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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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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무덤을 많이 발굴했지만, ‘그’가 남긴 책의 제목으로 ‘차르(цар)’라고 붙인 경우는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1984년 사망).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르면서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파지릭 유적은 1929년에 1호분을 발굴하고 그 뒤에 1947~1948년에 다시 조사해서 책은 1950년에 나왔지만, 1980년에 나온 아르잔 1호 보다는 훨씬 상세하고 책의 내용과 인쇄상태도 훨씬 좋다. 그 사이에 소련의 정치 경제가 많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정치경제안정은 학문성과로 바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르잔 1호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전해지는 정보가 적어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물론 주인공 남녀의 중심무덤방이 도굴이 심하고 빈 방이 많다고 해도, 말 170여 마리에 대한 정보 혹은 말이 확인된 무덤의 사진이나 그림은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가장 중심 무덤방, 13번 무덤방, 31번 무덤방을 제외하고 말만 부장된 무덤을 어제 표로 소개한 바 있다. 말만 부장된 무덤방의 말도 재갈과 재갈멈치 등 마구를 착장한 상태였다. 굴레에는 멧돼지송곳니를 달아서 장식하는 점은 인간과 함께 묻힌 말과 같다.

 

그런데 34a 무덤방에서는 특이한 청동제 재갈멈치가 확인되는데, 3개의 구멍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그림 1-1). 책에 적힌 내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다 한다. 앞서 계속 포스팅한 재갈멈치와는 차이가 있다. 별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냥 3공 재갈멈치와는 다른 거푸집(청동을 부어서 틀을 만드는 곳)을 썼을 텐데, 거푸집 만드는 단계부터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무덤방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말은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무덤에는 너무 경의 수가 많다.

그림 1-5,6도 앞서 본 3공 재갈멈치와 다르지만, 이 유물은 소재가 청동이 아닌 뼈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아르잔-1호 출토 재갈멈치(1, 2-34a번 무덤방 출토, 3-5: 37번 무덤방, 6-5번 무덤방 출토)(5,6-뼈, 그 외 청동)

 

이 무덤방이 위치한 봉분 위에서 그림 2-2의 사슴돌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은 주로 사슴이 많이 그려져셔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슴돌에는 무기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무기의 형태를 보고 사슴돌의 연대를 정한다. 이 사슴돌에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청동거울에 그려진 등에 혹 달린 사슴 3마리와 멧돼지 6마리가 남아있다(가장 왼편의 사슴 옆에 엉덩이와 입만 남은 사슴이 있다). 사슴과 멧돼지 위 쪽에는 검과 알 수 없는 막대기가 달려 있다.

 

이 유적에서는 멧돼지송곳니로 굴레에 달아서 장식을 했다.

멧돼지는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기원전 5세기에 알타이 지역에 존재했던 파지릭 문화의 유적에서는 몇 점(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의 가슴에 달았던 1점)출토되지 않았지만, 아르잔 1유적에서는 아주 많은 양의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굴레 장신구가 출토된다. 멧돼지 모양의 장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2. 아르잔 및 그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1-소스노프카 발견(아르잔과 가까운 곳)2- 아르잔1의 봉분 출토(사각형 돌을 펴서 그린 그림), 3, 10-오르삭-악시 출토, 4-투란(아르잔 무덤에서 우측에 위치한 마을이름) 발견 사슴돌, 5,6,8-아르잔과 가까운 벨로예 호수 출토, 7-우육고원 발견, 9-사말가타이, 11-볼쇼이 아직, 12-친가타그, 13-우육-아르잔 출토

 

 

아르잔-1호의 정보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충족해 줄 유적이 아르잔-2호이다. 아르잔-2호는 연대는 1호에 비해서 늦지만, 황금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은 유적이다. 멧돼지 모양의 황금 장신구도 포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멧돼지, 고리트(활통)에 붙인 장신구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장식은 직접적인 유물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호랑이와 지지대 위에 올라간 청동 산양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수 많은 멧돼지 장식과 사슴돌의 사슴도 포함시킬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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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투바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대략 2800~2900년 전 쯤인데, 필자는 말하기 좋게 3000년 전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연방국가이고, 소수민족들이 중심이 되는 공화국이 러시아연방국가 안에 있다. 투바도 투바공화국이다.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와 비슷하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자치적인 권력을 인정해준다. )

 

그곳은 러시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해발 1050m의 투란-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에서는 3000년 전에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에 설치되었는데, 나무로 만든 무덤방 70여개 이상으로 낙엽송 통나무 6000개 이상이 사용되었다.

