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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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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가 뭍힌 곳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이다. 발굴된 여느 스키타이 문화(정확하게는 파지릭문화)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무덤구덩이 안에는 나무 무덤방이 만들어지고, 그 밖에는 말이 매장되었다.

 

말이 매장되는 무덤은 대부분 한 마리 이상 매장되는데, 멀지 않은 곳에 묻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도 말6마리가 확인되었다. 미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남성전사 2명이 함께 묻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도 말이 9마리가 들어갔다.

 

그러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의 상태가 좋지않아서 말이 2마리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잘 알 수 없다. 스키타이 사람들은 매우 공간을 아껴서 사용한 것 같다. 말의 매장공간은 좁은데 많이 밀어 넣는다. 구덩이가 커지면 노동력도 들고 무덤방도 커져야 할 것이니, 아마도 이런 것들은 미리 계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이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말의 두수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과 관련된 마구는 말에 착장한 것이 아니라 벗은 상태에서 1벌(그림 1)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북서쪽 모서리에서 전부 출토되었다. 굴레장식 가운데 몇 점은 말 부근에서 출토되기도 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마구 세트

 

 

 

말의 재갈은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고, 말의 굴레에 달았던 J자형 굴레장식은 멧돼지 송곳니처럼 보이지만 나무로 제작되었다. 말의 이마를 장식한 당호(그림 1에서 둥근 형태)는 만화에 나오는 UFO모양과 같은데(ㅋㅋ ), 재갈멈치와 함께 나무를 깍아서 만든 것이다. 당호는 납작한 원판 위에 약간 두툼한 원판을 붙인 형태로 얼음공주 무덤 ,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도 말이 착장한 예가 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무덤 속의 출토유물, 유물배치도에서 1~5번이 마구 및 굴레장식이다. 4번은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라고 적혀 있었으나(먼저 설명한 것) 실제로는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멧돼지 송곳니 모양이라고 한다. 원고를 적은 사람과 도면을 만든 사람이 달랐을 것이다.ㅠㅠ

 

 

재갈멈치는 한쪽 끝에 팔메트 문양으로 만든 것이다. 팔메트 문양의 재갈멈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데, 재갈멈치 양쪽 끝이 장식되었다. S자형으로 굽은 모양이었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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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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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철제로 제작된 유일한 유물은 앞서 본 목제 쟁반 위의 칼과 재갈(그림 3)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철제재갈

 

이 점은 앞서 살펴본 남성전사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고리가 둥근 재갈이 청동으로 제작된 것과는 다르다. 쿠바레프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동재갈이 고식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출토된 철제재갈은 새로운 스타일로서 새로운 문화요소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철제 재갈은 청동재갈에서 형태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쿠바레프 1992).

 

철제무기는 이미 아르잔-2유적에서 처음 출토되지만, 재갈은 전부 청동제였다. 얼음공주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재갈도 청동제였다. 그렇다면 베르흐 칼쥔 II유적 기마전사는 자신의 말에 가장 혁신적인 재갈을 물렸을 것이다.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J자형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멧돼지 송곳니 모양 끝에 그리핀 얼굴이 그려진 채 출토된 적이 있다. 유물의 전체 평면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이 유적에서는 그리핀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같은 모양의 이마장식, 재갈멈치 등이 출토된다는 점으로 보아서 충분히 그리핀을 상징하는 유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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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인 파지릭 유적은 192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발굴은 1947년부터 이다. 하지만 발굴은 1850년에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 ‘제국고고학위원회’를 만들어서 흑해북쪽의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1929년은 러시아혁명 후로 레닌이 죽고 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고, 스탈린이 집권했던 시점이다. 스탈린 집권기간 동안에 파지릭 유적은 발굴되었다. 스탈린은 사람을 아주 많이 죽인 지도자이다. 레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권력을 잡은 수단은 등 뒤에서 칼을 꼽는 것이다. 인간백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싸워서 이겼지만, 자국민이 너무 많이 죽어서 그게 이긴 것일까 하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러시아인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러시아인 3인중에 한명이다(2008년 필자가 유학당시, 러시아 국영tv 방송인 ‘러시아(РОССИЯ)’에서 했던 조사였는데, 아침마다 위대한 러시아의 위대함을 알리는 역사적 유적과 인물을 꼽아서 보여주었다. 아침마다 보면서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하고 되는 걸 경험했다. 아직도 스탈린이라니..이러면서. 복잡한 감정이었다.) 독일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기념일은 2차대전 종전일이 아니라 독일과 승전일인 5월 9일이다. 스탈린은 현대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이 부분이야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일 테니...(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소련 혹은 러시아에 대한 인물의 이미지는 전부 미국언론을 통해서 알려져서, 미국입장에서 알려진 이미지이다. 실제 그 나라 감정과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스탈린 집권기에 알타이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이상한 감정이 문득 든다.

