 재갈멈치이다.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은 폴로시막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을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낸 책의 제목이다. 계속 저의 포스팅을 주시한 분은 아실 것이다. 필자가 해석을 해 놓았음으로..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의 이야기는 헤로도투스가 역사에서 4권 27장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폴로시막은 이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낸 것이다.

 

‘잇세도네스족 북쪽에 외눈박이 부족과 황금을 지키는 그륍스(그리핀)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잇세도네스족 자신들이며, 이것을 스키타이족이 잇세도네스족에게 듣고 우리에게 전했고, 우리는 또 스키타이족에게서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13장에는 아리스테아스의 서사시를 인용해서 잇세도네스족 너머에 외눈박이 아리마스포이족 너머에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리스테아스의 이야기와 스키타이족의 이야기가 다르다고 헤로도투스는 전한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잇세도네스 족은 대머리부족의 동쪽 땅에 사는 사람들이고, 대머리부족은 여러 스키타이 족 가운데서 가장 동쪽의 고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잇세도네스 족의 제사지내는 관습도 26장에 전해지는데,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족의 제사지내는 관습과 비슷하게 묘사했다.

 

고고학자료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의 기원은 근동이라고 불리는 서아시아지역, 그리스, 스키타이 기원설이 있다. 스키타이 유형의 그리핀 머리는 짐승 귀가 붙은 맹금류인데, 특히 독수리머리와 비슷하게 형상화되었다는 것이 식별되었다(포그레보바 1948).

그러나 초원지역의 스키타이문화에서 출토된 그리핀은 즈로 산양과 독수리의 결합이 많은데, 산양머리와 부리는 독수리로, 스키타이문화의 초기부터 나타나는 형태이고, 동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나타나는 그리핀은 독수리와 사자의 결합으로 기원전 6세기 말에서 기원전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고 지적되었다(시크루코 1982).

 

즉 그리핀의 기원은 스키타이문화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스키타이문화의 그리핀은 독수리머리에 짐승의 귀가 붙고, 몸통은 표범 혹은 호랑이인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바르코바 1987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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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3요소를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의 유물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유물 중에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 2인의 무덤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투부는 전투용 도끼라고 불리지만 무기만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례에도 사용되었던 정황이 확인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45세 가량의 남성관에서는 붉은색 바지옆에서 오른쪽 무릎과 같은 높이에서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가 출토되었다. 이 투부는 머리가 위쪽을 향했다.(아래포스팅에서 투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45~50세 남성의 무덤을 다시 보자.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오른쪽이 45~50세 남성전사이고, 오늘 설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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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투부

 

투부는 소년의 관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이 투부는 길이가 65cm가량이 나무손잡이와 도끼의 날이 함께 착장된 채 출토되었다. 도끼의 날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과 날 부분이 함께 주물기법으로 성형된 것인데, 철제이다. 손잡이의 끝에는 장타원형 안에 능형으로 침선을 한 표식이 새겨져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중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 투부는 주로 날이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이 보다 좀 더 작다. 좀 더 예리하고 작은 크기의 투부가 무기로서 사용하기에는 훨씬 유리한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는 이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그림2.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되는 전투용 도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는 도끼의 날과 그 반대부분이 전혀 다르다.

 

쿠바레프(1987)는 이 유물의 손잡이 단면에 주목했다. 그는 창과 같은 무기의 손잡이 단면은 둥근 것이 사용하기에 편하다고 하면서, 만약에 손잡이가 타원형이라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부는 전쟁이나 싸움할 때에는 주로 허리춤 벨트에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고정시켰다.

 

이 점은 투부의 출토위치나 상태로 보아서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의 손잡이는 타원형으로 빠르고 정확함을 요구하는 무기로 쓰기에 불편하다. 이 유물은 상태가 매우 좋은채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그림1에서 확인하면 날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무디고, 반대쪽도 거의 날이 서 있지 않다. 그림2의 도끼와는 사뭇다른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파괴력이 크려면 작고 예리해야 하는데, 이 유물은 다른 투부에 비해서는 크기가 크다. 어쩌면 장례식이나 의식 때 말을 죽이거나 혹은 사람을 죽일 때 사용했던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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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조각된 활집 장식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활집 옆에는 화살통이 놓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살촉이 소년의 관에는 5점, 남성의 관에는 7점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두 관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뼈로 제작된 것이었고, 활대가 붙어 있었다. 화살촉의 촉 부분은 단면이 삼각형(그림 1-1)이고, 자루를 끼우는 부분의 단면은 긴 네모꼴이다. 활촉의 길이는 6.5cm이다.