 

무덤방은 앞에서 살펴본 우코크 고원과 파지릭 계곡의 무덤과는 달리 땅을 파지 않고 땅위에 설치되었다. 가운데 중앙의 무덤방을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 네모꼴로 가로와 세로방향을 한 단씩 교차시켜서 쌓아올렸는데, 높이 2.6m이다. 중심부의 무덤방 뿐만 아니라 이 무덤의 모든 무덤방은 지상위에 가로와 세로 나무를 교차시켜서 쌓아올렸다.

이 점은 메인 무덤방의 단면도(그림1)를 보면 알 수 있다. 무덤방의 동서방향 단면은 그림 1-1인데, 이를 복원하면 그림 1-2이고, 무덤방의 남북 단면은 그림 1-3이고, 이를 복원하면 그림 1-4이다.

 

메인 무덤방의 외곽의 무덤방을 1차, 안의 무덤방을 2차무덤방이라고 하자. 내부에 있는 무덤방의 바깥에는 돌을 쌓아서 고정시킨 것(그림 1-2)이 관찰된다. 이는 무덤의 평면도에도 확인된다.

 

무덤에서 70여개의 무덤방 가운데 중앙의 메인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말이 매장된 무덤은 13곳이고, 그 중에서 3곳에는 사람도 함께 매장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말이 매장된 곳은 메인 무덤방 바로 옆에 위치한 무덤방 2번(그림 3)이다. 30마리의 말과 함께 골제와 청동제 재갈, 3공 재갈멈치, 골제, 청동제 화살촉, 장식드리개(행엽)과 환 등이 출토되었고,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도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아르잔은 직경은 120m이지만, 높이는 3~4m밖에 되지 않는다. 봉분은 무게 20~50kg이고 두께 20~40cm의 납작한 돌을 쌓고 그 위에 작은 자갈돌을 덮었다. 이 외부에는 납작한 돌을 높이 2.5m까지 쌓아 올린 것이다(이 부분은 남아 있는 도면이 없다). 구글 위성사진에 남아 있는 흔적은 바로 이 부분이다.

 

무덤의 외곽에는 15~30m떨어진 지점에 2~3열로 석열이 돌아가는데 길이가 300m이다. 이 곳을 동남쪽 방향에서 조사해 본 결과 돌무더기로 확인되었고, 유물은 없었고, 염소, 소, 말 멧돼지 등 각종 동물뼈가 확인되었는데, 의례와 관련된 제사기단으로 추정한다. 이 석열은 무덤을 전체 다 돌아가지 않고 무덤의 반 정도만 돌아갔다.

무덤주변에 동물뼈를 뿌리는 관습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도 관찰된다.

 

 

 

그림 1. 아르잔-1호분의 단면도(1: 동서방향단면도, 2: 1동서방향 단면도 복원도. 3: 남북방향단면도, 4: 남북방향단면복원도, A~D는 그림 2와 비교하시기 바람)

 

그림 2. 아르잔-1호분의 메인 무덤방.

 

그림 3. 아르잔-1호분의 무덤방 2번, 이곳에서 호랑이 장식이 출토되었다.