 

2500년 전 유적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현대사로 넘어 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1929년에 그랴즈노프가 발굴한 유적은 이미 도굴당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말 10마리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고 필자가 공개했다.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여러 마리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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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은 늘 앞에 붙는 수식어가 ‘황금’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여드린 유물은 거의 대부분 나무장식이었다. 그렇다면 황금은 어디에?

드문드문 말씀드렸지만 금박은 쉽게 찢어져서 벗겨진채로 많이 발견된다. 특히 1호분에는 금박이 많이 발견되었던지, 그 부분에 대해서 벗겨진 금박종이가 많다는 내용도 별도로 적어 놓았다.

여러분의 의심을 약간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서 4호분에서 가장 금박이 많이 남은 유물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유물은 말의 얼굴에 달렸던 굴레장식이다. 파지릭유적의 1호분에서 4번째 말의 굴레장식이라고 분류된 말이다. 비교적 많은 금박이 남아 있다(그림 1). (알타이에도 황금덩어리로 만든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있다. 앞으로 소개할 예정임...)

 

 

그림1. 파지릭 유적 1호에서 출토된 말의 굴레

 

굴레장식에 관통하는 가죽줄은 뺨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가죽띠 2줄이고, 코로 돌아가는 부분에도 굴레장식이 부착되었다. 굴레장식은 산양머리와 팔메트 문양이다. 산양머리에는 가죽뿔이 붙어 있다. (그런데 가죽뿔이 빠진 왼쪽(우리가 볼때)의 굴레장식은 필자가 보기에는 새모양으로도 보인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다.)

 뺨으로 돌아가는 굴레는 2줄로 재갈멈치로 연결된다. 재갈멈치는 끝 부분에만 동물문양이 붙어 있는 유물과는 달리 재갈멈치가 통째로 산양을 표현했다. 앞다리는 몸 아래로 당기고, 뒷다리는 뒤로 뻗어서 몸을 수평으로 표현해서 산양은 뛰는 모습인지, 나는 모습인지를 표현했다. 재갈멈치가 대체로 막대기모양인데, 이 부분에 동물을 통째로 표현한다고 산양의 무릎을 꿇은 모양으로 표현하면, 다시 말해서 산양 몸을 수평으로 만들지 않으면 기능적인 부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세의 굽동물의 표현은 사슴돌에 이미 있다. 있지만 그것을 재갈멈치에 사용하는 것은 다른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유물의 이마장식은 물방울 모양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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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에는 사람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식상하시겠지만). 말의 숫자는 무덤의 주인공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제까지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5기 소개 해 드렸다.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 1기, 남성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아이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우코크 고원에 위치했고,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5호분에는 모두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으며,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다.

말은 대부분 재갈과 굴레장식을 착장했다(물론 하지 않은 채 무덤에 들어간 말도 있다.)