활대도 남아 있었는데, 활에 현을 끼우기 위한 부분(그림 1-7)과 활의 라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침선문양이 3줄씩 2군데 남아 있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과 활의 부속품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투엑타 1호분의 예를 보아서도 화살과 활집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한번 이미 언급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가죽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화살 부근에서 평면모양은 꽃 모양이고, 단면은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중앙에 구멍이 있는 활집에 달았던 벨트의 일부로 생각되는 목제 장식판(그림 1-6)이 출토되었다.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의 유적 무덤에서는 뼈로 만들어진 화살은 10개 내외로 확인된다. 간혹 청동제가 있기는 하지만 뼈로 제작된 것이 훨씬 많다(쿠바레프 1992, 코체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은 기원전 4~5세기이지만, 이미 앞서 포스팅 한 바와 같이, 철제로 제작된 재갈이 이 유적에서 확인되었고, 이 유적과 비슷하게 생긴 철제 재갈은 아르잔 고분의 26호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랴즈노프 1980).

 금속제를 사용했지만, 무덤에 부장된 화살촉은 골제를 사용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실제로 사용한 유물을 넣었기 때문에 무덤부장품으로 골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살던 집도 뜯어서 무덤방으로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싸움에 능한 사람들로 알려졌지만, 정작 무덤에는 뼈로 제작된 화살을 10개가 되지 않게 무덤 속에  넣었다.

 

그림2.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의 시베리아 황금 콜렉션 중에서..

 

참고문헌

 

쿠바레프 1992,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무덤 유적)

코체프 1987, Кочеев В.А. О костяных наконечниках стрел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из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 Проблемы истории Горного Алтая. Горно-Алтайск: Алт. кн. изд-во. Горно-Алт. отд., 1987. С. 55-60.(코체프 1987, 초기 철기시대 산악 알타이의 골제 화살촉에 대해서)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Аржан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Наука, 1980. 61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고분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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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투스의 역사 제4권 70장에는 스키타이 인들이 맹약을 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스키타이족은 누구와 맹약을 하든 다음과 같이 한다. 큼직한 토기 항아리에 술을 붙고 거기에 계약 당사자들의 피를 섞는다. 그들은 송곳으로 몸을 찌르거나 칼로 몸을 조금 베거나 하여 피를 뽑느다. 그리고 칼, 화살, 투부, 창을 항아리에 담그며 길게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계약 당사자들과 그들의 수행원들 가운데 요인들이 술과 피가 섞인 것을 마신다(헤로도투스 2009)’

번역서에 따라서 술은 포도주로도 해석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맹세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물을 솔로하유적에서 출토된 가로 세로 2.5cm의 황금제 치레걸이로 예를 든다. 솔로하 유적에서는 300여개의 작은 장식판이 출토되었는데, 피장자의 옷에 부착되었다고 본다(그림1).

황금치레걸이의 두 남성이 들고 있는 것은 뿔잔 1개이고, 술 혹은 어떤 음료일 것이다. 왼쪽남성이 차고 있는 것은 칼이 있지만, 주변에 다른 전쟁용 도구는 있지 않다. 두 사람은 머리스타일과 옷이 다르기 때문에 스키타이족과 다른 종족일 가능성이 많은데 먼가 협약이나 맹약을 하는 장면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헤로도투스가 묘사한 장면에서 이야기한 토기는 솔로하 유적 출토품에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어떤 맹세를 위한 장면임은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무기들을 담근 채 기도 한 후, 술과 피를 섞어서 마신다는 표현은 은유적인 것이다.

 

틀리기도 하지만, 맞는 것도 있다. 읽다가 보면,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림1. 솔로하 유적 출토, 1913년 베셀로프스키 발굴,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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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유물이 소장된 곳은 표트르 1세라고 불리는, 러시아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라고 하는 러시아 차르의 겨울궁전인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Hermitage ‘에르미타시’라고 쓰는게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데, 필자가 계속 에르미타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이미 한국에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대로 번역하면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수집품(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Великого, the Siberian collection of the Peter the Great )’ 이다. 현재 총 240점이 전해진다.