 

그림 4. 아르잔-1호분의 무덤내부, 평면도에서 가장 바깥쪽의 무덤라인 안쪽으로 점선이 있는데, 높이 2.4m의 석열이 돌아가는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그림 5. 아르잔-2호분의 무덤내부, 아르잔 1호분의 무덤 외곽도 이런 납작한 돌을 쌓아올려서 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무덤은 1호에 비해서 대략 200년 가량 늦고, 무덤구조도 차이가 있지만, 같은 지역에서 확인되었고 납작한 돌을 쌓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그레르, 2017,Чугунов К.В.,2017,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그레르, 2017, 투바의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문화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 부터 흑해북안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로마노프 왕조 멸망 후)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시베리아에도 스키타이 문화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 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명칭도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공동체 등 여러 명칭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계속해서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러시아어가 워낙 생경해서 쉽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짧고 간결하고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르잔 1유적을 발굴하면서다. 1971~1974년에 발굴된 유적인데, 나이테연대측정법으로 기원전 9세기 중반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의 크기와 규모도 대단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았으나, 특히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왜냐하면,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어 있는 황금의 동물문양장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림 1). 이 유물은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름이 들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가가린은 소련 아니 인류 역사상 처음 우주로 간 사람의 성도 가가린이다)이 1716년에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로 알려졌다. 그는 시베리아의 토볼스크 라는 지역에서 근무했다. 그곳 농부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표범 혹은 호랑이 장식. 10.9×8.9cm

 

아르잔 1 유적의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직경이 25cm가량이고, 말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호랑이 장식은 에르미타주 유물에 비해서 2배나 크다. 에르미타주 소장품은 허리 버클에 붙었던 장식이고, 아르잔 유물은 말의 가슴에 착장했던 것이다. 말과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유물은 차이가 있다. 크기와 재질, 용도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 표현 기법에도 차이가 있다. 청동제 호랑이는 더 크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이빨과 입술, 발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눈,코,입이 과장된 것은 두 점의 공통점이다. 반면에 꼬리는 황금 유물이 좀 더 현실적이다. 황금 유물의 앞발과 뒷발, 꼬리 등의 빈 공간은 보석류를 상감한 것이다. 현재 보여지는 뒷 판은 상감 후 땜질로 마감했다고 한다. 또한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청동제 유물은 대체로 얼굴이나 몸통이 편평하지만, 황금제 유물은 불룩하게 솟아 있고, 특히 얼굴과 앞 다리, 엉덩이의 근육을 표현해서 매우 볼륨감 있는 느낌이다.

 

 

그림 2. 아르잔 1 출토 청동제 말 가슴 장식

 

아르잔 유적의 가장 중간에 주인공이 묻힌 방 바로 옆에 2번 무덤방(그림 3)은 말이 30마리 들어 있는 무덤이다. 이 무덤방은 8×7.5m이고 높이는 0.9m이다. 말 무덤의 크기가 이 정도이다. 전체 무덤의 크기는 직경이 120m이고, 높이는 3~4m이다. 무덤 전체에 사용된 통나무는 6000개가 넘는다.

무덤에서 시신을 안치하는 곳을 ‘매장주체부’라고 하는데, 이 유적은 매장주체부가 지하가 아닌 지상에 설치되었다. 다시말하면 무덤구덩이를 파지 않았다. 무덤방이 70개 정도 있었는데, 같은 봉분(무덤을 불룩하게 덮은 흙) 아래에 있었다.

 

 

그림 3. 아르잔 1 유적의 무덤방 2번, 말 무덤. 말 30마리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남겨진 화려한 무덤이다..누군가의 희생으로 알아가야 하는...장례식은 산 자의 잔치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50, Грязнов М.П. 1950, Перв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Ленинград.(그랴즈노프 1950, 파지릭 1호분, 레닌그라드)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에는 인간과 함께 동물이 함께 묻혔다. 실제로 묻은 동물은 주로 말이었지만, 말과 인간을 장식하는 곳곳에는 그 외의 동물이 형상화되었다.

크게는 세 가지 동물로 구분되는데, 굽동물, 맹수류와 맹금류이다. 상상의 동물인 그리핀은 이 동물들이 합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 맹수류는 늑대, 호랑이(혹은 표범)과 곰이 대상물이다. 늑대와 호랑이는 주둥이가 긴 동물은 늑대 그 외는 표범 혹은 호랑이로 보고 있다. 곰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필자는 보지 못했다.

 

어제 설명드린 아르잔 1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몸을 동그랗게 만 표범 장식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유물이다. 벨트장식이라고 불리는데, 말의 안장과 연결되어 말의 앞 가슴을 장식하는 유물로 생각된다.

