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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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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 무덤이 스키타이 문화라는 유라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의 발원지 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동물문양장식, 무기와 마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특정하게 고정된 자세로 때로는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된 유물이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겪기 전까지 필자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널리?

 

그런데 이 생각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행동반경이 작은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농경시대를 오랫동안 거쳐왔고, 현대가 되어서는 섬나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멀리갈수 없고 가봐야 서울-부산이 가장 먼 거리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소수민족들은 지금은 그들의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었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들은 수천 km 반경의 지리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한다(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소수민족).

 

다시 돌아가서,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가능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반경은 있었지만.

동물문양장식은 왕래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표식?과 같은 기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각 지역의 무덤양식이 다르고 토기도 차이가 있는데, 비슷한 동물문양이 나타난다는 점, 또 동물문양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과장되게 표현해서 체계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아르잔-1호를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어제 소개해 드린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원형 호랑이장식 때문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직 형상화 된 그리핀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산양장식이 출토된다(그림3,4). 말무덤인 26a, 26b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에서는 최소한 말 뼈 11마리분이 확인되었고 재갈과 재갈멈치 세트도 11벌 출토되었다. 굴레에 달던 각종 장식판들도 있다. 특히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장식판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1. 무덤방 26번, 무덤방 26번의 북쪽벽에서 청동산양(26)이 있었는데,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그림 2. 무덤방 26번 출토 마구의 굴레장식 (1-7: 멧돼지 송곳니, 8-나무, 구멍에 멧돼지송곳니를 끼움, 9,10-목제)

 

그 중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청동으로 제작된 산양장식물이다. 산양이 발을 세우고, 청동판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모두 5점 확인되었고, 산양 아래의 청동판은 원뿔모양과 방형의 청동판 위에 올라간 것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 손잡이(그림4-1)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산양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앞 다리와 뒷다리의 근육, 다리의 관절, 굽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눈이 매우 둥글고 크게 과장되었고 다리도 뚱뚱하게 과장되었다. 사슴이나 말 등의 우제류는 날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산양은 캐리커쳐 한 느낌이다. 뿔도 면(그림 4-2)을 각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둥글게 표현한 면(그림 4-1)도 있다. 산양을 지지하는 지지대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래가 비어 있다. 구멍을 통해서 굴레에 달아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6: 상단의 3번유물과 같음, 7-상단의 1번유물)

 

 

 

 

그림 4.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1-그림 3의 2번유물, 2-그림 3의 4번 유물) 

 

그런데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 있다. 아르잔과 멀지 않은 곳으로 저지대인 미누신스크 지역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으로 타가르 문화라고 하는 문화가 알려진 곳이다. 필자가 스키타이 문화의 표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타가르문화의 위치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되는 문화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모양의 받침대 위에 다리를 펴고, 뿔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뿔이 아르잔 출토의 산양과는 달리 마디가 있고 더 길어서 야생염소로 생각한다. 다리를 뻗었고,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 과장된 눈, 지지대 등 아르잔 1호의 산양표현과 같다. 물론 다리가 날씬하다는 점, 귀가 표현된 점 등은 차이가 있다. 염소아래의 지지대가 비어 있음으로 막대기에 꽂아서 일종의 지팡이 꼭지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높이 18.6cm, 타가르문화, 기원전 7세기

 

타가르 문화가 있던 미누신스크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문화가 영위되었던 곳이다. 과장된 염소의 눈은 카라숙문화에서 사슴문양의 눈표현인데, 이 시절에는 청동단검의 손잡이 끝에 사슴머리가 달려서 출토되었다. 설명드린 바 있는데, 아르잔-1호 무덤의 봉분 위에는 등에 혹이 볼록 난 사슴이 그려진 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론이 흑해북쪽일 것이라는 의견은 1850년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주로 흑해북안을 위주로 발굴하면서 먼저 나온 것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그 의견은 약간씩 흔들리다가 아르잔 1호의 발굴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유물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잔 1호는 직경 120m의 크기와 6000개의 통나무를 써서 모든이를 압도하긴 했지만 실제 무덤은 견고함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유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많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