 

그는 1689년부터 재위했는데, 러시아 영토가 된 모든 곳의 민족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715년에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표트르에게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황금 유물 10점을 바쳤다. 표트르는 이 유물의 중요성을 바로 알았고, 비슷한 유물을 수집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718년의 날짜가 적힌 포고령에는 시베리아의 유물을 수집하고 출토품을 모으라고 강요했다. 특별포고령에 의해서 고대 유물을 숨기거나 녹이는 것을 매우 금지시켰다. 17세기 말경부터는 도굴로 엄청난 양의 황금유물이 황금을 얻기 위해서 녹여졌기 때문에 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1715년~1718년에 시베리아에서 가가린이 수집한 금제품 240개가 보내졌다. 가가린은 농민들로부터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농민들은 고분을 도굴해서 그에게 팔았다.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봉분이 있는 무덤은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도굴되었다.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1727년에 이 수집품들은 러시아의 첫 번째 국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Кунсткамера, Kunstkamera)(그림1)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그 뒤에 1859년에 제국 고고학 위원회에서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송시켜 보관했다.

 

그림 1.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유물이 처음 보관된 쿤스트카메라, 1741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과학아카데미 건물이었던 쿤스트카메라의 모습을 동판화에 새겨서 찍은 것이다. 현재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어 있다. Christian-Alber Wortmann작품. 47cm, 62.6cm

쿤스트카메라는 처음에는 매우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매우 커졌다. 1714년에는 수백마리 물고기, 새, 뱀이 항아리에 보존되었고, 1698년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가져서 기괴한 해부학 작품도 많다. 1716년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동물 등이 보관되었고, 1717년에는 동물 해부학표본, 식물과 나비 박제 등도 구입해서 전시했다. 식물동물표본 뿐만 아니라 각종 기계와 도구도 모았다. 쿤스트카메라는 에르미타주와 매우 가까운데, 한번 가보시길 바란다. 필자가 들렀을때는 한국관도 있었는데, 주로 민속품 등이 전시되었다.

 

시베리아 콜렉션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의 스피친이라는 고고학자가 표트르 1세의 유품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 시베리아에서 온 골동품이 담긴 소포, 여러 편지와 목록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스피친이 이 유물들을 시베리아 콜렉션이라고 했고,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함께 붙여서 그를 기념했다.

 

쿤스트카메라에 유물이 있는 동안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인 흑해북안의 쿠르간 발굴유물도 함께 보관되었는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과 함께 에르미타주에 보관되었다. 그래서 에르미타주에 시베리아 유물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 고분의 유물도 함께 있게 되었다.

 

표트르 1세가 남긴 편지 등에서 알아낸 것은 시베리아 수집품의 출토지역은 가가린이 총독으로 있던 토볼스크와 톰스크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 발굴품을 토대로 시베리아 콜렉션은 오비강, 이르티스 강, 알타이의 서쪽 지대와 현재 카자흐스탄 북부(시베리아 남부)라는 주장이 강한데, 이에 대한 반론도 크다고 한다.

 

어쨌든 시베리아 콜렉션을 두고 이견이 없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라는 점이다.

 

 

그림 2.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5.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6.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7.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8. 1730년대에 그려진 황금유물수채화, 에르미타주 소장.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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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말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말 9마리가 묻혔다. 7마리분의 마구가 확인되었는데 5마리는 착장된 채 였고, 2벌은 말 옆에서 확인되었다.

말을 부리는 데 기능과 관련된 마구 및 이를 뒷받침 하면서 장식을 하는데 담당한 굴레(말꾸미개는 이미 소개 했다. 그런데 말무덤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유물은 방패 였는데, 이 방패는 안장에 묶인 채 부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안장이 있었다는 이야기 인데, 이 유적에서는 안장을 덮은 안장꾸미개가 앞서 설명한 별명 ‘얼음공주’에서도 출토되었는데, 훨씬 화려하다. 펠트에 동물문양 장식의 아플리케를 덧붙인 정도이지만, 이 유적의 유물은 ‘치렁치렁’하게 장식했다.

 

 

말은 부장될 당시에 등이 위로 가고, 다리는 굽히고, 머리는 내린 자세로 매장되었다. 말꼬리는 땋아서 말총으로 처리되었다. 말머리와 두 전사의 머리는 같았는데, 동쪽 방향이었다. 그러나 말 부장공간을 덮은 돌의 무게와 일시적으로 무덤 내부가 녹으면서, 말과 관련된 도구들의 위치는 뒤엉킨 상태였다.