 

2020/04/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파지릭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기원전 5세기 가량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는 이르면 기원전 9세기 까지도 올라가는데, 그때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을까?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동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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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르잔 1 유적에서 출토된 표범장식을 착용한 말

 

 

그림 2. 그림 1과 유사하게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맹수류이다. 1-쿠라코프스키 유적, 2-퍄노프카 유적, 3-이르쿨, 4-파지릭 유적, 5-이식 유적, 6-브류메펠드, 7-베레지노프카,8-바르나, 9-투엑타, 10, 11, 퍄티마리 유적(페레보드치코바 그림)

 

볼가 강 유역의 퍄노프카 유적(그림 2-2), 우랄 강 유역의 이르쿨(그림 2-2), 카자스스탄의 이식 유적(그림 2-5),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4호분 출토(그림 2-4)등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둥이가 길어서 늑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동물장식의 꼬리가 길면 호랑이나 표범종류라고 한다. 이 들 유물은 대부분 기원전 5~4세기 유물이다.

 

초기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동물문양은 추상적인 기법이 많아서 실제로 종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으나 기원전 5세기에는 매우 표현이 구체적이고 실제와 된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동물들이 늑대라는 주장에 대해서 약간 다른 입장인데, 호랑이나 표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늑대, 호랑이 모두 꼬리가 길기 때문이다.

 

필자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에 좀 더 수긍이 간다. 꼬리의 구분은 애매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늑대와 호랑이를 꼬리와 주둥이의 길이로 구분하기에는 애매 한 점도 있다.

실제로 늑대와 호랑이를 살펴보면 가장 큰 차이점은 몸의 크기, 몸의 문양 등이 있지만 그 보다 더 큰 차이점은 귀의 모양이다. 늑대는 귀가 뾰족하고, 호랑이는 귀가 둥글다. 유라시아늑대는 다른 지역 늑대보다 더 뾰족하다고 한다. 늑대와 호랑이의 꼬리는 길지만 꼬리의 모양도 다르다.

 

호랑이는 나무가 많고 물이 많은 곳에 산다. 호랑이는 나무에 몸을 숨기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늑대는 서식환경이 매우 다양하며, 특히 회색늑대는 인간과 사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널리 퍼져 사는 동물로 알려졌다(Feldhamer, George A 2003).

 

늑대의 천적 중에 하나가 호랑이라고 하는데, 같이 공존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된 동물문양장식에는 한 말의 굴레장식에 두 동물이 같이 표현되어 있다.(아래 포스팅의 그림 5에서 확인가능하다)

 

2020/04/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 동물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가운데서 해발 1500m 파지릭 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2500년 전 알타이에는 무덤 안에 말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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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류는 굽동물과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다. 생물이니 두 동물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필자는 그냥 그런 방법까지 차이를 두었다는 점에서 놀란다.

 

맹수와 굽동물의 표현법에 차이는 자세이다. 전신을 표현했을 때이다.

맹수류는 표현할 때 관절을 굽힐 때는 다리를 앞으로 직각으로 펴고 앉는 자세로 그려진다(그림 3-4,15,17,19).( 굽동물은 앉은 모습이 다르다.) 혹은 앞에서 보았듯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자세와 다리를 세운 자세의 유물(그림 4)도 출토된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투엑타 유적, 에르미타주 소장 맹수표현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맹수

 

 

참고문헌

Feldhamer, George A.; Thompson, Bruce Carlyle; Chapman, Joseph A. (2003). 《Wild Mammals of North America: Biology, Management, and Conservation》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1980.(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고분, 아르잔)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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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대형의 벽걸이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다른 남녀가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 남성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지역의 2500년 전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짧고 달라붙는 상의 자켓과 하의를 착용했지만, 남성이 타고 있는 말은 달랐다.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흡사한 굴레장식과 고리투스(활과 화살통), 안장 및 덮개 등이 그렇다. 이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에서 확인된 반인반수로 표현된 사람도 얼굴은 말탄 남성과 유사하다. 반인반수, 피닉스, 말탄 남성 뿐만 등은 알타이가 아닌 외부적인 성격으로 생각된다. 의자에 앉은 여성이 들고 있는 꽃 모양 등도 마찬가지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표트르 1세는 17세기 후반부터 스키타이 유물을 수집했고, 황금 유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학문적’인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흑해북안에서부터 이다.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지만, 켈레르메스 등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다르지만 비슷한 요소’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림 1. 흑해 북안과 쿠반강. 쿠반강은 코카스서 산맥의 북쪽 지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필자는 흑해북안의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쿤스트카메라에 같이 소장되기 시작하면서 더 그런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관하기 이전에는 쿤스트카메라에 소장되었다.