 

오늘은 약간 흥미로운 말의 굴레장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지릭 1호분은 아직 무덤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에 동물문양 대신해서 사람얼굴을 5개 조각해서 달아 놓았다. 말의 굴레장식에 매단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이마와 콧잔등에 달리는 장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1호에서 출토된 말의 얼굴모양굴레 장식은 얼굴모양이 달라서 4명의 얼굴이 확인된다. 콧잔등을 장식 하는 사람(그림 2-4)과 말의 귀 아래를 장식하는 사람(그림 2-1,2)은 서로 다른 얼굴이고 Y자형 장식 위에 붙은 사람(2-3)은 양쪽이 같은 얼굴(그림 1)이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이 얼굴모양 마스크를 자세히 보시면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이 대단히 세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두 눈과 특히 광대뼈 표현이 차이가 크다. 입모양도 4명이 약간씩 다르다. 물론 얼굴의 길이와 너비의 비 차이가 달라서 인종이 다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콧잔등을 장식하는 사람얼굴(그림 2-4)이 특히 다른데(눈, 코, 입, 수염, 얼굴모양), 말의 주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말의 굴레 착용은 그림 3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세부(그림1과 동일유물), 목제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성얼굴의 머리와 턱수염사이의 둥근 원이다. 이미 여러번 보여드린 호랑이나 맹수의 귀와 같은 표현이다. 만약에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다면, 단순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파지릭 5호에서 확인된 반인반수를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5호분에서 남성의 얼굴이 표현된 벽걸이가 확인되었고, 1호분에서 남성 얼굴이 표현되었고, 그 벽걸이에서 사슴 뿔을 뒤집어 쓰고, 동물문양의 옷을 입은 반인반수의 남성도 확인되었다(앞의 포스팅에서 확인바랍니다.).

 

전해지지 않고, 확인되지는 않지만 2500년 전 그들의 ‘이야기’속 컨텐츠 였을 것이다. 이런 게 신화가 아니었겠는가? 또한 동물에 대한 관념을 표현한다고도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이 같은 동격이라고 생각한 것이지 않을까?

 

 

 

그림 3. 말의 굴레 장식 및, 안장 등 착용 예, 그림 1을 그림 3의 말 얼굴에 대입하면 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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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마차. 바퀴는 바퀴를 구성하는 프레임 2개로 제작되었다.

 

 

그림 2.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마차의 견인 막대기(1)과 바퀴(2)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파지릭 유적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가 출토되었다. 마차는 원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바퀴가 4개 달려 있고, 바퀴는 바퀴살이 있는 구조이다.

 

마차의 바퀴는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다.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축은 6개의 축으로 연결된다. 견인하는 막대기와 멍에가 있다. 마차의 기본 축은 세로 두 개의 세로 방향 막대기가 중심을 잡는데 하단 막대기는 지지역할을 하며 126cm, 상단은 92cm이다. 앞 뒤 바퀴를 연결하는 막대의 길이는 178cm이다. 이 막대는 흔들림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바퀴의 직경은 160cm가량이고, 바퀴의 프레임을 만드는 가장자리는 길이 66cm이고, 불규칙적인 원통형 모양이다. 바퀴의 가장 중앙 직경은 12cm이고, 이곳에서부터 고정해서 바퀴의 프레임과 연결되는데, 그 곳의 바퀴 살의 간격은 24cm이다. 바퀴의 프레임은 두 개의 구부러지는 막대(각각 290cm)로 구성되는데, 폭은 7cm이고, 두께가 5.6 cm이다. 바퀴 둘레가 겹쳐지는 부분은 30~40cm에 막대기와 벨트로 고정된다(그림 1). 프레임에는 길이 5cm, 너비 1cm로 바퀴살을 넣는 구멍이 있다.바퀴의 살은 모두 34점으로 길이는 70~71cm가량이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의 구조

 

바퀴가 큰 데 비해서 마차의 크기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앞 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는 약 6cm가량이다. 견인바를 묶는 곳에는 앞 차축 쿠션에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마차의 몸체는 다소 복잡하다. 상 하단 두 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단은 128× 238cm, 상단은 128×206cm이다. 상하단은 작은 기둥처럼 생긴 발러스터 연결되어 있는데, 높이는 27cm이다. 모두 21개이다.

 

하단프레임에는 세로 막대에 4개의 발러스터가 착장되어 있다. 3개는 앞쪽에 1개는 뒤쪽에 위치한다. 상단 프레임에는 6개의 가로 막대가 운전석 뒤쪽에 세로 방향의 막대기 안쪽으로 착장되어 있다. 발러스터는 가로 방향의 상하 막대기에 삽입되어 구성되는데, 운전석 뒷자석의 프레임은 마차 길이방향의 막대기 안으로 끼워넣게 설계 되었다.