이 무덤에는 가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마구와 관련된 유물을 연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안장덮개는 두 장의 펠트를 맞대어 꿰맨 후 그 안에 잡초를 넣어 쿠션처럼 만들었다. 4장이 출토되었다. 말 안장을 구성한 가죽은 이미 없어졌지만, 안장 덮개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안장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두꺼운 펠트로 덮혔고, 그 위에는 ‘메달’이라고 불리는 마름모형태의 장식을 덧붙였다. 안장의 장식하는 부분으로 생각하시면 된다.

안장덮개 가운데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62×56.5cm(그림 1-1)이고, 황색계통의 펠트로 제작되었다. 덮개의 상단은 꽃잎 4장이 있는 꽃으로 장식되었고, 사람 눈 모양의 안장장식 메달(그림 1-2)이 붙어 있다. 메달은 날개를 펼친 그리핀이 서로 대칭되는 방향(그림 1-2)으로 배치되었다.

물고기 모양의 펠트제 치레걸이는 여러 색의 펠트를 오려서 만들어 붙였다. 전체적인 모양은 물고기이지만, 여러 동물의 요소가 들어 있다. 눈은 둥글고 눈 안에 눈동자를 표현했다. 쉼표 모양의 코도 표현되었다. 눈 아래에는 4개의 부채꼴 모양의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는데, 아가미를 표현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양편에 각각 3개씩 표현되었으며 가장 중앙에는 도식화된 그리핀을 형상화 했을 가능성이 크다(그림 1-3).

 

 

왜냐하면 안장덮개는 모두 동물모양장식의 치레걸이가 붙어 있는데, 3점의 안장덮개는 물고기 모양이 붙어 있고, 1점은 늑대이다. 물고기모양의 치레걸이 중에 한 점에는 정확하게 중앙에 날개를 접고 있는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어서, 나머지 2점의 물고기모양 치레걸이는 중앙에 도식화 된 부분이 그리핀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안장덮개의 메달모양은 그리핀 2마리가 서로 대칭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이를 좀 더 추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덮개 복원도 1

 

두 번째 말 안장덮개는 꽃잎 모양 아플리케를 붙여서 제작한 펠트제 안장덮개(그림 2-1)이다. 안장덮개의 앞쪽 장식은 메달모양인데, ‘S’자모양으로 두 마리 그리핀이 대칭되게 서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그림 2-3). 물고기 장식 4마리가 함께 부착되었다. 길이 80.5cm, 머리너비 17cm인데, 중앙에는 그리핀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얼굴은 독수리이며, 귀가 달렸는데, 2마리가 한쌍이고, 4마리가 물고기 장식 중앙에 붙었고, 꼬리까지 표현되어 있다(그림 2-2).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덮개 복원도 2

 

안장덮개 가운데 안장의 앞이나 뒤에 메달이 달리지 않고 덮개만 2조각이 남아 있는 유물도 있다. 그 위에는 산악염소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그림 3), 큰 뿔, 꼬리와 턱수염이 표현되고, 날개가 표현되었다. 염소와 날개장식의 조합은 파지릭 유적의 2호 남성미라의 오른손에서 확인된 것이다.

 

그림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산악염소 아플리케 장식, 안장덮개 자체는 그림이 없었다.

 

메달(그림 4-3,4)과 안장덮개의 물고기모양 치레걸이(그림 4-1,2)로, 그리핀 장식이 표현된 유물도 확인되었다. 중앙에 4마리 그리핀이 붙어 있는데, 머리를 뒤쪽으로 향해서 날개방향으로 표현하고, 깃털을 아래로 처지게 표현했고, 꼬리와 발톱이 표현되었다. 메달에도 똑같은 표현의 그리핀이 확인되었다.

 

모든 메달과 치레걸이의 가장자리는 감침질로 두가지 색 실로, 한 땀씩 돌려서 마감되었다(그림 4-4).

 

말에 표현된 그리핀, 물고기 모양은 도대체 어떤 학문으로 설명이 될까?

서로를 마주보는 타원형 안에 그려진 두 마리 그리핀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늑대모양 치레걸이가 붙은 안장은 다음에 소개하겠다..ㅋ )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안장 장식 치레걸이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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