 

지도를 펴서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흑해(현재 우크라이나 남부)는 그리스와 가깝다. 그래서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민족들이 그리스의 소 도시에서 주문받아서 만들게 되면서 스키타이 요소+그리스 혹은 근동적인 요소가 함께 섞인 유물이 나오게 되었다. 이를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이라고 하는데, 알타이가 발굴되기 이전까지 동물문양장식의 기원을 그리스-이오니아양식에서 찾으려고 했다(파르마콥스키 1914).

 

흑해북쪽과 가까운 곳으로 쿠반강 유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서 이란(페르시아)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의 특징에서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자도 있었다(로스톱체프 1925). 그는 아주 빈약한 유물로 이란의 청동유물, 쿠반 강, 흑해북안, 중국의 오르도스 지역의 유물을 유사성을 주장했는데, 그가 주장한 바는 20년이 지나서 유물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1947년 이란의 북쪽 지비예 유적에서 확인된 유물이다. 이 유적의 유물은 여러 이란적인 요소+스키타이 동물문양이 묘사되었고, 고다르드는 기원전 9세기 까지 올라간다고 생각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일정정도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러나 이 유적은 연대가 지나치게 빠르고 흑해북안의 스키타이문화권 유적인 켈레르메스(기원전 7~6세기)정이다. 왜냐하면 그 뒤에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대략 기원전 7~6세기대의 유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남부 투바 아르잔에서 1971~1974년에 걸쳐서 발굴된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옮겨놓게 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9~8세기로 연대가 확정되었고 그 근거는 나무나이테 연대측정법과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한 것이었다(테르네노시킨 1976, 그랴즈노프 1980). 발굴당시에 연대측정되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다시 유적들의 연대측정을 실시했으나 같은 결과였다(알렉세프 외 2005). 아르잔 1유적에서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표범장식이 확인되었고, 무덤의 구조물로 쓴 부자재 가운데 사슴이 그려진 돌들이 발견된다. 이름해서 사슴돌이라고 하는데, 사슴돌에 그려진 사슴의 모습은 알타이 유적의 유물과도 그 모습에서 관련성이 확인된다.

 

 

그림 2.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아르잔 1, 왼쪽 가장 상단의 그림(1)과 오른쪽 상단(5)에 사슴이 그려져 있는데, 사슴돌이라고 한다.  아르잔 유적의 위치는 포스팅되었다. 사슴돌은 비석과 같은 모습이다. 글자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외부와 내부설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스키타이문화권이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에 걸쳐서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면, 그 외연인 흑해북안은 그리스와 이란 지역과 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문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되는 남성의 모습이나 꽃 모양 등이 이유 없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그랴즈노프 1980, 초기스키타이문화의 차르 무덤, 아르잔)

파르마코프스키 1914, Фармаковский Б.В. 1914, Архаический период в России. — MAP, 1914, №34. (파르마코프스키 1914, 러시아의 고대시대)

로스토프체프, 1925. Ростовцев М.И.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Л., 1925 (로스토프체프 1925, 보스포르 지역의 스키타이)

테레노시키니 1976, Тереножкин. А.И. Киммерийцы. Киев, 1976.(테레노시킨 1976, 킴메리츠 )

알렉세프 외 2005, А.Ю. Алексеев 2005, Евразия в скифскую эпоху: радиоуглеродная 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хронология. СПб: «Теза». 2005(유라시아 스키타이 시대: 탄소연대)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Godard A. Le trésor de Ziwiye (Kurdistan). Haarlem,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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