하부프레임의 운전석 뒤쪽에는 길이 22cm의 발러스터가 3개 삽입되어 있다. 직경이 1cm이다. 발러스터는 가로방향의 막대기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데, 이 발러스터 사이는 끈으로도 고정된다.

 

운전석 바로 뒤쪽부터 상단프레임이 시작되는데, 길이가 27cm인 가로 막대가 사이에 6개의 납작한 막대기가 삽입되어 있다. 운전석 바로 뒤쪽의 가로 막대기는 발러스터 3개 및 끈으로 연결되었다. 상부 프레임에는 세로로 14개의 막대기가 세워져서 선반과 같은 구조인데, 막대기 사이는 벨트와 같은 역할을 파는 격자판이 하단을 고정하고 있다. 이 격자판의 전체 둘레는 3.5m이고 탄성이 좋은 막대를 이용했다. 직경 6-7mm의 나무막대기를 세로로 고정해서 격자 모양이 되도록 했고, 격자 간의 길이는 4~4.5cm이다. 세로방향의 막대기는 짧게 끊어져서 가로 방향의 막대기와 패드로 연결되었고, 어떤 곳은 천으로도 연결시킨 부위도 있다. 격자판은 전체가 붉은 색으로 칠해졌다.

운전자의 좌석에서 다리를 놓는 난간과 상단의 지붕은 두께 1cm가량의 널빤지로 덮여 있다. 측면에는 구멍을 통해서 끈으로 묶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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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알타이 산 중에서도 해발 높이 1500m가량의 파지릭 고원에는 2500년 전 스키타이 시대에 살던 사람이 묻힌 무덤이 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공통적으로 묶는 일종의 상징 같은 것이 있는데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깍두기 같다. 단독으로도 확인되기도 하지만 주로 무기나 마구에 장식물로 달리기도 하고, 옷, 안장덮개, 방울, 거울, 목걸이 등 다양한 곳에 표현된다. 스키타이 문화권은 흑해북안, 쿠반 지역(코카스서 산맥, 지금의 그루지아), 카자흐스탄, 알타이, 미누신스크 분지 등에서 나타난다. 이 지역을 아울러서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한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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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포스팅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표를 소개한 바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포스팅에 표시해 두었고, 아래표는 혹시나 제공해 드린다..

 

 

지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분포범위, 위 포스팅의 표와 비교해 보시면 재미있으실 것이다. 필자는 표를 지도로 인식한다.

 

물론 모든 지역의 문화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들 문화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있어서 문화권이라고 한 것이다. 비슷한 요소가 나타나는 이유는 서로 ‘contact’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SNS가 없으니 비대면 접촉이 아닌 대면 접촉이었다. 혹은 실제로 만난적은 없지만 전해 들은 사람들이 또 비슷한 유물을 생산하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인간의 활동영역은 매우 넓었다.(우리는 남북이 끊겨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섬으로 여기면서 생각이 닫히는 경우가 많다.)

 

파지릭 고원의 파지릭 유적에는 5호 무덤에서는 4바퀴 마차가 함께 부장되었다. 아마도? 유라시아를 돌아다녔겠지? 알타이 산에서 어떻게?

알타이 산맥은 높지만 바위산 마다 교통로가 있다. 그 곳에서 암각화가 많이 발견된다.

 

 

아뭏튼 파지릭 5호분에는 마차가 매장되었으니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의 평면도

 

무덤의 상부 직경이 42m, 높이가 3.75m가량 된다. 5호에는 무덤의 상부를 덮은 돌에서 연접한 남쪽에 둥근 원형으로 돌이 둘러있는 것이 확인된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돌 무지의 직경은 3.5m~5.7m이고 간격이다. 이러한 현상은 투엑타 유적에서 확인된다.

 

무덤방의 크기는 8.25×6.65m이고, 무덤바닥은 땅의 표면 기준으로 4m가량이다(그림1).

 

그림 2.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양탄자의 아플리케 장식.

 

 

 

 

참고문헌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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